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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

최원영의 행복산책
행복은 이미 갖고 있는 것을 향유할..

(19) 99의 노예

풍경 #35. 99의 노예   <마음의 암호에는 단서가 있다>라는 책에 흥미로운 예화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새벽에 잠이 깬 왕이 산책을 하러 나섭니다. 주방 근처에 이르자 요리사가 행복한 얼굴을 한 채로 흥얼거리는 휘파람 소리가 들립니다. ‘무엇이 저토록 저 사람을 저렇게도 행복하게 할까?’ 자신은 국사를 돌보느라 하루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주방장을 불러 그 연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요리사이지만 제 아내와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가 있어서 하루하루가 기쁩니다. 제게는 필요한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방 한 칸과 배를 불릴 수 있는 음식만 있으면 행복하니까요.” 요리사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왕은 도무지 그를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재상을 불러 물어보았습니다. “폐하, 저는 그 요리사가 행복한 이유는 아직까지 99의 노예가 되지 않아서라고 생각합니다.” “99의 노예? 그게 뭔가?” “폐하,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시면, 가죽 주머니에 금화 99개를 넣어 요리사 집 현관 앞에 갖다 놓으십시오. 그러면 아시게 될 겁니다.” 왕은 그렇게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요리사는 가죽주머니를 발견하고 열어보니 금화였습니다. 세어 보니 99개였지요. 다시 세어보아도 99개뿐이었습니다. ‘왜 100개 아니라 99개지?’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혹시 떨어진 게 아닐까 해서 주변을 샅샅이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화 하나만 더 있으면 100개가 되겠다. 내일부터 열심히 일해서 금화 한 닢을 더 벌어야겠다.’ 다음 날 아침에 요리사는 늦잠을 잤습니다. 일어나더니 아내와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지릅니다. 자신을 깨우지 않았다고 말이죠. 출근해서는 미친 듯이 일했습니다. 이젠 콧노래나 휘파람을 불 여유가 없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금화 한 닢을 모아야하니까요. 어제처럼 즐겁고 행복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요리사의 이런 변화를 목격한 왕은 재상을 불러 이 사실을 얘기하니까, 재상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폐하, 그 요리사는 이제 99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99개의 노예란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이 느끼기에 부족한 1을 채워 100을 만들기 위해 일에만 매달리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 동화 같은 이야기에서 인간의 탐욕은 어디가 끝일까를 생각해봅니다. 부족한 1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이미 가지고 있는 99개에 대한 감사함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요. 이미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소중함과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직업에 대한 감사함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브레이크 없는 삶을 살게 되겠지요. 행복은 100을 가져서가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것을 기쁘게 향유할 때 찾아오는 선물입니다. 그러니 99의 ‘노예로서의 나’가 아니라 99의 ‘주인으로서의 나’로 자리매김할 때 행복은 내 것이 되지 않을까요.      
서진완 교수의 가족세계여행 365일
그래도, 여행은 계속 된다

