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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

인천 섬·섬·섬
떠남과 맞이함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섬섬섬 16] 문갑도 - 그리움 ..

문갑도 / 섬집 - 門 56×45.5(cm) oil on canvas 2016 문갑도는 덕적도 곁에 있는 한적하고 평안한 섬입니다. 선비가 앉아서 책을 보는 문갑처럼 생겼다 하여 ‘문갑도’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섬 형태가 군인의 투구를 닮았다 하여 ‘독갑도’로 불리기도 했답니다. 사람을 알려면 그 마음속에 들어가야 하듯이 섬을 제대로 느끼려면 들어가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들락거려서 될지 모르겠습니다. 섬과의 만남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설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렵기도 합니다. 새로 단장하는 집과 사람이 떠난 폐가가 공존하는 섬, 떠난 지 얼마 안 된 듯 사람의 온기와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빈집,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담쟁이 넝쿨로 뒤덮여 있는 문(問), 안과 밖 경계, 문턱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섬에 들어가는 게 누군가를 새로 만나듯 가슴 설레고, 그렇게 만나 내가 달라지면 세상이 달리 보이겠지요. 더 깊고 더 따뜻하게······. 안과 밖, 기억과 희망, 떠남과 맞이함의 공존으로 더욱 아름다워지길 바랍니다. 소통은 서로 다른 그대로 만나는 것이리라 믿으며. (2016. 9. 29. 글 그림 고제민)   문갑도/ 섬집- 흔적 56×45.5(cm) oil on canvas 2016 문갑도/ 섬집 - 시선 33×77(cm) oil on canvas 2016  
이설야 시인의 <시로 쓴 인천>
기억의 저지대에 잠긴, 수문통 시장

시로 쓴 인천(6) - 박형준의 시

  옛 수문통 시장의 흔적을 쫓아가면, 거기. 갯골에 흐르던 검은 바닷물과 생활의 하수들이 흐르다 만나는 곳. 삶의 비릿한 이야기들로 즐비한 판잣집들과 허름한 상점들이 이어진 곳. 그 사이를 지나가던 골목들이 보인다. 그 수문통 시장 앞, 검은 갯골에는 언제나 돛이 부러진 낡은 배가 있었다. 그리고 대우중공업 옆으로 늘어진 철도가 끊어진 듯 있었고, 수문통 거리의 “아이들은 정말 마술처럼 공장으로 사라져가곤 했다. 석유 냄새가 풍겨오던 질긴 청색 유니폼을 입고” 저녁이 되면 공장에서는 “파리한 얼굴들”(산문집, 『저녁의 무늬』현대문학, 2003)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은 복개되어 수문통 갯골을 드나들던 물길은 모두 아스팔트 아래 묻혔지만, 송현동 일대와 양키시장, 수도국산 주변에서 살던 사람들은 그 기억의 저지대에 아직 잠겨 있다. 찰랑이던 검은 물들. 역류하던 생활의 구정물들.    이 수문통의 신산한 삶을 거쳐 간 시인이 있다. 젖은 다락방에서 검은 바닷물의 악취를 맡으면서 어둠에 긁힌 자국들을 받아 적다가 시인이 된 박형준. 그는 196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성장했다.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家具의 힘」이 당선되어 등단했고, 1994년 첫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를 출간했다. 그는 ‘소멸’을 이야기하면서 ‘소멸’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역설한다. 실존이 흔들리는 자리에서 ‘새로운 별빛’인 ‘소멸’의 빛들을 모은 ‘소멸 시집’이라 할 수 있다. 그 첫 시집 이후 네 번째 시집에 도착해서야 십 몇 년 살았던 수문통의 기억을 퍼 올린다. 장마철이면 수문통은 “바닷물이 수챗구멍으로 역류하곤 했”(「수문통」)다. 수문통 사람들은 종아리를 걷고 집안으로 들어온 바닷물을 퍼냈다.    검은 바닷물에서 악취가 났지만    그것은 그들의 냄새였다                                                 -「수문통」중에서    “그들의 냄새”는 기억의 지층에 찍힌 얼룩으로 번지며 온다. “다락방 같은 마루를 열고/소녀들이 오줌을 누고/눈부신 엉덩이가 철철 소리내며/먼바다로 통신을 하”던 곳, 그렇게 “바닥에서 삐걱대며”, “가난의 더러운 벽에 몰아치는/겨울바람을 맞으며 늙고 죽”(「수문통」)어 가던 사람들. 그들 속에는 미싱공장에 다니던 누이와 대우중공업에 나가 쇠를 깎던 형의 삶도 함께 얼룩져 있다.   다섯 번째 시집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에서는 수문통 시편이 여럿 보인다. 「수문통4」에서도 바다는 여전히 역류하듯 하수구로 올라오고, “부엌에 넘실대는 바다를/바가지로 퍼올”린다. 똥바다라 불리던 곳. 가끔 똥이 떠다니기도 했던 곳. 생활의 찌든 눈물이 검게 흐르던 곳. 그 검은 물은 점차 강물의 이미지로 변용되어 나타난다. “강물에서 돌아온 아버지”(「꼬리조팝나무」)가 되기도 하고, 저녁의 희디흰 손가락들이 연주하는 강물이 되어 생활의 단칸방 속으로 범람하기도 한다. 시인이 강물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연주한, 이 세계는 저음의 음계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사물들로 가득하다. 그리하여 시인은 “새벽 창에 강물이 언어로 속삭”(「강물이 언어로 속삭인다」)이는 소리를 시로 옮긴다.   그에게 “기억이란 끔찍한 물질”(「묘비명」)이다. 그러나 기억은 힘이 아주 세다. 그 ‘끔찍한 물질’인 기억은 그에게 오래전 늙은 비애를 가르쳐주었다. “그 집의 기억을 그 생채기”(「가구의 힘」)를 끌고 다니며 비애를 노래한다. 그 비애는 소멸을 낳는다. 소멸은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로 압축한 시간대이기도 하다. 그 소멸의 빛으로 자신의 내부를 환하게 비추는 시인은 “자신의 고독으로 세계를 창조”한다. 그리하여 “봄은 의지로 온다.”(「황제펭귄」)라는 표현을 얻는다. 이 신산한 계절에 수문통 거리에 살았던 “그들의 냄새”를 맡으러, “재봉 일을 하고 돌아온 누이의 실밥 같은/지친 가슴을 더듬다가/부엌에서 꾸루룩거리는 바닷소리”(「수문통 4」)를 들으러 기억의 저지대로 가만히 내려가 보자.  수문통4 박형준     바다가 하수구로 올라온다 꽃밥처럼, 바다는 아침에 부엌에서 연탄을 가는 아이의 눈에서 타오른다 하수구에서 솟구치는 불, 밤새 몸살을 앓다가 재봉 일을 하고 돌아온 누이의 실밥 같은 지친 가슴을 더듬다가 부엌에서 꾸루룩거리는 바닷소리를 듣는다   눈을 뜨면 누이는 부엌에 넘실대는 바다를 바가지로 퍼 올리고 있고, 나는 그 곁에서 젖은 연탄을 간다 눈에서 연기가 가시지 않았지만 누이와 나는 늘 피식거리며 다시 타오르는 연탄불, 그 아궁이의 불꽃 위에서 밥을 지어 먹고 아침을 맞는다   그사이 바다는 꾸루룩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시 멀리 사라진다 그런 날엔 아침의 연탄불을 바라본다 다 타버린 불꽃이 하수구의 먼바다를 향해 떠나가는 환상, 나는 누이의 가슴에 머리를 묻는다    
김인자 작가의 할머니 꼬시기
"극락세계에 다녀온거 같어."

