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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

에스페란자의 위대한 항해
그린피스의 '좋은 사람들'

(25) 여유와 재치, 대가(大家)..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에스페란자호 항해사 김연식씨와 함께 하는 <위대한 항해>는 지난해 3월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환경감시 선박 에스페란자호에서 부딪치며 겪는 현장의 이야기를 한국인 최초의 그린피스 항해사의 눈으로 보여드립니다. 그린피스에서 일한 지 이태 째다. 이 단체에서 일하는 좋은 점을 꼽으라 하면 보람이나 값진 경험, 오지 탐사 등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난다는 점을 내세운다. 좋은 사람에는 선한 사람, 똑똑한 사람, 솔직한 사람, 열정적인 사람, 따뜻한 사람, 경험 많은 사람 등 다양한 부류가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한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대가(大家)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보통 사람인 내가 평생 만나지 못할 한 분야의 대가들과 생활한다는 점이 좋다. 더 정확하게는 대가들의 민낯을 본다는 것이다. 그 민낯을 조금 설명해보자. # 닉 코빙(Nick Cobbing) 지난해 북극에 갔을 때 만난 영국인 사진가. 전 세계 극지를 다니며 자연경관을 담아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BBC방송 등에 제공하는 베테랑. 타임(Time)지와 뉴스위크에서 올해의 사진가로 선정되는 등 유럽과 영미 지역에서 실력을 인정받음. 이렇게 설명하면 대단히 거창하고 진지할 것 같지만 그의 일상은 정반대다. 늘 뒤통수에 까치집을 달고 다니고, 텅 빈 눈으로 터벅터벅 걷는다. 그런 꼴로 종종 얼토당토한 말을 하니 사람들을 웃기기 일쑤다. 한번은 새벽에 혹등고래를 발견해서 그를 깨우러 갔는데, 어찌나 깊이 자는 건지 문을 발로 차도록 일어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정신을 놓고 산다. 작가의 그런 면을 알고 나서 작품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지구의 절경을 훌륭하게 담았다. “저 느림보 까치집이 이런 사진을 찍었단 말이야?”, “과연 대가는 품 안에 발톱을 숨기며 사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엔가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번쩍 날카롭게 사진기를 드는 작가를 보면서 “저 사람이 사진가이긴 하구나”싶었다. 작가의 외모나 행동거지는 작품과 상관관계가 없는 모양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사진을 제공하는 독일 출신 사진가 율리 쿤즈(Uli Kun)가 귀마개를 엉뚱하게 쓰고 익살스런 춤을 추고 있다.> # 후안(Juan) 국제 뉴스 통신사 로이터(Reuter)의 사진기자. 55세 배 나온 대머리 아저씨. 늘 다리를 쩍 벌리고 다님. 그러다 사람을 만나면 원숭이 흉내를 내며 끝내 웃기고야 맘. 웃길 때까지 바보짓을 하니 웃어 줘야 할 때가 많음. 자주 졸고, 더 자주 빈둥거림. 늘 장난감 같은 사진기를 목에 메고 다님. 사진기자들이 쓰는 커다란 사진기는 가져 온 건지, 잃어버린 건지, 원래 없는 건지 모르겠음. 그러고도 좋은 보도사진을 찍는 게 신기함. 대충 이렇다. 사진가 뿐 아니라 교수, 다이버, 비행기 조종사, 심지어 유명한 배우와 작곡가까지.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한 달이 넘게 환경감시선에서 같이 지내는데, 대다수가 근엄이나 진지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유쾌하고 때로는 바보 같기까지 하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했고, ‘잘하는 사람이 오래 남는 게 아니라, 오래 남는 사람이 잘하는 것이다’라고도 했다. 가까이 여유롭고 재치 있는 대가들을 만나면서, 일에 악착같기 보다는 주변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즐기며 제 보폭으로 꾸준히 걷는 게 한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뤄내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 여유와 재치를 배우는 게 여기서 일하는 가장 좋은 점이다. (우유를 먹지만 키는 크지 않고, 재치를 배우지만 늘지는 않고 있다.)  
리뷰
블랙아웃. 세상의 이기적인 맨 얼굴..

[연극 블랙아웃] 원작 박효미/..

