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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

양진채 소설가의 <소설로 읽는 인천>
신포시장엔 없는 게 없다

(13) 김경은 소설가의 중편 <..

  얼마 전 제물포구락부에서부터 자유공원, 웃터골, 인천극장 쪽을 지나 동인천역 양키시장과 중앙시장을 돌아보았다. 모두 역사의 중심이자 삶의 중심이었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원도심으로 그때만큼 영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인천극장은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였고, 토요일인데도 양키시장 안은 조용했다. 나도 이 중앙시장 안쪽에서 중앙여중 교복을 맞췄고, 결혼예물도 시장 끝 배다리가 시작되는 길목의 보석상에서 샀다.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 쇼윈도의 한복을 보았다. 화려한 색감은 조용한 골목에서 홀로 빛났다. 신포시장은 언제나 활기찼다. 내 기억엔 그랬다. 다른 시장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이 시장에는 있다는 생각이었다. 시장엘 들어서면 매번 살 게 없나 두리번거리곤 했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숨은 맛집도 있었다. 가끔 그 시장의 어느 곳이 아직도 존재하는지 안부가 궁금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신포시장을 갈 때는 언제나 마음 한쪽이 들떴다. 이 ‘들뜸’이 시장을 활기차게 보인다고 착각했다. 김경은 소설가의 <개항장 사람들>은 중편소설이다. 주 무대는 신포시장 주변, 시장통과 한길이 맞닿은 곳에 있는 아버지 식당이다.   줄기에 해당하는 통로가 나란히 두 개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먹거리와 채소 잡화류를 파는 점포가 이어진다. 점포 사이사이로는 가짓길이 뻗어 자기네끼리 만나기도 하면서 통로와 연결되었다. 미로 같은 사잇길은 시장을 깊고 복잡하게 만들었고 돌아보는 재미도 주었다. 그렇게 도로에서 시작된 시장통은 한길이 나오면서 끝난다. 시장통을 수직으로 마름하는 한길 양쪽으로는 주로 옷가게와 식당이 이어졌다. 아버지의 식당은 시장통과 한길이 맞닿은 곳에 있었다. 카운터에 앉아 있으면 한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정면으로 보였다. 식당이 살짝 각도를 틀고 있는지라 곁눈으로는 등뒤에서 벌어지는 시장통의 일까지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동인천역 방향으로 신포 문화의 거리가 나오고 반대편으로는 하인천과 괭이부리말, 월미도로 통했다.     신포시장을 웬만큼 다녀본 사람이라면 작가가 묘사해놓은 시장이 그림처럼 그려질 것이다. 이 시장이 인천의 개항기에 터진개시장으로 불렸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터진개’는 말 그대로 강이나 바다에 트여 있는 개천이다. 개항기 바다와 육지가 맞물렸던 자리에 개항 이후 외국인들이 몰려들면서 당시 중국인과 일본인을 비롯해 여러 외국인들이 찾는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 시장이 지금의 신포시장이다. 그러니 작가는 신포시장과 그 일대를 소설의 주 무대로 삶아 그들의 삶을 그려냈고, 소설 제목을 <개항장 사람들>이라고 붙였으리라. 주인공의 아버지는 이 시장에서 고집 세게 좋은 원료를 고집하며 ‘개성만두’를 운영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트렌드가 변하면서 가게는 날로 기울어져간다.   시청이 이전하면서 이 곳 사람들의 자존심도 함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차츰 시청에 부수한 시설들과 사무실, 관련 업체, 하다못해 문구 사무용품점까지 이전해 갔다. 인천의 중심에 있다는 자부심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변방으로 밀려나는 쓴맛을 보았던 것이다. 목을 찾아 자리를 넘기며 한차례 떠난 후 남은 사람들의 면면은 노령화된 토박이와 그를 잇는 장남들이었다.   한때 융성했던 신포시장은 시청이 이전하게 되면서 쇠락하게 된다. “신포국제시장‘이라는 이름을 달기도 하고, 빗물이 떨어지던 시장통 위를 아치형 아크릴 지붕으로 덮고, 새롭게 정비를 해도 어쩐 일인지 사람의 발길이 예전 같지 않다. 가장 크게는 이제 곳곳에 볼거리가 생겼고, 교통이 발달해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되었으며, 더 좋은 상품을 돈만 내면 살 수 있는 마트가 근처에 있다. 신포시장 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시장이 겪는 부침이다. 이곳에서 계속 장사를 할지말지 하는 고민은 비단 주인공의 아버지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할아버지가 하던 일을 어렵게 물려받았지만 ‘고단한 육신과 쇠락하는 지역을 겪으며 이런 애물단지 물릴 아들 없는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한숨짓는 어머니의 허탈감은 이 시대를 어렵게 헤쳐 나온 이들에게는 남 일 같지 않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거기에 내 삶이 얹힌다. 80년대를 고스란히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세대. 지극히 개인적인 삶조차도 대의명분에 눌려야 했던 삶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시위 도중 잡힌 내가 구치소에 묶여 있다가 나왔을 때였을 것이다. 두려워. 남편은 생뚱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얼굴을 보자 내가 했던 말을 취소하고 싶었다. 누구를 위해 나를 버릴 자신이 없어. 남편은 그 누구란 말을 민중으로 받아들였다. 당연했다. 나를 버린다는 말은 민중 속으로 들어간다는, 그 시절 우리들의 여러 표현 중 하나였으니까. 비장한 각오를 상시적으로 확인하던 우리에게 민중이란 말은 항상 숙연한 무엇을 만들어 주는 비약이었다. 