(19)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국립 인류학 박물관에서 ⓒ 서진완   다시 멕시코시티로... 멕시코시티행 버스에 올랐다. 멕시코시티로 돌아와서 아내와 아이들 모두 새로 구한 숙소를 맘에 들어 했다. 하지만 여유도 잠시, 카드 분실 문제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지역 경찰서에 분실 신고를 하러갔지만, 결국은 그곳에서 처리되지 않아 다른 공공기관을 찾아야 했다. 그나마 이 서류를 해당 은행에 제출하면 끝나는 일이라고 하니, 맘이 좀 편해졌다. 작은아이는 국립인류학박물관을 제대로 보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며 하루를 할애했다. 국립인류학박물관은 멕시코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하는데, 마야문명, 아즈텍문명, 테오티우아칸유적 등 멕시코의 다양한 문명을 이해할 수 있는 곳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박물관 중앙에 위치한 아즈텍 전시실이었다. 전시실로 들어가는 중앙에 위치한 태양의 돌(Stone of the Sun)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외에도 각종 형태의 돌에 새겨진 섬세한 조각과 뱀 형상의 조각상 등은 현재에서도 그 상태가 완전하게 확인 가능할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국립 인류학 박물관의 '태양의 돌' ⓒ 서진완 박물관에는 돌로 만든 유물들만 남아있지만, 돌에 새겨진 문양과 각종 장식을 보면 당시 스페인 군대가 침략했을 때 아즈텍인들이 얼마나 화려하게 생활을 했을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스페인 침략 이전의 멕시코를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이곳에서 그들의 유물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화려한 과거의 영화를 후세 사람들이 어떻게 복원할지, 지금의 멕시코가 할 일이 너무나 많을 것 같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멕시코의 역사가 말해주듯, 박물관에서 본 유물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그림들이 대체로 암울하고 어두운 느낌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숙소 근처에 있는 디에고 리베라 박물관(Museo Mural Diego Rivera)에서 본 벽화도 그랬고, 시내를 다니면서 보았던 여러 화가들의 벽화와 그림에서도 해골, 절규하는 듯한 얼굴들, 그리고 짙고 어두운 색감들을 사용한 경우가 많아, 나도 불편한 느낌을 갖고 있었었다. “난 밝은 그림이 좋아!”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처럼 말이다! 나와 아내의 그림에 대한 편견이 이곳 멕시코에서는 유난히 크게 나타난다. 어두운 그림은 싫다! 여기는 또 다른 세상... 멕시코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은 도시 탁스코(Taxco)를 찾았다. 멕시코시티에서 180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탁스코에 이르자 산 전체에 하얀색 집들로 덮여있다. 어떻게 이런 가파른 곳에 이렇게 많은 집들이 지어졌을까 신기하기만 했다. 뜨거운 햇살로 흰색 집이 멀리서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탁스코 정상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 ⓒ 서진완 시내라기엔 길들이 좁아서 차량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였고, 버스가 지나가려면 잠시 다른 차들은 멈춰서야할 정도였다. “이런 가파르고 좁은 곳에 버스정류장이 어디 있을까?” 버스가 정차했다. 더 이상 버스가 갈 곳은 없다. 이곳에서 어떻게 버스가 돌아서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공간이 너무 좁다. 산 위로 그리고 산 아래로 모든 건물은 하얀색에다, 거리를 달리는 택시도 모두 하얀색 폭스바겐 딱정벌레다.   일명 딱정벌레 택시. 이 좁은 차에 우리 가족이 모두 올라탔다. ⓒ 서진완   작은아이는 이곳에 오면 딱정벌레 택시를 한번 타보고 싶다고 했다. 아이의 바람대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예수상까지는 택시를 타고 가기로 하고 차를 잡았다. 차문을 열었더니 운전석 옆 좌석이 없다. 좁은 뒷좌석에 아내와 아이들이 타고, 택시기사는 보조의자를 펼치더니 타라고 했다. 아이들도 웃고 아내도 웃었다. 택시기사는 너무나 당연하듯이 앉을 수 있다면서 손으로 바깥문을 꼭 붙들고 가면 된다고 했다. 택시는 가파른 언덕길을 힘차게 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낡은 차로 이런 가파른 길을 오르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엔진소리가 숨에 닿을 듯 하면서 길을 올랐다. 창밖에 잡은 나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와~아!” 정상에 도착하고 내려다보는 순간, 산 아래로 펼쳐진 탁스코의 하얀색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산 아래로 펼쳐진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여기까지 버스를 타고 온 것이다. 성당 주변은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좁은 거리에는 난전이 들어서서 은으로 만든 각종 액세서리를 파는 사람들로 붐볐다. 차들이 지나칠 때면 도로 옆으로 바짝 붙여야할 만큼 도로는 좁았지만, 옛 모습 그대로 돌로 만들어진 거리를 걷기에 더 없이 운치가 있다.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길 주변에는 예쁜 집들과 가게들이 이어졌다. 현재의 이 시가지 전체가 식민지시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멕시코정부가 이 지역을 문화재로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좁은 골목길을 걸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이곳은 사진을 찍기에 정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색 작은 돌로 아스팔트 포장을 대신해서 만든 길들은 탁스코 만의 독특한 모습을 연출하고, 그 위에 다양한 흰색 건물들과 흰색 딱정벌레 택시가 멋지게 어울려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탁스코의 좁은 골목 ⓒ 서진완 해가 지기 직전에 버스에 올라서 탁스코를 떠났다. 멕시코시티에 도착하자 해는 완전히 지고 어둠이 깊어져서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걸었다. 서로가 너나 할 것 없이 바짝 붙어 섰다. 지하철 입구에는 경찰들이 서 있어서 한편으로 안심이 되었지만, 그만큼 이곳이 위험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기에 지하철역을 나와 종종 걸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벌써 숙소 주변 가게들은 문을 닫았다. 숙소의 불빛을 확인했다. 가족이 함께 할 때는 무조건 안전이 우선이다! 앗! 이건 또 뭐야? 어찌 이런 일이... 우리 집에 머무르고 있는 제자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아파트관리비가 미납 처리되었다고 했다. 그럴 리가! 월급이 들어오는 계좌에 자동이체를 시켜두었기에 그럴 리 없단 생각만 들었다. 인터넷으로 계좌를 확인했다. 이-럴-수-가! 순간 몸이 굳어졌다. 인터넷뱅킹 사고다. 누군가 7월 21일 새벽에 내 이름으로 공인인증서를 발급받고 그 시간 이후 계좌 내에 있는 모든 예금과 마이너스통장 한도액까지 인출해 가버렸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한 번도 인터넷뱅킹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보안카드를 분실한 적도 없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 게다가 아내가 사용해왔던 컴퓨터는 6월 마이애미에 들어갈 때 고장이 나서 사용을 하지 못했었고, 플로리다에서 제자부부를 만났을 때 한국으로 이미 보냈지 않았는가! 한국시간으로 자정이 다 되어갈 즈음에 국제전화로 은행거래를 정지시키고, 인터넷뱅킹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이제부터는 무엇을 어떻게 하지? 이미 사건은 벌어졌으며,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더 중요했다. 여행경비를 넣어둔 다른 은행계좌도 확인했다. 그곳은 이상이 없었지만, 그래도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았다면 타 은행에 등록해서 또 다른 범죄도 가능할 것 같아서 그 계좌에 대한 인터넷뱅킹도 불가능하도록 보안카드 분실신고를 해두었다. 한국시간으로 자정이 넘었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지인에게 연락해서 몇 가지 추가적으로 부탁을 했다. 그리고 이런 일을 잘 알 것 같은 친구에게 메모를 남겼다. 한국과 이곳 멕시코와의 시차가 14시간이 되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오후부터, 한국은 오전 업무시간이 시작되면서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전화에 매달렸다. 은행거래가 중지되면서 본인 확인 없이 거래내역을 알려줄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듯 했다. 친구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다행히 오랫동안 거래했던 지점의 팀장과 직접 통화를 해서 급한 상황을 처리했다. 사고신고를 하고 경찰에도 신고를 했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자동이체를 신청해둔 거래 모두 문제가 되었고, 특히 카드대금이 결제되지 않아 연체 위기에 있다는 연락도 받았다. 추가적인 문제가 연쇄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한국에서 직접 나를 위해 뛰고 있는 제자에게 미안하고 또 고맙기도 했다. 이곳에서 한국의 상황을 페이스북으로 보고 받고, 알아보게 부탁하고, 그리고 또 전화했다. 무엇보다도 공증위임장을 만드는 것이 급했다. 다행히 다음 날 미국 댈러스(Dallas)로 들어가기 때문에 도착하는 즉시 바로 한국영사관으로 가야했다. 한국에 있는 대리인에게 나의 법적 권한을 위임해서 나를 대신해서 일을 처리할 수 있게 해줘야 했다. 이곳 시간으로 새벽 2시에 제자가 페이스북에 문자를 남겼다. 관할 경찰서에 신고를 직접 하러 간다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페이스북에 남겨진 문자를 보고 다시 한국에 전화를 했다.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해주고, 아이들을 깨웠다. 밤을 꼬박 새운 셈이다. 아침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배낭을 정리했다. 지하철역까지 작은아이가 앞장을 섰다. 아침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 대신 물건을 파는 잡상인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지하철 내는 조용했다. 멕시코시티의 공항역은 에스컬레이터가 없어서 무거운 짐을 지고 계단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게다가 공항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카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국제공항이냐?" 큰아이는 투덜거리며 이러저리 찾더니 앞서 걸었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제가 찾아 볼게요” 아이들은 카드분실에 이어 이번 인터넷뱅킹 사고로 인해 힘들어하는 우리 부부의 심기를 가능한 살피는 눈치다. 티켓팅을 하고 배낭을 부쳤다. 그리고 탑승구역으로 들어왔다. 이제 멕시코를 떠난다. 이런 사고만 없었더라면 좋은 기억만을 간직하고 떠날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빨리 이곳을 떠났으면 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래도, 여행을 즐기자! 댈러스를 통해 미국에 다시 들어왔다. 큰아이는 렌트카에 배낭을 익숙하게 정리했고 공항을 나섰다. 아내가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Mrs. Raymond를 만나기로 했다. 특이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녀와 남편 모두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는데, 실제 나이보다는 훨씬 젊게 사는 듯 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멕시코에서 일어난 사고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을 해주며, 당신들 집에서 머무르라고 했다. 결국 비용을 지불하고 예약해둔 숙소는 포기했다. 급한 일부터 먼저... 아침 일찍 한국영사관이 있는 휴스턴(Houston)으로 가려고 했었는데, 최근 댈러스에도 영사업무를 도와주는 곳이 생겼다고 했다. 저녁 늦게 한국의 사이버수사대 수사관과 다시 통화를 하고, 위임장 건을 설명해주었다. 다음날 업무가 시작하는 시간에 맞추어 영사관에 도착했다. 댈러스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서 이곳에도 영사관 출장소가 생겼다고 했다. 나로서는 정말 반가운 일이었다. 주중이고 오전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이 없어서 바로 신청을 했고 제자를 법정대리인으로 하는 위임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체국에 들러 가장 빠른 국제우편으로 한국에 보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부는 스캔해서 이메일로 보내고, 또 다른 한 부는 팩스로 거래은행에 보냈다. “커피 한잔하고 숨부터 돌려요!” 맞는 말이다. 급하게 처리해야할 일들을 끝냈다. 이제부터는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래 다시 여행을 즐기자!” 아이들과 함께 한인 타운에 가서 한국음식을 먹고 멕시코에서 고장 난 큰아이 안경도 고쳤다. Raymond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한인 타운에 먼저 들러 아내는 앞으로 4주 동안 서부여행에 필요한 물자를 보충했다. 떡을 먹고 싶어 하는 작은아이를 위해 인절미와 가래떡도 샀다. 배낭정리는 역시 큰아이의 몫이다. 우린 그렇게 댈러스를 떠났다. 늑대와 춤을 배드랜드 국립공원 ⓒ 서진완 날씨가 더울 줄은 알았지만 정말 너무 덥다. 다만 습기가 많지 않기 때문에 건식사우나에 있는 느낌이다. 아침인데도 이 정도라면 한 낮에는 과연 어떨까 싶다. 그래도 차 안에서 에어컨을 켜고 있으면 쾌적하게 바깥 경치를 볼 수 있어서 좋다. 텍사스 주와 오클라호마 주를 지나 북으로 캔자스 주까지 가는 길은 아무것도 볼 것 없는 평지다. 그래도 아이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지겨운 줄 모르고 갈 수 있다. 아이들은 멕시코에서 있었던 황당한 일을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았다. 어느덧 작은아이는 잠이 들었고, 큰아이도 책을 보다 잠이 들었다. 바깥 풍경을 보면서 조용한 시간을 가지는 것은 갖가지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지난 며칠 동안 정신없이 지냈던 일들을 정리 하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생각했다. 네브래스카 주를 지나 사우스다코타(South Dakota)로 들어서자 주변 경치가 달라졌다. 차들도 집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도 가도 끝없는 들판이 이어졌다. 아내가 운전대를 잡아주어 나도 잠시 눈을 감았다.   운전중에 마주친 버팔로때 ⓒ 서진완 창밖으로 펼쳐진 블랙힐스(Black Hills) 일대는 바로 영화 ‘늑대와 춤을(Dance with Wolves)’을 촬영한 곳이다. John Barry가 작곡한 영화의 주제음악이 떠올랐다. 문명과 자연이 어떻게 만나 동화하고 서로를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자연은 문명의 파괴적인 힘 앞에서 힘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그런 모습을 보여준 이 영화를 난 가장 좋아한다. 이어지는 배드랜드(Badlands)국립공원 입구에서 노루 떼를 만났다. 이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 넓은 땅에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들만의 자유를 만끽하는 듯 했다. 배드랜드에 들어서자 황량하고 절망스러운 느낌이 든다. 광활한 대지에 메마른 흙산이 기묘한 모양을 하고 늘어서 있고, 저 멀리 푸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잠시 잠을 청한 사이에 멀리서 검은색 무리가 보였다. 순간 버팔로라는 생각이 들어 천천히 차를 몰았다가, 바로 앞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을 깨웠다. 언덕 전체를 버팔로가 뒤 덮고 있다. 수(Sioux)족 인디언들이 버팔로 무리를 쫓는 영화 속 장면이 연상되었다. 버팔로가 도로 옆에 있는 연못에 물을 먹으러 왔다. 중간 중간 새끼 버팔로까지 보였다. 아이들과 함께 연못 근처까지 카메라를 들고 내려갔다. 이 넓은 들판에 생명체 하나 보이지 않았는데, 언덕 전체를 덮고 있는 버팔로 떼는 경이롭다. 우리가 차를 세우는 바람에 앞뒤로 오던 차들도 멈춰 섰다. 그리고 모두 내렸다. 들판에 바람이 분다. 이 땅의 주인이었던 수족 인디언들이 이곳 어디에선가 고스트 댄스(Ghost Dance)를 추는 것 같다.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자 잡초들이 이러 저리 흩날렸다. 이제 들판에는 더 이상 인디언도 버팔로도 보이지 않았다. 래피드시티(Rapid City)를 중심으로 펼쳐진 블랙힐스 일대는 미국의 인디언 역사를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큰 바위의 얼굴과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로 대표되는 이곳에서 현재의 미국과 과거의 미국을 동시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큰바위 얼굴-워싱턴, 제퍼슨, 링컨, 루즈벨트의 얼굴이 세겨져 있다. ⓒ 서진완 아침 일찍 가벼운 차림으로 숙소를 나섰다. 러시모어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들어서자 눈앞에 4명의 미국대통령 얼굴이 큰 바위에 새겨져 있다. 얼굴 하나의 크기만 해도 거의 20m나 되는 정도의 크기라고 하지만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눈과 코, 그리고 얼굴 전체의 모습이 실제 모습 그대로 정교했다. 큰 바위의 얼굴 아래까지 내려가서 위로 쳐다보기도 했다.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George Washington),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제퍼슨(Thomas Jefferson),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흑인 노예제를 폐지했던 링컨(Abraham Lincoln), 파나마 운하 구축 등으로 미국의 지위를 세계적으로 올려놓은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의 초상이 산 정상에 있는 거대한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인디언들이 신성하다고 믿고 있는 바로 이 블랙힐스 일대에 왜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새겼을까?” 이들 대통령들은 과거 서부개척시대에 인디언들을 현상금을 붙여서 토벌했던 바로 그 시대의 역사적 인물들인데 지금 이곳에서 이렇게 이 땅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 모습은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러시모아 곳곳에 미국의 정신에 대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많지만, 아이들에게 미국이 숨겨온 인디언의 역사에 대해서도 말해줄 필요가 있었다. 4-5백만 명에 달했다는 미국 인디언들이 3-40만 명으로 줄어든 그 비극의 역사를 말이다. 큰 바위의 얼굴(Mount Rushmore)를 본 인디언들의 요청에 따라 시작된 크레이지호스 기념관(Crazy Horse Memorial)은 이곳 블랙힐스에서 살았던 수족의 추장 크레이지호스가 말을 타고 호령을 하는 듯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현재는 얼굴 부분이 완성되고, 전체 윤곽만을 가늠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언젠가 원래 의도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때는 역사적인 조형물이 될 것이다. 한 개인과 그 가족이 정부의 도움 없이 입장료 수입으로 이 사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인디언 수족들이 마음껏 뛰어 다녀야 할 그들의 땅이었기 때문에 이 기념비적인 조형물이 완성되는 날에는 인디언들의 자존심이 조금이나마 회복될 수 있을 것 같다. 윈드케이브(Wind Cave)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는 다시 버팔로를 만났다. 블랙힐스 일대를 지나는 4일내내 우리는 자연과 인디언들의 소리를 엿들었다. <정리=이미루>
김인자 작가의 할머니 꼬시기
"다른 사람들 한테는 비밀이에요, ..