‘사랑하며 살겠습니다’가 슬로건인 ‘극단 십년후’를 만나다. 한바탕 볼거리로 말초신경을 자극당하는 문화지대가 존재한다. 그러나 영원한 화두 ‘사랑’이 있기에 우리 문화예술은 동토(凍土)를 비집고 올라오는 새싹처럼 아름답고 신선하다. 연극 <블랙아웃> 속으로 - 고등학생 동희(이미정扮), 초등학생 동민(이선호扮) 남매의 부모님은 중국으로 출장을 떠났고 집에는 남매뿐인 상황에 블랙아웃이 발생한다. 첫째 날 엘리베이터는 비상전력으로 가동, 일상의 불편함으로 다가오지만, 절망이나 당황과는 거리가 있다. ‘똑똑한 사람들이 천지인 세상이니 내일 날이 밝으면 전기는 들어와 있을 거야.’ 둘째 날 빗나간 기대. 교실은 벌써 찜통으로 폭발하기 직전이다. 어제 하루 동안의 암전 상황, 각자 무용담 풀어내듯 분주하다. 오후. 전기, 물, 가스의 중단이 예상되면서 불안 심리가 고개를 든다. 아파트 15층, 갑자기 낯설다. 걸어 올라간다. 비 오듯 땀이 나고 냉장고에서 녹아내리는 물로 거실이 흥건하다. 셋째 날 물,가스 공급 끊김. 대형 스크린에선 “곧 정상화 예정”이라는 공허한 멘트가 반복된다. 마트에서 절도 발생, 주민들 한층 예민하다. 욕조의 물도 바닥, 변기의 물도 없다. 냄새 진동, 마트 출입구에 물건 사러 온 주민들이 마치 개미떼처럼 모여 있다. 휴교. 넷째 날 민심이 흉흉하다. 태양도 터질 듯한 더위에 어린 동민이가 복통을 호소한다.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마트는 이미 전쟁터, 물건값은 몇 배로 올랐고 현금만 거래되고 물량은 제한되어 판매된다.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마트 형편을 봐준다. 어렵게 구한 물건을 날치기당해도 경찰은 경위부터 쓰라고 위협적인 분위기로 서류를 내민다. 남매는 말수가 적어진다. 다섯째 날 먹고 싸는 것과의 전쟁이 이어진다. 세상이 멈췄다. 소방서 제한 급수. 각자의 상식선에서 정전의 이유와 희망을 얘기한다. 하지만 마비된 현실에 불안감은 증폭된다. 폭염에 집안의 오물 냄새는 이미 한계를 넘어 무감각해진다. 날카로운 민심이 다툼과 갈등으로 곳곳에서 분출된다. 엄마의 친구(김희경扮)는 빚진 돈을 갚으라며 동희 남매에게 남아 있던 쌀을 강제로 뺏다시피 한다. 여섯째 날 날이 밝아도 전쟁 같은 블랙아웃. 소방서 급수 불가능, 경찰(최부건扮)에게서 비밀리에 영업 중인 슈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분개한다. 그들끼리는 불편 없이 일반 생활이 유지되고 있다. 어렵게 3배 이상의 비싼 가격을 치르고 산 물건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강탈당하고 만다. 동민이는 새날이 시작될 수 있을지 혼란스럽다. 어서 날이 저물기만 바란다. 일곱째 날 주민들이 마트로 몰려간다. 경찰과 대치, 경찰 발포. 공포가 삽시간에 주민들을 지배한다. 질서를 지키라는 경찰의 확성기 소리는 묻혀버린다. 마트 유리창을 깨고 들어간다. 경찰, 속수무책. 메뚜기떼가 지나간 듯이 마트의 물건들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마치 그동안의 울분을 쏟아 붓기라도 하듯 폭군으로 변한 사람들은 마트 안의 물건들을 마구 부순다. 사무실에선 CCTV가 그들을 보고 있다. 번개, 천둥이 치고 빗방울이 떨어진다. 저 멀리 도시가 밝아진다. 블랙아웃 일주일간을 간접적이지만 체험하다. 재난과 이웃 막연하게나마 아이티 강국 대한민국이 전기 하나 못 고치겠나 생각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블랙아웃과 가마솥더위까지 가세한 일상은 곧 먹고 싸는 기본 생활부터 엉망이 되어 가고, 주민들은 짜증을 내며 신경질적으로 변해간다.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 같다. 주민들 목소리는 어느새 날카로운 칼날처럼 고음이다. 갈등은 군중심리를 계속 자극시킨다. 남매 동희와 동민이의 눈에 비친 현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적인 어른들의 민낯을 보며 동민이는 동화 같은 상상을 한다. 오늘 밤 자고 나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기를. 세계는 이미 거미줄처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이라는 사적인 개념들은 공유, 공개를 알게 모르게 요구당한다. 컴퓨터의 끝 모를 진화는 견인차 선봉에 서있다. 블랙아웃은 순식간에 국가적 재난 급으로 수직 상승하게 된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전 영역에서 우리는 이미 유기체다. 블랙아웃, 모든 뿌리가 뒤흔들리는 대참사. 이 모든 치밀한 공유들이 어느 날 순식간에 무너져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불과 일주일 전국을 먹물처럼 물들인 대정전으로 도시와 그 속에 놓이고, 버려진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마비 상태가 된다. 난폭해지고 결국은 폭동으로 비화된다. 연극 무대나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얼마든지 예상 가능한 일들이다. 재난 시 어떤 대비책을 숙지하고 있는지. 전기가 끊어진 세상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아무 불편 없이 생활한다. 오히려 기회로 여기고 폭리를 취한다. 오물이 넘쳐나고 살벌한 지역과는 사뭇 다른 지역이 동시에 존재한다. 동민이는 혼란 속에 존재하는, 판타지 같은 다른 세상을 인정하기 어렵다. 정부의 일방적 발표에 속기 쉬운 국민의 우매함, 우매한 국민의 무서운 파괴력에 대한 삼촌(류완선扮)의 말은 어린 동민에게 더욱 이해할 수 없다. 관객들의 몰입도 최상. 진지하다. 연극이라는 제한된 무대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룬다. 교훈적인 내용이면서 게다가 설명에 가까운 무대라면 지루한 공연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미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깊게 빠져 있었다. 1인 다역 배우들의 열연과 <2015 책 읽는 부평>에서 대표도서로 선정된 동명의 장편 동화(박효미 著)를 각색한 탄탄한 내용이 받치고 있다. 한정된 공간이지만 7일간의 무대를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무대의 변화에 따른 적절한 조명(박진수)과 음향(김명훈), 특히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를 응용한 역동적이면서 세련된 영상(최종찬)까지 조화를 잘 이루었다. 송용일 연출가는 연극 <블랙아웃> 공연이 제한된 연령에 머물지 않고 전 연령층으로 확대되기를 바라면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애라 前 기획팀장은 지역문화가 활성화돼야 함에 각별한 의지를 보인다. 인천 연극이 살아야 중앙 무대에 진출하더라도 힘을 받는다고, 서울에서 가져온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만 시민들이 선호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문은주 기획팀장은 블랙아웃을 내년에도 레퍼토리로 해서 무대에 올린다고 한다. 인천 연극의 확산과 예술의 발전을 바란다는 문은주 기획팀장, 이애라 前 기획팀장의 희망을 들으면서 ‘극단 십년후’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 <좌:이애라 前 기획팀장, 우:문은주 기획팀장> 사회의 갈등과 군중심리? 이성과 감성의 경계는? 부정의 현상들을 극복하는 열쇠는 무엇인가? 전기는 무한정 국민에게 공급되는 에너지원인가? 우리 삶 속 전기의 중요성? 학교,가정,회사에서 다양한 토론의 장을 열 수 있다. ‘극단 십년후’의 연극 <블랙아웃>. 가족끼리, 학교 단체, 사회 구성원으로서 등 전 연령에 걸쳐 관람을 추천한다. <‘극단 십년후’ 대표 송용일> <‘극단 십년후’의 슬로건> ** ABOUT '극단 십년후' ?1994년 창단 ?대표송용일 ??‘사랑하며 살겠습니다’를 슬로건으로 극단의 정서인 ‘사랑’을 담은 창작극, 교육극과 창작뮤지컬 꾸준히 공연 ?‘찾아가는 연극 공연’으로 도서 문화 소외지역, 사회복지시설에 사랑 나눔 실천 ?수상작품 <블랙아웃>2017 제35회 인천연극제 우수작품상, 신인여자연기상 <배우 우배>2016 제34회 인천항구연극제 최우수작품상,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은상 <화>2012 인천항구연극제 최우수작품상, 남녀우수연기상 <나비, 날아가다>2009 인천항구연극제 최우수작품상, 연출상, 극본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어머니>26회 전국연극제 은상, 여자연기자상 <사슴아 사슴아>(穆宗悲曲)24회 전국연극제 대통령상, 연출상, 여자연기자상 한인경/시인·인천in객원기자 ?
양진채 소설가의 <소설로 읽는 인천>
부평 삼능에서 부르던 노란 샤스 입..