하지만 나는 남편과 은밀한 행위를 나누는 자리에서까지 숙연하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남편이 가벼운 어조로 나도 그래, 했으면 남편과 동지 의식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리라. 그랬으면 나는 그 누구를 민중이 아니라 나 아닌 남으로 뉘앙스를 바꾸었을 것이다. 가두 시위에서 머리채를 잡혀야 하는, 하늘에서 춤추는 최루탄을 피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수치심 없이 넋두리하고 다음날은 훌훌 털어 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남편은 그러지 않았다. 일 년 먼저 학교에 들어간 남편은 그 세계에서 항상 나의 선배였다. 그는 학교에서 보는 선배들처럼 언제나 숙연하고 결연했다. 나는 남편이 나의 선배이길 바라지 않았다. 선배들에겐 신뢰감 넘치는 후배로 인정받더라도 남편에게만은 나의 밑바닥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못한 유치함과 이기심을 드러내서 잠시나마 긴장감을 털고 싶었다. 남편이 나도 그래, 했으면. 그런 틈을 보이지 않는 남편에게 나는 늘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그 속을 확인하려 들었다. 그에게도 있을 유치함을,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이기심을. 한편으로는 그런 남편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말이다.   인용이 길긴 하지만 이 단락에서 80년대를 살아온 청춘이 고스란히 보인다. 그때 우리의 모든 삶은 ‘비장한 각오’로 통했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을 때조차, 동지가 아니라 이성으로 보이는 마음조차 스스로 비판하고 죄스러워했으니까. 그러나 인간이란 지극히 사소한 존재가 아닌가. 감정을 누른 채 이성만 가지고 살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런 격동의 삶이 지나고, 지금 나는 아버지의 가게를 돕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할아버지 식당을 물려받기까지 아버지가 그랬고, 다시 내가 그랬고, 소설 마지막에 친정으로 들어온 언니가 그랬다. 식당은 그 자리에서 내내 있었고, 반항과 격동과 부침의 삶을 살다 돌아온 이를 말없이 받아주었다.   “지구가 둥근 건 다행일지도 몰라. 그러니 지구가 공전하고 자전하는 건 또 얼마나 다행이야.” 나는 바다에 시선을 두고 둥근 지구에 주문을 걸기라도 하듯 말했다. 멀리 섬 자락 끝으로 오롱조롱한 불빛들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불빛 몇 개가 바다를 떠다녔다. 유람선이었다. 시커먼 바다는 유연히 떠가는 형체 때문에 바다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있는 게 부러웠던 적이 딱 한 번 있었어. 맞혀 볼래?” 그가 고개를 저었다. “초등학교 때였어. 체육시간에 선생님이 기준, 하면서 한 아이를 가리키는 거야. 그러면 아이들이 그 아이를 중심으로 흩어지지. 다시 기준, 하면 아이들이 그 아이를 향해 모이는 거야.” 그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있어야겠지. 기준이 없으면 돌아가고도 그걸 모를 테니까.” 나는 말을 마치며 그를 보고 웃었다. 그도 웃었다.   마지막에 이르러 작가는 ‘기준’을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 그 기준이 없으면 돌아가고도 모른다는 것. 이 부분에 이르러 읽는 독자인 나는 부끄럽다. 그 삶에 끼어들고 싶지 않으면서 그곳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길 바라는 이기심을 보기 때문이다. 자유공원과 중앙시장, 배다리, 율목도서관까지 그날 내가 둘러보았던 곳에는 모두 내 삶의 한 부분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그 자리를 걷게 되었을 때, 가슴 한쪽이 간질거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서 고마웠다.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세월을 이고, 버티고 있는 그 장소, 그 가게, 불빛들이. 그러나 그 삶속으로 들어가 보면 얼마나 고단할지 잘 알고 있다. ‘기준’이란 게, 그냥 서 있는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마려운 오줌을 참고, 내리쬐는 햇볕을 참고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그 기준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모른다. 그저 팔을 벌려 줄을 맞추고 내 자리를 잡으면 되니까. 그 ‘기준’으로 우직하게 서 있는 떡집을 하는 제운당이 있고, 민어회를 파는 횟집이 있고, 닭강정집이 있고, 메밀이나 냉면을 파는 곳이 있다. 또 생선을 말려 파는 곳도, 전을 부쳐 파는 곳도 있다. 또 있고, 또 있다. 소설의 마지막으로 가면서 그와 다시 시작하려는 나, 친정으로 들어온 언니와 함께 식당을 다시 일으켜 세우며 건강한 삶을 살아가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나를 미워했던 아버지도, 아버지를 미워했던 할아버지도 실은 사랑의 서툰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된다. 작가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삶의 다층을 덤덤한 듯, 그러나 따뜻한 시선으로, 촘촘하고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신포시장도, 그들의 삶도 현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때로는 날 것 그대로, 때로는 곰삭은 젓갈 냄새를 풍기면서, 소설은 다름 아닌 삶의 적나라한 현장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우뚝 서서 신포시장의 긴 길목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는 듯하다.    
문갑도 사람들의 전통 생활도구
낙지잡이, 마을의 대화 창구역할을 ..

