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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

에스페란자의 위대한 항해
접근을 허용치 않은 아마존의 산호..

(20) 열리지 않는 바다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에스페란자호 항해사 김연식씨(34)와 함께 하는 <위대한 항해>는 지난해 3월부터 격주(10월부터 3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환경감시 선박 에스페란자호에서 부딪치며 겪는 현장의 이야기를 한국인 최초의 그린피스 항해사의 눈으로 보여드립니다.  <비내리는 에스페란자 호 갑판에 우산을 쓴 선원과 잠수정이 있다>   에스페란자는 브라질 아마존 하구 산호지대를 최초로 수중 촬영합니다. 하구 도시 마카파에서 촬영장비와 유인잠수정, 사진사, 연구자 등을 태우고 바다로 향했습니다. 잠수정은 캐나다의 누이트코(Nuytco)라는 업체에서 잠시 빌렸습니다. 2인용 잠수정과 비상시 구조용 1인 잠수정 등 두 척입니다. 물속은 전파가 통과하지 못합니다. 음파로 통신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잠수정과 에스페란자에 각각 음파를 보내고 받는 장치를 달았습니다. 둘 사이 대화는 어렸을 적 종이컵에 실을 달아 만든 전화기처럼 둔탁합니다. ‘에스페란자’라는 소리가 ‘에드베란다’로 들립니다. 대화가 잘 통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기대가 큽니다.   부두에 걸어둔 굵은 밧줄을 풀고 강물의 흐름을 따라 뱃머리를 돌렸습니다. 프로펠러가 돌자 강바닥에 있던 뿌연 침전물이 수면위로 올라왔습니다. 배는 천천히 강물을 따라 바다로 향했습니다. 이틀을 항해해야 닿습니다. 강을 항해하는 내내 한두 명이 탄 작은 보트들이 배 앞을 질러갔습니다. 대도시 마카파 주변에 외따로 떨어져 사는 원주민들입니다. 현지 직원에게 물으니 전기도 없이 농사짓고 가축을 키우며 사는 사람들이 수를 파악할 수 없이 많답니다. 윗옷 없이 바지만 입은 남자들이 보트를 몰았습니다. 그린피스라고 써진 배가 지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습니다. 다른 세상의 만남입니다. 제 눈에 저들이 신기한 것처럼 그들도 우리가 신기할 것입니다.   이틀 먼 길이지만 사람들은 바쁩니다. 처음 배에 오른 연구자나 사진사들은 멀미를 앓을 게 뻔합니다. 다들 멀미약을 먹고 어지러운 와중에도 사뭇 진지합니다. 선장과 연구자 사이에 무거운 대화가 오갑니다. 건너 듣자하니 브라질 당국에서 잠수를 허가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근처에서 석유를 캐낼 다국적 석유기업과 이들에게 채굴권을 팔아넘길 정부에게 우리의 잠수 소식은 반갑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정부가 박수치기를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산호초 지대는 브라질 배타적 경제수역 밖입니다. 공해상이니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지 않지만 반대는 부담입니다. 반대를 무릅쓸지 허가를 기다릴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사실 여기까지 와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다 된 밥상을 물릴 수는 없지요.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걸로 봐서는 어떻게든 밀어 붙이려나 봅니다. 정부의 방침에 곧이곧대로 순응한다면, 저항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저항했기에 우리나라에 4,19와 6월 항쟁이 있었고, 지금 광화문 촛불시위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부와의 문제는 그린피스 브라질 사무소 직원들의 몫. 변호사와 학자들을 동원해 허가를 받아낼 것입니다. 선장 조엘은 항로를 유지하라 당부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니 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무언가에 막혀 주춤하다 앞으로 나아가기를 반복합니다. 때때로 좌우로 흔들리기도 합니다. 날씨가 좋지 않습니다. 브라질 사무소 직원 줄리아나와 마리는 녹초가 되었습니다. 멀미 때문에 한손에 양동이를 들고 다닙니다. 점심 식사 시간인데도 식당이 한가합니다. 가만 세어보니 종일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타실에 오르니 바람이 시속 40킬로미터로 붑니다. 갑판에 나가면 몸이 휘청합니다. 강을 벗어나니 물 빛깔은 미숫가루 같은 황토색에서 초록으로 다시 파랑으로 서서히 변합니다. 바다입니다. 파도가 점점 솟구칩니다.   -파도가 2미터를 넘으면 잠수함을 진수할 수 없어요. 위험합니다. 잠수함을 관리하는 제프가 선장에게 말했습니다. -배를 옆으로 돌려서 우현에서 파도를 받으면 좌현은 그나마 잔잔합니다. -조금 잔잔해져도 잠수정을 들어 올리는 크레인이 그만큼 흔들리니 결과적으로 충격은 마찬가지입니다. 2미터 이상은 안돼요.   날씨 때문에 다들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대화는 점점 딱딱해집니다. 거친 날씨로 예민한 선원들, 파도로 인해 불투명해진 잠수정 진수, 게다가 브라질 정부의 반대까지. 부푼 마음으로 항구를 떠났건만 하루 만에 상황이 뒤집혔습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습니다. 배는 빈 바다를 떠돕니다. 적도의 바다는 주로 잔잔하기 마련인데 하필 이런 때 날씨가 돕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 다행히 브라질 정부의 잠수 허가를 받았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습니다. 정부의 반대쯤이야 무시할 수 있지만, 날씨는 거스를 수 없습니다. 배는 산호초 일대를 오가며 음파탐지기로 실제 수심을 측정하는 일로 소일합니다. 해도의 수심은 엉뚱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이틀. 이틀이 지나면 첫 번째 탐사를 마치고 항구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한주가 지나야 두 번째 탐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다음 기회가 있다지만 저 아래 바다에 뭐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서 결과를 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입니다. 다음 주에 날씨가 좋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입니다.   결국 선장 조엘은 잠수정대신 수중 카메라를 내려 보내기로 했습니다. 굵은 케이블에 연결되어 수심 600미터까지 내려갈 수 있는 카메라입니다. 배에서 케이블을 올리고 내려 높이를 조절할 뿐, 스스로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그저 아래 무어가 있는지 확인하자는 심정입니다. 카메라는 갑판을 떠나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배가 흔들리는 바람에 수면 위에서 선체를 툭 치더니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선원들이 수중 카메라를 진수하고 있다>   수심이 80미터입니다. 10미터, 20미터, 30미터. 천천히 줄을 풀었습니다. 다들 모니터 뒤에서 숨죽입니다. 60미터, 70미터, 80미터, 그리고 90미터가 되자 화면에 뭐가 나타났습니다. 산호초인 것 같다 싶었는데, 순간 배가 흔들리면서 화면이 툭 꺼졌습니다. 뭐가 잘못되었나 싶어 줄을 감아올렸더니 카메라는 온데간데없이 줄 끝이 끊어져서 올라왔습니다. 카메라가 바위틈에 끼었거나, 줄에 부하가 심하게 걸린 모양입니다. 뜯어진 줄 끝을 보니 허망했습니다. 단순히 카메라를 잃어버린 게 아닙니다. 이제 날씨만 바라봐야 한다는 것,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확인된 산호초 지대, 거기까지 닿을 수 있는 잠수정, 손발을 맞춘 선원들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보였지만 바다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날씨 앞에서 멈춰야했습니다. 거듭 깨닫습니다. 자연을 이겨낼 수는 없습니다. 에스페란자는 풀이 죽은 채 근처 도시 벨렘(Belem)으로 향했습니다. 배는 어디 경기에서 처참히 패배한 선수들이 탄 것처럼 내내 조용했습니다. <통신사 텍사스가 수중 카메라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금요시단
시인과 세상의 따뜻한 교감 '영숙이'