(114) 병실의 할머니

요로결석인 아이가 쇄석 시술을 받고도 응급실에 두 번이나 더 실려갔다. 응급실에서 마약진통제를 두 대 맞았는데도 배는 계속 아프고 심한 어지럼증에 구토가 일어 결국 입원을 했다. 입원수속을 하는데 원무과 직원이 간호간병통합서비스에 대해 길게 설명을 한다. "병실료외에 간병비를 추가로 내면 보호자가 간병을 하지 않아도 된다. 메르스이후 감염우려때문에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생겼다.   5인실인 경우 하루에 병실료외에 간호사 간병비로 외과는 2만 원만 더 내면 간호사가 간병까지 해준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무조건 따라야하는 의무사항이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간호자가 간병을 하지 않아도 된다. "감염 우려 때문에 정부시책이 그렇게 바뀌었다."라는 원무과 직원의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대한 긴 설명을 듣고 7층 입원실로 올라갔다. 간호사실 앞에 '보호자없는 병동'이란 표식이 보인다. 5인실 침대에 보호자용 보조 침대가 세 개다. 환자는 다섯 명인데 보조침대가 세 개면 나머지 두개는? 대부분의 경우 창가쪽 침대는 입원일수가 제일 오래된 고참환자가 차지한다. 그래서 그런가 창가쪽 고참환자의 침대밑에는 보조침대도 있고 그 위에 고참 환자의 겉옷이 놓여져있다. 한 눈에 보기에도 고참인 환자아줌마가 찜해놓은 모양새다. 맞은편 창쪽에는 83세 할머니가 누워계셨는데 보조침대에는 딸이랑 사위가 앉아있었다. 그 옆에는 역시 할머니 환자가 누워계셨는데 할머니 밑에도 보조침대가 있었다. 보조침대를 가지고 있는 저 세 분이 먼저 입원하신 분들인가 보다. 우리 아이는 두 할머니들 침대가 있는 맞은편 가운데 자리. 창쪽에는 제일 고참환자인 아주머니가 계셨고 문쪽으로는 할머니가 누워계셨다. 아이를 환자복으로 갈아입히고 때마침 저녁식사가 나오는 시간이라 밥이나 먹이고 입원물품을 챙겨와야지 생각하고 서있는데 간호사가 앉아있으라며 건너편 할머니침대밑에 있는 보조침대를 가져다 주었다. 감사한 마음에 앉아있다가 아이가 저녁 식사시간에 입원을 해서인지 밥이 안 나와 신청을 해서 늦은 밥을 먹였다. 약을 먹이고 아이가 잠이 들었기에 좀 앉아있다가 가야지하고 있는데 건너편 문쪽 할머니보호자가 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가 앉아있던 보조침대를 확 끌어간다. 앉아있던 나는 너무 당황해서 벌떡 일어났다. 그랬더니 옆 침대 고참 아줌마가 그러신다. 할머니가 내 침대 왜 가져갔냐고 그러셨단다. 말도 없이...   아고, 할머니가 노하셨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본 간호사가 "보조침대는 같이 쓰시는거예요. 간호간병통합이 되면서 보조침대가 내꺼 니꺼가 없어요."하니 할머니는 화가 나셔서 "내꺼를 왜 맘대로가져가!" 하신다. "아이고, 우리 할머니 많이 노하셨구나아. 죄송해요, 할머니." 하고 말씀드리니 할머니께서 화가 풀리지 않은 얼굴로 홱 돌아누우신다. 이런 어쩌나 우리 할머니 화가 많이 나셨네 노여움을 어떻게 풀어드리지 생각하다가 아이물품을 챙겨오면서 천혜향 두 박스를사! 가지고 왔다.   병실에 들어오니 할머니들이 연속극을 보고 계셨다. 고참아주머니는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고. "이거 한 개씩 드세요."하며 할머니들과 고참아줌마에게 천혜향을 한 개씩 나눠드렸다. 그랬더니 고참아줌마가 "입원턱이야?"하신다. "하하 네 우리 아이 잘 부탁드립니다."하고 인사를 드리고 보조침대할머니께로 다가가 천혜향 껍질을 까드리며 입에 하나 넣어 드렸다.   " 할머니 아까 할머니 침대 말도 안하고 맘대로 가져가서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절대로 안그럴께요, 할머니 그러니 용서해주세요."했더니 할머니가 "어, 절대로 그러지마. 내꺼야." 하신다. "네, 할머니 절대로 안 그럴께요." "근데 이거 내 침대 가져가서 주는거야?" " 네? 아 네~ 그럼요 할머니." "그럼 다른 사람들은 왜 줘? 나만 줘야지." 하신다. 아고 귀여우신 할머니. 나는 얼른 천혜향 한 개를 슬쩍 할머니손에 쥐어드렸다. "그래서 제가요 할머니한테만 드리려고 요렇게 하나 더 준비했어요. 다른 사람들 한테는 비밀이에요, 할머니~~" 하며 귀에다 속닥속닥 말씀드리니 할머니가 비밀? 하시더니 천혜향을 환자복 속에 얼른 숨키신다. 아이고 귀여우신 할무니, 할머니 이제 화 다 풀리셨다아 ~~~~    
양진채 소설가의 <소설로 읽는 인천>
북성포구로 가는 길