(6) 문갑도의 전통 낙지잡이

문갑도 개펄에서 잡아올린 낙지     문갑도의 낙지잡이는 전통적으로 맨손으로 갯벌에 들어가 잡는다. 많은 힘과 기술이 필요하고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어 아무나 잡을 수가 없다. 문갑도의 중요한 반찬이자 용돈벌이가 되며 마을사람들의 대화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낙지를 안주삼아 수많은 소주병을 비웠으며 낙지는 문갑도만의 먹거리로 자리 잡은지 오래이다.       깊은 곳은 무릅 이상으로 빠진다      낙지잡이는 물이 심하게 빠지는 조금 사리 때를 기해서 물이 나갈 때를 맞추어 최대한 해안에서 멀리 깊은 개펄로 나간다. 바닷물을 따라 나가면 갯벌이 깊어 무릅까지 들어가 움직이기도 불편할 정도이다. 한번 나가면 잡는 양이 10-40마리 정도이고 대중없다. 하지만 낙지잡이 선수들은 한번 나가면 최소 20마리는 잡는다고 한다. 문갑도의 낙지는 힘이 좋고 비교적 큰 편이다. 문갑도의 수심이 깊은 갯벌에서 서식해 담백한 맛이 나고 해금내(바다갯벌 특유의 냄새)가 없단다. 다른 곳의 낙지와는 비교가 안 된다. 한 마리에 5천원, 힘들고 고된 작업이지만 담배값이나 용돈 정도, 그리고 마을 분들과 소주잔을 나누는 안주거리로 충분하다. 주로 마을에서 소비하지만 아름아름 지인들의 낙지 주문이 쇄도한다. 오후 배로 보내면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운반비 2천원을 주고 찾아간다.   낙지는 개펄에 드나드는 구멍이 있고 군데군데 숨구멍이 개펄 위로 작게 속아 있고 개펄 속에서는 수평으로 통로가 나 있어 안에서 돌아다닌다. 낙지잡이 방법은, 우선 들어가는 구멍에 손을 넣고 숨구멍을 보며 어느 방향으로 통로가 나 있는지 확인한 후 개펄을 삽으로 떠낸다. 떠내면서 수시로 구멍에 손을 깊숙이 넣어 통로의 방향을 가늠한다. 삽으로 계속 파들어 가고 계속 손을 넣어본다. 드디어 통로의 끝에 다다르면 낙지를 잡아 올린다. 다음, 스티로폴 박스의 작은 구멍으로 머리부터 밀어 넣는다.     낙지 구멍에 손을 넣어본다 낙지 개펄 속의 통로가 어느 방향인지 확인한다 개펄을 파 들어간다 중간중간 손을 넣어 방향을 가늠한다 통로의 마지막에 낙지가 있다     문갑도에서 대표적으로 잘 잡는 선수 두 사람, 청년회장 진희관씨와 서영규씨, 한 선수는 스티로폴 박스, 한 선수는 대형 주전자가 낙지봉다리(?)이다. 낙지 봉다리 안에는 마실 물병도 같이 넣어둔다. 개펄에서 움직이고 파는 힘든 작업을 하면 물은 필수이다. 개펄을 파는 삽은 길이가 짧게 특별히 주문하는데 최근에는 바닷물에 부식되지 않도록 스탠 재질로 만들어 사용한단다.           개펄에서 나오면 갯가 모래사장 아래 물길이 내려오는 곳에 삽으로 넓게 웅덩이를 만든다. 물이 고이면 여기에 낙지를 풀어놓고 상자와 낙지를 깨끗이 닦는다. 웅덩이는 아래로 물길을 만들어 신선한 물이 계속 유지되도록 한다. 낙지는 스스로 깨끗한 물에 개흙을 벗어내고 원래의 모습을 찾는다. 박스를 깨끗이 닦아 다시 낙지를 넣고 바닷물을 넣어 가져가면 끝난다.         낙지잡이는 수많은 시행착오로 본인만의 노우하우를 터득한다. 사람마다 잡는 방식이 조금씩 다른데 절대 자신의 방법은 일러주지 않는단다. 낙지구멍도 다 똑같은 것이 아니고 개펄이 깊은 곳과 얕은 곳에서 잡는 방식이 다르단다. 또한 낙지는 매일 잡는 것이 아니라 물때에 따라 다르고 조금과 사리를 전후해서 잡는다. 낙지는 어느 바닷가에나 존재하지만 문갑도의 개펄은 넓고 깊으며 완만하게 형성되어 있고, 오염되지 않는 천연의 개펄이라 그 명맥을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마을 앞의 문갑해변과 동쪽으로 언덕을 넘어가는 한월리 해변에서 낙지를 잡는다. 그동안 문갑도의 낙지는 전통과 마을의 화합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문갑도의 낙지잡이 달인 서영규씨  
배다리 통신
<배다리신보> 마을공동체 회복을 위..

다시 걷는 발걸음을 위해 ...

