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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

금요시단
말골분교 교사의 '공존 철학'

[금요시단] 말골분교 김성구 ..

말골분교 김성구 교사                                        신경림 북한강가 작은 마을 말골분교 김성구 교사는 종일 남에게서 배우는 것이 업이다 오십 명이 좀 넘는 아이들한테서 배우고 밭매는 그애들 어머니들한테서 배운다 뱃사공한테 배우고 고기잡이한테 배운다 산한테 들한테 물한테 배운다 제 아내한테도 배우고 자식한테도 배운다 남들이 그를 선생이라 부르는 것은 그가 이렇게 배운 것들을 아무한테도 되돌려준다고 말하지 않는대서다 그는 늘 배우기만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질문에서 배우고 또 아이들의 장난과 다툼에서 배운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왜 모르랴 배우기만 한다는 그한테서 아이들과 어머니들이 똑같이 배우고 있다는 것을 더불어 살면서 서로 배우고 가르친다는 평범한 진실마저 모르는 잘난 사람들이 자기만이 가르치고 이끌겠다고 설쳐대어 세상이 온통 시끄러운 서울에서 백리도 안 떨어진 북한강가 작은 마을 말골에서   시 감상   1993년 초판이 발행된 신경림 시인의 『쓰러진 자의 꿈』에서 한 편 뽑았다. 책장을 정리하여 다 읽은 책들을 기증하기로 하고 기증할 책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다가 이 시를 만났다. 신경림 시인은 올해 연세가 84세가 되는  원로시인이다. 이 시는 시인의 나이 59세의 원숙한 경지에서 쓴 시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소박한 한 시골학교 교사의 삶의 자세를 담담하게 그려냄으로써 우리가 갖추어야 할 생활인으로서의 바른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주인공은 선생이지만 그는 모든 이, 모든 현상으로부터 늘 배운다. 그는 항상 배우기만 한다고 말하는데 아이들과 그 어머니들은 오히려 또 그에게서 배우고 있으니 이는 더불어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상호 공존의 철학이 배어 있다고 하겠다. 이 시를 쓸 당시보다 지금은 세상이 더 복잡하고 생활 양식도 많이 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기본 속성 혹은 세상을 바라보는 겸허하고 소박한 삶의 자세는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사회의 아름다운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시인 최일화)  
양진채 소설가의 <소설로 읽는 인천>
인천 5.3민주항쟁, 그리고 1987년

(16) 중편소설 <플러싱의 숨 ..