[금요시단] 영숙이 / 문성해

영숙이                                            문 성 해     나를 거쳐간 이름 중에는 유독 영숙이가 많다 중학교때 간질을 앓던 내 의자를 붙들고 안 넘어가려 애를 쓰던 내 짝 영숙이와 고등학교 때 담을 같이 쓰던 이웃집 영숙이와 그 애  집에 놀러갔다 영숙이 몰래 내 머리를 빗겨주던 그 영숙이 오빠와 결혼해서는 죽어라 일만 하다 어느 날 불쑥 절에 들어간 영숙이와 이즈음은 김포에서 내게로 두 시간이나 차를 타고 와서는 시를 배우고 가는 혈색이 안 좋은 나더러 사슴피를 마셔보라는 사슴 목장 주인인 영숙이도 있다 영숙이들은 서늘한 눈매와 다부진 입꼬리가 어딘가 닮아 있고 어느 땐가는 이들이 한 인물들 같아 내 과거를 다 안다며 불쑥불쑥 증거를 들이밀 것 같고 나는 앞으로 그 이름 앞에서는 정직해져야만 할 것 같고 한결같아야만 할 것 같고 앞으로 두어 명의 영숙이면 이번 생도 끝물이란 절망에 낯선 이들을 알기조차 꺼려진다 이 밤 영숙이는 또 어떤 이름과 밤을 나누는가 성도 얼굴도 다른 그이들이 몸에 영숙이를 담고 와서 내게 웃음과 주름을 주고 갔음을 생각하는 밤 나는 살아 영숙이와 나눈 끼니 수와 같이 보낸 밤의 수를 헤아려본다 그리고 먼 은하수 물결처럼 흘러갔을 영숙이들과 이 땅에서 내가 끝내는 못 만나고 갈 수많은 영숙이들도 생각한다                                                  문성해 시집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에서   <시 감상>   영숙이는 참 흔한 우리나라 이름이다. 옛날에는 여자이름에 유독 ‘숙’자와 ‘순’자 그리고 ‘자’자로 끝나는 이름이 많았다. 정숙이, 경숙이, 남숙이, 진숙이... ‘영숙’이란 이름은 더 흔한 것 같았다. 남자인 내가 기억하는 이름 중에도 영숙이는 있다. 유년시절 양지바른 흙 담장 아래서 사금파리를 모아놓고 같이 놀던 어릴 적 동무 이름이 영숙이였다. 언제 이사 갔는지 유년의 소꿉장난과 흙 담장 아래 따뜻하게 비추던 햇살과 사금파리의 기억만 남겨놓고 영숙이는 떠났다. 지금도 영숙이 이름과 그 단발머리와 얼굴 윤곽은 또렷하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영숙이는 곁을 스쳐 지나갔다. 영숙이와 연애의 추억을 간직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 경우는 내게 없었지만 한 반에 영숙이가 있었고 한 모임에 영숙이가 있었다. 시인 문성해는 여자로서 얼마나 많은 영숙이를 친구로, 선후배로 혹은 동료로 만났을까. 영숙이와 시인과의 관계는 곧 시인과 세상과의 관계요 인연이다. 영숙이와 함께한 삶은 곧 시인의 역사가 되고 삶의 내용이 되어 있다. 이 시에 등장한 영숙이들은 삶의 요소요소에서 시인에게 깨달음을 주고 의미를 주는 ‘환유’로서의 영숙이다. 시인이 만났던 다른 모든 사람들이 영숙이로 대변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경작하고 추억을 쌓고 영감을 얻으며 살아간다. 이 나라를 건설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며 살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이름 영숙이. 우리는 그 수많은 이름 영숙이, 정숙이, 경숙이, 철수, 정훈이, 영수들과 함께 앞으로도 이 땅의 어진 백성으로 영원히 살아가게 될 것이다.   * 문성해: 1965년 경북 문경 출생. 1998년 매일신문,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자라』,『아주 친근한 소용돌이』,『입술을 건너간 이름』,『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대구시협상. 김달진문학상부문 젊은시인상, 시산맥작품상 등 수상.        
김인자 작가의 할머니 꼬시기
"배꼽에다가 고리도 달았더라"