10월 14일 배다리에서는 만국시장이 열렸다. 인천in에서는 가 재개되는 날이기도 했다. 인천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졌다. @2010년 10월 터덜터널 걷기 - 연천 DMZ 트레킹을 함께하며 찍은 사진들 2009년 지역주민예술가들과 함께 한 ‘지역공동체 창작공방 다행多幸_하다’라는 활동을 바탕으로 ‘지역공동체창작활동연구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활동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함께 공간을 만들고, 각자의 재능을 마을과 나누며 성장시키고, 자립도 하자는 창작공방을 만들었다. 그때 사진을 주로 찍었던 필자는 일상의 마을사진과 한 두줄 이야기가 담긴 소식지를 여유가 생길 때마다 냈었다. 그것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마을 예술가, 활동가들과 함께 만드는 ‘마을공동체 회복을 위한 마을사진신문 - 우각로신보, 배다리신보’가 됐다. 배다리의 일부인 창영동 일대를 중심으로 ‘Art in city 2007 우각로 프로젝트’라는 지역환경개선을 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있었다. 2006년 겨울 동구관통산업도로 반대 활동이 준비되었던 시기에 도원역 인근에서 ‘퍼포먼스 반지하(이하 '반지하')’가 운영하던 ‘언덕을 오르는 바닷길’에 찾아오신 곽현숙 아벨서점 대표님과 산업도로 관련 이야기를 나누면서 준비된 사업이다. 당시 인천 전지역이 동시다발의 재개발로 소시민들의 삶이 위협받던 시기였다. 배다리도 ‘금곡동 일대 재개발 문제’와 ‘동인천 북광장 일대의 개발사업’에 배다리 헌책방 거리 일대가 수렴될 상황이었고, ‘송도~청라 경제자유구역을 잇는 직선 산업도로 사업’을 우연히 알게 된 지역주민이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도움을 청하며 도로를 막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때였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주민들은 손바닥만 한 집 한 채를 고스란히 개발업자들에게 빼앗길 위기였고, 순환개발이 아니라 인천지역 전체에 개발이 들어가는 바람에 이사 갈 곳도 마땅찮은 상황에서 평생 일터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갈 위기였다. 지금의 ‘스페이스 빔’이 있는 (구)인천양조장 건물은 당시 아벨서점 사장님이 책방 창고로 쓰면서 일부를 다듬어 ‘아벨전시관’을 가꾸어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 송림동 철탑 인근에서 ‘지역교육문화센타 희망터’라는 단체에서 ‘인천인권영화제’ 관련 활동을 하던 필자가 일하던 공간에 서구 가정동에 살면서 인천 구도심 일대를 기록하며 다양한 활동하던 ‘공존을 위한 공공문화 표현집단 - 퍼포먼스 반지하’라는 이름의 친구들이 찾아오면서 그해 ‘인천인권영화제’를 함께 준비했고, 철탑 옆 ‘나눔의 집’에서 ‘송림동 그림수필’이라는 이름의 문화예술교육활동과 축제를 진행했다. 그 활동의 일환으로 배다리에서 ‘인천공부방연합’과 함께 청소년이 되면 공부방을 다닐 수 없었던 당시의 청소년들을 위한 인문학교육 ‘언덕을 오르는 바닷길’이라는 이름의 수업을 아벨서점 곽 사장님의 배려로 ‘아벨전시장’에서 진행되다. 또한 운봉공고 영화동아리 청소년들과 ‘다큐멘터리_직업’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이를 계기로 이 청소년들이 지속적으로 자유롭게 관련 공부를 하고 활동하도록 돕는 공간을 도원역에 인문학교실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공간을 마련해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 공간에 찾아오신 곽 사장님은 인천에서의 배다리를 지켜야하는 의미를 ‘반지하’ 사람들과 나눴고, 이를 함께하기 위한 방법으로 노무현 정부가 펼치던 ‘지역환경개선을 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에 ‘우각로 프로젝트’를 간이로 지어진 건물을 임대해 배다리 ‘문화공방’으로 꾸미고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인천 동구와 배다리의 역사적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공부하고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하던 예술가들을 설득해 ‘문화예술을 통한 재개발 및 도로반대 활동’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고 진행했다. 지역 공동체의 의미와 내용을 축적하며 각종 난개발로 피폐해지고, 해체되어가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국에 소개해 지역공동체의 의미와 이를 지켜나가는 배다리에서의 활동을 지속했다. 이렇게 ‘우각로 프로젝트’가 마을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며 지역과 어울리는 노력이었다면 이와 함께 ‘지역사회에서 예술하기’라는 이름으로 생활문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다. 이는 지역 주민들 중에서 문화예술관련 활동을 하고 있거나 하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 그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함께 공부하고 활동하는 과정수업이다. 그리고 이 수업을 통해 그들이 활동할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고, 개인이면 부담이 될 수 있는 공간을 ‘여럿이 함께’ 마련해 공동체를 구성하고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담은 것이 ‘지역공동체 창작공방 다행多行+幸하다’라는 샘플링 프로젝트였다. (당시 ‘다행이다’라는 이적의 노래가 있는데 ‘많이 걷다’가 ‘많이 움직이다’라는 의미와 통해 우리는 ‘다행’하자라며 이름을 제안한 것이 필자라는 것은 사족이지만 그래서 지금 마을사진관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주민들과 함께 쓰레기가 쌓이는 마을의 빈 공간을 공원으로 만들고, 무너져가는 벽을 고치고, 아이들이 오고가는 커다란 회색 벽에 그림을 그리고, 보도블록을 걷어내고 꽃과 나무를 심고, 이웃들을 불러 차를 나누고 식사를 함께하고, 버려진 나무들을 모아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고, 공터의 붉은 흙을 걸러 염색도 하고, 마을 곳곳을 찾아다니며 아이와 할머니들 앞에서 직접 만든 노래를 부르며 공연도 하고, 여름밤에는 주차장에서 영화도 함께 보고, 마을 골목에서 연극 공연도 하고, 할머니네 호박도 따드리고, 할아버지댁 전기도 고쳐주고 ... 그렇게 일상이 축제인 듯 축제가 일상인 듯 지내왔다. 얼마 되지 않은 돈을 고스란히 쏟아 부으며 활동했고, 공간과 일상을 유지하는 게 매순간 수월치 않았지만 그렇게 도로를 막아냈고, 공동체를 지켜왔고, 문화가 일상이 되는 가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에 의미를 두며 살았다. 최소한의 생활과 공간 유지를 위해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비용으로 연명하고 있는데 유지하고 있는데 시나 구에서 돈 받고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를 아직도 듣는데 참 억울하다는 마음이 드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십 수 년 함께 즐거움을 나눴던 어르신들은 하나 둘 병들고, 귀천하셨고, 함께하던 예술가들, 활동가들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새로운 활동을 위해 떠나기도 했고, 그동안 이곳을 오고가며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적잖이 들어왔다가 나가기를 반복했다. 더러는 1년 겨우, 더러는 4-5년 이상을 사는 거 보면 배다리의 삶이란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곳이란 걸 느낀다. 얼마 전 서울의 합정동과 익선동을 들러볼 기회가 있었다. 합정동에서는 일반 주택을 그대로 살린 식당, 사무실, 카페, 상가 등의 모습이 신기했었고, 사진을 한참 찍으러 다닐 때 복작거리던 종로 뒷쪽 조용하고 한가로운 한옥들과 골목을 보고 참 좋았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 좁은 골목길, 그리 넓지 않은 한옥을 개조한 상가며 카페에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이 복작복작 거리는 모습을 보며 그곳을 피하듯 빠져나왔다. 다시 뉴스테이 재개발과 뉴딜이니 하는 도시재생사업, 말도 안 되는 도로를 다시 만들려는 일로 배다리 뿐 아니라 구도심이 시끌시끌하다. 마을을 관광지나 볼거리로 겉치장을 부려 지자체장의 성과로 만들려는 태도에 온통 쑥대밭이다. 4번을 쓰고 방치된 아시안게임경기장이 마을 한가운데 있는데 유지하는 것도 힘든 상황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물동량 거의 없는 아라뱃길이며 4대강 유역의 곳곳은 이용할 사람이 없어 페허가 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번주 일요일부터 마을사진 신문만들기 강좌를 한다. 또 주민들과 함께하는 사진수업도 한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안하기로 했지만 올해 초에는 유튜브를 이용한 마을방송국 기획을 공모에 내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그간의 활동을 곱씹어보고 있다. 어제는 지난해 재개발이 해제된 금창동 지역에 마을 공동체 회복을 위한 사업을 하자는 제안이 왔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기에 왜 어떻게 있어왔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마을이 무엇이고, 공동체가 무엇이고, 문화란 예술이란 일상이란 축제란 또 무엇인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위한 웹자보를 만들다보니 ‘멈짓’하는 나를 발견했다. '다시,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마음과 '부디 그러하기를' 하는 마음이 오고간다. 그렇게 매순간 흔들리며 가는 나는, 우리들은 아직 살아있는 나침반의 바늘이겠지?
김인자 작가의 할머니 꼬시기
"할아버지, 그게 모에요? 고양이 밥?"