<사진 = 인천민주화운동센터 제공> 영화 <1987>을 봤다. 사실 이번처럼 영화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이 본 건 처음이었다. 이미 <1987>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러 방송매체에서 1987년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었다. 서울, 부산과 광주 등 여러 도시가 다뤄졌다. 그 시절의 상인, 넥타이부대, 택시운전사였던 이의 증언도 이어졌다. 그 ‘중심’에 인천은 비껴 있었다. 물론 부평역, 효성동, 청천동 등에서 박종철 고문 살인 은폐조작을 규탄하고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시위가 있었다. 다만 항쟁의 중심에 서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바로 전 년도인 1986년에 일어났던 인천 5.3 항쟁의 영향이 컸다. 위키백과사전에서는 인천 5,3항쟁을 ‘1986년 5월 3일에 인천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으로 다음해 6월 항쟁의 불씨가 되는 민주화 운동사의 중요한 사건이다. 사실상 6월 항쟁의 1년 전 예고편이었다’라고 적혀 있었다. 설명대로 전국적 6월 항쟁의 불씨였으나 5.3항쟁으로 인한 대대적인 검거와 탄압이 자행되면서 인천에서는 6월 항쟁을 조직화할 힘이 다른 지역에 비해 부족했다. 영화 <1987>을 보고 나니, 인천5.3항쟁이 떠올랐다. 6월 항쟁의 불씨였던 인천5·3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30년이 넘었다. 그때 나는 스물한 살이었다. 그날 나는 들키지 않게 허리에 철사를 두르고 시민회관 광장 한 가운데에 있었다. 자꾸 쇠독이 오르려는지 허리가 가려웠지만 긁을 수가 없었다. 기다리던 호각소리가 나고, 나는 재빨리 리어커로 연단을 만드는 데로 달려가 허리춤의 철사를 풀러 내밀었다. 연단의 상판을 고정하는데 쓰였을 것이다. 수만 장의 유인물이 하얗게 도로를 채웠고, 어디선가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함성소리가 나기도 했고, 어깨를 걸고 발을 맞춰 행진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 최루탄 자욱한 길에서 도망을 쳤고, 주안역 담벽이 무너진 걸 보았다. 옷에 묻은 최루탄가루 때문에 어딜 가든 사람들이 재채기를 했다. 이 기억은 조각나 있었다. 실재하는 것인가. 조작된 기억인가. 나는 그 광장 한 가운데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내가 팔을 치켜 올리며 강단지게 외쳤던 구호는 무엇이었나. 그때 그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그날은 대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살아오면서 이 물음을 아주 가끔 되물었다. 아니, 정말로 궁금했다. 그날이 어떤 날로 명명지어질 수 있는지. 내가 그 광장에서 한 일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왜 그 이후의 기억들은 흐지부지한지. 왜 30년이나 지난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되묻고 있는지. 지금도 그 청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5·3을 꼭 풀어내고 싶었다. 그렇게 <플러싱의 숨 쉬는 돌>이 완성되었다. 중편소설 <플러싱의 숨 쉬는 돌>은 돌을 매개로한 세 사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마국에서 열풍처럼 불었던 숨 쉬는 돌인 ‘패트락’을 한국에서 팔아보려고 한 낭만적인 삼촌이 있다. 대문을 열었을 때, 삼촌은 철지난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서 있었다. 진한 밤색 구두에 빨간 양말, 진초록 진바지에 흰 바탕에 커다란 야자수 잎이 프린트된 긴팔남방셔츠를 입고 있었고, 크리스마스트리의 하이라이트인 나무꼭대기 금색 별 대신 색이 바랜 패도라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남방셔츠는 얇아서 안이 훤히 비칠 정도였고, 코는 추위에 얼어서 빨갰고, 햇빛도 없는데 눈이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커다란 여행 가방을 들고 있는 손은 핏줄이 비칠 정도였다. 허리에는 좀 과장하자면 레슬링선수가 찰 법한 커다란 벨트까지 하고 있었다. 모든 곳에 눈이 갔고, 어느 한 곳에도 눈을 두기가 어색했다. 입고 있는 옷들이 어울리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묘한 조화를 이루기도 했다. 이렇게 등장했던 삼촌은 바닷가에서 돌을 주워와 ‘숨 쉬는 돌’을 만들어 팔려고 했지만 엄혹한 시대는 삼촌의 낭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삼촌은 괴상한 복장과 기이한 행동으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가 겨우 풀려나고 그 후유증으로 미국으로 가서는 지금까지 떠돌이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1986년 5.3 항쟁과 2008년 광화문 광장에 서 있던 그녀와 내가 있다. 내가 살던 도시에서 대규모 집회가 잡혔을 때도 이틀 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집회는 시민회관 앞에서 있을 예정이었다. 나는 몇 년 만에 이 도시에 발을 들여놓았다. 내가 살던 곳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긴 했지만, 내가 태어나고 내가 살던, 멀리 부두와 바다를 가진 도시였다. 시민회관 주변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척 지나쳤다. 말은 없었지만 무엇을 위해 왔는지는 짐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는 플래카드를 접어서 배에 두르고 있었고 누군가는 각목을 숨겼다. 누군가는 전단지를 감추고 있었다. 나는 허리에 철사를 감고 있었고 표시가 나지 않도록 헐렁한 셔츠를 입고 있었다. 철사는 아주 가늘지도, 굵지도 않은 적당히 휘어지는 것이다. 대여섯 가닥이 맨살에 둘러져 있었다. 겉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는데 나도 모르게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시민회관에서는 야당의 지부당 결성대회를 몇 시간 앞두고 정부를 비판하는 선동용 방송을 밖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에겐 우리의 시간이 있다. 누군가 휘슬을 불었다. 그것은 우리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아우성 속에서 재빨리 허리에 감고 있던 철사를 풀었다. 언뜻 허리의 붉은 줄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것을 쳐다보고 만져볼 여유가 없었다. 리어커 위를 합판으로 덮고 연단을 세웠다. 철사로 연단이 무너지지 않게 지지대와 연결해서 고정시켜야 했다. 누군가는 각목을, 누군가는 합판을, 일사분란하게, 순식간에 연단이 만들어졌다. 공연장 무대를 방불케 하는 요즘 연단차량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선동차량이었다. 그때 우리의 힘은 리어커 연단처럼 보잘 것 없었다. 적어도 외향적으로는 그랬다. 전철역 방향으로 뛰었고, 개찰구를 뛰어넘고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전철을 무조건 탔다. 전철을 타자마자 바로 옆 사람이 재채기를 했다. 곧바로 그 옆 사람도 재채기를 했다. 우리 옷에 허옇게 묻은 최루가스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붙들고 있던 여자 손을 놓았다. 내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 놀라서 그녀의 손목을 바라봤다. 도망칠 때, 시멘트벽에 긁힌 모양이었다. 제법 피가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묶어달라고 했다. 손수건을 접어 단단하게 묶었다. 우리는 사람들 눈을 피해 각자 열차의 다른 칸으로 옮겼다. 짓밟힌 단화가 보였다. 붙들 수는 없었다. 역사 내 텔레비전에서 오늘 있었던 시위에 대해 방송하고 있었다. 깨진 보도블록, 불타는 전투경찰차, 난무하는 유인물, 화염병을 든 시위대, 최루탄 가스로 자욱한 거리. 휘날리는 색색의 깃발들. 저기 사각 화면에서 비껴선 어디엔가 내가 있었다. 철사를 둘렀던 자리가 맹렬하게 가려워왔다. 참을 수가 없었다. 잠깐 아득해졌다. 이렇게 1986년 5.3항쟁을 함께 했던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2008년 광화문광장에서 다시 만난다. 나는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 적당히 타협하며 안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그녀는 지금까지 변치 않고 그 길을 가고 있었다. “내 꿈이 뭔 줄 알아? 이 광장에 나와서 사람들한테 싸고 맛있는 잔치국수를 파는 거야. 다시마랑 양파랑 멸치 잔뜩 넣고 끓인 육수에 찰진 국수 가락이랑 김치도 몇 점 들어간 잔치국수 말이야. 배고파서 먹든, 맛으로 먹든 한 그릇씩 사서 서서 후루룩 면발과 국물을 들이켠 다음 광장으로 촛불을 들든, 깃발을 들든, 노래를 하든 다 같이 모여 춤추는 광경을 지켜보는 거야. 그러다 나도 앞치마를 풀고 같이 춤추는 거지.” 무모했다. 아니, 이성적으로는 무모하다고 생각했지만 얼른 다가가 그녀가 저 절벽을 올라설 수 있게 발판이라도 되어주고 싶었다. 어디선가 몇 사람이 스티로폼 박스를 들고 왔다. 그리고 그 스티로폼 박스를 밟고 몇 사람이 컨테이너 박스 위로 올라섰다. 누군가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고 그녀도 컨테이너 위로 올라섰다. 함성이 이어졌다. 컨테이너에 막혀 주저앉은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가 컨테이너 위로 올라간 듯 했다. 대형 플래카드가 펼쳐졌다. 올라간 사람들이 대형 태극기를 흔들었다. 나는 그녀가 흔드는 깃발을 바라보았다. 깃발을 흔들기에는 버거운 몸이었다. 깃발이 몸보다 컸다.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내내 간절한 무언가를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인가. 그 간절함이 제 몸보다 커서 어떻게든 광장에 있기 위해 잔치국수라도 팔아보겠다고 말했던 것인가. 광장 어디에도 잔치국수를 파는 곳은 없었다. 그렇게 만난 몇 년 뒤 그녀의 부고 문자를 받는다. 그녀의 부고는 뜻밖이었다. 사적인 단어 한 마디 없는 간결한 부고 문자였다. 어디서 어떻게 무엇 때문에 죽음을 맞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부고 문자를 받고 가볍게 떨었다. 며칠 동안 자잘한 실수가 이어졌다. 치약 대신 폼 클린징을 칫솔에 짜거나, 엘리베이터에 타서는 층수를 누르지 않은 채 서 있기도 하고, 문득 휴대전화 패턴을 잊어버려 열지 못하기도 했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흔들렸다. 결국 나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취해 밤바다를 찾았다. 삼촌이 페트락을 버린 바다였고, 스물 몇 살, 오월의 밤에 그녀와 내가 다음날 아침 찾아가기로 했던 바다이기도 했다. 나는 철썩이는 파도에 울음을 묻었다. 그리고는 기어코 휴대전화 주소록에서 그녀 이름을 찾아내어 눌렀다. 그녀의 부고는 삼촌을 찾아보려는 계기가 된다. 삼촌은 미국의 가난한 동네인 플러싱에서 카지노의 버스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삶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나요? 아니요. 나는 한국을 떠나온 지 아주 오래 되었고,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요. 평생 버스를 타고 카지노장이나 어슬렁거리게 될지라도 한국에는 가지 않을 겁니다. 여기서는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않아요. 들러리니, 엑스트라니 하는 말들에 신경 쓰지 않아요. 나는 누가 나를 어떻게 보든 상관없어요. 누구의 평가가 아니라 내 생을 삽니다. 그는 돈을 잃은 것이 미안해서 그랬는지 꽤 긴 말을, 그러나 단호하게 했다. 내가 막 돌아서려는 순간이었다. 그가 몸을 흔들었다. 한쪽 발로 담배를 비벼 끄듯 비벼주고, 수건이 있다고 생각하고 양쪽 끝을 붙잡아 엉덩이를 닦는 듯한 자세를 취해봐. 마구 비틀어주는 거지. 트위스트가 괜히 트위스트가 아니야. 마구 비벼준다는 뜻이거든. 마구마구 말이야. 흥이 저절로 몸에 차오를 때까지 흔들어봐. 삼촌이 트위스트를 췄다. 음악도 없이, 무성영화나 흑백필름을 보는 것 같이. 뒷모습이었고 엉덩이를 뒤로 쑥 빼고 있어서 오리궁둥이처럼 보이는 엉덩이를 흔들고, 그 옛날 내게 트위스트 춤을 가르쳐주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삼촌과 그녀와 나는 시대에 부딪치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삼촌의 돌은 바닷가의 수많은 돌 중에 하나이지만 이름이 명명되는 순간 살아 있는 돌이 된다. 우리가 지나왔던 시대는 수많은 돌이 이름을 얻으며 만들어진 역사이다. 리어카로 연단을 만들기 위해 몸에 철사를 둘렀던 내가, 2008년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갔다가 공연장을 방불케 하는 무대와 엠프 시설을 갖춘 연단을 보고 느꼈을 벅찬 ‘격세지감’과도 같은 진일보가 있었다. 김성복 샘터교회 목사님은 인천 5.3항쟁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의 진보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역사는 계속해서 진보해나가는 것이다. 착오를 일으키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 시대에 맡겨진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 인천항쟁을 절대로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이론이 먼저냐 실천이 문제냐, 인천 5·3항쟁은 이론 투쟁의 현장이었다. 이론 투쟁의 현장에서 87년의 민주화투쟁을 이끌어내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거쳐야 될 과정이었다고 보는 거죠.” <옛 시민회관 앞 5.3 항쟁 기념비. 2016년 5월3일 제막식을 가졌다>  
말랑말랑 애덜이야기
학생이 없는 풍경