(4) 패루 위의 고래 / 양진채

▲ 유광식_북성포구(선상 파시)_2011 어쩔 수 없다. 며칠째 연재를 쓰기 위해 작품을 고르고 고민을 했지만 결국 내 소설 <패루 위의 고래>를 읽어보자고 내놓는다. 민망하기도 하고, 반칙인 줄도 아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에 기대어 꼭 하고 싶은 얘기, 이 얘기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은 얘기가 있다. 인천과 관련지어 요즘 온통 내 머릿속을 채우는 한 곳이 있기 때문이다. 북성포구가 그곳이다. 이번 경우에는 작품이 먼저가 아니라 지명인 북성포구가 이 소설을 끌어왔다고 해야 하겠다. 북성포구 얘기를 하고 싶은데 아무리 찾아봐도 적당한 소설을 찾기 어려웠다고 변명을 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북성포구는 지금 개발 논의로 한창 뜨겁다. 해양수산부가 북성포구를 7만 평 가량 매립하겠다는 안을 내놓으면서부터다. 북성포구 주변의 악취, 오폐수 등 환경개선이 절실하다는 주민 청원을 받아들여 매립 사업을 발표했다. 문제는 북성포구를 매립한다고 해서 주민의 숙원인 악취나 오폐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결국 주민의 숙원은 해결하지 못한 채 개발을 앞세워 우선 매립하고 보자는 계획이니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성포구는 개항의 문물이 드나들던 주변이었다. 현덕의 소설 <남생이> 첫 줄에 나오는 ‘호두형으로 조그만 항구 한쪽 끝을 향해 머리를 들고 앉은’에 나오는 호두형 포구가 있었던 곳이 바로 북성포구 주변이다. 그동안 우리 인천은 ‘매립의 역사’를 이어왔다. 갯벌 위에 빌딩과 아파트를 지어 인구 300만 경축포를 쏘아 올렸다. 그러는 사이, 항구 도시 인천은 점점 사라져 도심 근처에서 바닷물을 만져볼 수 있는 곳이 남지 않게 되었다. 인천은 작년부터 올해까지 역점 사업으로 인천 가지 재창조를 위해 인천의 역사 및 문화유산 분야, 인천의 자연환경 분야 등 인천만의 고유한 가치를 찾겠다고 하고 있지만 인천시 관계자부터도 북성포구의 역사는 물론, 북성포구가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실정이다. 나 역시 인천에 살고 있으면서 북성포구를 알게 된 것이 근 10년 안쪽이다. 인천에 이런 곳이 숨어 있었다니 경이로운 심정이었다. 그 경이로움은 포구를 찾아들어가는 길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패루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인천)역 뒷길로 접어들었다. 녹슨 철길이 여러 갈래로 길게 엉켜 있었다. 억센 풀들이 그악스럽게 침목 사이로 뿌리를 뻗었다. 그 옆 고가 위로 드물게 차가 달렸다. 고가 아래로는 곡물이나 사료 포대를 실은 대형 화물트럭들이 수십 대 서 있었다. 녹색 방수 천막으로 짐을 덮어 놓은 차량 옆에 고딕체로 쓰인 ‘곡물수송’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비둘기들이 옥수수 알갱이가 떨어진 포도에 부리를 박았다. 비닐 천막 끝을 쪼기도 했다. 어디선가 구워구워 비둘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화물 트럭들은 길 가득 정차되어 있었다. 왼쪽으로는 대부분 사료 공장들이었다. 밀가루 공장도 보였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날렸다. 공장 입구에는 하나같이 ‘방문객 경비실 경유’라는 팻말이 달려 있었다. (중략) 길이 좁아지고 낮은 슬레이트 집이 몇 채 보였다. 유리문의 색 바랜 선팅지에는 바지락칼국수니, 주꾸미 볶음이니 하는 메뉴가 간판 대신 붙어 있었다. 어두운 가게 한 귀퉁이에 포개 놓인 둥근 플라스틱 의자에는 먼지가 소복했다. 골목 입구, 게와 새우 조개 등을 함지박에 담아 파는 곳에 몇 사람이 기웃거렸다. 바람이 불었고 바다 냄새가 났다. 그래도 포구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 가게를 왼쪽에 끼고 울타리와 높은 담장이 쳐진 골목 안으로 하나둘 사라졌다. 그가 성큼 골목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왼쪽은 공장 시설물을 막기 위한 마름모꼴 철망이, 오른쪽엔 회백색 담이 있었다. 둘이 걷기에도 좁은 골목이라 그가 앞서 걸었다. 두 차례 꺾어 들자 막다른 골목 끝에 난데없이 포구가 드러났다. 포구가 있긴 있었다. 작은 포구였다. 생선을 파는 열 평 남짓한 횟집이 여남은 개 늘어선 왼편과 달리 오른편은 바로 바다 곁이었다. 포구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작은 곳이었다. 물론 지금은 조금 더 쉽게 대한제분 공장 담벽을 따라 찾아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북성포구를 갈 때는 이왕이면 물때를 미리 확인하고 물이 가득 차는 만조시간에서 두세 시간 앞당겨 가면 북성포구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배가 들어온다! 누군가 외쳤다. 배가 들어오다니. 이제 겨우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어디로 배가 들어온단 말이지? 그런데 놀랍게도 왼편 끝에서 목선 앞머리가 보였다. 배는 흘러드는 물길을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떠 있기도 어려울 것 같아 보이는 바닷물 길을 따라 배는 천천히 헤엄치듯 포구를 향해 다가왔다. 몇 척의 배가 뒤따라 들어왔다. 배를 따라 한 떼의 갈매기들이 포구 주변을 어지럽게 맴돌았다. 배가 석축 앞으로 다가와 보폭 넓이의 널빤지를 석축에 갔다 댔다. 따로 배를 대는 시설이 있는 게 아니라 물이 끝나는 석축 앞에 배를 대고, 널빤지로 배와 석축 사이를 이었다. 사람들이 널빤지를 밟고 걸어가 배에 내려섰다. 물이 가득 찬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만 보았던 나는 개흙 사이의 좁은 골을 따라 배가 들어오는 광경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배가 들어오는 작은 물길을 골씨라고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중략) 포구로 들어온 배는 일곱 척이었다. 꽃게, 갑오징어, 병어, 젓갈용 멸치 등을 갑판 한가운데 펼쳐놓고 그 자리에서 팔았다. 그를 따라 흔들리는 널빤지를 밟고 올라섰다. 난데없이 나타난 포구이기는 했지만 골씨를 따라 배가 들어오는 광경, 싱싱한 생물을 배에서 바로 흥정해서 사는 모습 등을 구경하는 동안 못마땅한 마음이 사라졌다. 싱싱한 갑오징어나 꽃게, 낙지 등은 산 채로 함지박 안에 담겨 있었다. 배가 나란히 붙어 있어 건너다니며 구경 할 수도 있었다. 값도 그날 들어온 배와 사러 온 사람들의 수에 따라 결정되고, 배가 막 들어왔을 때와 시간이 지난 후의 값이 또 다르다고 했다. 이 배 저 배를 건너다니며 물건을 보고 값을 묻던 사람들이 하나둘 검은 비닐봉지에 무언가를 사들고 뱃전을 나섰다. 병어를 잔뜩 사던 아주머니가 50년 가까이 이 도시에 살았지만 여긴 처음 와본다고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포구이긴 한 모양이었다. 문득 똥바다요? 하던 아저씨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 동네의 바다가 똥바다로 불렸다는 걸 아는 사람 정도는 돼야 이 포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상 파시라고 배 위에서 갓 잡아온 싱싱한 해산물을 살 수 있는 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 선상파시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개인적으로는 북성포구의 냄새와 오폐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화시설을 만들고, 이 선상 파시를 적극적으로 살려내고 홍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북성포구를 살리고 개발하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북성포구를 발견하고 그 뒤로 여러 번 북성포구를 찾았다. 일부러 물때를 확인하고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생새우를, 꽃게를, 병어를 샀다. 운 좋게 사진작가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북성포구의 노을을 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 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북성포구를 알고 있었고 찾고 있었다. 포구가 주는 떠남과 돌아옴의 여정, 비릿한 냄새, 염분이 묻어 있는 갯바람 등을 그 쓸쓸함으로 많은 사람을 달래주고 위로해주었다. 소설 속에서는 한때 치열하게 이 사회의 변혁을 꿈꿨으나 지금은 간 이식을 받고, 이 포구를 찾아든 선배와 그를 따라온 내가 있다. 그들에게 북성포구의 골씨를 따라 들어온 배, 그 배에서 난간에 옮겨진 고래는 청춘과 함께 그 시대가 지나갔으나, 그래도 누군가의 가슴에는 아직 살아 있는 그 무엇이지 않을까. 나는 배가 들어왔던 골씨, 아직 물이 빠지지 않아 그 길을 드러내지 않은 물길을 바라보았다. 석축 난간 위 안개에 둘러 싸여 있는 고래가 그물에 걸려 죽은 뒤 배에 실린 채 이 작은 골씨를 따라 들어 온 게 아니라 고래가 골씨를 따라 헤엄쳐 이름 없는 포구를 찾아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준설선이 매워지는 골씨의 개흙을 퍼내고 그 길을 따라 고래가 들어온다. 고래도 이 포구로 들어오는 골목 어귀쯤에서 ‘똥바다’ 암호를 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래가 그물에 걸려 북성포구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니라, 골씨를 따라 헤엄쳐 온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와 나는 얽힌 선로와 사료나 곡물을 실은 트럭 사이를 걸어 역으로 왔다. 그러고 보니 포구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 역 근처에는 안개가 끼어 있지 않았다. 그의 머리에 하얗게 안개비가 얹혀 있었다. 포구를 다녀온 징표 같아 보였다. 물기를 털어주었다. 내 머리도 쓸었다.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었다. (중략) 나는 우리가 찾아들던 골목이 어디쯤인지 가늠해보았다. 그 너머의 작은 포구와 그 포구 난간에서 안개비를 맞고 있을 고래도 떠올렸다. 바닷물이 들기 시작하면 골씨를 따라 힘겹게 헤엄쳐 오는 고래가 보일 것도 같았다. 울적한 심사가 될 때, 붉은 노을보다 더 짙은 울음을 삼키고 싶을 때, 지치고 힘들어 어딘가에 말없이 기대고 싶을 때, 북성포구는 쓸쓸하고 황량한 모습을 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골씨를 따라 배가 들어오듯 우리 마음속에 삶의 비의(悲意)를 되새기게 한다. 천영기ⓒ  
꽃차마실
콜록콜록 기침감기엔 진귤차