(82) 사랑터 가을소풍

"오늘은 대장님들이 나오셨네여?" 오늘은 사랑터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숲으로 가을소풍을 가는 날. 며칠 전 쓰러지셔서 119로 병원에 실려가셨던 울심계옥 엄니. 걷는 것도 잘 못걸으시고 병원갔다 오신지 며칠 안되신터라 사랑터선생님들께 못가신다 말씀 드려야하나? 어째야하나 밤새 고민했었는데 ? 심계옥엄니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새벽 네 시에 일어나셔서 목간시켜달라하시고 동동구루무 바르고 톡톡분바르고 이뿌게 꽃단장을 하셨다. "이거 어뗘?" "아, 그거 엄니 여름 모잔데~" 내친구 성아가 지난 여름에 떠준 모자를 쓰시고 어떠냐 물으시는 심계옥엄니. 처음 성아에게 선물받고 심계옥엄니 앞에서 그 모자를 쓰고 보여드리니  모자가 이뿌네하셔서 심계옥엄니를 드렸더니 가을소풍 가는 날 아침 그 모자를 쓰고 나오셨다. "엄니, 그 모자 오늘 쓰시기에는 좀 서늘해보이는데. 이제는 찬바람이 불어서 그 모자는 쪼까 추워보여여. 이 모자가 오늘은 더 이뻐여." "왜? 나는 이 모자가 더 좋은데." "오늘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서 암만해도 갸보다는 야가 더 나을거 같어여." "그랴?그거보다 이게 더 나아?" "암만~울엄니는 얼굴이 이뻐서 머시든 다 어울리지만 암만혀도 오늘은 감기도 무섭고 야가 더 든든햐." "든든햐?" "응, 야가 든든햐." 그래서 심계옥 엄니 여름모자 대신 리봉이 달린 가을모자 쓰시고 사랑터 가을소풍가셨다. "아고, 울 심계옥 어르신은 은제봐도 멋쟁이셔여. 소풍간다고 이쁜 모자 쓰셨네." 사랑터 요양사선생님들 이뿌단 말에 심계옥엄니 기분이 좋으신가보다. "야가 든든하디야. 우리 딸이." 무슨말이냐는 요양사선생님들 말씀에 그른게 있어여 하시는 심계옥엄니. "근데 오늘은 으트게 우리 대장님들이 나오셨나아. 소풍가는 날이라 그릉가?" 심계옥할무니 웃으시며 차에 오르신다. "근데 심계옥어르신 우리가 왜 대장이여여? 등치가 커서 대장이여?" 늘상 다이어트를 하셔야한다는 사랑터 최고참 요양사선생님 볼멘소리에 "대장스러우니까 대장이지여." "아유, 등치가 커서 대장이 아니고요 어르신?"요양사선생님 기뻐하며 말씀하시니 "등치도 크고 맘도 크고 대장은 아무나 하나? 맘보가 깊고 드넓어야 대장이지. 아무나 대장하믄 안되지요. 장군감이라 대장인 것이지." 심계옥 할무니 창밖을 보며 말씀하신다. "맞습니다. 어르신. 우리는 장군님들만 모시는 대장입니다. 얼른 가실까요? 장군님?" 아침부터 장군,멍군 즐거운 사랑터 가을소풍가는날 아침. 장군님들, 대장님들 조심조심 잘 댕겨오시소~ 그날 오후 네 시 다른 날보다 사랑터 귀가시간이 늦었다. 파주까지 다녀오느라 좀 늦어지나보다 하는데 저기서 사랑터차가 오고 심계옥엄니 차에서 내리셨다. "엄니 재밌었어? 힘들진 않았고?" "극락세계에 다녀온거 같어. 시상에 뭔 꽃이 그리 많디야?" "하하 극락세계엔 꽃이 많디야?" "어 내평생 그렇게 많은 꽃은 첨봤다.시상에 참 좋드라." 띵동~ 사랑터 이미경요양사선생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가 딸한테  좀 꼭 보내 달래요.  ㅡ이미경ㅡ 심계옥엄니 오늘 가을소풍가서 사진찍으셨나보다. 순재할무니랑도 찍으셨네. 나한테 사진을 꼭 좀 보내달라셨다는 울 심계옥엄니 사진 잘 나오셨네. 누굴 닮아 이케 이쁜 것이냐~~~~~~    
사진가 류재형의 <힐링의 섬, 문갑도>
문갑도 마을 분들에게 새로운 활력..

(18) 열흘밥상 프로젝트- 메..

마을 분들의 투박한 손으로 드디어 [가을 약선밥상]을 만들었습니다. 열흘밥상(제 철에 나는 음식재료를 가지고 섬에서 10일 동안 귀한 손님을 모시고 대접하는 약용밥상 차림 프로젝트)의 메뉴를 표준화하기 위한 작업입니다. 늘 음식을 조리하시던 마을 분들의 손으로 표준화작업을 위해 15분의 마을 분들이 모여 약선사 선생님과 약용식물박사님의 지도를 받아 오순도순, 그리고 약간은 재미있게 농담도 해가시면서 음식을 만드십니다. 아마도 마을에서 이런 일이 처음 있는 일이라 궁금하기도 하고 마을 분들이 해서 먹는 음식이 얼마나 입맛에 맞을 것인지 소박한 걱정도 합니다.       이 날은 인천에서 3분의 각기 다른 전문가를 모셔서 품평회를 겸해서 진행했습니다. 상차림이야 늘 먹는대로 차렸지만 정성을 무기로, 그리고 바로 채취한 신선한 재료로 만드니 맛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음식을 만들고 같이 마주앉아 음식을 나누니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 미리 준비해 가지고 간 그릇에 정갈하게 담고 약간의 조명으로 사진도 찍었습니다. 10월1일에 개최되는 마을 분들의 자구리축제에 사진으로 선을 보일 예정입니다. 음식은 똑 같지만 그릇과 디스플레이가 달라지니 우선 보기에도 좋고 놀라시는 눈치입니다.       추석을 전후해서 잡히는 전어과의 속하는 자구리 생선의 무침과 튀김, 섬에서 키운 토종닭에 엄나무, 둥글레, 잔대, 삽주를 넣은 약선 윤조토종닭백숙, 해풍을 맞고 자란 자색감자전, 엄나무장아찌, 바지락국, 고사리무침, 도라지무침, 호박식혜, 등을 선보였습니다. 아직은 조금씩 정착화하는 단계이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서 마을 주민 간에 소통과 단합이 이루어지고 [열흘밥상]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는 일인 것입니다. 나아가 뭍에 사는 자식들이나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맛있게 대접할 생각을 하니 조금 들뜨시는 기분인 것 같고 즐거워 하십니다. 마을 분들의 이런 경험은 행사가 많지 않은 섬에서는 보기드문 일입니다.     약선사선생님의 저염식에 대한 지속적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섬 분들은 아직도 좀 짜게 드시는 경향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약용식물박사님의 마을이 가지고 있는 자생식물의 보존가치와 무분별한 채취에 대한 마을의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과 마을에서 재배하는 약선식물에 관한 효능 등을 잘 설명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선 마을 분들의 건강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지요. 앞으로도 건강한 섬 생할로 행복하시기를 바랄 뿐이지요. 문갑도의 먹거리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서진완 교수의 가족세계여행 365일
비 내리는 거리에서