제43화 윤치권 / 인천해밀학교..

세차게 온풍기가 돌아가고 있다. 밖은 매서운 겨울 기운에 모든 것들이 웅크리고 있는데, 봄 같은 교실에는 온풍기 소리만 가득하다. 12월 절반이 넘어서고 있는데, 2교시 11시 10분인데 학생이 없다. 추운 겨울은 학생의 등교시간을 늦추고 있는 것이다. 수업에 들어가는 중1반의 출석부를 열어 출결 상황을 살펴보았다. 월요일 정상 등교학생 1명, 화요일 정상등교 학생 1명, 수요일 정상등교 학생 2명, 목요일 정상등교 학생 1명 현재 정원 5명이다. 내가 담임하고 있는 반은 정원 11명 정상등교 학생 2명이다. 정원이 많으나 적으나 별 차이가 없다. 중도 탈락 위기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학교에 학생이 오지 않고 있다. 유급일수(62일)를 헤아리며 등교일자를 찍는 학생들... 6교시에 등교하는 학생도 있다. 6교시까지 수업인데 6교시에 등교. 그래도 착한 학생이라고 칭찬해야 할까? 아예 오지도 않는 학생에 비하면 좋지 아니한가? 위탁대안학교는 일반학교와 다른 교육과정을 통해 중도탈락 위기 학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설립된 학교인데, 교육의 대상학생들이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생이 수업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는다.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가? 부모의 마음은 어떻게 하든지 학교를 졸업시켜야 한다는 마음이고, 교사는 적절한 교육을 받도록 지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수업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없다. 달콤한 꿀을 먹기는 좋아하지만 꿀을 얻기 위한 인고의 시간은 건너뛰고 싶어 한다. 왜 라는 질문을 통해 성장하기 보다는 그 질문조차 싫어하고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기만 기다린다. 활동중심의 대안교과에 집중해야 함에도 그 조차 일관성이 없다. 자신이 선택한 과목이 무엇인지 몰라 질문하러 온다. 질문하러 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 아무 반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지도 선생님에게 ‘너는 이반이 아니다’라고 지적받으면 그럼 내가 속한 반이 어디냐고 되묻는다. 준비가 없는 학생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지 해답이 없다. 위탁하여 교육하는 입장에서는 변화를 강조하게 되고 변화되는 모습에게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인데, 지금과 같은 상황은 그냥 맨붕이다. 교육이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이끄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면, 이끌림을 받지 않으려는 학생은 지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지 않은가? 학교 밖 아이들이 늘어간다는 통계는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를 해야 하겠지만, 현 체제를 유지하는 문제 해결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날아가고 싶은 새는 새장을 바꾸어주는 것이 아니라, 새장 밖으로 날려 보내야 되는 것이지 않은가? 우리는 왜 아이들이 새장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새장 밖은 부정의하고 위험한 세상이기 때문인가? 아이들을 언제까지 새장 안에 둘 수 있는가, 결국은 그들은 새장 밖 세상으로 나가야 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새장을 바꾸기 위한 노력보다는 새장 밖 세상을 정의롭게 만드는 과정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는가? 굳이 특정한 나이에 세상에 나가야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이 같은 내용을 기억하고 같은 방법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교육체제도 더 다양한 모습이 되어야 한다. 새장 바꾸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새장 밖 세상의 정의로움을 통해 교육의 문제를 풀 수 있지 않을까?  
김인자 작가의 할머니 꼬시기
"이제 나보구 이 핵교 오지 말래?"