(123) 사랑터 찾은 댄스봉사단

? "배꼽 내놓고 춤추는 거 첨 봤네. 배꼽에다가 고리도 달았더라." "고리를 달았다고?" "응, 한 사람인가? 두 사람인가? 배꼽에다가 고리를 달았더라. 내가 눈이 침침해서 잘 못 봤는데 고리는 옷삔으로 매달았나? 으트게 배꼽에다가 고리를 매달았으까? 지금 생각해도 고거 참 신기하네." "이뿌든가 엄니? 고리 매단 배꼽이?" "몰러. 이쁜가는 모르것고 신기하드만. 내 생전에 배꼽을 내놓고 춤추는 걸 첨 봤다." "몇 명이나 왔든가 엄니?" "다섯인가? 여섯인가?가 왔는데 옷을 춥게 입었드라. 우는 죄다 벗었고 브라자 하나만 했드라. 한겨울인데 감기 무서운데 걱정이 되두만." "브라자만 입었다고?진짜로다?" "진짜지. 그럼. 내가 공갈을 치간? 입은걸 입었다고 하지, 안입었는데 입었다고 하까?" "우에는 브라자를 입고 아래는 그럼 뭘 입었든가 엄니?" "아래는 팬티를 입고 치마같은 거를 길게 종아리까지 내려 입었드라. 하늘 하늘한 것이 다리 종갈이가 죄다 비취드만. 위에는 브라자만 허고 감기 걸리믄 우짤라고. 그래도 밑에는 치마같은 거 비치는 거라도 입어서 우보다 아래가 들 춥갔다 생각했다, 내가." "비쳐?" "응, 비치드라. 팬티가 벼." "위에는 머 입었어? 부라자했어?" "응,부라자만 했어." "이뻤겄네. 자신들 있으니까 죄다 내놨을거 아녀?" "이뿌지도 않고 그냥 그래. 쪽지고 한복 입은 여자도 오고. 내 보기에는 브라자만 찬 여자들보다 쪽진 여자들이 곱상허니 이뿌드만." ? 심계옥엄니가 다니시는 치매센터인 사랑터에 댄스봉사단이 오셨나보다. 심계옥엄니는 배꼽 내놓고 춤추는 걸 처음 봤다며 한 시간째 계속 뭣을 입고 엉디를 으트게 흔든다며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세세하게 설명을 하신다. 내 생전에 배꼽를 내놓고 춤추는 거 처음 봤다면서. ? "할머니, 누가 왔다고?" 큰딸이 할머니에게 누가 왔냐고 묻자 심계옥엄니 신나서 또 설명하신다. "봉사단이래." "근데 그렇게 배꼽을 내놓고 해! ?" "그러게?위에는 브라자를 입었더라. 그리고?밑에는." 심계옥엄니 다시 또 시작되셨다. ? "이거 볼래? 내가 만든거다." 배꼽춤 얘기를 신나게 하시던 심계옥엄니 이번엔 방안에서 종이시계를 들고 나오신다. "내가 이거 만들고 나와서 화장실가서 손씻고 나오는데 핑 돌드라." "뭐라고? 엄니? 어디 안 좋으셔?" 깜짝 놀라 엄니 안색을 살피니 여느때와 달리 핏기가 없어보이신다. "그런건지 어떤건지 이거 만드는게 만만치않아. 바짝 신경을 쓰고 맹글어서 그런가? 이거 다 만들고 손닦으러 화장실 가는데 팽 돌더라고. 우리 센터에 구십 넷 먹은 화장실 자꾸만 가는 할무니가 있는데 그 할무니꺼는 선생님이 다 만들어줘." "엄니도 선생님 보고 좀 해달라고 하지 왜?" "에그, 내것은 내가 해야지. 선생님들이 그 많은걸 으트게 다 해줘? 근데 이거 몣 시래? 요즘 벨거 다 허래. 그래도 요즘 한문선생님이 안 와서 다행이야." "왜 엄니 한문선생님이 오는 거 싫어?" "손꼬락도 아픈데 자꾸만 글씨를 쓰래잖어. 왜케 손꾸락이 아프지?. 아까 배꼽내놓고 춤추는 여자들 헌테 박수를 너무 많이 쳤나? 손등도 아프고 손꾸락도 아프네." "엄니 손 대봐. 적당히 치지. 뭘 그렇게 열심히 쳤어?" "다들 쳐다만 보구 있길래 나라도 열심히 박수쳐줬지. 배꼽 내놓고 춤추는거 부끄러울까봐서.
새 이야기
조류 등장의 혁명적 단서, 깃털공룡