(11) 진짜 경찰이었을까?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뮌헨의 독일박물관(위)과, BMW 박물관(아래) ⓒ 서진완 뮌헨(München)을 찾은 이유는 전적으로 아이들 때문이다. 작은아이는 독일박물관(Deutsches Museum)을 보고 싶어 했던 반면에 큰아이는 독일에 오면 BMW, AUDI, BENZ, Porsche 등 독일차에 관한 박물관을 보고 싶어 했다. 뮌헨하면 바로 BMW를 떠올릴 수 있는 곳인지라 BMW 박물관(BMW Welt)을 찾았다. 이곳은 독일 뮌헨 BMW 4실린더 빌딩 부근에 있는 BMW의 출고 센터로 2007년에 개장한 곳이라는데 일반적인 출고센터와 달리 브랜드를 설명하는 역할을 확장하여 현행 BMW 차량의 세부적인 항목을 보거나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곳이었다. 체험공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BMW에 익숙해지고, BMW 오너들이 차를 몰고 가는 것을 지켜보도록 만들어져 있다. 특히 소용돌이치는 물살과 같은 형태의 특별전시장(Double Cone)과 1만 4천 평방미터에 달하는 유리와 철제로 구성된 건물(Cloud Roof)이 눈길을 끌었다. 큰아이는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흥분하기 시작했다. 나도 처음으로 BMW에서 만든 각종 자동차를 직접 타 보기도 했다.  작은아이의 표정은 독일박물관에 가자 환하게 달라졌다. 이곳은 독일은 물론 세계 최대의 과학과 기술 분야 박물관으로 1903년 독일 공학자협회에서 설립하였다고 하는데, 시내 중심가를 관통하는 이자르 강에 있는 작은 섬에 위치해 있었다. 강 건너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아이들과 함께 박물관에 들어갔다. 아내가 여권이 들어있는 가방을 가지러 차로 간 사이에 아이 둘을 박물관으로 들여보내고 나는 아내를 찾아 차로 돌아갔다. 이미 아이들은 박물관에 들어가 있고, 아이들이 충분히 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박물관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사이에 아내와 나는 시내를 구경하기로 했다. 고풍스러운 시내 중심가는 역시 다른 독일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래된 건물과 성당을 중심으로 화려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아내와 산책을 하면서 사야할 물품도 구입하고 관심 있는 것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작은아이는 물리 분야를 중심으로, 큰아이는 비행기를 중심으로 보았다고 했다. 엄청난 전시물을 하루 만에 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기 때문에 작은아이는 자신의 관심분야를 중심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서로 다른 관심은 아이들의 얼굴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오스트리아(Austria)에서 알프스산을 넘어 슬로베니아(Slovenia)로 가는 길은 정말 예뻤다. 날씨가 맑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비가 내리거나 흐린 날씨 때문에 이 좋은 경치를 만끽하지 못했다. 그러나 구름에 가려진 설산의 모습이 간간히 바라보이는 것조차도 멋있게 보였다. 오스트리아 쪽에서 알프스산맥을 넘는 것은 그렇게 가파르지 않았다. 수도 류블라냐(Ljublijana)는 과거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1991년 슬로베니아가 분리 독립하면서 과거처럼 그대로 수도가 되었다. 물론 현재에도 이 도시는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크고 활발한 도시이지만 시내는 너무나 조용하고 한산했다. 시내 중심가에 벼룩시장이 들어서고 거리음악가들이 음악을 연주하기도 해서 이곳만큼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구도심의 중심지는 조그만 강을 중심으로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언덕위에 류블라냐성이 있고, 언덕 아래에 강을 따라 오래된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짤츠부르크(Salzburg)에 와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큰아이는 안내소에 들어가 지도를 구했다. 이곳도 고색창연한 건물들과 돌로 이어진 골목길이 정겹게 느껴졌다. 벼룩시장에서는 슬로베니아를 상징하는 갖가지 기념품에서부터 과일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거리를 지나갔다. 한 무리의 일본관광객들이 지나간 뒤, 주위를 둘러봐도 우리 가족을 제외하고 동양인의 얼굴을 찾기는 어려웠다.  슬로베니아 류블라냐 거리 ⓒ 서진완 슬로베니아의 하늘에는 여전히 구름이 많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처럼 보였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단기간 이용할 수 있는 고속도로 스티커(7일권)를 구입했다. 크로아티아(Croatia)는 EU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슬로베니아에서 크로아티아로 들어갈 때는 국경검문소에서 출입국검사가 이루어졌다. 아이들에게는 류블라냐에 이어 쟈그레브(Zagreb)도 낯선 이름이었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 독립되면서 크로아티아의 수도가 된 쟈그레브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건축과 문화 등이 혼합된 곳이라고 했는데, 다양한 갤러리와 박물관이 들어서 있는 시내 중심가는 역시 오스트리아의 어느 도시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늘에 구름이 짙어졌다가 햇살이 비치기도 하고 다시 어두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다. 성 마르코 성당을 다시 찾았다. 언덕길로 올라가는 골목길이 차가 흔들릴 정도로 작은 돌로 촘촘하게 만들어져 인상적이었다. 언덕 위에는 14-15세기에 걸쳐 건축된 고딕 양식의 성당이 있다. 성당 지붕의 오른쪽은 쟈그레브의 문양을 왼쪽은 크로아티아의 문양을 상징하는 모자이크 무늬의 타일로 새겨져 있다. 성당 하나에 크로아티를 상징하는 전체를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크로아티아 축구대표팀 유니폼에서 본 건데...” 큰아이가 본대로 크로아티아의 현재 국기 문양이기도 하다. 다시 언덕을 내려오면서 쟈그레브 대성당을 보았다. “정말 조용하네요!” 유고슬라비아 연방 시절에는 같은 나라였지만 현재는 독립된 두 곳 모두 수도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한적했다. 도시 곳곳에 나무들과 풀들이 많이 있어서 이곳이 수도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는 평범한 마을 같다.    크로아티아의 쟈그레브 성 마르코 성당 ⓒ 서진완   어두운 느낌과 밝은 느낌... 고속도로로 헝가리(Hungary) 영토내로 들어오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한속도가 130km이지만 쏟아지는 비속에서 그만큼 속력을 낼 필요가 없다. 부다페스트에 들어서는 순간 어둡고 침울한 동유럽에 대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다뉴브(Danube)강변으로 고풍스런 건물이 이어졌다. 아내와 큰아이 역시 뭔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가라앉아있는 듯하고 음침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예약한 아파트는 시내 중심가에 위치해 있어서 근처에 있는 개인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헝가리는 EU회원국이지만 유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아파트 주인에게 방값을 지불하고 주차비와 교통비로 사용할 돈을 환전했다.  부다페스트의 경치는 사랑스럽다. ⓒ 서진완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좋은 전망은 역시 언덕위로 올라가서 흐르는 다뉴브강과 고색창연한 건물들을 보는 것이다. 누군가 이곳에 오면 너무나 사랑스러워진다고 했는데, 이 말이 맞다. 어부의 요새(Halaezbastya) 주변은 아기자기한 첨탑과 교회 건물이 어우러져 예쁘고 아담했다. 이곳에서 바라본 다뉴브강은 아름답게 굽이쳐 이곳을 흘러갔다. 옛날부터 이 강은 여러 나라가 대립해왔던 곳이었고, 이 강의 이남지역은 소위 발칸반도로 현재에도 여전히 화약고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이 강을 둘러싸고 여러 나라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분쟁의 소지도 그만큼 많았다. 로마시대에 이미 라인강과 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 그리고 이곳 댜뉴브강이 로마의 국경선이자 방위선이었기 때문에 이곳을 지키는 로마군은 최강의 군대로 알려져 있을 만큼 이 지역의 중요성과 함께 그만큼 치열한 전투가 자주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독일의 나치 침공이후 소련의 지원, 그리고 공산주의 국가로서 어두웠던 시기동안 이 강은 여전히 지금처럼 흘렀을 것이다. 시내 곳곳에는 아직도 사회주의 시절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해가 완전히 지고 거리에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에 맞춰 야경을 보러 나갔다.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카메라에 그 모습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정말 예쁘고 아름답다. 큰아이는 이곳의 경치를 보면서도 자신이 안고 있는 고민거리를 얘기했다. 강을 내려다보면서 아이들의 얘기를 잘 들었다. 지금까지 잘 하고 있고 앞으로 더 잘 할 것이라고, 그리고 너무 초조해 하지 말라고 했다. 이런 곳에서는 먼저 경치부터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큰 아이는 나의 대답에 옅은 미소로 대답했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앞에 두고 고민을 하다니... 내 어깨로 아이의 손이 올라왔다.     부다페스트에서 절대 놓쳐선 안될 '야경'이다. ⓒ 서진완 부다페스트에서 2시간 정도 달리면 슬로바키아(Slovakia)의 수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가 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유채꽃이 들판 가득 피었다. 슬로바키아는 이름 그대로 슬로바키아어를 사용하면서도 같은 슬라브족인 체코와 함께 체코슬로바키아로 있다가 1993년 체코로부터 평화롭게 분리 독립하였다. 언덕위에 높이 솟은 하얀색의 브라티슬라바성과 근처에 있는 데빈(Devin)성도 보았다. 브라티슬라바는 분리 독립된 이후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었는데, 수도라고 하기에는 작고 아담했다. 