(197) 떠나야할 사랑터

  심계옥엄니 사랑터에서 돌아오시는 오후 네 시 삼십 분. 저만치서 사랑터차가 어슬렁 어슬렁 들어오고 있다. 다녀왔습니다~하는 다정다감한 소리와 함께 사랑터차 문이 힘겹게 열린다. 요양사 선생님이 심계옥엄니의 지팡이를 내려주고 다음엔 심계옥엄니가 요양사 선생님의 부축을 받으며 사랑터 차에서 어렵게 내리신다. 차에 앉아 계시던 순재 할머니가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어주신다. 심계옥엄니가 내리고 혼자 남겨진 순재할머니를 태우고 사랑터차가 느릿느릿 떠나간다. 연식이 오래되어 행동이 굼뜬 사랑터차. 울 할무니들 걸음걸이를 똑 빼닮은 차.   "날씨가 추워서 그릉가 요즘 사랑터에 할무니들 많이 안 나오셔?" "응, 많이 안 나와." "많이 안 나오셔? 할무니들이?" "응, 안 나와. 아주 안 나와. 수다쟁이 할무니 있잖아. 그 할무니도 아들네 집으로 갔다고 하고, 또 딸이 가외 갈친다는 그 할무이도 다른 데로 갔다고 하고. 또 기저귀 차고 선생님들이 노상 따라 댕기믄서 챙겨야 하는 할무니 있잖아. 그 할무니도 딸이 일 댕겨서 딴데로 갔다고 하던데..." "으응, 그러셨대?. 사랑터차가 그래서 텅 비었구나."   "5급이 모냐?" "응, 5급?" "응, 선생님들이 나보고 5급이냐고 물어보던데?" 저녁식사를 하시던 심계옥 엄니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시며 갑자기 물으신다. "5급? 선생님이 물으셨다고? 엄니한테?" "응, 나헌테 묻더라고. 핵교가 5급만 다닐 수 있게 됐다고." "그렇대? 그럼 머 다른데 가믄 되지~" "너도 알고 있었냐? 선생님들이 이제 나 오지 말래냐? 난 성가시게 허는 것도 읍는데... 나혼자 밥먹고 화장실도 나 혼자 댕기고. 선생님들 손 가게 하는거 하나투 읍는데. 나 귀찮타더냐? 그래서 이제 나보구 이 핵교 오지 말래?" "왜? 엄니. 엄니는 여기가 좋아?" "좋으나마나 댕기던데니까. 그냥 댕기는거지. 낯선 곳이 머시 좋으냐." "여기도 좋지만 다른 데도 좋은데 많아." "많기는... 난 여기가 좋다. 선생님들도 편코." "낯선데도 첨에만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금새 좋아져. 엄니 첨에 생각 안나? 사랑터 처음 가던 날." "사랑터 처음 간 날?" "응, 사랑터에 처음 다니실 때도 엄니 낯설다고 싫다고 안 가겠다고 했는걸." "내가 그랬냐?" "응, 첨에는 다 그래. 새로운 곳도 처음엔 낯설지만 또 댕기다보믄 친해지고 정 붙이면 좋아져." "아 몰라. 나는 여기가 좋다. 다른데 안가." 새해들어 사랑터가 변하려나보다.   "여보세요 ~사랑터예요." "예, 선생님." "이번에 심계옥어르신 장기요양등급 몇 등급 받으셨어요?" "4등급이요." "아 예 저희기관이 올해부터는 5등급 어르신들부터 이용하실 수 있게 되었어요. 나라 정책이 그렇게 바뀌게 되어서 알려드리려구요." "아, 그럼 저희 엄니는 다른 시설로 옮겨가셔야 하나요?" "아마도 그리 되실거 같아요." "언제부터 옮겨가야하지요?" "글쎄요. 딱 날짜가 정해져 있는게 아니라서요." "유예기간이 얼마나 있는지요?" "글쎄요. 한 두 달 정도는 있지 않을까요?"   에고 울 심계옥엄니 우려하시던 일이 현실이 되었네.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고 열심히 재활치료받으시고 첫 사회생활하신 곳이 바로 이곳 사랑터였는데... 오랜동안 이곳 사랑터에 다니시다 다른 곳으로 옮겨가신 할머니들 마음도 우리 심계옥 엄니 마음과 똑 같으셨겠구나. 사랑터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지않은 마음,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 내가 이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이면 할머니들이 다니고 싶어할 때 까지 다니시게 해드릴텐데. 어차피 할머니들이 다니고 싶어하셔도 다닐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니... 할머니들한테 "다니고 싶으실 때 까지 다니세요" 할텐데. 그러면 우리 할머니들한테 "이제 그만 오세요" 해서 섭섭한 마음 들지 않게 해드릴텐데...   바야흐로 졸업시즌이구나. 울 할머니들이 늙으막에 몸이 아파져서야 비로소 정붙이고 다녔던 치매센터.일부러는 아닐건데 할머니들 고만 나오시라고 조기졸업시키는거 같아 마음이 안좋다. 내가 이러니 울 심계옥엄니 마음은 어떨까... 낼부터 심계옥엄니 다니실 다른 치매센터를 알아보러 다녀야겠구... 이번 겨울은 이래저래 더 춥겠구나.  
미술치료 가족의 세상살이
추억을 되찾는 새해 계획을 세우다

(42) 은옥주 / 공감미술치료센..