(25) 조류의 진화

(1) 시조새 이전의 진화 조류는 파충류로부터 진화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오랜 지질시대를 거치면서 파충류의 일부가 조류로 진화된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들이 발견되었다. 그 가장 오래된 증거는 파충류의 조상형인 조룡류(祖龍類, Archosauria;총칭하여 공룡 <Dinosauria>이라고 한다)에 속하는 조치목(槽齒目;Thecodontia)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은 이미 두 다리로 달리며 1억 9000만 년 전에 살았다. 이어서 나타난 위악목(僞鰐目;Pseudosuchia)은 새처럼 속이 빈 가벼운 뼈를 가지고 두 다리로 다녔다. 몸길이 약 3.6m인 오르니토수쿠스(Ornithosuchus)가 대표적이다. 이들로부터 그 다음의 용반목(龍盤目, Saurischia)이 진화된 것은 1억 6000만 년 전부터이고, 역시 두 다리로 다녔던 오르니톨레스테스(Ornitholestes)는 북아메리카의 쥐라기에서 백악기(1억 3000만년 전∼2000만년 전)에 걸쳐 살았던, 몸길이 2m 이하인 종이다. 또 아메리카, 아시아에서는 타조와 흡사한 2.5m의 초식성 오르니토미무스(Ornithomimus)가 백악기의 6000만년 전에 살았다. 다시 말하면 쥐라기에서 백악기에 걸쳐서 이미 파충류 중에는 이처럼 뼈 속이 비는 이각성(二脚性)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점점 새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진화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그 가운데 어느 한 계통이 시조새로 진화했을 것으로 추정 된다. 결국 큰 틀에서 중간 화석으로 판단되는 시조새는 발견되었지만 비늘이 깃털로 변하는 과정이나, 언제 온혈성이 되었는지, 또 어떻게 날 수 있게 되었는지, 물새나 타조와 같은 큰 새도 과연 시조새에서 진화된 것인지, 혹은 별도로 타조형 조상이 있었던 것인지 등은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파충류에서 새로 진화되는 과정> <시조새 화석> (2) 시조새 조류는 파충류에서 진화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억 3800만년전인 쥐라기 지층이 발견된 독일의 바이에른의 졸른호펜지방의 석회암층에서 출토된 3개의 시조새(아르케오프테릭스 Archaeopteryx)가 가장 오래된 화석으로 알려져 있다. 이 화석을 살펴보면 파충류와 조류의 형질을 반반씩 갖고 있다. 이 동물은 파충류와 비슷한 모습으로 크기는 대략 까마귀 정도로 작았으며, 두 발 보행을 하는 작은 공룡처럼 보인다. 그리고 두개골은 오늘날의 조류와는 달리 잘 발달된 이빨을 가지고 있으며, 목은 길고 가늘며 매우 유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척추는 비교적 단순한 모양이며 끝에 길고 잘 발달된 꼬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꼬리에는 양쪽으로 깃털이 달려있었다. 또한, 뒷다리 끝부분에는 발톱이 3개 있었고, 날개 모양을 하고 있는 앞다리는 날개의 모양을 가지고 있었지만 완전한 모양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중간에 발가락이 있기 때문이다. 가슴뼈는 조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용골돌기나 흉골의 발달이 미약한 점으로 미루어 지속적인 비행을 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형태적 특징을 근거로 일부 학자들은 시조새를 깃털이 잘 발달된 조류의 일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3) 시조새 이후의 진화 시조새 이후에는 조류의 화석이 매우 드물게 발견되고 있다. 그 이유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조류는 현실적으로 화석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악기의 지층에서 발견된 헤스페로르니스는 물에서 살았던 새로 추정되고 있는데 날개는 없지만 발로 헤엄친 것으로 추정되며 아직 이빨은 있었다. 그 밖의 화석에는 이렇다 할 자료가 남아 있지 않지만, 시노사우롭테릭스, 안키오르니스와 같은 깃털공룡이 발견되면서 깃털의 발달과 조류의 등장에 대한 혁명적인 단서가 되었다. (4) 백악기 화석조 ① 갈로르니스 Gallornis: 깃털의 화석만이 알려졌다. 1억 3500만 년 전의 대형 섭금류(涉禽類). ② 에날리오르니스 Enaliornis: 1억 2000만 년 전의 아비형 물새. ③ 헤스페로르니스 Hesperornis: 8800만 년 전의 아비형 물새. 날개는 퇴화되어 있었다. 3종이 알려져 있는데 시조새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이를 가졌다. ④ 이크티오르니스 Ichthyornis: 중형의 바다새. 헤스페로르니스와 같은 시대에 서식하였으며 6종이 알려져 있고 이빨은 없다. ⑤ 아파토르니스 Apatornis: 이크티오르니스와 비슷한 형태이면서 동시대의 종. ⑥ 바프토르니스 Baptornis: 논병아리형의 잠수조. 아파토르니스와 같은 시대에 서식하였다. (5) 신생대 제3기 화석조 ① 가스토르니스 Gastornis: 두루미목에 속하는 대형종으로, 다리가 길고 부리가 날카로운 육식조이다. 에오세까지 있었다. ② 다이아토리마 Diatoryma: 두루미목, 가스토르니스와 닮은 거대조로 에오세까지 있었다. ③ 포르스라코스 Phorsrachos와 브론토르니스 Brontornis: 두루미목에 속하는 무비력(無飛力)인 거대조. 올리고세까지 있었다. (6) 멸종된 조류 인류의 시대까지 서식하다가 멸종된 조류는 마다가스카르섬의 에피오르니스(Aepyornis), 뉴질랜드의 모아(moa;恐鳥, Dinornis), 인도양 마스카린제도의 무비력의 대형비둘기 도도(dodo)와 그 근사종 등이 있다. (7) 조류와 파충류, 포유류의 차이     파충류 조류 포유류 심장 구조 2심방 불완전2심실2심방 2심실(악어류) 2심방 2심실 2심방 2심실 체온 변화 변온 정온 정온 출산 방식 난생난태생(살무사) 난생 태생 척색 유무 척색 → 척추 척색 → 척추 척색 → 척추 골격(뼈) 단단하고 속이 차있음 속이 비어있음(날기에 유리) 단단하고 속이 차있음 이 이 있음 이 없음, 부리 발달 이 있음 질소배설물 요산 요산 요소 몸 표면 각질의 표피(비늘) 날개와 깃털(다리, 발은 비늘) 털로 덮여있음 <파충류, 조류, 포유류 비교>   김대환 인천야생조류연구회 회장 인하사대부고 생물교사    
말랑말랑 애덜이야기
2월, 텅 빈 교실에서 꾸는 꿈

제21화 학교의 2월달 - 서영원..