트램이 구시가지를 다니고 거리는 한산했다.  브라티슬라바와 오스트리아의 빈(Wien)과의 거리는 정말 가깝다. 게다가 같은 EU회원국이기 때문에 국경을 통과할 때 검사도 하지 않기 때문에 표지판을 보지 못하면 국경을 통과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빈 시내로 들어오자 부다페스트와 브라티슬라바에서 본 어둡고 칙칙한 느낌은 찾아볼 수 없고, 건물들은 하얗고 밝은 느낌이 든다. 유서깊은 건물들이 도시를 가득 메우고 거리는 활기차고, 건물들은 화려하고 보다 고급스럽게 보인다.  빈은 너무나 볼 곳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들이 결정한 곳을 중심으로 보기로 했다. 하늘은 맑고 바람도 적당하게 불어서 걷기에 더 없이 좋았다. 지도를 들고 앞서가는 큰아이를 따라 의회 건물에서 시작해서 레오폴드(Leopold) 박물관을 보고, 화려한 합스부르크왕조의 영화를 느낄 수 있는 건물들 사이를 걸었다. 호프부르크(Hofburg) 왕궁에서 공연하는 음악회 안내를 보면서 이곳에서 연주회나 오페라를 한번 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음악의 도시로 빈 필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이곳에서 클래식 음악소리를 연상하면서 길을 걸었다. 많은 음악가들이 이 길을 걸었을 테고, 이곳 궁정에서 귀족들이 보는 앞에서 수많은 연주를 했을 것이다.    빈 레오폴드 박물관 ⓒ 서진완 “다음에 제가 꼭 이곳에서 음악공연을 보여드릴께요!” 작은아이는 엄마와 내가 나누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나는 아내와 함께 다시 이곳에 온다면 오페라를 꼭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약속했다. 우리 둘이 다시 오자고! CD로만 듣던 빈 필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이번에는 기획하지 못했다. 너무나 할 것이 많고 또 가야 할 곳도 많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아름다운 빈의 모습을 스케치할 수 있는 정도로만 눈에 담아야만 했다.  숙소 내 벽면마다 이곳 출신의 화가 클림트(Klimt)의 작품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엘리베이터에는 그의 'Kiss' 사진이 붙여져 있다. 여전히 바깥 날씨는 흐리고 공기는 차가웠다. 아침에 벨베데레(Belvedere)궁전과 쇠넨(Schönnen)궁전을 찾았다. 유럽 전역이 이상기온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6월이 가까워 오고 있는데 늦은 가을에나 느낄 수 있는 싸늘한 추위가 엄습해 왔다. 사람들도 옷깃을 여미고 정원에서 서둘러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차안에 있는 것이 훨씬 아늑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현재는 두개의 궁전 모두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중 상부 궁전에 바로 클림트의 키스가 전시되고 있다. 두 아이 모두에게 이곳에 소장된 유명한 작품들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소개해주었지만, 둘 다 그림에는 시큰둥했다. “우리가 자주 미술작품을 보여주지 못했던 탓일까요?” 아내의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었다. 역시 관심이 행동에 반영된 것이리라.   쇤부른궁전으로 갈 때는 마치 비라도 내릴 기세였다. 이곳은 합스부르크가의 여름 별궁으로 6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인데 오스트리아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와 그녀의 딸 마리 앙뜨아네트가 살았던 곳으로 아름다운 정원과 화려한 궁전 내부로 베르사이유 궁전과 비교될 만큼 많이 알려진 곳이다. 노란색을 좋아했던 황후 마리아 테리지아의 취향이 반영되어 궁전 전체의 모습이 노란색을 띠고 있다. 그러고 보면 마리 앙뜨아네트는 오스트리아 공주로서 그리고 이후 프랑스 왕비로서 베르사유까지 가장 아름답다는 두개의 궁전에 모두 살아본 사람이지만, 그 말로를 생각하면 아름다운 궁전에 산다는 것이 덧없이 느껴졌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들이 단지 아름답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모차르트가 어릴 때 이곳에서 마리아 테리지아 황후 앞에서 연주를 했다는 곳이 이곳 어딘가일텐데 그 곳이 더 궁금해졌다. 그녀가 어린 모차르트의 연주에 감동해서 소원이 무엇인가 물었고, 이에 모차르트는 어린 마리 앙뜨아네트를 쳐다보며 저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는 얘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리 앙뜨아네트가 만약 그와 결혼을 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왕궁을 나오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칠 그런 비는 아니었다.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진짜 경찰이 맞나? 프라하(Prague)로 오는 길 내내 비가 내렸다. 차는 숙소에 두고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시내중심가로 나갔다. 우리는 언덕위에서 아래로 카를(Charles)교를 건너 구도심으로 다시 내려오는 동선을 잡았다. 역시 큰아이가 지도를 들고 앞장을 섰다. 우산을 쓰고 다니느라 불편했지만 고풍스런 건물들 사이로 비가 내려 더 운치가 있다. 프라하성에 오르자 비는 더 많이 내렸다. 다행히 거리는 돌로 만든 길이라 빗물이 흘러도 걷는 데 불편하지 않았다. 큰아이가 안내한대로 계단으로 연결된 길을 택한 덕분에 가장 빨리 성으로 올라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올라가면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좋았다. 정원을 둘러싸고 마치 거대한 요새처럼 만든 이곳 성에서 경비들의 교대식도 보고, 성 비투스(St. Vitue) 대성당에서는 한동안 앉아있기도 했다. 지금까지 모두 건강하게 여행을 잘하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다. 성당에 들어가면 항상 마음속으로 이런 기도를 하게 된다. 아무런 탈 없이 지금까지 왔던 것처럼 남은 여행을 그렇게 갈 수 있도록.  프라하 천문시계 ⓒ 서진완 성당을 나서자 비는 잦아들고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성에서 내려오며 바라보는 길은 이곳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카를교로 연결된다. 다리 근처로 가자 하늘이 맑아지면서 햇살이 비쳤다. 다리 양옆에 있는 문은 물론 다리 사이에 세워진 섬세한 조각 작품 하나하나가 우리 시선을 끌었다. 그 중 사람들이 꼭 만져야만 하는 조각들이 있다. 우리 가족 모두 다 건강하게 해달라는 마음으로 만졌다. 다시 이곳에 오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여행을 마치게 해달라는 마음이 더 컸다. 다리를 천천히 걸으면서 뒤로 그리고 앞으로 번갈아가며 바라보는 이곳 광경은 이곳에 오면 절대 놓치면 안 된다.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구시가지 광장에서는 구 시청사 건물에 설치된 15세기에 완성되었다는 천문시계가 눈에 띈다. 이 시계가 완성되자 더 이상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시계를 만들지 못하도록 시계제작자의 눈을 멀게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는데 작은아이는 이러한 전설 얘기를 듣는 것보다 천문시계 그 자체에 관심을 보였다.  프라하의 야경 또한 놓칠 수는 없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차를 가지고 구시가지로 다시 들어갔다. 강가에 잠시 차를 주차했는데, 경찰이 와서 여권을 확인하며, 출입이 금지된 곳이라며 나가라고 했다. 낮에 걸었던 시내 중심가로 들어갔지만 주차할 공간을 찾을 수가 없다. 해가 완전히 지고 프라하성과 카를교를 중심으로 불이 들어왔다. 주차할 공간을 찾는 우리에게 경찰복장을 한 사람이 차를 세웠고, 출입이 허용되지 않은 곳에 들어왔다며 여권과 운전면허증을 요구하더니, 잠시 후 벌금을 내야한다고 했다. 앞서 가던 다른 차들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처럼 보였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왔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벌금을 내라고 했다. 결국 실랑이 끝에 10 유로를 집어주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고,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아빠, 경찰이 아닌 것 같은데요?” 차를 돌려서 나오는데, 두 아이가 사기꾼 같다고 얘기했다. 현금이 없다고 하자 길건너 현금출납기가 있는 곳을 가르쳐준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낯선 곳에서 어떤 상황에 처할지 몰라서 어쩔 수 없었다.  프라하의 야경 ⓒ 서진완 “아낙수나문~” 차문을 열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다함께 웃었다. 여행을 하면서 큰아이가 자주 외치면서 어느 순간부터 우리 가족 모두가 기분 나쁜 상황이 되면 외치는 우리들만의 주문이다. 그럴 때마다 웃게 된다. 아낙수나문은 고대 이집트의 제사장 이모텝이 사랑에 빠진 파라오의 정부인 이름이다. 파라오가 눈치 채자 아낙수나문은 자결하고 이모텝은 자신의 혀가 잘리고 눈이 뽑힌 뒤 사람의 살을 파먹는 풍뎅이들이 우글거리는 석관에 산 채로 갇히는 형벌을 받는다. 큰아이는 그가 되살아나면 인류 최악의 재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아낙수나문을 언급했었다. 체코에서 독일로 가는 길에 다시 경찰을 만났다. 우산을 받쳐도 빗물이 들이칠 정도로 빗줄기가 굵어졌는데, 체코 국경을 넘기 직전 경찰차가 우리 차 앞을 추월하면서 우리 차를 세우라고 표시를 했다. 여권을 검사하고 차량에 부착된 스티커를 확인했다. “이번에는 뭘까요?” 아이들은 걱정했다. 서투른 영어로 독일로 조심해서 가라고 한다. 차를 다시 출발하며 “비네(Vignette)가 없었더라면...” 큰일날뻔 했다.  참고로 체코에서 발행하는 고속도로 이용권인 비네는 두장으로 한 장은 스위스,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와 달리 우측 아래쪽에 부착하여야 하고, 다른 하나는 소지하고 다니며 경찰의 불시 검문 시 제시하여야 한다(10일권이 17유로). 아이들은 어제 본 경찰이 가짜라는 확신이 든 모양이다. 이 경찰과 많이 달랐다고 했다. 독일 국경을 넘었다. 더 이상 체코 경찰을 만날 일은 없겠지!  <정리 = 이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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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한옥마을 대형식당 엔타스 대표 법정 구속