<인천in>은 지난 2016년 6월부터 '공감미술치료센터' 은옥주 소장과 미술치료의 길을 함께 걷고있는 딸(장현정), 아들(장재영)과 [미술치료사 가족의 세상살이]를 격주 연재합니다. 은옥주 소장은 지난 2000년 남동구 구월동에 ‘미술심리연구소’를 개소하면서 불모지였던 미술치료에 투신, 새 길을 개척해왔습니다. 현재는 송도국제도시에 '공감미술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화벨이 울렸다.  낯선 전화번호라 받을까말까 잠깐 망설였는데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옥주야 내다. 내 해순이다 내 모리겠나?” 갑자기 들려오는 고향친구라는 이의 목소리에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여 금방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친구는 오랜 옛날 우리가 같이했던 고향 이야기며 친구들 이야기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해주었고 조금씩 잊었던 기억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친구 중에 아주 절친했던 친구도 있는듯해서 문득 그립기도, 보고싶기도하여 무조건 만나기로 했다. 친구들이 오는 날 나는 어린 시절 그 아이들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또 내가 알아볼 수나 있을지 은근히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였다. 반가워하며 집으로 들어서는 그 아이들은 이미 아이들이 아니었다. 내가 아이가 아닌 것처럼 세월의 흔적을 숨길 수 없는 그 아이들은 처음에는 너무나도 낯선 할머니들을 만나는 기분이었으나 차츰 자세히보니 어렴풋이 옛날 모습을 간직한 그리운 고향 친구들이었다. 초등학교를 몇 년 다니다가 대구로 전학 온 뒤로는 거의 만나지 못한 우리는 60년을 훌쩍 뛰어넘어 마치 어제 금방 만난 사람들처럼 편하게 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그 중에 한 친구는 어린시절 집이 너무 옹색하고 가난해서 늘 죽만 먹고 살았는데 우리 집에 놀러와서 보니 내가 흰 쌀밥을 먹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야야 너거집에 가이끼네 흰 쌀밥 묵더라. 그거 얼매나 부러웠다꼬.” 하며 눈물이 글썽글썽하며 울먹이기까지 하여 나는 불쑥 내 어린시절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해순아 니 때문에 내가 오늘 흰쌀밥 안했나. 마이묵어라 내 딴에는 육해공으로 열심히 했대이. 내 참 장하재.” 하고 그 아이의 어린 시절 상처를 위로해주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살림살이가 서툰 나를 보고 “아이구 어릴 때 공주가 여즉(여태까지) 공주구나. 우리가 공주 손에 밥을 다 얻어 묵는다.” 하며 놀려서 나는 공주병은 지독한 지병이라 고치지도 못하고 중병을 앓으면서도 여태껏 살고 있노라고 엄살을 떨며 옛날 아이들 때처럼 깔깔거렸다. 긴긴 시간을 건너뛰어 만난 우리는 옛날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참 이야깃거리도 많아서 마음이 훈훈했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마을은 위아래 마을과 산 넘어 마을까지 다 아우르는 학교도 있고 교회도 있는 곳이었다. 딱 하나뿐인 초등학교는 내가 7살에 입학했을 때 긴 머리를 쫑쫑 땋은 말만한 처녀들이 들어와서 같이 한반에서 공부를 했고 졸업식에는 다들 처음이자 마지막 졸업식이라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어서 온 동네가 시끌시끌했던 기억이 난다. 일제시대에 지어졌다는 빨간 벽돌의 단층건물 교사 창문에 코흘리개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서서 깨끼발을 딛고 6학년 교실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기억도 난다. 교실 안에는 선생님이 수업을 하시다가 갑자기 손을 치켜들고 “하나 둘 셋” 하고 큰소리를 치시면 아이들이 모두 ‘우당탕 퉁탕’ 의자를 재끼고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머리를 쳐박고 엎드렸고 선생님도 후다닥 교탁 밑으로 기어들어가셨다. 그것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되풀이하는 광경을 우리들은 신기한 구경거리처럼 보면서 누가 더 빨리 기어들어 가는지 등수가지 매기며 보고 있었다. 나중에야 너무 낡고 오래된 교사가 붕괴위험에 처했지만 고칠 수 있는 여력이 없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궁여지책으로 비상대피 훈련을 하던 것이었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우리는 그렇게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에 함께 그 초등학교를 다녔던 동창생들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다들 퇴행성관절염으로 다리를 쭈욱 뻗고 앉아서 밥을 먹은 뒤에는 약 한 봉지씩을 부스럭거리며 꺼내 먹어야하는 지병이 한 가지씩 다 있는 할머니들이지만 60년 전 우리는 단발머리에 철없는 코흘리개 아이들이었으니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다. 먼 길 마다않고 찾아와주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준 친구들이 너무 고마워서 이제부터는 자주 만나서 밥도 먹고 고향이야기랑 살아온 이야기도 하면서 살자고 약속을 하며 참 마음이 훈훈했다. 그러고보니 오랜 세월동안 잊어버린 사람도 참 많고 잃어버린 추억들도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올 한해는 그런 것들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낡고 오래된 추억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먼지를 툴툴 털고 닦아내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것도 참 좋은 것 같다. 앞만 보고 달리던 걸음 멈추고 천천히 오솔길 걷듯이 하나하나 차근차근 돌아보고 살펴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새해는 새로운 계획들을 세우며 한해를 시작하는데 나의 올해는 고마운 고향 친구들 덕분에 훈훈한 계획으로 새출발을 하는 것 같아서 올 한해가 기대가 되고 즐거워진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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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기연 해고 노동자들, 1년만에 공장으로

동광기연 노사, 조합원 43명 전원 복직 합의

지난해 설 명절을 앞두고 해고됐던 동광기연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간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동광기연지회는 동광그룹 계열사는 동광기연노조 조합원 43명을 복직하는 데 합의했다고 19일 밝혔다. 동광기연 노조와 사측은 동광그룹 계열사 SHCP가 조합원 43명을 고용하는 데 합의하고, 입사 후 고용승계 당일까지 모두 근속 기간에 해당한다고 합의했다.  또 동광그룹은 노조와 그동안 체결한 고용보장합의, 단체협약, 별도협약 등의 합의를 모두 이행하고, 기존 노사합의서를 포괄적으로 승계하는 데 합의하고 노동조합을 인정하기로 했다.  지난해 1월 해고 이후 임금에 대해서는 복직하는 날까지 평균임금의 150%를 지급키로 했다.   노사는 이 같은 합의내용 이행을 조건으로 모든 고소고발과 소송 등을 취하하기로 했다. 노조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며, 가결되면 조합원들은 다음 달부터 공장으로 복귀하게 된다. 앞서 동광기연은 지난해 설 명절을 사흘 앞두고 노동자 62명에게 문자 메시지로 해고를 통보해 논란을 빚었다. 해고 노동자들은 지난해 1월부터 본사 앞에서 계열사 고용승계를 보장 등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벌였다. 검찰은 최근 동광그룹 유래형 회장과 유승훈 사장 등 오너 일가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인천시민 81.1%, 기초의회 3인 이상 선거구 늘려야