  학교에서 2월은 뒤늦게 만나는 연말과 같은 시간이다. 전년도 3월에 시작해서 한 해가 지난 2월까지가 한 학년도로 여겨지기 때문에 2월에 종업식 또는 졸업식을 해서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한 해가 끝난 기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분위기까지 연말처럼 들썩거리지는 않는다. 새해를 기다리는 기대나 설렘보다는 새해에는 어떤 학년과 업무를 맡을지, 또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지 긴장하는 것이 더 커서 비교적 조용하게 기다리는 시간이 먼저다.   잠깐의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는 것은 인사위원회를 거쳐 담당 학년, 반, 업무가 발표되고 나서다. 그 때서야 학교는 비로소 조금 시끌벅적하게 된다. 교실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현재 쓰고 있던 교실의 짐을 정리하고 이사하며 생기는 북적거림이다. 원래 가지고 있던 짐들에 더해 한 해 동안 살면서 쌓인 이런저런 자료들까지 더한 것을 모두 꺼내 놓으면 그 양이 생각보다 많음에 스스로 놀라게 된다. 그것들을 이고지고 층을 오르내려서 이동하거나, 어떨 때는 건물 자체를 옮겨서 이동하느라 꽤 힘을 빼게 된다. 물론, 4년을 한 학교에 있다가 다른 학교로 전근가기 위해 짐을 정리하는 일은 교실을 옮기는 것의 4배로 큰 일이 된다. 그럴 때면, 남편이나 부인, 아들, 딸에 심지어 조카들까지 동원되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된다. 모처럼 학교가 시끌벅적 해질만하지 않는가?   짐을 꺼내서 챙기고 새 교실로 옮기기만 해서 끝난다면 일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살았던 옛 교실에 짐을 빼서 텅 비게 되면 그 자리에 새로운 주인인 선생님과 아이들이 들어와 살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1년의 묵은 때를 빼고 깨끗이 넘겨 주는게 도리인지라 구석구석 대청소까지 해주어야 비로소 짐정리가 끝나게 된다. 한바탕 힘을 써서 짐을 옮기고 청소를 하느라 학교가 시끌벅적 한 때를 지나고 나면 이제는 머리를 쓰느라 조용한 정적의 시간이 찾아온다. 한 해 동안의 학급운영, 교육과정 운영 등을 고민하는 시간이다. 그 때가 되면 비로소 새롭게 옮겨 온 교실의 빈 의자와 책상, 그리고 허허벌판처럼 넓게 비어 있는 뒤쪽 학생작품 게시판이 눈에 들어온다. 저 빈 책상과 의자에 앉을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일지 걱정과 기대가 한꺼번에 밀려온다. 내가 운영해가고자 하는 학급의 목표가 과연 아이들과 맞을지에 대한 걱정이면서 한편으로는 한 해를 잘 살아나간 후 처음보다 성장해 있을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뿌듯해 할 것이라는 기대가 묘하게 함께 솟아오르는 것이다. 아직 만나지도 않은 아이들의 1년 뒤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니 이보다 더한 김칫국이 어디 있게냐 싶기도 하지만, 그런 기대감이 있기에 학급운영에 대한 고민을 하고, 교육과정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색하는 것 같다. 이런 고민으로만 정적의 시간이 가득 차 있다면 2월은 아마 아이디어 내느라 힘들고,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행복한 기대가 섞인 즐거운 고민들로 꽉 찬 달 일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학급운영과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고민을 심도 있게 할 틈도 없이 담당업무에 대한 인수인계로 인해 머리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교사 본연의 임무는 학생교육 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업무에 치여서 남는 시간에 애들 가르친다는 자조 섞인 푸념도 있을 정도로 교사에게 돌아가는 업무의 양이 지나치게 많다. 물론, 모든 업무가 다 필요 없는 건 아니다. 아이들의 교육에 필요한 업무들도 있다. 이는 기꺼이 교육전문가인 교사들이 함께 해야 할 일이다. 문제는 업무가 주어져서 하고는 있지만 이걸 왜 학교에서 교사가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드는 일들이 일선 학교에 정말 많다는 것이다. 보여주기 식의 행사나 행정적인 일 또는 지역자치단체에서 해야 할 일, 혹은 관행적으로 쭉 해오던 불필요한 것 같은 일 등이 그런 일들에 속한다. 그런 일을 하고 있을 때면 ‘내가 이러려고 교사를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게 된다. 그런 일들을 점점 줄여나가서 학교에서 교사들이 담당하게 되는 업무들이 모두 교육과정 운영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일들로만 남게 하기 위해 현재도 교육청이나 일선 학교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갈 길이 아직은 멀다. 몇 번의 2월이 지나지 않았을 뿐인데, 어느 순간부터 2월에는 업무의 인수인계 대신 함께 할 같은 학년 선생님들과 한 해 동안 우리 학년을 어떻게 운영해 갈지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모으는 걸로 시간을 보내고 있기를 기대한다. 또, 함께 살 우리 반 아이들과 어떤 식으로 살아갈지 고민하는 것으로만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기를 희망한다. 수많은 2월을 계속 보내고 나서야 그렇게 된다면, 그 시간동안 만나게 될 아이들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으로 첫 인사를 해야 할 것이 염치없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이 빨리 오기를 2월의 텅 빈 교실에서 작게나마 바래본다. 그 바람이 슬픈 건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와서가 아니라, 2017학년도 담당 업무의 연간계획서를 쓰면서 그런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에 그렇다. 비 때문이 아니라 꿈과 현실 때문에 괜시리 더 쓸쓸한 2월의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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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을 허용치 않은 아마존의 산호지대