(184) 할아버지가 휙 던진 것

"안녕하세요 ~" "예, 잘 주무셨어요 어르신? 걸어오시느라 고생하셨지요?" "네, 간신히 걸어왔네여. 천리길이 오늘은 만리길이여요..." "어제 독감예방접종을 하셔서 더 피곤하실거예요." "그르게요, 주사바늘은 들어가는거 같지도 않고 따끔하기만 하더만 아프지도 않고요. 그런데 주사맞고 나오는데 그 잘나게 걷는 걸음도 다리가 휘청거리더만여. 기운도 읍고요." 어제와 그제 사랑터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독감 예방접종을 하셨다. 하루 나오시고 하루 쉬시는 96세 할아버지 빼고는 모두 독감 예방접종을 마치셨다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는 어려운 계절인 겨울이 가차이 다가오고있다. '늘봄 사랑터' 치매센터인 사랑터차에 쓰여진 검정글씨. "선생님, 센터 이름이 '늘봄 사랑터' 말고 '늘 여름 사랑터'는 어떨까요?" 하고 말씀드리니 요양사 선생님 하시는 말씀 "늘 여름은 늘어져서 안뎌요." "그럼 '늘 가을 사랑터'는요?" "그건 쓸쓸해서 안되고요." "그럼 늘..." "'늘 겨울 사랑터' 할라구 하쥬?~~ 아 하지마, 하지마유~ '늘 겨울 사랑터' 믄 울 어르신들 추워서 꼼짝도 못혀요. '늘봄 사랑터'가 딱이유." "그렇죠? 선생님? 울 할머니 할아버지들 겨울이 와도 사랑터차에 써있는 이 글귀처럼 늘 봄처럼 생동생동하셨으면 좋겠어요. 심계옥할머니 사랑터가는 아침. 갑자기 추워진 날씨.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덥다덥다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춥다 춥다하는 계절이 돌아 왔다. 심계옥엄니 치매센터인 사랑터차에 태워보내드리고 집으로 걸어 들어오는 길. 평상시처럼 아파트화단을 살피고 오늘은 어떤 꽃이 어제 보다 더 많이 시들었나를 살핀다. 예쁜 꽃들이 한창 피고지던 봄여름을 지나 지금은 왠만한 꽃들은 이미 다 지고 있는 형편. 그나마 관리소에서 국화 화분 큰 것 두 개를 현관 앞에 사다두어 지는 꽃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긴 하다. 어제봐도 오늘 봐도 참 예쁘다, 국화는. 제철 과일이 맛있는 것처럼 꽃도 제철에 피는 꽃이 예쁜거 같다. 요리조리 화분 속의 국화꽃을 살펴보며 "이뿌다 이뻐" 하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는데 "진짜 예뿌네여." 하며 지나가시는 아저씨 아니 할아부지 한 분. 첨보는 할아버지시다. 우리 아파트에 사시는 분이 아니신데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시더니 화단쪽을 향해 휙하고 던지신다. 그러고는 저짝으로 쌩하니 걸어가신다. 할아버지가 무엇을 던지시는거지? 고양이밥을 주시는건가? 아니면 새모이를 주시나? "할아버지, 그게 모에요? 고양이 밥주시는거예요?" 하고 여쭤보니 할아버지 뒤돌아서 손 한번 쓰윽 들어보이시고 가던 길 그냥 가신다. 할아버지 서너 걸음에 어느새 저 멀리 지나가시고 할아버지가 화단쪽으로 던진 것이 궁금한 나는 재빨리 화단으로 '휙'의 정체를 살폈다. 방향감각 위치감각이 제로인 나는 할아버지가 던지신 휙을 한참 동안 찾았다. '등잔밑이 어둡다.'는 나를 두고 만든 고사성어가 틀림없지 싶다. 요리조리 한참을 찾아봐도 없던 할아버지의 휙의 정체는 초록풀에 떨어진 노란 작은 빵 한 개였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빵이 아니라 노란 꽃같다. 이 아파트에 살면서 첨본다. 노란빵 휙할아버지 헨델과 그레텔처럼 길표시를 하시는걸까 집을 찾아가시려고? 아침부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 할아버지 가방속에 빵이 한가득이던데... 빵할아버지 휙할아버지 어디로 가셨으려나? 그래도 할아버지는 건강해보이셔서 다행이시다. 독감예방 접종은 하셨으려나? 새모이든 길냥이 먹이든 챙겨주시려면 할아버지가 건강하셔야할터인데... 빵할아버지 지금쯤 어디서 노란빵을 휙하고 던지고 계시려나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감기 걸리시면 어쩌지 하는 생각으로 걱정인 아침...  
최원영의 행복산책
당신이 간절히 원하는 한 가지

(38) 확신주는 선물

  풍경 #61. “심장소리가 잘 들려요!”   <시크릿, 하루 한 마디>라는 책에서 꿈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간절히 원하는 한 가지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을 예언자로부터 들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 같은가요?“   맞는 말 같습니다. 꼭 한 가지, 그것만은 반드시 이루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 그것이 꿈일 겁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꿈이 있을 것이고, 꿈이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느 책에서 읽은 기적 같은 이야기가 하나 떠오릅니다.   어느 대학병원에서 주치의가 회진을 하면서 한 노인환자의 심장에 청진기를 대보니, 제3심음이 아주 뚜렷하게 들렸다고 합니다. 제3심음은 처음에는 아주 희미하게 들리다가 심장이 멈추기 직전이 되면 크게 들리는 소리라고 하는데요. 이 소리는 그 사람이 죽음 직전에 와 있다는 신호입니다. 환자가 죽기 직전에야 들리는 소리이기 때문에 의사들이라고 해도 쉽게 들을 수는 없는 소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치의는 황급히 학생들을 불러 노인의 심장소리를 듣게 했습니다. 죽어가는 노인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심장박동의 제3심음을 좀처럼 들어볼 기회가 없던 학생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겠죠. 심장에 청진기를 대어본 학생들은 저마다 기쁨의 탄성을 질렀습니다. “잘 들립니다. 아주 또렷하게 잘 들려요!”   주치의는 노인의 가족들에게 장례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주었고요, 가족들 역시 장례준비를 하고서는 노인이 돌아가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후가 되자, 혼수상태에 있던 노인의 심장상태가 급속하게 호전되기 시작했고, 이윽고 제3심음이 사라져버린 게 아닌가요?.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자 노인은 퇴원을 했습니다.   퇴원하는 날이었습니다. 아침에 회진을 하면서 주치의가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이렇게 갑자기 심장이 좋아지리라고는 저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 물음에 대해 할아버지는 의아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습니다. “의사선생님! 지난 번 아침 회진 때 선생님과 제자들이 내 심장소리가 잘 들린다고 기뻐하지 않았소?” 그랬습니다. 노인은 의식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도 의사들의 “잘 들립니다, 잘 들려요”라는 말을 듣고서, 그 말이 자신의 심장상태가 좋아졌다는 의미라고, 자신은 다시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겁니다. 그때부터 노인의 심장은 에너지를 얻어 힘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어떤 의심이나 불안감이 없이 전적으로 무언가를 확신할 때는 그 믿음이 우리의 몸까지도 회복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내가 살아날 수 있다’는 간절한 꿈, 그리고 그것을 굳은 믿음으로 승화시킬 수만 있다면 어느 누구라도 이 기적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용히 책 속에 나온 꿈의 정의를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당신이 간절히 원하는 한 가지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을 예언자로부터 들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 같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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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은 빨갱이"... 시,극우단체에게 2천만원 보조