'정치개혁 인천행동' 227명 대상 설문조사, 4인 선거구 확대 40.1%로 가장 많아

                             인천시민들은 기초의회(군·구의회) 중·대선거구제 도입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3~5인 선거구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진보 성향 시민사회단체들이 구성한 ‘정치개혁 인천행동’은 지난해 11월 28일~12월 8일 다중집합장소에서 인천거주 만 19세 이상 남녀 227명(군·구별, 성별, 연령별 안배)을 대상으로 구조화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3인 이상 선거구를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아 81.1%에 이르렀다고 18일 밝혔다.  4인 선거구 확대가 40.1%로 가장 많았고 3인 선거구 확대 21.6%, 5인 선거구 확대 19.4% 순으로 집계됐다.  ‘정치개혁 인천행동’이 인천대 인천학연구원과 공동으로 진행한 ‘인천시 군·구의회 선거구획정에 대한 인천시민 요구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20번 조사하면 19번 같은 결과가 나옴)에서 ±3.1%포인트다.  3인 이상 선거구를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를 연령별로 분석하면 ▲10대 100% ▲40대 87.7% ▲50대 86.0% ▲30대 83.3% ▲20대 78.8% ▲60대 이상 58.3%로 나타났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 인천지역 기초의회 지역구 당선자 101명 중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이 97%의 의석을 차지하고 여성은 16명, 청년은 단 한 명도 없던 것에 대한 평가는 ‘중·대선거구제의 취지에 부합한다’가 17%, ‘부합하지 않는다’가 39%였다.  기초의회 지역구 선거구 변화가 없을 경우 이익을 볼 것으로 예상되는 2대 정당(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지지자들도 ‘중·대선거구 취지에 부합한다’ 14%, ‘부합하지 않는다’ 33%로 전체 응답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는 다양한 군소정당의 의회 진출 기회를 높이기 위해 2006년 도입했으나 2인 선거구가 많아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인천 군·구의회 선거구 38개는 2인 16개, 3인 19개, 4인 3개였다.  ‘정치개혁 인천행동’은 “기초의회에 다양한 정당이 진출함으로써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거나 반영해야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을 이뤄나갈 수 있다”며 “인천시 선구구획정위원회와 인천시의회가 거대 양당이 의석을 독점하는 2인 선거구를 대폭 줄이고 3인 이상 선거구를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천시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지난 2006년 4인 선거구 9개, 2010년 4인 선거구 10개 안을 인천시의회에 제출했으나 시의회에 의해 조례안에 반영되지 않아 무산됐고 2014년에는 선거구획정위가 4인 선거구 4개 안을 냈고 시의회가 3개로 확정했다.  ‘정치개혁 인천행동’은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도입 취지 강화를 위한 올바른 결정을 촉구하기 위해 각 정당 인천시당과 인천시의원 전원에게 선거구획정 관련 질의서를 보내고 결과를 시민요구조사와 비교 분석해 시민사회에 알려 나가기로 했다.  

“생활문화는 ‘교류’에서 큰 감동이 온다”