(2) 진귤차

  눈이 하얗게 내렸습니다. 밤새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일찍 눈을 떴는데 눈이였군요. 얼른 달려나가 눈과 마주했지만 그것도 잠시 곧이어 나갈 남편과 아이들 걱정에 맘이 무거워지는데 곧이어 들리는소리. "콜록콜록"   보통귤의 향기와는 비교할 수 없고, 감귤보다는 작고 탱자보다는 약간 큰 진귤 이야기를 해드리려 합니다. 정조임금이 제주 애월에 내려가셨다 더위에 지쳐쓰러지셨을때, 이 토종귤 인진귤(산물)을 드시고 완쾌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효능을 예전부터 잘 알고있으신 제주 분들은 게무로사라는 진귤 발효음료를 가정마다 상비약으로 만드신답니다. 제주특별자치도기념물 250년된 제주도련동진귤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답니다.   비타민c와 구연산이 풍부하고 피부미용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며,  진피의 흰 껍질은 비와 위를 도와 속을 편하게 해주며, 진피에 백출을 더하면 비와 위에 기운상승. 진피에 감초를 더하면 폐에 좋으며, 진피에 도라지를 더하면 오한에 좋으며, 진피에 생강 모과를 더하면 코가 맹맹하고 목이 아플때 좋습니다.   진피차를 3년 이상 묵히면 약성이 최고입니다. 고지혈증 지방간에 좋으며 기침감기에 탁월한  진피차 만드시러 마실로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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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국제도시는 '인천 신도시'로 변모 중이다"

인천문화재단 '확장도시 인천' 출판기념회 열려

20일 오후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열린 '확장도시 인천' 출판기념회 ©배영수 인천문화재단은 인구 300만을 돌파한 인천의 모습을 통찰하기 위해서, 전문가들과의 다각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확장도시 인천’이라는 책으로 담아냈다. 20일 오후 2시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열린 ‘확장도시 인천’ 출판기념회에선 집필에 참여한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오랜 리서치 작업과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 본 인천을 조망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확장도시 인천’은 문화연구자와 도시계획연구자, 부동산 연구자, 건축가, 디자이너, 데이터 분석가 등으로 구성된 필진과 리서치 팀이 진행한 리서치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이번 책은 2015년 발간했던 비매판의 증보확장판으로 시중판매한다.     신수현 데이터 분석가와 함께 공동발표를 맡은 김윤환 박사(서울대 환경대학원 도시 및 지역계획학 박사과정 수료)는 “인천은 인구증가율이 시의 단위로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70년 이래로 항상 서울의 증가율을 웃돌았다”며, “300만 시대를 돌파한 현재까지 인구수가 증가일로에 있어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인천은 70년대 부평과 주안에 국가수출공단 조성 이후, 몰려드는 인구 증가를 감당하기 위한 주택단지를 조성. 제물포, 주안, 계산 등의 택지가 개발됐고 이것이 인천의 첫 번째 도시 확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평과 연수, 송도의 도시 개발은 인천의 주거 문화와 중산층 형성 과정에서 명확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부평은 대형 아파트 매매 과정에서의 재산 증식을 통한 중산층 형성이 가능했고, 연수동은 단순히 재산형성뿐 아니라 문화적 자산을 갖추고 자생적인 중산층을 형성했으며, 송도는 가장 현대적인 도시인으로 변모하는 시작점을 형성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는 "인천에서 형성된 중산층은 서울 중산층 형성의 알고리즘을 그대로 반복해 독립적인 중심도시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서울의 베드타운이자 교외화 된 공업단지로 전락한 부분은 인천의 지역적 한계”라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송도국제도시를 비롯한 청라, 영종 신도시와 관련해선 “외국계 기업과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국제도시를 만들겠다고 내세웠지만, 외자 유치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국제도시가 아닌 ‘인천신도시’로 변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국제업무단지를 조성하겠다며 구획한 토지들은 대부분 수익성이 높은 주상복합용지로 변경되었고, 100층이 넘는 빌딩이 들어올 땅에는 코스트코가 들어서는 등 인천의 구조 자체를 바꾸려던 당초 기대와는 멀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천경제청이 강조하던 비즈니스, 금융, 첨단산업과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은 서울에 다 내준 상태”라며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만 증가중이고 임금수준은 서울과 점점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발언중인 김윤환 박사 ©배영수 이어진 발표에는 전현우 철도동호인이 나서 '경인선 지하화' 논란과 관련해 의견을 밝혔다.   전 동호인은 “경인선 지하화는 매 선거 때마다 늘 등장하는 공약인데, 막상 이를 비판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며 “이 사업의 목적과 맹점에 대해 상세히 짚어볼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인선 지하화는 구도심 주민들이 오랫동안 요구하고 있는 사업으로, 제물포나 동인천 같은 노후된 지역에서 주장하는 ‘도시재생’의 측면과 남북·동서간 철도라는 물리적 장벽으로 동네가 단절됐다는 ‘지역 단절’이 주된 이유이다.   전 동호인은 경인선 지하화 사업은 효과성 측면에서든 효율성 측면에서든 결코 지지받을 수 없는 사업이라며 “경인선 지하화 사업비는 사업 시작년도 기준가격으로 약 4조억 원이 들어가는데, 비용편익비는 3조6천억 원으로 아주 경제성이 없는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지하화 지지자들은 여러 외국사례를 인용하고 있는데, 실제 경인선과는 비견할 사례가 전무하다”며, “경인선처럼 하루에 수백편이 운행 중인 선구를 20km 이상 지하화한 사례는 없고, 지하화를 추진했더라도 대부분은 극히 부분적으로만 추진했다”고 말했다.   또한, 도시재생 및 지역단절 해소와 관련해선 “사업 효과성이 확실하게 드러난 유사한 사례는 거의 없으며, 경인선 본선 구간은 토지 형태상 도로로 전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 새로운 간선도로 주변에서 지역 단절이 과연 얼마나 약해질지 분명하지 않다”고 의문을 표했다.   전 동호인은 “이 사업의 최악의 결말은 사업비 지출과 부동산 가치 상승을 통해 건설업자와 토지 소유주의 배만 불리는 것”이라며, “경인선 지하화가 구도심 재생의 희망이라는 말은 단순한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인천, 노동자들의 도시'라는 주제로 발표한 박해천 동양대 조교수는 1968년 경인고속도로 개통부터 86년 5.3인천항쟁까지, 인천의 노동자 이주 역사와 유신시대의 산업화 과정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증보확장판 '확장도시 인천' 시중가 1만 7,000원 ©배영수    

‘국정교과서’ 몽니 부리는 교육부, 이유는?