가짜 외투법인 내세워 불법으로 임대료 감면받아

송도 한옥마을. (사진 출처 = 경인방송)   송도국제도시 내 한옥마을 대형식당 엔타스 운영자들이 가짜 외국투자법인을 내세워 4억 원 대의 임대료를 감면 받은 혐의로 징역형 등의 처벌을 받았다. 특히 엔타스 대표에게는 법정 구속의 실형이 선고됐다.   인천지법 형사12부(장세영 부장판사)는 “지난 29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문 외식업체 ㈜엔타스 대표 A(52) 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으며, 같은 혐의로 기소된 엔타스 부사장 B(47) 씨와 법무차장 C(38) 씨에게는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을 속여 송도한옥마을 부지를 헐값에 임대받은 정황이 있었고, 만약 해당 범행이 발각되지 않았다면 현재 공시지가로 기준을 잡아도 최장 50년간 200억 원이 넘는 임대료 차액을 챙길 여지가 있었음에도 인천시민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사실을 왜곡하는 등 잘못을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았다”며 실형선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또한 외국인투자유치제도의 법령과 실무상 허점을 지능적으로 악용한 점이 있음에도 이러한 범행 일체를 부인했으며 사업성을 보고 추진한 것을 인천시민을 위해 투자했다고 주장하는 부분도 실형의 결정적인 이유”라고 전했다.   A씨는 지난 2013과 2014년에 걸쳐 가짜 외국투자법인인 ‘엔타스에스디’를 설립하고 인천경제청을 속여 1년 치 임대료 중 3억 9천여 만 원을 감면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국내 법인인 만큼 본디 5억 원 가까운 임대료를 내야 했지만 이를 속여 외국인투자촉진법에 의거한 임대료 감면 혜택을 받아내 5분의1 수준인 9,900만 원 가량만 내고 송도한옥마을에서 고급 식당을 운영해 온 것이다.   해당 고급음식점의 임대기간은 최초 20년이지만 외국인투자촉진법을 적용받아 최대 50년 간 영업권을 보장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법정 구속된 A씨는 경복궁, 삿뽀로, 고구려 등 고급 외식업체를 운영하는 엔타스를 비롯해 총 14개 계열사를 운영하며 부동산과 면세사업 등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유정복 시장 “인천형 복지 위해 추가로 131억 지원”

“재정난 어려웠지만 이제 서민복지 챙길 터”... 지역사회 “환영”