<인천in> '동네방네 아지트' 참여 공간 운영자들과의 대화

인천문화재단의 생활문화사업인 ‘동네방네 아지트’에 참여한 문화공간 운영자들이 지난 16일 한 자리에 모여 얘길 나눴다. 사진 좌로부터 ‘버텀 라인’의 허정선 대표, 돌멩이국도서관의 임현진 관장, 인천평화레츠 박양희 대표, 서담재 이애정 대표, 놀이터 허명희 기획실장.   지난해 인천문화재단이 추진했던 여러 신규 사업 중 지역사회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이었다. 인천시 10개 군·구 중 총 7개 구(강화, 중구, 동구, 계양구, 서구, 부평구, 남동구)에 소재한 문화예술 관련 장소 중 동아리를 신설하거나 이미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는 단체에 직접 지원금을 주고 이들이 자유롭게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총 19개소를 거점 장소로 삼아 독서와 인문학은 물론 사진과 요리, 공예 등 다양한 활동을 공공자금으로 지원하면서 시민들의 문화적 소통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인천시 생활문화예술 관련 부서도 한껏 고무돼 있다.   이러한 성과 등을 바탕으로 인천시는 조만간 문화예술과 내에 2인 구성의 생활문화팀을 신설하고, 약 8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천 개의 생활문화 동아리 활성화 사업’ 등의 구상을 계획하고 있다. <인천in>이 확인한 결과, 신설 생활문화팀이 추진할 것으로 알려진 ‘천 개의 생활문화 동아리 활성화 사업’은 인천문화재단에 할당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인천in>은 인천문화재단 생활문화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을 함께 했던 19곳의 거점 운영자들 중 5곳의 운영 및 담당자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지역화폐를 통한 자원선순환 및 공동체 조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인천평화레츠’, 오랜 기간 재즈 클럽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본 사업에는 사진예술 동아리 활동으로 참여한 ‘버텀 라인’, 책과 독서 활동을 통한 복합문화공간 조성에 힘쓰고 있는 ‘서담재’, 독서 및 예술활동을 통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는 ‘생활문화예술동아리연합 놀이터(이하 놀이터)’, 그리고 독서를 통한 새로운 발견을 꿈꾸는 작은 도서관 ‘돌멩이국도서관’이 <인천in>과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 문화재단이 ‘진작 했어야 했던’ 사업   올해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은 1차적으론 시민들에게 배움 등의 기회 제공 그리고 ‘동아리’라는 명목 하에 한 공간에 모인 사람들끼리 문화적, 또한 인간적인 교류까지 이어지면서 이들을 통한 문화활동을 ‘정착화’했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 특히 이 과정에서 동아리 활동에 대한 자율권은 모두 맡겨두면서도 인천문화재단 내 담당직원들이 1년 중 수시로 동아리 활동들을 체크하며 해당 활동을 받쳐 주었다는 점은 잘한 부분 중 하나다.   그런데 이런 동아리 활동에 가장 감흥을 받고 고무된 마음을 느낀 사람들은 동아리 일원들보다 바로 인천문화재단의 담당자들이었다. 문화재단 생활문화팀 관계자는 “사실 우리라고 해서 관내 전역에 퍼져 있는 민간 문화공간들이 얼마나 되고 어떤 곳이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를 전부 파악할 수가 없었는데 이 사업이 도움이 크게 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지난해 이 사업에 참여한 공간은 물론 신청한 공간까지 합하면 어떤 곳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어떤 부분을 공기관이 배려해 주면 좋겠는지 하는 ‘기본 틀’을 이 사업을 통해 잡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생활문화를 영유하는 사람들과의 연계는 물론이고, 그간 이들 중 재단과의 접점이 없었던 경우도 그 네트워크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재단 내부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다.   12월 있었던 동네방네 아지트 박람회 현장. ⓒ인천문화재단 ◆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역 동아리들끼리의 교류’   이번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에 참여했던 공간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이미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해 오다 문화재단의 재정지원을 통해 보다 깊이 있는 단계를 체험하는 것이 하나, 그리고 공간은 있었으나 생활문화에 준하는 동아리가 없었던 상태에서 사업을 계기로 신규 결성돼 동기부여가 된 경우가 다른 하나다.   지난 12월 사업에 참여한 동아리 전체가 한 자리에 모인 박람회를 끝으로 매듭이 지어졌던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은, 현재로서는 올해 본격적인 사업 구상을 하기 전 시점이다. 그러나 사업 이후로도 이들 공간의 대표 및 운영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의욕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사업을 통해 신규로 사진동아리를 출범시켰던 ‘버텀 라인’ 측은 “그간 우리는 생활문화가 아닌 전문예술문화 분야에서 활동을 했지만, 그 전부터 그 활동 자체를 사진 등의 기록으로 남겼으면 했던 바람이 있었는데, 사업에 참여하면서 새로이 사진 동아리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 사진작가들이 강의를 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공간에 모일 수 있게끔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사실 이 보다 더 큰 성과가 있다면, 19개 공간을 통해 한자리에 모이게된 동아리들이 서로 교류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서담재’ 측은 “그간 독서활동을 통한 문화활동을 해왔지만 공간 자체는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고 있었는데, 전부터 알고는 지냈지만 사업을 통해 좀 더 잦아진 '버텀 라인'과의 교류를 사례로 들었다. 버텀라인의  도움을 받아 미선 레라타 리, 유승호 등 유명 재즈 뮤지션들을 데리고 연주하기도 하는 등 동아리 간 교류활동이 좀 더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지난 12월 문화재단이 이들 동아리들을 모아 박람회를 했던 것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문화재단 관계자는 “당시 박람회는 계획에 없었으나, 내부에서 갑자기 해보자는 의견이 나와 급하게 치러진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만남의 시간을 공간과 동아리들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확인하며 ‘하길 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 한계와 시행착오, 생활문화 정착의 ‘과정’   인천에도 전문가들이 아닌 시민들이 직접 만들고 영유하는 ‘생활문화’라는 개념이 아직 크게 자리 잡지 못해 ‘시행착오’도 없지 않다. 이날 모인 5곳의 공간운영자들 중 ‘버텀 라인’을 제외한 4곳의 경우 ‘자발적인 활동’을 전제로 하는 생활문화의 특성상 공연 등의 프로그램을 동반하는 경우 동아리 구성원들 중에서도 어색함 혹은 거부감을 보인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놀이터’ 측은 “공연 등 행사를 동반하는 경우 동아리 구성원들을 비롯한 시민들에게 이를 경험토록 유도하는 과정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기존 독서동아리가 존재했던 ‘서담재’는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동아리 일원들 중 본인 생각과 다른 방향이라 생각되면 참여하지 않는 등 ‘양면성’이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공통적으로는 이들 역시 본업이 있는 상황에서 동아리 활동을 직접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또 동아리 자체의 활동은 안정화됐으나 공간 유지에 어려움을 겪은 케이스도 있다. ‘놀이터’의 경우 동아리 활동은 이제 어느 정도 정착화를 이루어 냈으나, 공단 주변 상황 등 복합적인 요인 때문에 남동구에서 자리 잡는 데에는 실패해 남구에서 다시 정착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다른 곳들 중에서도 공간이 임차 형식인 경우 최근 인천 관내 일부에서 나타나는 임대료 폭등 현상은 향후 공간의 존치에 큰 위협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천문화재단이 이번 아지트 사업 외에 기존 동아리 지원 사업이 있었는데 그 지원사업과의 차이점이 다소 불분명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공간이 있다는 이유로 내용이 없는 지원을 할 수는 없다보니 문화재단이 ‘공간 차원에서 동아리를 동반해야 한다’는 일종의 대안을 세운 것인데 이 때문에 기존 동아리 지원사업과의 분명한 경계성이 다소 모호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인천문화재단 측은 "큰 틀에서는 동아리 지원사업과 달리 공간을 베이스로 한다는 것을 전제로 차별점을 찾을 것”이라며 “지난해 사업 역시 그런 이유로 동아리 자체에 지원을 한 것이 아니라, 공간의 운영자에게 지원을 해 그들로부터 지원된 예산이 쓰이도록 했다”고 밝혔다.   동네방네 아지트 중구 산책단의 활동 모습. 동아리 일원들이 모여 공간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으로 역시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던 것이다. ⓒ배영수   ◆ 확실한 ‘의지’와 ‘동기부여’ 만으로도 ‘상당한 성과’   그러나 그런 어려움이나 시행착오 등에도 불구하고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이 참여 공간들에게 ‘동기 부여’ 내지는 ‘의지력 향상’을 도모해 어느 정도 성공시켰다는 것은 사업의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 무엇보다 참여한 공간들이 “올해 예산 지원을 받건 아니건, 동아리는 계속 유지시킬 생각”이라는 데에 입을 모았다.   ‘버텀 라인’ 측은 “물론 문화재단이 우리한테 지원을 좀 계속 해줬으면 하는 알량한 바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지난해 사진동아리에서 함께 했던 일원들이 ‘올해만 하고 끝나면 배우다 만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피드백을 보내오고 있다”라며 “재단의 지원은 그간 사진을 봐주는 강사들의 강의비용으로 주로 지출됐는데, 재단의 지원이 없어진다 해도 개인적 지출 혹은 각출을 해서라도 동아리를 지속시킬 생각”이라 밝혔다.   ‘서담재’, ‘놀이터’, ‘돌멩이국도서관’ 등 책을 메인으로 하는 공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담재’ 측은 “사업에 재선정될지 여부는 아직 확신할 수 없고 만약 지원이 끊어진다면 지원을 받을 때보다는 한계점이 좀 더 생길 것은 같지만, 이미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 전에도 자체 활동해온 동아리인 만큼 계속 지속할 생각”이라 전했다. 다만, 이후 타 단체들 중 몇에게도 추가 확인해본 결과, 19개 공간이 앞으로도 지속적인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의 여부는 단체 별로 생각이 좀 달랐다. 자신들에게 지속적인 지원을 했으면 하는 공간들이 있는가 하면, 일부는 “예산이 좀 줄더라도 지원 공간을 늘리면서 분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보였다. 소수는 “올해 지원은 아예 새로운 공간을 추가로 발굴하는 것에 가장 우선적인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문화재단 의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인천문화재단 측은 “처음 이 사업이 출발할 당시 공간의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출발했는데, 우려했던 바 보다는 향후 재정지원에 상관없이 공간에서 계속 동아리 활동을 하고 그 가운데서는 이를 확장시켜보겠다는 의지를 가진 공간들도 있었다”면서 “보다 큰 성과들은 이후 더 명확해질 것”이라 밝혔다.  