20일 보수단체 행사에 인천시 후원... 지역사회 “보수단체에 공적자금 퍼주기” 반발

  제1공화국 당시 진보 정치가로 활동했던 죽산 조봉암 선생을 ‘빨갱이’로 몰고 자유공원을 맥아더공원으로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하는 극우보수단체들에게 인천시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이 실태를 파악할 경우 파문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인천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는 20일 상임위원회를 열고 행정관리국의 주요예산사업의 추진상황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맥아더장군동상보존시민연대’와 ‘인천지구황해도민회’라는 이름의 보수단체가 이날 자유공원에서 진행한 행사를 언급했다.   기획위 소속 이용범 시의원은 “해당 단체가 인천시의 보조를 일부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들이 한다는 행사의 포스터에 지나친 표현들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며 전무수 행정관리국장을 상대로 따져 물었다. 전 국장은 “안 그래도 얼마 전에 파악을 한 뒤 해당 단체에 주의를 줬다”고 말했다.   이 단체의 포스터 이미지에는 극우단체라는 점을 감안해도 자극적인 문구들이 가득하다. 사드 배치 찬성 등은 정치적 견해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미국인인 맥아더를 구국의 상징을 언급하고 ‘종북’, ‘빨갱이’ 등의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다.   실제 이들은 자신들의 행사를 안보행사로 부르고 있으나 실제 집회 등에서 이들이 주장하는 바를 들어보면 안보와는 전혀 내용이 다른 극우단체 집회 그 자체로 사실상 불리고 있다.   특히 인천시가 추진하고 있는 죽산 조봉암 선생의 동상 건립을 반대하며 조 선생을 ‘빨갱이’ 등으로 부르고 있는 부분은 심하다는 지적이 많다. 헌정사상 '사법살인'의 첫 희생자로 꼽히는 조봉암은 지난 2011년 1월, 사형 집행 52년만에 열린 대법원 재심에서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문제는 이런 극우단체에 인천시가 현 유정복 시장 취임 이후로 계속 행사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날 기획위 회의에서 전무수 행정관리국장은 “해당 단체는 비영리단체보조금 명목으로 시 지원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인천in>이 확인한 결과 시 공익사업선정심의위원회 심사를 통과해 지난 2015년 1,300만 원을 시작으로 2016년 1,800만 원을 지원받아 왔고 올해도 1,900만 원을 지원 받았다.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고 인천시가 기리려 하는 인물을 '주적'으로 묘사하고 미국인 맥아더를 구국의 상징으로 주장하는 집회를 인천시가 보조금 명목으로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 이러한 내용은 인천시가 해당 행사를 후원하는 것으로 포스터에 적시돼 있어 SNS 등을 타고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지역 시민단체들은 ‘지역 망신’이라는 반응과 함께 유 시장이 작정하고 보수단체에 공적자금을 보조금 명목으로 퍼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의 박재성 공동대표는 “보통 지역의 사회단체들에게 지원되는 보조금 규모가 300~500만 원 사이가 보편적인 수준인데 2천만 원에 가까운 보조금을 올해 받았다는 게 놀랍다”며 “지역의 사회단체들에 주는 보조금은 기본적으로 시민의 복리증진과 공익적 활동을 위해 쓰여지도록 해야 하는데, 그 보조금을 시민들의 보편적 상식과는 전혀 동떨어진 ‘시대착오적’인 편파적 색깔론에 물들어 이를 주장하는 단체에 지원하는 건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편으로는 시가 추진하는 인천 역사의 정립 방향과도 완전히 어긋나 있는 활동을 하는 곳에 지원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타당하다고 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개인적 혹은 단체 차원으로는 그런 주장을 할 수도 있지만 그 주장에 대해 시가 경제적인 지원까지 한다는 게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거리에 붙여진 포스터는 모두 수거하도록 했으나 남아 있는 것들이 제법 있었던 것 같다”면서 “포스터 내용에 있는 설탕 지급 등은 보조금에서는 지출하지 못하도록 했고 향후 확인해볼 것”이라 밝혔다. 보조금 지급 자체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코멘트하지는 않았다.  

"인천경제청 전 송도사업본부장의 SLC 취업은 불법"