일선교육청에 연구학교 지정공문 전달... 인천 포함 13개 교육청 ‘반대’

교육부 청사. (사진 출처 = KBS 뉴스 보도화면)   교육부가 최근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여론 의식’ 차원에서 국정화교과서 강행을 하지 않는 대신 국정화교과서를 도입하겠다는 학교들을 ‘연구학교’로 지정하겠다는 방침에 인천시교육청이 ‘소극적 반대’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19일과 20일 시교육청 및 교육부 등의 말을 종합해 보면, 교육부가 올해 국정화교과서 도입을 찬성하는 일선 학교들을 연구학교로 지정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지난 10일 경 전국 시·도교육청에 연구학교 운영 계획 및 공모 요청에 관한 공문을 보냈다. 인천시교육청도 교육부로부터 이러한 공문을 받았다. 교육부는 현재 제작이 돼 있는 국정화교과서에 대해 일선 시·도교육청으로 하여금 연구학교 수요를 조사토록 하고, 다음 달 15일까지는 지정절차를 완료하겠다는 내부 계획을 갖고 있다.   이청연 현 시교육감이 국정화교과서를 반대하는 진보교육감인 만큼 이를 찬성할 리는 없다. 때문에 시교육청은 시교육청의 공문을 내려 받은 지 열흘이 다 가도록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 이 교육감의 의지를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교육감은 “교육부의 연구학교 지정에 반대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시교육청은 최근 박윤국 교육국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연구학교 지정위원회’를 개최해 인천 관내에서 국정화교과서 사용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방침 아래 교육부의 공문을 따르지는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열흘 가까이 공문 전달을 하지 않는 것도 해당 위원회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다만 시교육청은 일단 ‘소극적 반대’의 입장을 취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공문 전달을 하지 않는 것으로 반대 입장은 분명히 하지만, 교육부에 직접 국정화교과서 도입의 반대를 공식적으로 전달하지는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시교육청의 국정화교과서 반대 입장을 굳이 ‘정치적’으로만 해석할 이유는 없다. “정치적 이유로 일선 학교에 혼란을 줄 수는 없다”는 나름의 정당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20일 전체회의를 열어 '역사교과용 도서 다양성 보장에 대한 특별법(국정교과서 금지법)을 의결했다.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도종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국가가 저작권을 가진 교과서 도서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가게 된다. 이 법이 이대로 통과되면 연구학교로 지정됐다 하더라도 상위법에 의거해 국정화교과서를 사용할 수 없는 만큼, 굳이 공문을 하달해 일선 학교에 혼란을 야기할 이유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교육부가 일선 학교에 혼란을 줄 수도 있는 공문을 내린 만큼, 굳이 협조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미 국정화교과서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고 교육에도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제기됐음에도, 교육부가 좀처럼 국정화교과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일선 연구학교 지정을 시·도교육청이 반대해 일선 학교에서 연구학교 지정을 하지 않게 되면 이를 시·도교육청에 의한 학교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내부 방향을 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의 정책은 위법이 아닌 만큼 이를 교육청이 거부한다면 관련법에 의거해 조치할 것”이라 밝혔다. 내부에서 ‘보복’의 생각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교육부는 이러한 일선 시·도교육청의 연구학교 지정 거부에 관해 법리적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지역 시민사회 및 교육계는 이러한 법리검토를 통해, 교육부가 연구학교 지정을 거부하는 일선 교육청에 대해 ‘행정 및 재정적인 재제를 취할 근거’를 마련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의 이러한 ‘보복 조치’는 이전에도 전례가 있다. 지난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던 경기와 전북 교육청의 교부금을 삭감한 바가 있다. “말을 안 듣는다”면서 줘야 할 돈을 주지 않은 셈이어서 해당 지역들의 시민여론은 “치졸하다”는 반응까지도 보였다고 한다.   교육부가 이렇게 연구학교 지정을 거부하는 시·도교육청에 대해 교부금 삭감 등 보복 조치를 할 경우 정치적 대립 및 학생들의 피해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렇게 교육부가 미련을 못 버리고 일종의 ‘몽니’를 부리는 것은, 교육부가 직접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모든 시민들이 알고 있을 정치적 이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미 44억 원의 예산(예비비)을 국정화교과서에 투입한 상황에서 예산의 책임을 전적으로 뒤집어쓰기 싫은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연구학교 지정에 대한 반대의 움직임은 인천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서울과 경기교육청 등 인천 인접 수도권의 교육청들은 이미 교육부에 연구학교 지정 거부의사를 공식적으로 제출하는 등 인천보다 더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 외 전국적으로 총 13개의 시·도교육청이 연구학교 지정절차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천지역 시민사회의 여론도 시교육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강경하다.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관계자는 “여론이 이미 돌아선 상황에서도 교육부가 국정화교과서에서 소위 ‘손절’을 하지 못하는 것은 예산이 수십 억 들어간 것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이라면서 “이미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국정교과서를 탄핵한 것으로, 인천을 비롯한 전국의 여론을 무시하고 국정화교과서 관련 정책을 추진하면 더 큰 비판여론에 직면할 거고, 더 나아가서는 교육행정 전반에 대한 개혁까지 요구하게 될 게 분명한 만큼 교육부가 냉정히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북성포구로 가는 길