유정복 인천시장이 29일 인천시청 대회의실에서 언론사 기자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 앞에서 ‘인천형 복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영수   인천시가 서민복지에 대한 정책방향에 대해 다소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심각했던 재정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만큼의 ‘여유분’을 단계적으로 복지에 투자하겠다는 것인데, 지역사회도 전반적으로는 환영의 뜻을 나타내는 분위기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29일 오후 인천시청사에서 언론사 기자 및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인천형 공감복지, 모두가 행복한 인천을 만듭니다’라는 주제로 설명회를 열고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인천형 복지를 지금 시점부터 현재진행형으로 구축해갈 것”이라 밝혔다.   이날 유 시장은 “복지 추진에는 정책의 실효성과 예산, 법령 제정 등이 중요하며 사전에 이 문제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이미 반영된 예산 외에 추가적으로 131억 원(시비 96억 원, 협의된 민간자원 35억 원)의 예산을 투입키로 했다”고 밝히며 “이를 통해 관내 약 25만 8천여 명 정도가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날 유 시장의 발언은 그간 시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복지예산이 오히려 늘어났다”라는 주장에 대해 “사실상 그렇지 않다”며 반박해온 야당과 시민사회의 주장 및 논리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유 시장은 “올해 인천시의 복지 관련 예산이 2조 2천억 원 가량으로 겉으로는 매년 늘어나고 있었지만 대부분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 무상보육 및 기초연금의 부분인 만큼 사회적 약자와 직결된 국가보장 지출은 미흡해 내용적으로 복지가 늘어났다 보기에 어려운 게 사실”이라면서 “빈곤의 고착화와 양극화가 인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심화되고 있으며 청년과 노인의 삶이 힘겨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앙정부 및 시민사회와의 토론 및 협의 과정을 거쳐 인천 시민들에게 맞는 특성을 살린 맞춤형 복지를 실천해 시민의 눈높이에서 필요한 복지를 펴나가면서 복지의 사각지대를 최대한 없애는 돌봄의 복지를 실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인천형 복지’ 설명회에는 많은 언론사 기자들과 시민들이 모였다. ⓒ배영수   이날 유 시장이 제시한 복지모델은 총 5가지의 정책방향에 의거(틈새없는 복지, 고용과 복지의 통합 일자리 구축, 생애 주기별 돌봄서비스, 나눔과 공유 공감의 공동체, 건강 안심 복지도시)해 중장기적인 세부 계획을 이행해 가겠다는 것이다.   우선 법령상 지원이 어려운 위기가정 등에 대해 SOS 복지 안전벨트 구축 사업에 30억 원, 저소득층 무상진료 등이 주요 골자인 ‘인천손 약손 프로젝트’에 약 9억 원, 다문화가족 자녀 발달장애 정밀검사지원에 3천만 원, 복지기준 기초조사 등에 1억 원 등을 투입키로 했다. 또 재난 재해로 인한 긴급지원 대상자에게 임시주택 100호를 신규 도입키로 했다.   자활근로사업 참여자 대상으로 취업 및 창업에서 성공하면 장려금을 지원해 탈수급 자활을 톡진하고자 하는 ‘희망잡(Job)아 프로젝트’ 사업에는 1억 6천만 원을 투입하고 공공기관을 포함한 장애인 공공형 일자리의 확충을 제도적으로 도입한다. 여성 맞춤형 취업지원에는 13억 6천만 원, 현재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어르신 일자리 지원사업에는 중장기적으로 투입되는 예산을 포함해 총 135억 원의 예산을 지원키로 했다.   또 출산과 육아 등을 책임져야 하는 산모를 대상으로 출산 선물바구니(아기와 산모의 먹거리 및 입을거리 등이 들어있음)를 증정하고 영양제와 모유수유 프로그램 운영 등이 포함된 ‘I-MOM’사업에도 23억 원을 지원한다. 또 현 316개소의 어린이집을 오는 2020년까지 635개소까지 늘리고 공보육의 분담률을 2020년 15%까지 올리기로 정했다.   전국에서 인천이 유일하게 실시한다는 장애인 자세유지기구를 체형에 맞게 맞춤형으로 제작해 보급을 확대하고, 특수 개조차량을 이용하는 ‘찾아가는 방문 서비스’ 등을 도입하는 사업도 본격 전개해 가기로 했다.   또 각 동의 주민센터를 기반으로 지역복지공동체를 가동해 현장에서 절실한 복지사업을 발굴하고 지원하면서 관내 5천 개 복지시설을 기반으로 복지자원을 공유하는 시스템 구축, 그리고 취약가정과 지역공동체 간 자매결연이나 멘토링 등을 통해 소외계층 문제 해결에 민-관 예산을 포함해 약 40억 원 가량을 투입하기로 했다.   대학생 등 청년들이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실태조사에 직접 참여해 청년들의 아르바이트 자리와 복지 관심도를 동시에 제고하고 소외계층 등에 대한 주거환경 개선작업 등을 포함해 9억 원 가량의 예산도 향후 투입키로 했다.   그 외 근자에 집중되고 있는 북한 도발로 인해 정신건강에 대한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서해5도 지역(연평도, 백령도 등)대상으로 마음건강사업을 추진하고 고혈압 혹은 당뇨 합병증 예방사업을 시범 실시키로 했다. 또 다문화 및 보훈가족의 건강 모니터링과 아동학대, 여성 폭력 근절에도 예산 및 제도지원을 하기로 했다.   유정복 시장이 인천시가 샘플로 준비한 출산 선물바구니를 보여주며 미소를 보이고 있다. ⓒ배영수   이날 유 시장은 “이날 발표한 정책들은 완결형이 아닌 진행형으로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보면 된다”면서 “내년을 포함한 향후의 정책 역시 많은 전문가들과 시민 의견을 반영해서 보완하는 작업을 계속 거칠 것인데 우선은 복지 사업에 대한 수요실태를 정확히 진단하는 사업부터 추진할 계획”이라 전했다. 또 “점진적으로 빈곤탈출율을 30%까지 올릴 것”이라는 목표도 함께 밝혔다.   이어 기자들과 시민들의 질문 시간이 이어졌다. 대부분은 “발표한 정책을 잘 이끌어가 주길 바란다”는 내용이 주였지만, 그중 “인천복지정책에 대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복지재단 설립을 유 시장이 주장해 왔는데 오늘 발표에는 그 이야기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유 시장은 “복지정책이 중요해서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복지재단이 필요하다고 보고, 재단 설립을 위해서는 행정자치부와의 협의가 필요한데 행자부는 설립은 하되 제대로 준비하라는 의견이 있어서 시에서 자체적으로 정책센터를 별도 설립해서 연구하고 이를 통해 복지재단의 준비과정의 밟을 것”이라 말했다. 최근 시민사회에서 재단 설립을 두고 ‘기능 중복’ 등이 지적된 것에 대해 나름의 입장을 밝힌 셈이다.   이날 설명회에 참여한 시민단체 관계자들도 대부분은 시의 이러한 방향에 긍정적인 입장을 일단 보이고 있다. 눈에 보이는 한계나 개선점은 있었지만 그간 서민 복지를 외면하던 시가 자세를 바꿨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인천평화복지연대의 신규철 정책위원장은 “그간 복지예산에 대해 인천시가 재정난을 이유로 감축이나 동결로 일관해 오다가, 이번 설명회에서 ‘인천형 복지’를 언급하며 어찌됐던 부채 감축으로 인한 결실을 시민들에게 복지로 돌려주고 그 일환으로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것은 시가 지금까지의 자세에서 일종의 ‘기조 전환’을 보인 것이니 환영할 일”이라 말했다.   다만 신 위원장은 “유 시장이 시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인다고 약속을 했는데, 아직 재정 문제도 있고 또 시장 스스로 진행형이라는 점을 전제했으니 속단하기엔 이르지만, 시민 체감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좀 더 강화된 정책방향과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주민의힘으로 풀뿌리복지실현, 사각지대 직접 챙긴다