이한구 시의원 시정질문에서 공직자윤리법 위반 주장, 업무취급 제한 위배

                                         송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사 G타워  인천 송도국제도시 6·8공구 개발이익환수를 둘러싸고 정대유 전 인천경제청 차장이 페이스북에 업자의 탐욕을 비판하고 언론, 사정기관, 시민단체와의 유착 의혹을 암시하는 폭로성 글을 올려 시의회 조사특위가 구성되는 등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당시 해당 업무를 처리한 김모 송도사업본부장이 퇴직하고 SLC(송도랜드마크시티개발) 전무이사로 취업한 것은 공직자윤리법 위반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무소속 이한구 시의원(계양구4)은 19일 인천시의회 본회의 시정질문에서 “인천시는 김모 송도사업본부장이 SLC에 취업한 것은 공직자윤리법 제17조(퇴직공무원의 취업제한)상 취업제한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주장해 왔다”며 “그러나 공직자윤리법 제18조의2(퇴직공직자의 업무취급 제한)에 저촉되기 때문에 명백한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공직자윤리법 제18조의2 1항은 ‘모든 공무원 또는 공직유관단체 임직원은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에 직접 처리한 제17조 제2항 각 호의 업무를 퇴직 후에 취급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제17조 2항은 퇴직일로부터 3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 또는 기관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경우를 나열하고 있는데 2호에 ‘인가·허가·면허·특허·승인 등에 직접 관계되는 업무’가 들어 있다.  인천시는 지난 2007년 8월 SLC(미국 포트만홀딩스, 삼성물산, 현대건설 합작 특수목적법인)와 협약을 맺고 151층 인천타워를 건립하는 조건으로 송도 6·8공구 651만㎡ 중 도시기반시설용지를 제외한 사업용 토지 228만㎡에 대한 독점개발권을 줬는데 이후 4년 반 가량의 사업축소 협의를 거쳐 2015년 1월 사업조정합의서가 체결됐다.  사업조정합의는 151층 인천타워는 없던 일로 하는 대신 SLC에 공동주택용지 34만㎡를 3.3㎡(평)당 300만원에 제공하면서 수익률이 12%를 넘을 경우 초과개발이익의 50%를 인천경제청이 환수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SLC와의 사업조정을 담당했던 김모 송도사업본부장은 2015년 5월 퇴직하고 7월 SLC 전무이사로 취업했다.  이한구 시의원은 “당시 SLC는 매출이 발생하지 않아 매출액 100억원 이상이라는 기준에 따라 공직자윤리법상 퇴직공무원의 취업제한 기업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김 전 본부장은 해당 업무를 직접 취급한 고위공무원으로서 퇴직공무원의 업무 취급 제한에 걸린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유정복 시장은 “김모 본부장이 SLC에 취업한 사실은 알았지만 공직자윤리법상 문제가 있는지 여부는 보고받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한편 개발업자의 탐욕을 비판하고 언론, 사정기관, 시민단체까지 한 통속으로 놀아난다고 유착의혹을 암시하는 글을 올린 정대유 전 인천경제청 차장은 SLC에 "3.3㎡당 300만원에 땅을 제공한 것은 인천시민의 재산을 헐값에 팔아넘긴 배임행위"라고 주장하며 시 또는 시의회 특위가 관련 공무원들을 검찰에 배임혐의로 고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당시 송도의 공동주택용지는 3.3㎡당 700만원 안팎, 가장 비쌀 때는 1200만원까지 나갔기 때문에 SLC에 4000억~9000억원의 지가 차익을 안겨주었고 아파트를 분양하면 개발이익은 훨씬 많아진다.  정 전 차장은 SLC가 분양을 끝낸 2개 아파트단지의 개발이익 환수에 나서는 등 필지별 정산을 요구했으나 SLC는 7개 필지 사업이 모두 끝난 뒤 일괄 정산하자고 맞서며 로비에 매달렸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전언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23일 인천시 국정감사에 정대유 전 인천경제청 차장(현 시정연구단장)과 이정근 SLC 대표이사를 증인으로 채택해 송도 6·8공구 개발이익 환수문제는 전국적인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배다리 관통도로, 경찰청 안전심의서 '보류'

교통소통 및 안전 취약 판정···주민들 "전면 폐기"

십여년간 인천시와 주민간 갈등을 겪어온 배다리 관통도로 사업이 인천지방경찰청의 안전심의에서 보류됐다. 인천 중·동구 관통도로 전면폐기 대책위원회는 18일 인천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천경찰청의 교통안전시설 심의 결과를 공개하며 배다리 관통도로의 전면폐기를 주장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인천시 종합건설본부는 이 도로의 1~2구간(중봉대로~송림로)의 개통을 위해 교통안전시설 설치 심의를 요청했지만, 도로의 교통소통과 안전 등을 이유로 보류 결정을 받았다. 심의 결과에는 남측 교차로가 측도 진출입 차량과의 상충하고, 송현터널이 진출 우회전 차량의 차량신호 통제가 곤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북측 중봉대로 합류부의 엇갈림 구간이 짧아 차로변경에 따른 위험성 증대 등 교통 소통과 안전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도로개통시 교통영향분석' 결과를 보면 기존 배다리 삼거리·사거리 교통량은 개통 후 증가해 지체도 또한 높아질 것으로 예측됐다.  이와 관련 대책위는 "교통 분산이 아닌 집중을 유발시킴으로써 지정체 등 교통난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안전에 있어서도 심각한 위험을 야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도로는 중구 신흥동 삼익아파트에서 동구 송현동 동국제강을 잇는 총연장 2.51km 길이로, 4구간인(유동삼거리~삼익아파트)를 제외한 나머지 구간은 10년 가까이 방치돼 왔다. 현재 1·2구간(동국제강~송현고가~수도국산 송현터널~송림로)의 방음벽과 가로등 설치 등 도로 부속시설 공사가 진행 중이며, 3구간(송림로~유동삼거리)은 숭인지하차도 위 주택가 양쪽 도로를 추가 건설하는 방향으로 용역이 진행되고 있다. 대책위는 도로의 전면 폐기를 주장하며 인근 주민 1천536명의 서명을 받았다. 지날달 13일부터는 송현터널 초입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원도심 활성화 특별회계 설치조례안 입법예고