송림동의 과거와 현재, 책속에 담기다

도시생활사 조사보고서 '인천의 오래된 동네 송림동' 발간

인천의 대표적인 원도심 지역인 송림동에 대한 일 년간의 도시생활사 조사 결과물이 나왔다. 동구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도시생활사 조사 결과물인 ‘인천의 오래된 동네 송림동’ 보고서가 발간됐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2016년 송림동 재개발구역 일부가 뉴스테이로 선정되면서, 오랫동안 주민들이 품고 지켜온 송림동의 다양한 이야기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이를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지난해 2월부터 추진됐다. 보고서에는 송림동에 살았던 사람들과 현재 사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와 자료가 한데 모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송림동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특정 성씨가 대대로 거주한 세거지였다. 개항 이후 조계지로부터 밀려난 조선인들의 이주로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송림동에서는 산업이 크게 발전했다. 광복 이후 일제가 운영하던 공장들이 문을 닫자 한국인들이 세운 공장들이 주변에 크게 자리 잡았다. 지리적인 부분에 힘입어 목재산업이 발전하기도 했다. 이후 송림동의 산업이 발전하면서 가옥이 늘고 학교와 종교시설, 시장 등이 주변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번 조사는 고서와 옛날 신문, 사진 등을 모은 기초조사를 토대로 진행됐으며, 역사서에 나오지 않는 부분은 주민 인터뷰 등을 통해 채워졌다.  특히 지금은 사라졌지만 전쟁 이후 교육의 한 축을 담당했던 공민학교 관계자와 송림동을 지키는 노포 주인 등의 인터뷰도 실려 눈길을 끈다. 구 관계자는 “앞으로 수도국산과 수문통이 있었던 송현동, 배다리마을이라고 불리던 금곡·창영동 등 동구 지역을 5개의 권역으로 나눠 조사하고 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라며 “보고서가 모두 발간되면 개항 이후 근대도시로 발돋움했던 인천과 동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송도 LNG기지 누출사고, 직원들 ‘근무태만’이 원인

가스공사 감사실 “5시간 이상 자리 비우는 등 기강 해이”

송도 LNG기지. ⓒ한국가스공사   지난해 11월 발생해 인근 송도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든 LNG(천연가스)기지 가스 누출사고의 원인이 ‘직원들의 근무 태만’으로 나타났다.   14일 가스공사 감사실이 국회에 제출한 ‘인천생산기지 저장탱크 가스 누출사고 특정감사 결과 보고’에 따르면, 감사실은 사고 원인에 대해 직원들의 근무 기강 해이 및 관리감독 소홀로 적시했다.   당시 사고는 LNG를 선박에서 저장탱크로 옮기던 가스공사 직원들이 저장탱크가 꽉 찬 사실을 모른 채로 LNG를 계속 주입하다 결국 LNG가 외부로 누출되며 일어났다.   보고에 따르면 당시 중앙조정실에서 관련 설비를 감시해야 하는 직원 4명은 규정상 11시간을 근무해야 하나 자기들끼리 순번을 정해 2시간씩 교대 근무했다. 그런데 근무 중 저장탱크의 LNG 하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액위측정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또 하역설비 담당자도 감시업무를 소홀히 해 측정장치가 고장 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설비 운전을 총괄하는 1공장, 2공장 생산담당관 두 명은 각각 5시간여 동안 자리를 비우면서 하역작업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았던 것으로도 나타났다.   보고에 따르면 당시 액위측정장치 2개 중 1개가 이미 고장 상태였고 다른 1개 역시 하역작업 6시간 동안 무려 4차례나 오작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저장탱크가 가득 찰 경우 충전을 중단시키는 긴급차단설비를 임의로 꺼둔 상태였던 것으로도 알려져 총체적으로 기강이 안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기지본부장은 생산담당관이 자리를 비운 사실을 알고서도 이를 보고에서 누락하는 관리감독 소홀 내용을 은폐하려는 시도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스공사 측은 “해당 사고로 탱크 정밀점검과 보수 등에 최소 27억 원에서 최대 96억 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직원들의 근무태만 자체가 불법행위에 의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라고 볼 수 없는 만큼 구상권을 청구할 수 없어 지역사회 차원에서 불만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감사실은 “사고와 관련해 정직(1~3개월) 3명, 감봉 4명, 견책 7명, 경고 9명 등 23명에 대한 신분상의 조치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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