학산나눔재단, 10월13일 창립총회 열기로

학산나눔재단 추진위원들의 회의 모습. ⓒ인천시 남구   주민들이 직접 소액씩 기금을 모아 지역 복지의 사각지대 등을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풀뿌리 ‘학산나눔재단’이 예정보다 두 달 가량 시기를 앞당겨 오는 13일 창립총회를 연다. 재단은 총회 후 인천시의 사단법인 승인을 받는 대로 본격적인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학산나눔재단 설립추진위원회(위원장 김영길, 이하 재단) 관계자는 28일 “당초 12월로 예정됐던 창립총회를 예정보다 조금 당겨 오는 10월 13일 오후 3시 열 계획”이라며 “27일 이사회를 통해 이사진 구성을 마치고 총회에 대해 의논도 하는 자리도 가졌다”고 전했다. 총회 장소는 남구 문학동 인천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이다.   재단은 주민들이 직접 십시일반한다는 원칙을 지켜 관의 지원에 손을 벌리지 않도록 해 정치적인 입김이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했다. 특정 고액 후원자의 지원도 우선시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내부에서 영향력을 가질 수도 없다. 주민들이 스스로 '소액 다수'로 복지기금을 모아가겠다는 것이다.   재단에 따르면 창립총회 이후 시로부터 사단법인 승인을 받고 모금 활동을 계속해갈 것인데, 다수의 소액 모금을 원칙으로 40만 남구 주민들이 모두 알권리를 갖고 동참해서 주민들 스스로 열악한 남구의 환경을 바꾸고 복지를 챙겨 살기 좋은 남구로 만들자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주민들 스스로 몇 천 원씩이라도 모아, 이를 통해 ‘잘 사는 지역’이 아닌, ‘전체가 살기 좋고 행복한 지역’으로 만들어 주민들 스스로가 애향심과 정주의식을 고취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재단의 목표라는 것이다.   재단은 우선 '복지과 교육'에 가장 큰 주안점을 둔다. 복지는 정부에서 법령 등의 이유로 손대지 못하고 있는 사각지대의 복지를 돕고,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이웃이 잘 살아야 하는 이유와 봉사 및 기부의 필요성을 고취시키기 위해 학교를 찾아다니면서 교육을 계속할 계획이다. 이 교육은 추진위 초기 부터 진행해왔다. 또 향후 지역경제나 문화, 환경의 카테고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겠다는 목표도 있다.   재단 관계자는 “소수인이 큰 금액을 내는 복지 틀은 지금도 많지만, 대부분 그런 틀은 주민들이 잘 모른다”면서 “우리는 5천 원이라도 소액을 내는 주민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그런 주민들이 함께 고민토록 하는 재단, 그리고 주민 스스로가 피부에 닿는 성격으로 인식하는 재단으로서 갈 수 있게 기초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단 설립추진위는 처음 출범한 지 1년 2개월여의 시간이 지났다. 현재까지 사업에 쓰일 약 1억 1천여만 원의 기금을 모금했고, 10만 원 이상(발기인 1계좌 10만 원)의 기부에 참여한 사람들이 400여 명 가량으로 규모도 갖췄다.   출발 시점에서 14명이 준비위원으로 출발하면서 이들이 100만 원씩 걷어 1,400만 원을 모으고, 이후로도 사람들을 모으고 더 걷으면서 기금이 제법 모였다. 준비위원들의 출연기금으로는 미미하지만 장학사업이나 열악한 가정의 집수리, 그리고 복지 철학에 대한 토론회 등 사업도 몇 차례 해 오기도 했다.   남구청 역시 재단의 이러한 취지를 공감하고 행정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재단과 남구 모두 금전적인 예산 지원은 배제하고, 홍보와 사람 모으기 등 행정의 부분에서만 지원을 하기로 했다.   재단 관계자는 “남구청과 청장 등이 직접 참여하는 경우 정치적인 문제가 끼어들 수 있는 만큼, 재단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남구의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이라 말했다. 남구 관계자 역시 “지역의 대표적인 자생단체가 될 수 있도록 간섭은 최소화하고 주민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방향으로 지원하자고 방향을 잡은 상태”라고 전했다.   재단 측은 “최근 한 달 반여 기간 동안 각 동 다니면서 홍보하기도 했는데 재단 내부에서는 현재 남구 주민들의 70%는 재단의 성격을 알고 반응도 좋게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나눔의 문화를 공유하자는 취지가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이어 “모금액이나 후원금 등의 집행에 대해서도 배분위원회를 통해 모든 지역주민들이 알 수 있게끔 투명하게 이루어질 것”이라 밝혔다. ※학산나눔재단 후원문의 : 032-880-4809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인천시는 아직도 ‘나 몰라라’

내부 담당 공직자 없어... 시 도시계획정책관 “전혀 모른다”

프랜차이즈들이 ‘도배’하고 있는 신포동 로데오거리. ⓒ배영수   인천서도 문제가 확산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현상에 대해 인천시가 아직도 사실상 ‘방관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27일까지 <인천in>이 인천시의 내부 부서 업무들을 확인해본 결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담당하거나 조치할 수 있는 부서나 공직자가 아직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인천서도 관내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올해 초 수인선 신포역이 개통된 이후의 신포동에서 그 현상이 짙다. 이 일대는 지역경제가 상당히 침체돼 있었던 이곳을 임대료가 저렴한 곳을 원했던 예술인들이 정착하면서 동네의 분위기가 다시 활기를 찾은 바가 있다.   문제는 이후 나타났다. 언론이나 온라인 SNS 등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이를 간파한 부동산업자들의 ‘담합’ 과정을 거쳐 임대료가 오르기 시작한 것. 최근 수인선 개통이 이를 부채질하면서 집주인들의 임대료 인상 횡포에 대한 제보는 최근 <인천in>에도 적지않게 들어오고 있다.   이 일대에서 활동하는 공인중개사들은 “2~3년 전만 해도 평당 1,000만 원 이하 시세가 형성돼 있던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1,500만 원 정도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또 신포동 및 차이나타운 사이에서 업소를 운영하는 몇몇 임차인들은 “임대료가 20~30만 원 씩 오른 것은 기본”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몇몇 임차인들은 “비율로 따지면 심하게는 30~40%까지 오른 곳도 있다”고 했다.   또 <인천in>의 지난 취재에서도 나타났지만 계약을 할 때마다 건물 보수 필요시 임차인에게 이 책임을 씌우고 임차인에게 불리한 내용이 추가되는 등 ‘싫으면 나가라’식의 계약도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 더군다나 이러한 집주인들 대부분이 인천이 아닌 외지 사람들이라는 점도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관련기사 : 5월 4일 ‘신포역 개통의 역설, 상인 피해주는 젠트리피케이션’)   통상적으로 도시의 변화와 함께 찾아오는 젠트리피케이션은 그 특성상 전담 부서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경우 도시계획국에서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천시도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시 도시계획국에서 담당할 일이다. <인천in>이 시 내부 부서의 업무를 하나하나 확인해보기도 했지만, 인천시 콜센터에 문의한 결과 “그 문제(젠트리피케이션)라면 시 도시계획국 부서에서 담당할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일부 기초단체에서 전담 부서를 따로 구성해 이에 대응하고 있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아예 전담 팀을 따로 만들고 집주인과 임차인을 불러모아 상생협약 등을 진행하는 서울 성동구의 행정이 전국적으로도 모범 사례로 주목받기도 하면서, 서울의 다른 기초단체들이 이를 참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천서도 공론화는 이미 예전부터 돼 있었다. 올해만도 여러 지역 언론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 바가 있으며, 신포동을 끼고있는 인천문화재단에서는 이미 지난 여름 젠트리피케이션을 주제로 한 차례의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인천시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어떠한 관심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소위 ‘사경제권’이라는 판단 하에 전담하는 공직자나 부서를 아직까지 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시 도시계획국의 부서들 중에서도 이 문제를 담당하는 부서의 부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정상철 인천시 도시재생정책관은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 7월에 부임해 아직 부서 업무를 파악하는 중”이라면서 “나조차도 그 문제는 아는 게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정책관이 소속된 도시계획국의 전체 업무 내용을 감안하면, 정 정책관을 비롯한 시 공직자들이 앞으로도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자세를 보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지역사회의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심각하다는 시선이 많다. 특색 있는 동네의 형성 과정을 함께 하고 때에 따라서는 그 과정에 크게 공헌한 문화예술인 등 지역 인물들이, 임대료의 횡포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 결국 공동화 현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지역 공동체 형성에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사회 대부분은 “시가 기본적인 실태 파악 혹은 대응방안 마련 등은 물론, 대부분의 공직자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시 차원의 대응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의 박재성 운영위원장은 “지금 입주하고 있는 활동가들(사회, 예술 부문 모두 포함) 중 원도심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인천에도 사실 꽤 많은 수를 보이고 있다”면서 “이들의 정착에는 시의 제도적 지원이 절실한 만큼, 시와 해당 관할구청이 중장기적인 전체 계획을 잡아 정책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천경실련의 김송원 사무처장은 “2000년대 초반 예술회관 건너편에 예술테마의 거리 조성에 대한 움직임이 결국 임대료 인상 횡포로 인해 결국 실패로 돌아간 부분을 시가 기억해야 한다”면서 “특히 임대료 문제로 신음하는 예술문화인들에 대한 시의 중장기적 배려는 반드시 필요하리라 본다”고 전했다.  