(20) 열리지 않는 바다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에스페란자호 항해사 김연식씨(34)와 함께 하는 <위대한 항해>는 지난해 3월부터 격주(10월부터 3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환경감시 선박 에스페란자호에서 부딪치며 겪는 현장의 이야기를 한국인 최초의 그린피스 항해사의 눈으로 보여드립니다.  <비내리는 에스페란자 호 갑판에 우산을 쓴 선원과 잠수정이 있다>   에스페란자는 브라질 아마존 하구 산호지대를 최초로 수중 촬영합니다. 하구 도시 마카파에서 촬영장비와 유인잠수정, 사진사, 연구자 등을 태우고 바다로 향했습니다. 잠수정은 캐나다의 누이트코(Nuytco)라는 업체에서 잠시 빌렸습니다. 2인용 잠수정과 비상시 구조용 1인 잠수정 등 두 척입니다. 물속은 전파가 통과하지 못합니다. 음파로 통신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잠수정과 에스페란자에 각각 음파를 보내고 받는 장치를 달았습니다. 둘 사이 대화는 어렸을 적 종이컵에 실을 달아 만든 전화기처럼 둔탁합니다. ‘에스페란자’라는 소리가 ‘에드베란다’로 들립니다. 대화가 잘 통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기대가 큽니다.   부두에 걸어둔 굵은 밧줄을 풀고 강물의 흐름을 따라 뱃머리를 돌렸습니다. 프로펠러가 돌자 강바닥에 있던 뿌연 침전물이 수면위로 올라왔습니다. 배는 천천히 강물을 따라 바다로 향했습니다. 이틀을 항해해야 닿습니다. 강을 항해하는 내내 한두 명이 탄 작은 보트들이 배 앞을 질러갔습니다. 대도시 마카파 주변에 외따로 떨어져 사는 원주민들입니다. 현지 직원에게 물으니 전기도 없이 농사짓고 가축을 키우며 사는 사람들이 수를 파악할 수 없이 많답니다. 윗옷 없이 바지만 입은 남자들이 보트를 몰았습니다. 그린피스라고 써진 배가 지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습니다. 다른 세상의 만남입니다. 제 눈에 저들이 신기한 것처럼 그들도 우리가 신기할 것입니다.   이틀 먼 길이지만 사람들은 바쁩니다. 처음 배에 오른 연구자나 사진사들은 멀미를 앓을 게 뻔합니다. 다들 멀미약을 먹고 어지러운 와중에도 사뭇 진지합니다. 선장과 연구자 사이에 무거운 대화가 오갑니다. 건너 듣자하니 브라질 당국에서 잠수를 허가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근처에서 석유를 캐낼 다국적 석유기업과 이들에게 채굴권을 팔아넘길 정부에게 우리의 잠수 소식은 반갑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정부가 박수치기를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산호초 지대는 브라질 배타적 경제수역 밖입니다. 공해상이니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지 않지만 반대는 부담입니다. 반대를 무릅쓸지 허가를 기다릴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사실 여기까지 와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다 된 밥상을 물릴 수는 없지요.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걸로 봐서는 어떻게든 밀어 붙이려나 봅니다. 정부의 방침에 곧이곧대로 순응한다면, 저항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저항했기에 우리나라에 4,19와 6월 항쟁이 있었고, 지금 광화문 촛불시위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부와의 문제는 그린피스 브라질 사무소 직원들의 몫. 변호사와 학자들을 동원해 허가를 받아낼 것입니다. 선장 조엘은 항로를 유지하라 당부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니 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무언가에 막혀 주춤하다 앞으로 나아가기를 반복합니다. 때때로 좌우로 흔들리기도 합니다. 날씨가 좋지 않습니다. 브라질 사무소 직원 줄리아나와 마리는 녹초가 되었습니다. 멀미 때문에 한손에 양동이를 들고 다닙니다. 점심 식사 시간인데도 식당이 한가합니다. 가만 세어보니 종일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타실에 오르니 바람이 시속 40킬로미터로 붑니다. 갑판에 나가면 몸이 휘청합니다. 강을 벗어나니 물 빛깔은 미숫가루 같은 황토색에서 초록으로 다시 파랑으로 서서히 변합니다. 바다입니다. 파도가 점점 솟구칩니다.   -파도가 2미터를 넘으면 잠수함을 진수할 수 없어요. 위험합니다. 잠수함을 관리하는 제프가 선장에게 말했습니다. -배를 옆으로 돌려서 우현에서 파도를 받으면 좌현은 그나마 잔잔합니다. -조금 잔잔해져도 잠수정을 들어 올리는 크레인이 그만큼 흔들리니 결과적으로 충격은 마찬가지입니다. 2미터 이상은 안돼요.   날씨 때문에 다들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대화는 점점 딱딱해집니다. 거친 날씨로 예민한 선원들, 파도로 인해 불투명해진 잠수정 진수, 게다가 브라질 정부의 반대까지. 부푼 마음으로 항구를 떠났건만 하루 만에 상황이 뒤집혔습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습니다. 배는 빈 바다를 떠돕니다. 적도의 바다는 주로 잔잔하기 마련인데 하필 이런 때 날씨가 돕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 다행히 브라질 정부의 잠수 허가를 받았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습니다. 정부의 반대쯤이야 무시할 수 있지만, 날씨는 거스를 수 없습니다. 배는 산호초 일대를 오가며 음파탐지기로 실제 수심을 측정하는 일로 소일합니다. 해도의 수심은 엉뚱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이틀. 이틀이 지나면 첫 번째 탐사를 마치고 항구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한주가 지나야 두 번째 탐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다음 기회가 있다지만 저 아래 바다에 뭐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서 결과를 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입니다. 다음 주에 날씨가 좋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입니다.   결국 선장 조엘은 잠수정대신 수중 카메라를 내려 보내기로 했습니다. 굵은 케이블에 연결되어 수심 600미터까지 내려갈 수 있는 카메라입니다. 배에서 케이블을 올리고 내려 높이를 조절할 뿐, 스스로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그저 아래 무어가 있는지 확인하자는 심정입니다. 카메라는 갑판을 떠나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배가 흔들리는 바람에 수면 위에서 선체를 툭 치더니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선원들이 수중 카메라를 진수하고 있다>   수심이 80미터입니다. 10미터, 20미터, 30미터. 천천히 줄을 풀었습니다. 다들 모니터 뒤에서 숨죽입니다. 60미터, 70미터, 80미터, 그리고 90미터가 되자 화면에 뭐가 나타났습니다. 산호초인 것 같다 싶었는데, 순간 배가 흔들리면서 화면이 툭 꺼졌습니다. 뭐가 잘못되었나 싶어 줄을 감아올렸더니 카메라는 온데간데없이 줄 끝이 끊어져서 올라왔습니다. 카메라가 바위틈에 끼었거나, 줄에 부하가 심하게 걸린 모양입니다. 뜯어진 줄 끝을 보니 허망했습니다. 단순히 카메라를 잃어버린 게 아닙니다. 이제 날씨만 바라봐야 한다는 것,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확인된 산호초 지대, 거기까지 닿을 수 있는 잠수정, 손발을 맞춘 선원들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보였지만 바다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날씨 앞에서 멈춰야했습니다. 거듭 깨닫습니다. 자연을 이겨낼 수는 없습니다. 에스페란자는 풀이 죽은 채 근처 도시 벨렘(Belem)으로 향했습니다. 배는 어디 경기에서 처참히 패배한 선수들이 탄 것처럼 내내 조용했습니다. <통신사 텍사스가 수중 카메라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인천역 개발사업, 정작 참여할 업계는 ‘무관심’