(8) 거기, 다다구미/ 이목연

우선 제목을 보자. 거기, 다다구미. ‘거기’와 ‘다다구미’. ‘거기’는 얼마만큼의 거리일까. 작가는 다다구미로 쑤욱 들어가려 하지 않는 듯 보인다. ‘거기’만큼의 거리를 두고 있다. 소설 속에 답이 있을 터이다.   소설은 홈스테이를 열고 있는 지숙과 미국에서 날아온 나이든 순자의 교차시점으로 이루어진다. 순자는 에스캄 근처 클럽에서 노래하던 가수였고, 삼능의 다다구미에서 살았지만 미세스 마틴이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와 지숙의 집에 묵게 된다. 순자가 한국에 온 이유는 그때 자신이 살던 곳, 노래하던 클럽을 찾기 위해서다. 엄밀히 말하면 클럽에서 함께 기타를 치며 악단을 이끌었던 악단장이었던 그를 찾기 위해서다. 순자는 지숙의 도움으로 자신의 청춘이 묻어있는 곳을 찾게 되지만 결국 그는 만나지 못한 채 숨을 거둔다.   일제는 이때 조선총독부는 국민총동원령을 공포하여 전국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근로보국대를 편성하여 부평에 무기를 제조하던 군수기지였던 조병창을 세우고 확장하는데 하청업자 다다구미[多田組]의 현장 사무소가 삼능에 있었다. 8·15광복을 전후하여 다다구미가 철수하게 되면서 빈터만 남아 있게 된다. 이후 조병창 기지에 미군 ‘에스캄’이 들어와 주둔하게 되자 사람들이 미군부대와 멀지 않으면서 빈터로 남아있던 다다구미 자리에 무허가 판잣집을 다닥다닥 짓고 살게 되었다. 이 동네를 다다구미가 있었던 곳이라 해서 다다구미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다다구미라고 불러야 그곳을 그나마 찾을 수 있다. 지금도 이 다다구미의 일부는 백운역 고가를 올라가다보면 볼 수 있는데 이상하게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고 희고 붉은 깃발을 내건 소위 무속인의 집들이 많아 괴이한 느낌을 준다.   “삼릉이라면, 이 동네에 무슨 유명한 능이 있었나보죠?” 갑자기 찾아온 침묵이 어색해서 내가 끼어들었다. 삼릉에 대한 유래를 한동구 씨가 풀어 놓았다. 일제 말 대륙진출을 꾀하던 일본이 우리나라에 히로나까라는 군수물자 공장을 세워 무기를 생산하다가 일본 패망 직전에 망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이 그 회사를 물려받게 되었다. 그 공장 주변에 노동자들을 위해 생긴 사택이 삼릉사택이었단다. 삼릉은 미쓰비시의 한자어였다.   삼능을 모르는 사람들은 다들 지숙처럼 능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곳을 다다구미라고 불렀어요. 미군부대 앞이었지요.” 그녀를 차에 태운 채 그 주소지를 찾아보려 애를 썼다. 하지만 부평 역 앞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곳에 대해 알지 못했다. “미군부대는 저 아래로 내려가면 있어요. 그쪽을 신촌이라 부르는데…….” 인근 부동산에서 부평 토박이라는 사람을 만나서야 비로소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한동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예전의 부평이 아니지요. 전에는 부평 일대 60만평이 미군부대였어요. 어디를 찾는지 몰라도 60년 전에 살던 곳을 찾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지명은 생소했다. “다다구미라면 일본 놈들이 물러가고 난 뒤에 생긴 판자촌인데. 저기 백운역까지 여기 산곡동 일대에 수백 채나 되었지요. 그땐 자고 나면 수십 채씩 들어섰으니까요. 거길 신촌이라 불렀는데…… ”   60만평의 미군부대가 있던 자리는 아파트와 백화점, 공원이 들어서 있다. 상전벽해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녀가 순자가 아니라 미세스 마틴이 된 것처럼.   “나도 미군부대 식당에서 요리사를 했다우. 내 덕에 꽤 많은 사람들이 배를 채웠지. 엄청 빼돌렸어요. 너나 할 것 없이 굶주리던 시대였잖아요. 식당에서 남는 물건은 죄다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었지. 아주 못 먹을 건 따로 버리고 먹을 만한 걸 모았거든. 그날 쓰고 남은 건 새 깡통이고 뭐고 함께 넣었다니까. 초창기에는 감시가 그리 심하지가 않았어요. 나중에 너도나도 빼돌리다 못해 그걸로 본격적으로 장사를 해대니까 미군들의 감시가 심해졌지. 당시 미군부대로 들어가는 철로들이 이 바닥에 좍 늘어서 있었거든. 그 철로 위로 보급 열차들이 줄을 섰다니까.” 부대로 들어가는 기차에는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들러붙어 물품을 약탈했다고 했다. 심지어 기차에 실려 가던 짚차의 변속기까지 뜯어내 논바닥에 던질 정도로 한국인의 약탈이 심했지만 망을 보던 군인들은 기차를 앞으로 뺐다 뒤로 뺐다 하며 시간을 끌어주며 물건을 빼돌리는 걸 모른 척 해 줬단다.   소설 속에는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가난한 삶의 모습들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순자는 미군부대의 요리사였던 한동구를 통해 그 당시를 회상한다. 그러나 순자가 클럽에서 일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당시 악단장을 소개시켜주겠다는 한동구의 말에는 서둘러 자리를 뜬다.   “노오란 셔츠 입은 말 없는 그 사람이……” 앞좌석의 등받이를 잡고 몸을 앞으로 숙여 부르는 노래는 나도 귀에 익은 노래였다. “내가 가기 전까지 무대에서 부르던 노래예요. 아직도 그 노래는 기억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주 좋아했어요.”   90이 넘은 순자를 다시 이곳으로 부른 것은 무엇이었을까. 오래된 깍두기 노트에 적은 <인천 부평 신촌 네거리 애스캄 앞 화이트로즈 클럽> 주소 한 장을 들고 찾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때 사랑했으나 미워하고 질투했던 ‘그’를 다시 찾게 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70년의 세월에도 놓지 않는 그 무엇. 그것은 사랑일까. 나는 올해 초에 내 유년의 장소인 주안 신기촌에 가본 적이 있었다. 신기촌의 항운노조주택에 살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한 편 쓰고 나자 그곳에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우리가족은 아버지의 오랜 실직으로 신기촌을 떠나왔고 더 작고 외진 변두리로 떠돌았다. 그리고 신기촌에 가보지 못했다.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삶이 그렇게 흘러갔다고밖에 말할 수 없겠다. 그런데 소설을 쓰고 나자 거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길을 더듬어 찾아갔다. 이 길이었지, 5번 버스 종점에서 내려 신기시장 길을 따라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꺾여 더 올라가던 곳. 우리집 바로 앞은 공동묘지가 있던 야산으로 향하던 길이었고, 그렇게 더듬으면서 갔다. 그리고 내가 살았다고 생각되던 근처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가끔 꿈속까지 찾아오던 그 집. 그 집이 남아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내가 살던 집 근처로 다가갔다. 그리고 내 꿈에 가끔씩 나타나던 집과 비슷한 집을 발견했다. 저렇게 안방 창문과 거실 창문이 있었고, 현관문이 있었고, 마당이 있었고, 무엇보다 붉은 벽돌이 있었지. 그러다 대문 옆 기둥에 붙어 있던 번지수를 보고 놀라고 말았다. 내가 기억하는 그 번지수였다. 세상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거길 떠난 지 35년만이었다. 그런데 집이 일부 리모델링되었긴 해도 내가 살던 집 모양 그대로 누군가가 살고 있었다. 그 집이 내 기억대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 집과의 추억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떠나고 한 번도 찾지 않았는데 너는 그대로 있었구나. 그 집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자 그 집은 세상에는 없는 소중한 가치가 되어 내게 다가왔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을지라도 나만의 집을 한 채 갖게 된 것이다. 그 집에 살고 있을 누군가에게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거기 있어주어 고맙다고. 오랫동안 보지도 못하고 잊고 살았는데 나를 위해 늘 기도해주고 있었던 누군가를 만난 기분이었다. 순자가 그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새삼 어떤 사랑이 아니라 먼 타국에서 다시 돌아와 찾고 싶었던 그 무엇은 기억을 받쳐줄 추억이 아니었을까. 그때의 삶이 괴롭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나라 내 고향의 한 장소였고 삶이었던 곳을 찾고 싶은. 생의 마지막에 찬란했던 청춘이 있던 장소로 돌아가 보고 싶은. 그래서 순자는 다다구미 근처에서 내내 살았던 한동구의 말에 연신 박수를 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작 그때의 ‘그’와 연관이 있을 수 있는 누군가를 소개시켜준다고 할 때는 덜컥 겁이 나는 것이다. 추억이 현실 앞에 발가 벗져지고 나면 더 이상 추억이 아닐 수 있기에. 그래서 소설 속에서 악단장이었던 ‘그’의 이름은 끝내 드러나지 않는 것이고, 다다구미는 제목처럼 ‘거기’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부평구문화재단에서 만든 창작음악극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이 호평을 받았었다. 1950, 60년대 부평의 에스캄부대를 배경으로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음악이라는 희망으로 치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음악극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그 당시 부평의 에스캄 부대 주변 50여개 음악 클럽에서 많은 밴드와 가수들이 활동했고, 전국의 쟁쟁한 가수들이 부평으로 몰려들었다고 하니, 한국 대중음악 60년의 뿌리가 되었다고 보는 것도 일리 있었다. 음악극에서는 그 당시를 회상할 수 있는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물론 <노란 샤스의 사나이>도 있었다. 추억은 노란 ‘샤스’를 ‘셔츠’라고 부르지 않는 어떤 지점에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만 문득. 
김인자 작가의 할머니 꼬시기
할머니 어디 가세요?