(4) 패루 위의 고래 / 양진채

▲ 유광식_북성포구(선상 파시)_2011 어쩔 수 없다. 며칠째 연재를 쓰기 위해 작품을 고르고 고민을 했지만 결국 내 소설 <패루 위의 고래>를 읽어보자고 내놓는다. 민망하기도 하고, 반칙인 줄도 아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에 기대어 꼭 하고 싶은 얘기, 이 얘기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은 얘기가 있다. 인천과 관련지어 요즘 온통 내 머릿속을 채우는 한 곳이 있기 때문이다. 북성포구가 그곳이다. 이번 경우에는 작품이 먼저가 아니라 지명인 북성포구가 이 소설을 끌어왔다고 해야 하겠다. 북성포구 얘기를 하고 싶은데 아무리 찾아봐도 적당한 소설을 찾기 어려웠다고 변명을 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북성포구는 지금 개발 논의로 한창 뜨겁다. 해양수산부가 북성포구를 7만 평 가량 매립하겠다는 안을 내놓으면서부터다. 북성포구 주변의 악취, 오폐수 등 환경개선이 절실하다는 주민 청원을 받아들여 매립 사업을 발표했다. 문제는 북성포구를 매립한다고 해서 주민의 숙원인 악취나 오폐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결국 주민의 숙원은 해결하지 못한 채 개발을 앞세워 우선 매립하고 보자는 계획이니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성포구는 개항의 문물이 드나들던 주변이었다. 현덕의 소설 <남생이> 첫 줄에 나오는 ‘호두형으로 조그만 항구 한쪽 끝을 향해 머리를 들고 앉은’에 나오는 호두형 포구가 있었던 곳이 바로 북성포구 주변이다. 그동안 우리 인천은 ‘매립의 역사’를 이어왔다. 갯벌 위에 빌딩과 아파트를 지어 인구 300만 경축포를 쏘아 올렸다. 그러는 사이, 항구 도시 인천은 점점 사라져 도심 근처에서 바닷물을 만져볼 수 있는 곳이 남지 않게 되었다. 인천은 작년부터 올해까지 역점 사업으로 인천 가지 재창조를 위해 인천의 역사 및 문화유산 분야, 인천의 자연환경 분야 등 인천만의 고유한 가치를 찾겠다고 하고 있지만 인천시 관계자부터도 북성포구의 역사는 물론, 북성포구가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실정이다. 나 역시 인천에 살고 있으면서 북성포구를 알게 된 것이 근 10년 안쪽이다. 인천에 이런 곳이 숨어 있었다니 경이로운 심정이었다. 그 경이로움은 포구를 찾아들어가는 길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패루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인천)역 뒷길로 접어들었다. 녹슨 철길이 여러 갈래로 길게 엉켜 있었다. 억센 풀들이 그악스럽게 침목 사이로 뿌리를 뻗었다. 그 옆 고가 위로 드물게 차가 달렸다. 고가 아래로는 곡물이나 사료 포대를 실은 대형 화물트럭들이 수십 대 서 있었다. 녹색 방수 천막으로 짐을 덮어 놓은 차량 옆에 고딕체로 쓰인 ‘곡물수송’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비둘기들이 옥수수 알갱이가 떨어진 포도에 부리를 박았다. 비닐 천막 끝을 쪼기도 했다. 어디선가 구워구워 비둘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화물 트럭들은 길 가득 정차되어 있었다. 왼쪽으로는 대부분 사료 공장들이었다. 밀가루 공장도 보였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날렸다. 공장 입구에는 하나같이 ‘방문객 경비실 경유’라는 팻말이 달려 있었다. (중략) 길이 좁아지고 낮은 슬레이트 집이 몇 채 보였다. 유리문의 색 바랜 선팅지에는 바지락칼국수니, 주꾸미 볶음이니 하는 메뉴가 간판 대신 붙어 있었다. 어두운 가게 한 귀퉁이에 포개 놓인 둥근 플라스틱 의자에는 먼지가 소복했다. 골목 입구, 게와 새우 조개 등을 함지박에 담아 파는 곳에 몇 사람이 기웃거렸다. 바람이 불었고 바다 냄새가 났다. 그래도 포구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 가게를 왼쪽에 끼고 울타리와 높은 담장이 쳐진 골목 안으로 하나둘 사라졌다. 그가 성큼 골목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왼쪽은 공장 시설물을 막기 위한 마름모꼴 철망이, 오른쪽엔 회백색 담이 있었다. 둘이 걷기에도 좁은 골목이라 그가 앞서 걸었다. 두 차례 꺾어 들자 막다른 골목 끝에 난데없이 포구가 드러났다. 포구가 있긴 있었다. 작은 포구였다. 생선을 파는 열 평 남짓한 횟집이 여남은 개 늘어선 왼편과 달리 오른편은 바로 바다 곁이었다. 포구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작은 곳이었다. 물론 지금은 조금 더 쉽게 대한제분 공장 담벽을 따라 찾아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북성포구를 갈 때는 이왕이면 물때를 미리 확인하고 물이 가득 차는 만조시간에서 두세 시간 앞당겨 가면 북성포구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배가 들어온다! 누군가 외쳤다. 배가 들어오다니. 이제 겨우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어디로 배가 들어온단 말이지? 그런데 놀랍게도 왼편 끝에서 목선 앞머리가 보였다. 배는 흘러드는 물길을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떠 있기도 어려울 것 같아 보이는 바닷물 길을 따라 배는 천천히 헤엄치듯 포구를 향해 다가왔다. 몇 척의 배가 뒤따라 들어왔다. 배를 따라 한 떼의 갈매기들이 포구 주변을 어지럽게 맴돌았다. 배가 석축 앞으로 다가와 보폭 넓이의 널빤지를 석축에 갔다 댔다. 따로 배를 대는 시설이 있는 게 아니라 물이 끝나는 석축 앞에 배를 대고, 널빤지로 배와 석축 사이를 이었다. 사람들이 널빤지를 밟고 걸어가 배에 내려섰다. 물이 가득 찬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만 보았던 나는 개흙 사이의 좁은 골을 따라 배가 들어오는 광경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배가 들어오는 작은 물길을 골씨라고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중략) 포구로 들어온 배는 일곱 척이었다. 꽃게, 갑오징어, 병어, 젓갈용 멸치 등을 갑판 한가운데 펼쳐놓고 그 자리에서 팔았다. 그를 따라 흔들리는 널빤지를 밟고 올라섰다. 난데없이 나타난 포구이기는 했지만 골씨를 따라 배가 들어오는 광경, 싱싱한 생물을 배에서 바로 흥정해서 사는 모습 등을 구경하는 동안 못마땅한 마음이 사라졌다. 싱싱한 갑오징어나 꽃게, 낙지 등은 산 채로 함지박 안에 담겨 있었다. 배가 나란히 붙어 있어 건너다니며 구경 할 수도 있었다. 값도 그날 들어온 배와 사러 온 사람들의 수에 따라 결정되고, 배가 막 들어왔을 때와 시간이 지난 후의 값이 또 다르다고 했다. 이 배 저 배를 건너다니며 물건을 보고 값을 묻던 사람들이 하나둘 검은 비닐봉지에 무언가를 사들고 뱃전을 나섰다. 병어를 잔뜩 사던 아주머니가 50년 가까이 이 도시에 살았지만 여긴 처음 와본다고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포구이긴 한 모양이었다. 문득 똥바다요? 하던 아저씨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 동네의 바다가 똥바다로 불렸다는 걸 아는 사람 정도는 돼야 이 포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상 파시라고 배 위에서 갓 잡아온 싱싱한 해산물을 살 수 있는 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 선상파시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개인적으로는 북성포구의 냄새와 오폐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화시설을 만들고, 이 선상 파시를 적극적으로 살려내고 홍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북성포구를 살리고 개발하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북성포구를 발견하고 그 뒤로 여러 번 북성포구를 찾았다. 일부러 물때를 확인하고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생새우를, 꽃게를, 병어를 샀다. 운 좋게 사진작가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북성포구의 노을을 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 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북성포구를 알고 있었고 찾고 있었다. 포구가 주는 떠남과 돌아옴의 여정, 비릿한 냄새, 염분이 묻어 있는 갯바람 등을 그 쓸쓸함으로 많은 사람을 달래주고 위로해주었다. 소설 속에서는 한때 치열하게 이 사회의 변혁을 꿈꿨으나 지금은 간 이식을 받고, 이 포구를 찾아든 선배와 그를 따라온 내가 있다. 그들에게 북성포구의 골씨를 따라 들어온 배, 그 배에서 난간에 옮겨진 고래는 청춘과 함께 그 시대가 지나갔으나, 그래도 누군가의 가슴에는 아직 살아 있는 그 무엇이지 않을까. 나는 배가 들어왔던 골씨, 아직 물이 빠지지 않아 그 길을 드러내지 않은 물길을 바라보았다. 석축 난간 위 안개에 둘러 싸여 있는 고래가 그물에 걸려 죽은 뒤 배에 실린 채 이 작은 골씨를 따라 들어 온 게 아니라 고래가 골씨를 따라 헤엄쳐 이름 없는 포구를 찾아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준설선이 매워지는 골씨의 개흙을 퍼내고 그 길을 따라 고래가 들어온다. 고래도 이 포구로 들어오는 골목 어귀쯤에서 ‘똥바다’ 암호를 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래가 그물에 걸려 북성포구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니라, 골씨를 따라 헤엄쳐 온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와 나는 얽힌 선로와 사료나 곡물을 실은 트럭 사이를 걸어 역으로 왔다. 그러고 보니 포구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 역 근처에는 안개가 끼어 있지 않았다. 그의 머리에 하얗게 안개비가 얹혀 있었다. 포구를 다녀온 징표 같아 보였다. 물기를 털어주었다. 내 머리도 쓸었다.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었다. (중략) 나는 우리가 찾아들던 골목이 어디쯤인지 가늠해보았다. 그 너머의 작은 포구와 그 포구 난간에서 안개비를 맞고 있을 고래도 떠올렸다. 바닷물이 들기 시작하면 골씨를 따라 힘겹게 헤엄쳐 오는 고래가 보일 것도 같았다. 울적한 심사가 될 때, 붉은 노을보다 더 짙은 울음을 삼키고 싶을 때, 지치고 힘들어 어딘가에 말없이 기대고 싶을 때, 북성포구는 쓸쓸하고 황량한 모습을 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골씨를 따라 배가 들어오듯 우리 마음속에 삶의 비의(悲意)를 되새기게 한다. 천영기ⓒ  

중국제 승용차 인천서 첫선... '가격 승부' 통할까?

중급 SUV 켄보600, 기본형 2천만 원 가격 책정... 업계서도 ‘주목’