인천시의 개항창조도시 재생사업 등 악영향 우려

인천역 복합 역사 개발 사업 계획도.   인천역 복합 역사 개발 사업이 예상보다 사업 타당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사업이 정부 공모사업인 개항창조도시 재생 사업과도 연관돼 있는 만큼 인천시가 애를 태우고 있다.   24일 인천시에 따르면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추진 중에 있는 인천역 복합역사 개발 사업에 대한 타당성 및 기본구상 용역이 다음 달 마무리될 예정이다. 용역은 코레일이 지난해 11월부터 용역을 발주해 역사 내 시설을 포함한 종합적인 건축 규모 등을 잡아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여기서 사업 타당성이 기준치 이상의 점수를 받는다면 올해 상반기 중으로는 사업자 공모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시는 올해 중 민간 사업자에 대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 내년 상반기에는 사업에 착수하는 방안을 계획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문제는 민간자본이 투입돼야 하는데 딱히 관심을 보이는 사업자가 없다는 것이다.   시 안팎의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015년 5월 시와 코레일이 인천역 복합개발 사업에 대한 협약을 맺은 이후 지금까지 투자 의향 혹은 관심을 보인 업체가 없었다. 보통 민간자본 투자가 진행되는 사업에 대해서는 공모 전 투자 의향을 두고 비공식적인 미팅 등을 통해 관심을 보이는 사업자가 얼마나 되는지 윤곽을 잡아보는 작업이 선행되는데, 이 작업에서 관심을 보인 사업자가 없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인천역 복합개발 사업이 업계에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증거로 볼 수 있는 부분”이라며 “시가 다음달 용역 결과를 낼 것으로 보이기에 그 전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사업성이 높지 않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같이 낮은 사업성 평가는 사업 내용 외에 최근의 부동산 경기 등 동향과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건설투자 증가율을 올해 4.3%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해 10.9%의 반도 안 되는 수치였다. 투자가 활발하지 않으면 그만큼 사업자가 나타나는 것도 쉽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다.   민간사업자가 나타나지 않아 사업이 만약 지지부진한 상황에 이를 경우 정부 공모 사업인 개항창조도시 재생 사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있음은 물론이다. 인천역 복합 역사 개발 사업이 인천항 8부두 창고를 활용해 조성되는 상상플랫폼 등 사업과 함께 개항창조도시 사업의 주요 골자를 이루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천역 복합 역사 개발은 시간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따라서 사업 속도가 느릴 경우 사업이 아예 불가능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7월 인천역 복합 역사 부지 2만 4,693㎡를 '입지규제 최소구역'으로 지정했다. 관련 법규 상 구역지정을 받은 부지는 이후 건폐율이나 용적률 등에 대한 규제가 상당수 완화되지만, 지정 3년 안에 착공하지 못했을 경우 구역 지정에 대한 효력이 사라지도록 돼 있다.   만약 사업이 지체돼 건폐율과 용적률에 대한 규제완화 혜택을 받지 못할 경우 자연스레 건물 높이와 조성 공간 등에 제약을 받게 되면서, 계획했던 방안이 모두 틀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코레일과 중간보고회를 한 차례 가질 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사업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계획 일부 혹은 상당수를 변경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민간 사업자의 관심이 적은 건 사실이나 우선은 코레일의 사업 의지가 비교적 강하다는 점에 희망을 걸고 있는 상황”이라 전했다.  