(146) 찌그덕 할머니

  횡단보도에서 만난 찌그덕 할머니   찌그덕 찌그덕 할머니 어디 가세요?   명품무늬 바지에 명문무늬 빽 들고 할머니 발보다 큰 신발 신고   찌그덕 찌그덕 할머니 어디 가세요?   거친 두 손 얌전히 모아 뒷짐 지시고 뒷짐지신 두 손에 명품무늬 빽 고이 받쳐 들고 울 할머니 어디 가세요?   살금 살금 할무니 뒤를 따라가 볼까요.   저 앞에 보건소가 있네요.   아항 ~ 우리 할머니 가그린 타러 보건소에 가시는구나아.   그런데 찌그덕 찌그덕 우리 할머니 보건소를 지나쳐 계속 걸어가시네요.   찌그덕 찌그덕 찌그덕 할머니   보건소 앞에 있는 우체국에 가시나봐요.   그런데 찌그덕 할머니 우체국도 그냥 지나쳐 걸어가시네요.   찌그덕 찌그덕   살금살금   보건소를 지나 우체국을 지나 빨강신호등 앞에 선 찌그덕 할머니.   아 어떡하지. 나는 오른쪽으로 가야하는데.   찌그덕 할머니는 어느쪽으로 가시려나요.   내가 서있는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졌어요.   할머니는 내가 가는 오른쪽이 아닌가봐요.   할머니는 계속 앞으로 걸어가시네요.   어떡하죠. 나는 오른쪽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병원에 가야하는데.   찌그덕 찌그덕 찌그덕 할머니가 어디 가시나 살금 살금 뒤따라가보고 싶은데.   어쩌지요? 횡단보도를 건너며 아쉬운 마음에 계속 할머니쪽을 쳐다봤어요.   할머니쪽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켜졌네요.   찌끄덕 찌그덕   명문무늬빽 할머니가 명품무늬 바지입고 뒷짐짚고 횡단보도를 건너가요.   찌그덕 찌그덕   신발이 커서 발이 많이 아프실 텐데. 큰 신발 신고 걸으시다 툭 튀어 나온 턱에라도 걸리면 넘어지실텐데.   할머니들은 넘어지시면 큰일나는데. 어떻하지요.   걱정스런 마음에 찌그덕 할머니를 한참 동안 쳐다보고 서 있었어요.   빠앙~~   앗~ 깜짝이야. 자동차 빵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빨강불이 켜진 횡단보도 한가운데에 서있네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차에 대고 연신 고개숙여 인사하며 횡단보도 이짝으로 건너왔어요.   길을 건너 찌그덕 할머니가 걸어가신 쪽을 바라다보니 찌그덕 할머니 어디로 가셨는지 안보이시네여.   찌그덕 할머니 넘어지지않고 잘 걸어가셨겠지요~   찌그덕 찌그덕 큰 신발 신은 찌그덕 할머니   찌그덕 찌그덕  
인천인 '톡'
"성공하면 찾아 뵐 거라고 다짐했는..

[인천인 '톡'] (2) 5월 이야기..