18일 남구 학익동 소재 중한자동차 본사에서 열린 중국제 중형 SUV 승용차 ‘켄보600’의 신차설명회에서, 업체 관계자들이 신차의 성능 등 스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중한자동차   중국제 SUV 차량이 인천에서의 신차발표회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시장에 첫 선을 보였다. 그간 중국제 상용차(트럭, 밴 등) 모델 일부가 먼저 들어오긴 했으나 승용차 부분에서의 국내시장 상륙은 처음인데, 국내 동급모델에 비해 낮은 가격을 경쟁력으로 삼고 있어 업계 는 물론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중국제 자동차 수입업체인 ‘중한자동차’는 18일 오전 인천시 남구 학익동 본사 전시장에서 중국제 SUV 차량인 ‘켄보(Kenbo)600’의 신차발표회를 열었다. 조동암 인천시 경제정무부시장과 왕종용 주한중국대사관 등도 참석한 이날 신차발표회에서는 중국제 승용차들이 국내시장에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도 적잖이 있었다.   이날 신차발표회에서 중한자동차 측은 전자기기 등 시장에서 저가 정책으로 인기를 끈 중국 브랜드 ‘샤오미’의 자동차 판을 재편해 보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이날 발표된 켄보600은 중국 내 유명 자동차업체인 ‘북경자동차’의 수출차량 전담업체인 ‘북기은상’에서 제조하는 중형 SUV인데, 1,999만 원의 모던형과 2,099만 원의 럭셔리형 두 가지 트림으로 출시됐다.   특히 가격이 메리트가 있다는 평가가 짙다. 모던형 기준 가격으로 보면 2,240만 원부터 시작하는 투싼보다 241만 원이, 그보다 높은 2,800만 원부터 가격대가 형성돼 있는 싼타페(이상 모두 현대차)보다 무려 801만 원이 저렴하다. 쌍용자동차의 소형 SUV인 2017년형 티볼리 가솔린TX보다는 조금 비싼 편. 사실상 국내 자동차 브랜드 소형 SUV의 평균치와 비슷한 가격대가 형성돼 있는 것인데, 이는 국내시장에서 샤오미처럼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차량 크기는 축간거리가 2,700mm, 트렁크 용량은 평상시 1,063L이고 뒷좌석을 접으면 2,738L까지 적재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투싼보다 크고 싼타페보다는 약간 작은 크기 정도다. 중국인들이 넓은 실내공간을 가진 차량을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런 부분이 어느 정도 반영됐다고도 할 수 있다.   성능은 1.5 터보 가솔린 엔진을 장착했고 최고출력 147마력, 최대 토크 21.9kg.m, 복합연비 9.7km/ℓ(도심 9.2, 고속도로 10.6) 정도. 중한자동차 측은 성능 면에서는 “고속에서의 추월 가속 능력이 특히 좋다”며 홍보하고 있는 중이다.   18일 신차발표회를 통해 공개된 켄보600 흰색차량. 왼쪽은 레이싱모델 서한빛. ⓒ중한자동차   중한자동차 측이 켄보600의 국내 마케팅에 집중하는 것은 이 차량이 갖고 있다고 알려진 편의 기능과 중국제 자동차 중에서도 안전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아온 만큼 국내시장에서의 ‘특화점’을 갖고 마케팅을 한다면 충분히 먹힐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특화점에 대해서는 지난해 이 차량이 중국 시장에서의 판매량을 보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12년째 중국 SUV 판매량 1위를 달리고 있는 장성기차의 ‘H6’이 지난해 현지 판매량만 50만대가 넘는 것을 감안할 때, 현지에서 약 4만 대 정도 판매한 점을 감안하면 중국 내에서 인기 차종이라 볼 수는 없기 때문. 실제 켄보600의 전체적인 스펙을 보면 중국 현지보다 한국에서 더 큰 인기를 끌 수 있다는 판단을 할 만한 차량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켄보600은 전동 스티어링 휠, 크루즈 컨트롤, 전방추돌 경보장치와 경사로밀림방지장치, 타이어 공기압 자동감지 시스템, ABS, BAS, ECS, 후방경보시스템, 후방카메라, 듀얼 에어백, ISOFIX(유아용 고정장치)의 기본 사양 장착 등 국내 동급 모델과 비슷한 수준의 안전편의장치를 갖췄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중국신차평가(C-NCAP)에서는 충돌 안전성 테스트에서 별 5개(만점은 별 5개+)를 받기도 했다. 제대로만 타면 한국 차량 정도의 안전성은 있다는 것이다.   이 차량의 국내시장 성공 관건은 두 가지다. 가격 경쟁력은 가졌지만 그만큼 저급 평가를 받고 있는 ‘중국제’의 이미지, 그리고 이제 막 출시가 시작된 만큼 차량A/S가 제대로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 극복은 필수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특히 수십 년을 한국 시장에서 버텨온 국내 브랜드는 물론 최근 10~20년서부터 각광받고 있는 해외 브랜드에 비교해 A/S 부문에서 소비자들이 중국제를 신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 불식이 필수라는 의견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업계에서는 일단 성공 가능성을 반반 정도로 보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국내 시장에 너무 깊게 인식돼 있어 이를 돌파해 승용차 시장의 수요 루트 확대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면서도 “최근 수입되는 중국제 상용차들의 품질과 성능이 점차 좋아지고 있는 추세인 만큼 수입업체에서 가격 등의 차원에서 경쟁력을 갖고 기대하는 부분도 없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말했다.   이에 대해 중한자동차 관계자는 “인천에도 남구와 서구, 부평구 등에 5곳의 정비 네트워크를 갖고 있고 전국적으로는 80여 곳의 정비 네트워크를 골고루 구축해 전국 어디서나 A/S가 되도록 했고, 부품 마진도 최소화해 소비자의 정비비용 부담을 대폭 줄인 만큼 사후관리에서도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본다”면서 “네트워크는 계속 늘리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승기하수처리장 이전 놓고 시-남동구 ‘주고 받기’

남동1유수지로 이전 적극 검토 중... 환경단체 등 반발

남동1유수지에서 먹이를 찾는 저어새의 모습. 멸종위기종이다. ⓒ인천시   인천시가 승기하수처리장의 이전사업을 놓고 남동구의 반대에 직면한 가운데 남동구와 '빅딜'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 딜 내용에 환경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내용이 있어 지역 환경단체들의 반발하고 있다.   16일 인천시와 남동구 등에 따르면 현재 시설 노후로 인한 처리 용량 한계 및 잦은 고장, 그리고 남동공단 폐수 유입으로 방류수질 기준치 미달과 악취로 인한 민원 등 여러 모로 한계를 보이고 있는 승기하수처리장을 남동1유수지로 이전하기 위해 남동구와 협의하고 있다.   앞서 인천시는 남동1유수지로의 이전 외에 현 부지의 지하화와 송도 11공구 이전 등 다른 방안들도 내부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바 있다. 때문에 최근 시가 남동구와 만나 이러한 협의 내용을 진행한 것은 시 내부에서 남동1유수지 이전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진행된 협의에는 유정복 인천시장과 장석현 남동구청장이 직접 만나 이전을 위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지난해 하반기서부터 전성수 행정부시장과 이용철 기획조정실장 등이 주도해 남동구 측과 협의를 이어나갔지만, 지난해까지는 별다른 진전은 없었던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시가 남동구에 일종의 ‘인센티브’를 제시했는데, 남촌일반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해당 지역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고층 주상복합단지의 개발이익 환원금 전면 지급, 남동공단 주차장 공간 확보 등의 내용을 담고있다.   모두 남동구 입장에서는 귀가 솔깃할 만한 내용들이다. 남동구로서는 남촌동 일대 약 25만㎡를 산업단지 및 주민 편의 공간 등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데, 이는 그린벨트 해제를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시는 전체 사업지 중 8만㎡ 규모의 그린벨트를 직접 해제하고, 나머지 공간에 해당하는 약 17만㎡는 국토교통부와 협의해 해제토록 하겠다는 제안을 한 상태다.   시는 현재 한 건설사가 40층 이상 규모의 아파트와 업무동 등 총 5개 동의 주상복합단지 건설사업에서 나오는 개발이익금을 전액 남동구에 양보하겠다는 입장도 남동구 측에 전달했다. 현재 이 개발이익금은 인천시와 남동구가 7:3의 비율로 기부채납이 될 예정인데 남동구가 승기하수처리장의 이전을 찬성해 준다고 하면 이를 전면 남동구에 주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남동1유수지에 조성하게 될 하수처리장의 면적을 고려해 남동공단에 주차장을 확보해 주기로 했다.   이는 아직 공식적으로 확정된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같은 제안에 남동구도 내부에서 긍정적인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 관계자는 “남동공단 주차난 해결과 산업단지 조성, 기부채납 규모 증가 등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동1유수지가 ‘노른자’ 땅이 된 기존 승기하수처리장 부지 매각을 통해 세입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환경적인 문제가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곳이 천연기념물 제205호로 지정된 멸종위기종인 저어새의 서식지인 만큼, 오래전부터 환경단체들은 반발을 거듭해온 상황이기 때문이다.   17일 ‘인천저어새 네트워크’는 공식 성명을 내고 “최근 행정부시장 주도의 승기하수처리장 관련 대책회의에 이어 최근 유정복 인천시장과 장석현 남동구청장과이 남동1유수지로의 이전을 위해 관련 협의를 했다는데, 이는 저어새 서식지를 파괴하겠다는 심상찮은 움직임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들은 “승기하수처리장의 시설 현대화가 시급한 문제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5년 12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해당 구(남동-연수) 주민들과 환경단체,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민-관 테이블을 만들어 현 부지에서의 지하화가 최적의 대안이라고 상호 판단한 바 있으나 시는 이 협의 과정을 없던 일로 하겠다는 것으로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며 “유 시장이 직접 나서 승기하수처리장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하고 이러한 협의 내용이 확인되면 1인 시위와 규탄집회 및 국제 환경단체와의 연대 등 적극 대응할 할 것”이라 경고했다.   지난해 국회 박남춘(남동갑), 윤관석(남동을) 의원도 승기하수처리장의 남동1유수지 이전과 관련해 “지금 부지에서 120m 정도 이동한다고 악취로 인한 민원이 해소된다고 보는가”라며 “대규모 침수 재해와 저어새 서식지 훼손 등이 우려되는 남동유수지를 굳이 이전 대상으로 검토하겠다면 이는 인천시의 행정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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