5년간 한시적 조례, 지역균형발전과 도시재생 위해 매년 2000억원 이상 편성

      인천시가 원도심 활성화에 필요한 세입·세출예산을 별도 운영하기 위한 ‘원도심 활성화 특별회계’를 한시적으로 설치키로 하고 주민 의견 수렴에 나섰다.  시는 17일 원도심 활성화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함으로써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고 도시재생뉴딜사업 등 정부의 원도심 활성화 관련 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한 ‘인천시 원도심 활성화 특별회계 설치 및 운용 조례안’을 입법예고했으며 오는 23일까지 개인·기관·단체의 의견을 제출받는다.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해 2022년 12월 31일까지 효력을 갖도록 한 조례안은 ‘원도심 활성화 특별회계’를 예산담당관이 총괄 운영하되 도시기반, 환경녹지, 경제문화교육의 3개 계정을 두고 도시재생과장, 공원녹지과장, 교육협력담당관이 각각 관리·운용토록 규정했다.  특별회계의 세입은 ▲지역자원시설세(법령에 따라 의무적으로 전출되는 금액은 제외) ▲국고 및 기금 보조금, 특별교부세, 융자금, 부담금, 개발이익금 등 ▲일반회계로부터의 전입금 ▲다른 회계로부터의 예수금 ▲회계 운용에 따른 수입금 및 세외수입으로 하며 세입 총액은 연간 2000억원 이상 되도록 했다.  지역자원시설세의 경우 올해 예산에 888억원이 세입으로 잡혀있다.  특별회계의 세출은 도시기반계정의 경우 ▲주차장·도로·교통시설 확충 및 개보수 ▲경인고속도로 일반화 관련사업 ▲도시재생 관련사업 및 도시정비기금 출연 ▲예수금·원리금 상환 등이다.  환경녹지계정은 ▲공원·녹지 조성 및 군·구의 공원·녹지 조성 지원(보상비 포함) ▲생태하천 개선사업 ▲그 밖의 환경시설 확충사업 ▲예수금·원리금 상환 등에 사용하고 교육문화경제계정은 ▲학교·보육시설 확충·개선 ▲근린생활권 문화체육시설 확충 ▲법령에 따라 군·구가 지원하지 못하는 지역의 학교에 대한 지원 ▲전통시장 활성화 관련 지원 ▲예수금·원리금 상환 등에 쓰인다.  인천의 경우 동구와 옹진군이 교육경비 보조 제한 단체(일반회계 세입에 계상된 지방세와 세외수입으로 공무원의 인건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경우)인데 ‘원도심 활성화 특별회계’가 설치되면 얼마나 지원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시 관계자는 “5년 한시적으로 운용할 ‘원도심 활성화 특별회계’는 지역자원시설세와 일반회계 전출금 위주로 편성된다”며 “첫 해인 내년에는 2000억원 조금 넘는 액수를 반영하고 원도심의 기반시설 확충 위주로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로봇랜드 증자안, 인천시의회서 ‘보류’

20일 기획위 상임위 때 다시 심의... 논란 재점화될 듯

인천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 회의 모습. ⓒ인천시의회   인천시의회가 로봇랜드 증자안에 대해 일단 발목을 한 차례 잡았다. 수 일 내로 다시금 안건을 다루자는 것인데 향방이 주목된다.   인천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는 제244회 임시회 기간인 16일 상임위원회(시 기획조정실과 재정기획관실의 주요 예산사업에 대한 추진상황 보고 등)를 열었다. 이날 관련부서의 보고 외에 인천로봇랜드 조성사업의 SPC 출자(증자)에 대한 동의안을 다루었는데, 결과는 ‘보류’였다.   증자안은 시가 지난 10일 시의회에 출자(증자) 동의안을 제출함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시는 “자본이 잠식된 SPC의 경상 및 운영비와 개발·실시계획, 조성실행계획 변경용역비 확보를 목적으로 SPC 증자계획에 참여하고자 지방공기업법에 따라 시의회의 동의를 받을 계획”이라 설명한 바 있다.   증자안에 따르면 지분율 3.12%의 인천도시공사가 SPC에 1억 2,480만 원을 이달 말까지 출자한다. 그 외 지분율 49.99%의 인천경제산업정보테크노파크(IBITP)가 19억 9,660만 원, 19.04%의 ㈜한양이 7억 6,160만원, 10.75%의 ㈜두손건설이 4억 3,000만원, 3.41%의 ㈜엘지씨엔에스가 1억 3,640만 원을 증자하는 등 총 40억 원의 증자액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지난 7월 SPC 이사회에서 앞서 언급한 금액을 증자토록 하는 안건이 SPC 결의됨에 따라 시의회에서 심의가 일찌감치 예정돼 있었다.   문제는 로봇랜드 조성사업이 큰 성과 없이 지지부진하면서 이미 160억 원의 자본금이 모두 잠식된 상황에서 40억 원을 긴급수혈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지가 아직 미지수라는 점과, 로봇랜드 조성사업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 등이다.   이미 자본금이 모두 잠식되고 이후 지난해 6월 협약기간이 만료되는 등 로봇랜드가 더 이상의 사업 추진이 사실상 어려워졌을 당시 시 내부적으로는 SPC 청산 후 공익목적으로 재개하거나 하는 등의 계획이 검토되기도 했다. 당시엔 시의회에서도 “현 SPC에게 다시 기회를 줄 가치가 없다”면서 청산에 보다 무게가 실렸던 상황.   그러나 시가 청산을 검토하는 것을 안 SPC 민간투자자들이 반대하면서 사업이 다시 격랑 속으로 빠지며 1년여 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법적 소송전 가능성에 부담을 느낀 시가 현 SPC에 다시 여력을 실어주기로 결정하면서 시와 시의회 안팎서 크게 논란이 됐다.   특히 지역 시민단체들과 이한구 의원 등 일부 시의원들이 시의 이러한 결정을 두고 “민간에 대행이 된 상황에서 민간이 자기들 것이라 주장하는 꼴”이라며 “협약 기간이 끝났는데 자본금이 없는 SPC는 왜 청산을 안 하는 거냐”는 등의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시는 재정건전화 기여와 정부 경영개선명령 이행, 국가 정책사업 추진으로 로봇 및 관광산업 활성화를 증자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또 입지 조건이나 교통 환경, 배후 인구 예상 등을 봤을 때 사업 타당성은 나름 있다는 것을 증자안에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향후 시의회가 증자안에 동의해 40억 원을 긴급 수혈한다고 해도 ‘로봇랜드’라는 타이틀에 부합하는 사업으로 방향이 흘러갈 지는 지역사회 안팎에서 우려하는 바가 많다.   특히 공공 목적의 진행을 희망하는 로봇 관련 기업들을 찾아 이런 부류의 기업들을 많이 유치하는 공익사업으로 진행토록 정상화를 시켜야 함에도, 민간 투자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시공토록 수의계약을 하고 과도한 낙찰률을 보장해주며 독점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현실인 것을 감안하면 우려는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또 160억 원의 자본금을 모두 쓰고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현재의 SPC에 1/4 수준인 40억 원이 마련되면 과연 사업이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안갯속이다.   실제 이날 기획위 회의에서도 이번 안건을 다루는 중 정회됐고, 이 정회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기획위 소속 시의원들 일부에게 확인한 결과 시의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많았다. 결국 기획위는 오는 20일 상임위 때 이를 다시 다루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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