시민의 신문 <인천in>은 시민편집위원회 주관으로  피드백 코너 ‘인천인 톡’를 마련, <인천in>이 보도해온 기사나 흥미있는 주제를 선정해 매달 독자들의 의견을 듣습니다. 지난 3월에 이어 두번째 주제는 '스승'입니다. 지난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기억에 남는 선생님과 관련된 사연을 독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이틀이라는 짧은 기간에 10명의 독자가 사연을 보내주셨습니다. 대부분 좋은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었고, 만나고 싶어 찾는 독자도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인천인 '톡'에서는 다양한 주제로 독자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입니다. 독자들이 보내온 내용의 전문을 싣습니다.   < 박정아 독자 > 동인천 여중, 미술교사셨던 장명숙 선생님~~ 선생님께서 저 보고 “넌 평생 그림을 그려야 할 정도로 재능이 있어” 하신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 저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어 아이들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항상 따뜻한 얼굴로 환하게 웃어주시던 선생님 꼭 뵙고 싶습니다.   < 이현열 독자 > 인천 문학동에는 서양화가 노희정 화백님이 계십니다.  1976년도 신포동 공보관에서부터 뵈었지요. 당시 저는 고여 우문국 화백님께 동양화를 배우던 갈래머리 소녀였습니다. 그러나 우문국 화백님은 제가 결혼한 뒤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지요. 저는 서양화를 배우고자 다시 노희정 화백님을 찾았고, 변함없이 제자들을 양성하고 계셨습니다. 오로지 그림쟁이 수입으로 가게를 지탱하고 계신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팔순을 내다보는 오늘도 인천 화단의 발전을 위해 온간 걱정을 다하시며, 붓을 잡고 계십니다.  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 윤영숙 독자 > 1991년 용현여자중학교 2학년 6반 담임선생님이셨던 박현숙(과목 가정) 선생님 뵙고 싶어요. 찾아뵙고 싶은데 선생님 연락처를 알 수가 없어요. 선생님 제자 이지현, 윤영숙이 찾아뵙고 싶습니다.   < 류영신 독자 > 제가 박문여고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세훈 선생님을 추억합니다. 고3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에 고아원에 데려가시며 보람 있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신 선생님! 내 미래의 설계가 나 혼자의 몫이 아니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참스승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신 선생님, 저 지금 잘 살고 있어요. 가끔 힘든 일도 있지만 감당할만한 고통이라 여기고 천천히 흘려보내는 지혜도 생겼습니다.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존경합니다. 선생님!    < 이민지 독자 > 가정사로 힘든 상태에서 고등학교 진학한 저에게 병원연계를 통해 심리적 안정을 되찾아주시고 결국 자퇴했다가 복학한 저를 반갑게 맞아주시고 보듬어주신 김부영 선생님과, 복학 직후 맘 잡지 못하고 있는 저에게 매일 아침 버스정류장에서 사진 찍어 보내라며 출결을 챙겨주시며 한살 어린 동생들과의 인연을 지킬 수 있게 도와주신 박현민 선생님, 두 분 덕분에 제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말로는 표현이 안 될 만큼 항상 감사했고 앞으로도 평생 감사한 마음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 류재영 독자 > 시골 외딴 강화 외할머니 댁에 살다 송현초등학교에 입학(1975)했습니다. 도시생활은 신세계였지만 적응력이 약한 어린 저에겐 어리둥절한 삶이었죠. 초등학교 6학년, 활동적이지 못하고 친구와의 대화도 없는 저를 선생님은 봉사부장으로 임명하셨습니다. 정말 파격적이었죠. 초등학교 졸업(1981)후 힘들 때면 그때의 자신감을 되새기며 일어나곤 합니다. 약 20여년이 지나 선생님을 한번 뵈었었지요. 지금도 교편에 계실지 궁금합니다. 장준기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 서정은 독자 > 2008년 고1때 저는 시험을 잘 봐야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다보니 시험지만 받으면 손이 떨리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 옆엔 담임 선생님이신 조아람 선생님이 계셔서 큰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정은아, 이거 시험 아무것도 아니야! 못봐도 돼~ 나중에 수능 때만 잘보자!" 제게 이 말씀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넌 할수있다'라는 응원을 늘 해주신 덕분에 강박증을 극복하고 반 1등을 했습니다. 그리고 목표했던 대학도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무한한 응원의 메세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안부 연락을 드리는데 조만간 맛있는 식사 한 끼 대접하려합니다^^   < 이승숙 독자 >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생각나는 선생님 한분이 계십니다. 인성여자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신 김춘식 선생님입니다. 수줍음이 많던 저는 담임인 국어시간에 책을 떨면서 읽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선생님은 절 편하게 해주시려고 난 남자 아니니까 떨지 말라고 웃긴 말도 해주셨죠.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제가 졸면 조용히 상담실로 불러서 한대접 커피도 주셨습니다. 본고사 논술 볼 때 돈이 없어 힘들었는데 선생님이 대신 내주셔서 본고사도 볼 수 있었죠. 지금껏 제가 일하는 세무쪽도 선생님이 유망직종이 될거라시며 직접 써주셨습니다. 성공하면 찾아 뵐 거라고 다짐했는데... 올해도 지나가게 되어 마음이 아프네요   < 문미정 독자 > 송림초등학교 6학년 담임 민왕기선생님, 길에서 한번 스치듯 뵈었을 때 무척 반가웠습니다. 이제는 많이 늙으셨을 것 같은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혹 이 사연 보시면 인천in 통해서 연락부탁드려요~   < 익명 독자 >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무척 많습니다. 박문여자 중학교에 다닐 때, 처음 국어 선생님으로 부임하여 저희반 담임이 되셨던 소남규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전교에서 국어시험을 제일 잘 봤다고 절 무척이나 예뻐해 주셨고, 당시 학생들과 소통하기 원하는 선생님을 대신하여 친구들의 의견을 전달하며 선생님과 무척 가까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얼마나 어떻게 늙으셨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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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콩나물시루‘ 인천지하철 2호선...대책 시급

증차 신축운행 필요, 교통공사 “증량 검토 중”

인천지하철 2호선의 이용객이 날로 늘고 있다. 반면 이에 맞는 차량의 추가배치는 지연되고 있어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시민들은 2호선이 다른 지하철보다 객실 폭이 좁은데, 이용객들은 눈에 띠게 늘고 있어 이를 체감하는 승객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22일 인천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7월30일에 2량 1편성 ’꼬마열차‘로 개통한 인천2호선은 올해 4월 기준 누적인원 3천400만여 명을 기록했다.   개통 90일 만에 누적 수송인원 1천만 명을 돌파했던 인천2호선은 현재 일평균 13만 명의 승객들이 이용하고 있다. 특히 상춘객들이 몰렸던 3~4월엔 일평균 14만 명에 육박하며 이용객 수요가 절정에 달했다.   이에 맞춰 최근 교통공사는 출근으로 혼잡도가 높은 아침 7~9시 사이에 차량 운행 수를 31편성에서 33편성으로 늘렸다. 개통 후 증가하는 수요와 혼잡도에 맞춰 편성수를 늘려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당초 운행계획은 31편성이 아닌 33편성이었으며, 하자 부품, 차량 고장 등으로 지난 10개월간 31편성만을 운행한 것이었다. 가뜩이나 잦은 고장으로 사고위험 등을 겪고 있던 시민들은 차량이 적은 불편까지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인천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 이한구 의원(무소속·계양4)은 지난 18일 인천시 도시철도건설본부 주요사업 추진상황 보고에서 “기존에 33량 투입되기로 했던 인천2호선이 31량 밖에 편성이 안됐다”며 “이로 인해 지난 10개월간 시민들이 유·무형을 피해를 봤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이 같은 문제는 시공사측의 불량 부품 납품과 교통공사의 차량 증차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데 책임이 있다”며 “안전요원 탑승비, 영업손실비 등을 계산해 시공사에 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호선으로 출퇴근하는 시민 김모씨(55)는 "출퇴근 시간이 아닌 시간에도 승객들로 크게 붐비는데, 앞으로 더 심할 것 같아 걱정이다"라며 "2호선 개통으로 출퇴근 시간을 많이 절약돼 좋긴 하지만, 만원 객실로  불쾌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한 앞서 교통공사는 하루 이용객을 10만8천명 수준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이용객이 지하철을 이용하며 출퇴근 ’콩나물시루‘ 현상이 점차 심화됐다. 여름철을 앞두고 '찜통철'도 우려되고 있다.  인천교통공사 관계자는 “개통 초기 사고로 인한 개선 작업 때문에 차량 수를 31편성으로 줄여 운행했다”며 “기존의 2량1편성에서 4량1편성으로 증설하는 계획을 검토 중에 있다. 시민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린피스의 '좋은 사람들'