“나는 날마다 쇠를 달군다”

[떠나지못하는사람들] (2회) 화수부두 ‘닻’ 장인 한현수 씨

“누군가는 만들어야 돼요. 제가 안 만들어도 누군가는 만들어야 배가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으니까. 우리가 배구 할 때 보면 네트가 양쪽에 팽팽하게 있잖아요. 깃대라고 하는 깃발을 달아서 닻을 바다에 던지는 거예요. 배가 움직이면 그게 고정되면서 그물이 배구 네트 식으로 쳐져요. 꽃게가 바다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그물에 걸리는 거예요. 광어, 주꾸미 잡는 데 쓰는 닻도 있죠.” 인천에는 섬이 많다. 인천 포구에 납품하는 닻은 대부분 한현수 씨가 만든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닻은 배를 한곳에 떠 있게 하거나 멈추게 하기 위하여 줄에 매 물 밑바닥으로 가라앉히는 쇠로 만든 갈고리다. 손맛에 따라 음식 맛이 다르듯 닻도 만드는 사람마다 모양과 길이가 다르다.  ‘닻이 잘 먹는다’는 말은 바다에서 물살에 끌리지 않고 잘 고정된다는 뜻이다. 거리가 멀어도 맛있는 음식점이 있다면 찾아가는 것처럼 써본 사람들은 조금 비싸도 그의 닻을 선호한다. 소래포구를 거쳐 동구 화수부두에서 이십 여 년 간 닻을 만들고 있는 한현수 씨(73)를 만났다.      그의 뒤로 100평 같은 작업실이 펼쳐져 있다. ⓒ 이재은   "자녀가 1남 3녀인데 아들은 큰 회사에 다녀요. 금속공학을 했으면 했는데 안 하더라고요. 업을 이어주려고 하다가 안 되니까 아쉽죠. 아들이 하나이기 때문에. 지금은 서운하거나 그런 건 없어요. 부모가 한다고 해서 무조건 이어받아야 하는 건 아니고 지금은 개성시대니까 자기 길을 찾아가는 거죠. 제가 올해 일흔셋인데 앞으로 10년은 더 해야 한다고 봐요. 십 년 더 하면 팔십이 넘잖아요. 그 안에 누군가 내가 한 번 해보겠다하고 애착을 갖고 오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돈으로는 못 도와줘도 가지고 있는 기술은 다 넘겨주고 싶어요. 누가 하겠다면은.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어요. 올해 1월에 OBS에서 촬영을 왔는데 방송 이후에 한 사람이 찾아왔어요. 지방에서 일을 하다가 방송을 봤대요. 이 근처에 살더라고. 정년이 돼서 쉬고 있는 중인데 지금은 일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받아줄 수가 없지. 기회가 되면 인연이 되는 거고, 아니면 안 되는 거고. 당장은 물려줄 수도 없고 용접을 맡아하는 직원도 있으니 일하라 소리도 못하는 거죠." 작업장이 아니라 고물상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녹슨 갈고리를 모아두는 창고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기웃거리는 사람은 많아도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적다. 누구라도 들어와 말을 걸면 성의껏 받아준다. 커피도 타 준다. 선반과 바닥에는 망치와 철근 천지다. 10년 전 액자도 먼지에 쌓여 있다. 곳곳에 바다 내음이 배어있는 듯 돌아보는 곳마다 짜고, 깊다. 올 여름 무더위를 어떻게 견뎠을까.  "무척 더웠죠. 그거야 뭐, 땀 속에서 일을 했는데. 선풍기 두 대 틀어놓고 하는데, 이 안에 재료가 몇 톤 챙겨있어요. 쫙 깔아놓고 일을 하니까. 공간이 없으니까. 웬만한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 일 못해요. 어차피 배 하는 분들은 물건을 써야 하고, 또 좋은 물건을 써야 하잖아요. 그만두고 싶어도 그동안 정이 들었잖아요, 선주들하고. 정이 들었으니까 그 사람들 위해서 (내가) 헌신하지 않으면 누가 하랴, 그래서 제가 힘닿는 데까지는 하려고 해요.  공간은 비좁아도 나는 100평에서 작업한다 생각하고 하는 거예요. 보는 사람마다 비좁아서 어떡하느냐고 얘기하는데 공장이 넓다고 해서 일이 잘 되고 좁다고 해서 일이 안 되는 건 아니에요. 자기 공간을 얼마만큼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여기가 6.9평인데 나는 100평에서 일한다고 생각해요." 작업복 바지 아래 낡은 안전화가 눈에 띈다. 가죽이고, 발등 앞부분과 바닥에 얇은 철이 들어가 있는데도 작업하다보면 어느새 닳아 짧으면 3개월, 길면 5개월 주기로 바꿔야 한다. 신발코가 하얗게 변한 갈색 작업화는 늘 여러 쌍이다. 새 달부터 신을 거라며 그가 선반에서 꺼내 보여준 신발도 지금 것과 똑같이 생겼다.    10여년 전 한 사진가가 3년 동안 그의 작업장을 드나들었다. 전시 후에 받은 액자가 여전히 벽에 걸려있다. ⓒ 이재은   추석연휴가 길었고, 서로의 일정이 바빠 주중에 만나지 못하고 일요일 오전 화수부두를 찾았다. 그림 그리는 고제민 작가와 함께였다. 몇 년 전부터 화수부두를 스케치하고 화폭에 담고 있다는 작가는 한현수 씨의 작업장을 궁금해했다. 나와 함께 그의 삶을 듣고 싶어했다. 닻 만드는 장인은 쉼 없이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하며 오래된 사진을 보여주고, 쇠를 달굴 때 쓰는 석탄을 가리키고, 낡은 신발을 벗어주고, 굳은살 박인 손을 내밀었다. 우리의 질문과 요청에 불편한 기색 없이 응답해주었다. 쉬어야 할 일요일에 인터뷰 하겠다고 손님이 찾아오면 귀찮지 않을까. "그동안은 일 년에 딱 세 번 쉬었어요. 추석, 신정, 구정, 이렇게 딱 세 번. 지금은 그렇게 안 해요. 동네지킴이 동구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바빠졌어요. 등산도 가고 친구도 만나고 그러죠.  얼마 전에도 닻 만드는 일이 생소하다고 찾아와서 방송에서 찍어갔어요. 끝마무리로 노래 한 곡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가사를 욀 수가 있나. 가끔 부르던 ‘용두산 엘레지’ 맛보기로 조금 부를게요, 하고 불렀죠. 며칠 있다가 전화들이 오는 거야. 아니, 사장님 언제 인터뷰하고 노래까지 부르고 그랬냐고. 일하다가 들었대요. 그러면 반갑고, 기분이 좋죠. 소신껏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대답하면 되니까 귀찮은 건 없어요." 내 기준에서만 생각했다. “귀찮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은 일요일 오전의 인터뷰를 피곤하게 여겼던 속 좁은 내 마음의 반영이었다. 아버지를 잃고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어린 시절, 사글세를 전전했던 결혼 생활, 빠져나갈 구멍 없이 막막했던 사업실패 등과 관련된 상투적인 회고(?)에 잠깐 방심한 사이, 그는 나쁜 친구도 좋은 친구라는 말로 내 머리를 두드린다. 빤한 일반론을 뒤집는다.  "예전에 어른들이 행실 나쁜 친구들과 못 놀게 한단 말이에요. 세월이 흐르다보면 그 사람한테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깡패들이요? 못된 놈 보고 깡패라고 하잖아요. 깡패들은 의리가 있어요. 의리가 있어서 걔네들은 가끔 도와줘요. 근데 좋은 친구들이요? 없어요. 극소수예요. 그래서 좋은 친구도 많아야 되지만 나쁜 친구도 많아야 된다, 이걸 또 아셔야 해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한 번에 다 하면 안 돼. 또 와야지.” 아쉬워하신다. “지역에 왔으면 그 지역 특산물을 맛 봐야 돼요. 옆에 가서 꽃게탕 들고 가세요. 이렇게 사는 거예요. 대화도 나누고, 좋은 데 가서 차도 맛있게 먹고, 경우에 따라서 탁발도 한 잔 하고…. 천국이 따로 없어요. 내가 천국을 만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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