(25) 여유와 재치, 대가(大家)의 비결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에스페란자호 항해사 김연식씨와 함께 하는 <위대한 항해>는 지난해 3월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환경감시 선박 에스페란자호에서 부딪치며 겪는 현장의 이야기를 한국인 최초의 그린피스 항해사의 눈으로 보여드립니다. 그린피스에서 일한 지 이태 째다. 이 단체에서 일하는 좋은 점을 꼽으라 하면 보람이나 값진 경험, 오지 탐사 등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난다는 점을 내세운다. 좋은 사람에는 선한 사람, 똑똑한 사람, 솔직한 사람, 열정적인 사람, 따뜻한 사람, 경험 많은 사람 등 다양한 부류가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한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대가(大家)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보통 사람인 내가 평생 만나지 못할 한 분야의 대가들과 생활한다는 점이 좋다. 더 정확하게는 대가들의 민낯을 본다는 것이다. 그 민낯을 조금 설명해보자. # 닉 코빙(Nick Cobbing) 지난해 북극에 갔을 때 만난 영국인 사진가. 전 세계 극지를 다니며 자연경관을 담아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BBC방송 등에 제공하는 베테랑. 타임(Time)지와 뉴스위크에서 올해의 사진가로 선정되는 등 유럽과 영미 지역에서 실력을 인정받음. 이렇게 설명하면 대단히 거창하고 진지할 것 같지만 그의 일상은 정반대다. 늘 뒤통수에 까치집을 달고 다니고, 텅 빈 눈으로 터벅터벅 걷는다. 그런 꼴로 종종 얼토당토한 말을 하니 사람들을 웃기기 일쑤다. 한번은 새벽에 혹등고래를 발견해서 그를 깨우러 갔는데, 어찌나 깊이 자는 건지 문을 발로 차도록 일어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정신을 놓고 산다. 작가의 그런 면을 알고 나서 작품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지구의 절경을 훌륭하게 담았다. “저 느림보 까치집이 이런 사진을 찍었단 말이야?”, “과연 대가는 품 안에 발톱을 숨기며 사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엔가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번쩍 날카롭게 사진기를 드는 작가를 보면서 “저 사람이 사진가이긴 하구나”싶었다. 작가의 외모나 행동거지는 작품과 상관관계가 없는 모양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사진을 제공하는 독일 출신 사진가 율리 쿤즈(Uli Kun)가 귀마개를 엉뚱하게 쓰고 익살스런 춤을 추고 있다.> # 후안(Juan) 국제 뉴스 통신사 로이터(Reuter)의 사진기자. 55세 배 나온 대머리 아저씨. 늘 다리를 쩍 벌리고 다님. 그러다 사람을 만나면 원숭이 흉내를 내며 끝내 웃기고야 맘. 웃길 때까지 바보짓을 하니 웃어 줘야 할 때가 많음. 자주 졸고, 더 자주 빈둥거림. 늘 장난감 같은 사진기를 목에 메고 다님. 사진기자들이 쓰는 커다란 사진기는 가져 온 건지, 잃어버린 건지, 원래 없는 건지 모르겠음. 그러고도 좋은 보도사진을 찍는 게 신기함. 대충 이렇다. 사진가 뿐 아니라 교수, 다이버, 비행기 조종사, 심지어 유명한 배우와 작곡가까지.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한 달이 넘게 환경감시선에서 같이 지내는데, 대다수가 근엄이나 진지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유쾌하고 때로는 바보 같기까지 하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했고, ‘잘하는 사람이 오래 남는 게 아니라, 오래 남는 사람이 잘하는 것이다’라고도 했다. 가까이 여유롭고 재치 있는 대가들을 만나면서, 일에 악착같기 보다는 주변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즐기며 제 보폭으로 꾸준히 걷는 게 한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뤄내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 여유와 재치를 배우는 게 여기서 일하는 가장 좋은 점이다. (우유를 먹지만 키는 크지 않고, 재치를 배우지만 늘지는 않고 있다.)  

"배다리는 인천을 볼 수 있는 '문화'다."

'배다리 10년을 되돌아본다' 토론회 열려

  5월 18일 오후 2시 배다리 인천양조장 1층(스페이스 빔)에서 10년전부터 활동했던 주민과 활동가들 3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배다리 지키고 가꾸기, 10년을 되돌아본다>를 주제로 토론회가 진행됐다.   이 토론회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고 ‘스페이스 빔ㆍ배다리 역사문화마을위원회’가 주최하고 ‘배다리10주년 기념위원회’ 주관으로 민운기 스페이스 빔 대표의 사회로 중·동구 관통산업도로 반대 투쟁운동 10년을 기념하며 기획됐다.     불가능해보였던 싸움, 10년을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은 행동하는 주민과 새로운 삶을 꿈꾸고 행동하는 시민들이었다.   문성진 전 중ㆍ동구 관통 산업도로 무효화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배다리 산업도로 무효화 주민대책위원회 활동을 돌아보며’2007년 운동을 시작할 때의 상황과 문제의식, 길게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 등을 중심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인천공항 개항을 시작으로 한 개발붐이 송도, 청라로 화룡정점을 찍던 시절, 관과 자본에 의해 진행되는 개발에 일반 시민과 투쟁 당사자들조차 개발에 갖는 환상- 낡은 구도심을 바꿔주고 집값이 올라가고 일상의 삶이 세련되게 바뀌리라는- 을 갖고 있던 2007년을 회상한다.   인천시 전체에 개발 광풍이 몰아치던 상황에 동구 역시 인천시와 개발업자들의 횡포에 지역 주민의 무관심, 무지, 자기 존중감 결여, 환상 등이 겹쳐 산업도로 3구간(배다리 인근) 역시 시멘트만 바르면 끝나는 상황에서 주민들이 반대하는 싸움을 제대로 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시절이었다고 보았다.   이 불가능한 싸움에서 주민대책위가 펼칠 수 있는 활동의 핵심은 주민들이 주체로 나서고, 우호적인 여론을 최대한 만들어내 지치지 않고 인천시와 밀고 당기기를 쉼 없이 최대한 오랫동안 버텨내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10년의 시간을 버텨내는 힘에 행동하는 주민들과 돈이 아닌 삶과 인천의 정체성을 위한 싸움에 함께한 지역의 종교, 문화예술, 시민사회 단체들의 연대와 더불어 명확한 대안과 투쟁방향, 이것을 함께하는 안팎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소통의 노력으로 쌓은 신뢰, 서로 다른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하나로 만들고, 인천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체적인 투쟁과 100여 차례의 협상 등 투쟁과정으로 꼽았다.     10년, 속도와 효율, 성장과 발전의 낡은 담론이 그대로 생명과 생태, 공동체의 철학이 있는 도시 가치 창출의 거점이 되야   민운기 스페이스 빔 대표는 ‘배다리 산업도로 공사’와 ‘동인천역 주변 재정비 촉진 계획’이라는 두 가지 대형 프로젝트로 인해 발생된 ‘배다리 투쟁’을 이야기 하면서 그 이면을 관통하는 ‘속도’와 ‘효율’의 논리, ‘성장’과 ‘발전’ 담론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이 논리와 지배담론에 쇠뇌당한 사람들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위해 ‘오늘의 이곳’을 행정은 내어놓으라 하며 ‘우리(주민) 안의 욕망’을 부추기고 주민들을 겁박하는 상황, 도시 정책과 운영에 시민들이 참여할 기회를 주지 않고 정치권력과 자본(개발업자), 이에 영합하는 전문가들이 계획하고 ‘주민설명회’, ‘설문조사’, ‘공청회’등의 요식행위로 참여기회를 주었네 하며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상황이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10년 전 그 때처럼 최근 배다리 산업도로 부지, 현 배다리 생태놀이터의 놀이기구 일방적 철거와 주민텃밭의 불법화, 일괄적인 꽃밭조성, 동인천역 재정비 촉진계획이 동인천 르네상스라고 이름만 바꿔 진행하는 상황이다.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해온 배다리역사문화마을만들기 활동을 관 주도의 관광거리 조성사업으로 강행하려고 하는 상황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주민들의 대항 및 대응에 따라 대응 내용이 달라졌을 뿐 관료적 사고와 강압적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며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동구청이나 인천시의 여러 정책이나 사업을 보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며 배다리 10년에 세 인천시장(안상수, 송영길, 유정복) 누구도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로운, 대안적인 도시 철학과 비전은 없었다고 보았다.   이에 비해 배다리지역에서 지속가능한 마을과 도시를 위한 담론을 생산하며 이를 구체적인 일상과 공간 속에 접목시키려 노력해온 배다리 사람들이 배다리 안팎을 넘나들며 다양한 주체들과 관계 맺고 연대하며 공유 및 확산시키려 노력해왔다고 평가했다.   다시 10년 전의 상황이 반복되는 느낌이 드는 시점에서 ‘속도’와 ‘효율’, ‘발전’과 ‘성장’이라는 낡은 패러다임과 자본의 위협에 맞서 ‘생명’과 ‘생태’, ‘공동체’ 중심의 도시 삶의 가치와 형태를 구체화하고 실천하면서 대안을 모색하고 창출하는 중요한 거점의 하나로 배다리가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주민이 된 예술가, 예술가가 된 주민   청산별곡 생활문화공간‘달이네’ 운영자는 문학소녀였던 여고시절 만났던 배다리와의 인연을 이야기하며, 배다리를 찾계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마을공동체 해체되는 도시화의 물결에 삶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는 상황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삶터를 들여다보는 계기에 배다리가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배다리를 살려내고, 지켜내는 방법으로 배다리를 주된 거점으로 작업 내지는 활동을 시작하게 된 예술가들 중 삶터를 배다리로 옮겨와 “마을이 곧 예술이다”라는 개념으로 일상생활의 부분으로 예술활동을 해왔던 퍼포먼스 반지하를 예로 들면서 마을공동체와 함께하면서 자기방식의 삶을 꾸려가는 삶을 이야기했다.   예술가나 활동가들의 노력으로 배다리마을이 마을공동체, 헌책방거리, 벽화마을로 알려지면서 타 지역 사람들이 마을 탐방을 오고면서 즐거움과 불편함을 느끼던 주민들이 마을을 공부하고 관심을 키우고, 단체와 활동가들이 주도하던 마을축제를 스스로 만들어내며 단체와 활동가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계기를 경험하기도 했다.   10여 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의 배다리서 공간을 내고 떠났는데 그중에도 여전히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남아있는 문화공간과 활동가들의 삶이 씨앗이 되어 주민들도 스스로 공간을 가꾸고, 다양한 마을사업에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줄 알게 되었다.   같은 공간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 활동가, 예술가, 주민이 각자의 역할, 함께해야할 역할을 찾아가며 애증과 신뢰를 쌓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그렇게 주인으로 사는 주민들의 변화에 조금 더 자신의 책방과 공간에 힘을 기울이고 싶다는 소망을 표했다.       배다리 싸움은 여전히 다른 형태와 이름으로 진행 중, 이제 ‘도시의 공공성’과 ‘도시에 대한 권리’를 찾기 운동을 전개하자!   이희환(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공동대표)씨는 배다리 싸움의 두 사안을 계기로 배다리의 근대도시, 인천의 역사문화적 장소성의 인식을 넓이고, 개발주의-경제적 효울, 이익의 극대화-에 정면으로 맞서 생태, 문화, 인문 도시라는 미래도시의 상을 갖게 되었다며 운을 뗐다.   배다리, 계양산 등 도시의 다양한 공공자산들이 무분별하게 개발업자(자본가)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이러한 공공자산들에 대한 공공성을 인식하고, 이를 시민의 자산으로 만드는 등 복잡다단한 도시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도시, 정주 환경이 쾌적한 도시가 시민의 권리임을 이야기하며 ‘도시공공성 네트워크’의 의미를 설명했다.   인천의 다양한 투쟁들이 자본-기업과 그들의 이익에 부응하는 관의 폭압에 맞서는 일이라고 규정하고, 동인천 르네상스, 송림초교 뉴스테이,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뿐만 아니라 양조장 매입 시도 조차도 자본의 이익에 희생되는 일반 도시민의 현실을 열거하며, 배다리 산업도로 부지를 공유지화 하고, 양조장을 시민의 공공자산으로 만드는 등의 노력을 함께할 것과 이를 위해 주민소환운동에 인천시민들이 다시 함께 연대해야함을 강조했다.    

"주민속으로, 그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 하자!"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 반대운동 10주년 기획 토론회' 4시간여 진행

'배다리 사람들'이 5월18일 오후 2시부터 '스페이스 빔' 1층 우각홀에서 '중.동구 관통산업도로 반대투쟁'을 시작한지 10년이 된 것을 기념하는 기획 토론회를 진행했다.  @토론회 모습, 장한섬 플레이캠퍼스 대표가 토론하고 있다.  문성진 전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배다리 산업도로 무효화 주민대책위원회 활동을 돌아보며' 를 시작으로 '배다리 지키고 가꾸기 10년, 변한 것과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들'(스페이스 빔 민운기 대표), '주민이 된 예술가, 예술가가 된 주민활동 10년의 이야기'(생활문화공간 달이네 대표 청산별곡), 배다리 산업도로와 동인천역 주변 재정비촉진지구 반대 싸움의 현재적 의미'(도시공공성 네트워크 이희환 공동대표)를 주제로 발제했다.  @ 당시 활동했던 주민과 활동가들 곽현숙 아벨서점 대표가 '진정성 있는 나라 복지는 배다리의 회복에서 시작하라!'에 대해 토론에 나섰다. 또 '배다리를 사랑하며 가꿔가시는 여러분께 드리는 감사의 마음'(주민대책위 사무국장 깨독스 '최기수'), '배다리, 내부 공론화와 함께 외부 연대를 어떻게 병행할 것인가?'(플레이캠퍼스 장한섬 대표), '사람 살 만한 배다리 마을을 위해'(배성수 시립박물관 부장), '배다리를 통해서 본 - 문화란 무엇인가?’(박상문 전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회장)이 토론에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문성진 전 대표는 "고향인 제주의 애월지역에서 도시가스관이 무지막지하게 관통하는 상황이라 이에 대한 투쟁을 하고 있다"면서, 함께 계속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10년전 인천 전 지역에 걸쳐 진행된 재생사업에 대한 일반 서민들이 마음과 상황을 통해 다시 반복되고있는 상황이 그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슴을 언급했다. @토론모습  이 과정에서 어쩌면 행정에서 이끄는데로 이리저리 움직였던 주민들이 달라지는 과정에서 희망을 본다(배성수)는 토론자, 지역공동체 활동에 무관심했던 주민들이 각성하며 마을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이 뿌듯하지만 활동가들도 하고싶은 일을 하며 주민처럼 살아가길 바란다(청산별곡)며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행정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개발주의와 전시행정으로 주민의 삶을 괴롭히는 행태가 여전하며, 10년 전의 개발행정이 숨어있다가 다시 박근혜 정부와 함께 계속되고 있슴(민운기, 이희환)에 대해 비판했다. 장한섬씨는 내부적인 문제나 상황에 대해 스페이스 빔의 하중과 주민과 나누고 함께하지 못하는 단체의 활동의 한계를 지적하며 앞으로의 10년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제안하고 단체가 그것을 지지 지원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배성수 부장은 외부자의 시선으로 발제자들에게 개별 질문을 던지면서 2013년 '안녕하세요 배다리'전을 준비하며 만나게 된 배다리를 이야기 하며 길이 사람들도 나눈 것에 대한 안타까움, 그래도 그것을 이겨내고 어떤 희망이 보인다고 했고, 박상문 전 회장은 자신의 여러 강연 서두에서 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배다리의 여러 과정들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며 삶의 문화를 이끌고 있는 배다리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 했다.  자리에 함께한 참석자들이 배다리 10년의 소회를 밝히는 중에 한 주민은 지역의 단체가 주민들을 배제하고 행정이 지역을 대하는 태도로 주민을 대하는 것을 질책하며 '주민들과 함께' '주민들 속으로' 들어와 적극적으로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오후 2시부터 4시간 여 진행된 토론회는 6시경 마무리 되고, 오랜만에 만난 당시의 주역들이 인사를 나누었다. 이어 배다리 출신 가수인 김광진씨와 배다리 자유학교 김광선 교장이 함께 하는 '여는행사'를 진행했다. @ 배다리+창영동 10년의 나날들 전시중인 한점갤러리 @김광진씨가 어린시절을 지냈던 배다리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화재난 노숙인들의 터전, 자산공사 3달 넘게 ‘방치’

10월에나 정상화... 관계자 “고의 지연 의혹” 주장

지난 3월1일 오전11시40분쯤 발생한 화재로 잿더미가 된 사회적기업 '계양구재활용센터' ©윤성문 기자    16년 동안 지역 노숙인의 자활터전이었던 사회적기업이 고사 위기에 놓였다.   인천 계산동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인천 계양구재활용센터’는 화재 이후 3달 넘게 영업을 못하고 있다. 지난 3월1일 오전 11시40분쯤 전기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로 인해 가구, 가전제품, 의류 등 내부에 있던 재활용 제품들은 모두 불타버렸다. 다행히 화재보험에 가입해 보험금은 받을 수 있지만, 화재현장 복구는 더디기만 하다.   현재 재활용센터는 건물전체가 시꺼멓게 그을려 있는 등 지난 화마의 흔적이 여전하다. 지난달 말 화재쓰레기들은 치워졌지만, 건물 안전진단과 설계시방, 개·보수공사 등의 절차가 남아있어 정상영업까진 상당기간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재활용센터의 건물 소유자인 한국자산관리공사는 대책회의를 열고 대표이사인 이준모 목사에게 조속한 복구를 약속했다. 하지만 자산공사는 3개월여 지난 11일에 부랴부랴 복구일정을 내놓았다. 자산공사는 10월에야 정상복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재활용센터 측은 “소방서와 보험회사에 따르면 내부 재활용 물품만 타고 진화된 것으로, 절차만 빠르면 속히 복구가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하지만 자산공사의 내부 결재과정으로 화재쓰레기를 치우는데 만 무려 3개월이 걸렸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현장복구가 길어지며 재활용센터는 재정상 한계에 부딪쳤다. 그동안 후원금 명목으로 들어온 돈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이젠 이마저도 바닥난 상황이다. 센터에서 일하던 6명의 노숙인들은 일손을 놓고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될 막막한 처지에 놓였다.  이 목사는 “센터가 8개월 동안 영업할 수 없게 돼 도산위기에 몰렸다. 공사는 지금까지 노숙인들이 번 돈으로 임대료를 챙겨 왔으면서, 이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노숙인의 인건비 문제로 공사에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 달라고 했으나, 이는 별개의 문제라며 화재복구를 지연시키고 있다. 센터를 매각하고 폐쇄하려 한다는 의혹도 있다”고 주장했다.    재활용센터는 지난 2001년 (사)‘인천 내일을여는집’이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만들었다. 이후 16년간 800여 명을 자활시킨 공을 인정받아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사회적기업의 모범사례로 발표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공사 측 관계자는 “안전진단은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고 있다. 또한 공식적인 절차와 일정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다. 최대한 빨리 진행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며 “매각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화마가 휩쓸고 간 재활용센터 내부 복도(위)와 사무실(아래) ©윤성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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