월미모노레일 사업 결국 ‘무산’... 우려가 현실로

시민사회 비판 및 갈등... 소송전도 이어질 듯

월미모노레일 현장 일선의 직원들. 시작부터 문제 투성이었던 모노레일 사업이 사실상 무산됨에 따라, 안전사고를 무릅쓰고 일하는 이들의 노력 역시 결국 허공으로 뜬 셈이다. ⓒ인천시   월미모노레일 사업이 사실상 무산됐다. 구 월미은하레일 사업까지 합하면 1천억 원이 넘는 시민 혈세를 투입하고도 실패해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한 만큼, 무산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 여론이 거세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법적 소송전까지 예상되고 있다.   23일 인천교통공사는 “어제(22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월미모노레일 사업을 진행하는 인천모노레일(주)와 협약 해지키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공사 관계자는 “오래 기다리면서 사업자의 사업 진행상황을 보고 검토한 결과 더 이상 더 이상 사업추진이 어렵겠다는 결론에 도달해 이사회서 협약해지를 결정키로 한 것”이라 전했다.   인천교통공사는 부실 시공 등 이유로 결국 실패하고 만 월미은하레일을 대체하기 위해, 지난 2015년 초 ‘가람스페이스’라는 업체를 모기업으로 하는 인천모노레일(주)와 사업 협약을 맺은 바 있다.   사업자가 총 공사비 190억 원을 부담하고 매년 8억 원의 임대료를 인천교통공사에 납부하는 대신 사업자가 20년간 운영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당시 협약의 주요 골자였다.   당시에도 이같은 협약에 대해 지역사회에서 논란이 많았다. 안상수 전 시장 당시 부실시공으로 더 이상 사업 진행이 어려워진 구 월미은하레일 사업을 대체하기 위해 전임 송영길 시장 시절 레일바이크로 이를 대체키로 했던 상황이었다. 당시 사업자 역시 가람스페이스였다.   그러나 2014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유정복 시장의 취임 이후 전차 규모만 소형화하는 것으로 모노레일 사업을 다시 하겠다고 밝혀 안 전 시장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지역사회의 우려가 깊었다. 무엇보다 변경 협약(레일바이크에서 소형 모노레일로 변경하는 내용)을 체결한 가람스페이스가, 정작 모노레일과 관련해서는 사업 실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술과 경험 면에서 일찍부터 문제가 제기돼 왔다.   이같은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당초 개통 시점으로 약속된 것은 지난해 8월이었지만, 사업자의 사정으로 개통 약속이 오는 5월로 미뤄졌는데, 5월 개통마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것이 공사 측 전언. 공사 관계자는 “5월에 개통을 하겠다면 전차 차량 총 70량 중 18량이 이달까지 제작돼야 했었음에도, 현재 시제 전차량 외에는 제작된 게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또 구 월미은하레일 사업 당시 설치됐던 기존 Y자형 레일은 지난해 11월 모두 철거됐지만, 새 모노레일에 도입하겠다는 T자형 레일은 아직 설치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이러한 정황을 모두 살펴봤을 때 사업자가 사업 의지가 불투명하거나 사업비 조달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교통공사 측 입장인 셈이다. 교통공사 측은 “현재로서는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사업자도 없는 상황”이라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유정복 시장(사진 가운데)이 월미모노레일 공사 현장을 시찰하며 수정 보완할 사항을 지시하던 모습. ⓒ인천시   반면 사업자 측인 인천모노레일(주)의 입장은 다르다. 재원 조달 등에는 문제가 없으며 교통공사로부터 시설 현황 등 자료를 넘겨받아 정지점검을 해야 하는데, 교통공사가 시설설비 자료를 3년째 주지 않고 정지점검을 못하게 하면서 자금 조달 등의 계획을 확정하지 못해 생긴 사태라는 것이다.   인천모노레일(주) 측은 “시설 현황 자료 등을 3년째 넘겨주지 않아 정상적으로 일을 해결하지 못한 만큼, 이중호 인천교통공사 사장 등 3명에 대해 업무방해 및 신용훼손 등 혐의로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역 정치권 및 시민사회에서는 월미모노레일 사업이 이러한 사태로 갈 것이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던 상황이다.   지난 2015년 유 시장이 당초 송 전 시장이 은하레일의 ‘대안’으로 계획했었던 레일바이크 사업에 대해 제동을 걸면서 이를 모노레일로 되돌려 놓을 당시, 인천시의회에서는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 지난 2015년 2월 인천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의 회의록에는 가람스페이스의 기술 경험, 그리고 자금 조달 등에 대해 이러한 우려의 반응이 기록돼 있기도 하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 이도형 전 의원(사퇴-현 국민의당 소속)은 “기술경험과 자금력조차 없는 업체가 모노레일 사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우려했던 바가 현실이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당시 사장이었던 이정호 전 교통공사 사장은 “가람스페이스 자체는 직접적인 모노레일 사업 실적은 없지만, 관련 실적이 있는 업체가 협력업체로 새로 들어와 있는 만큼,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관리감독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회의록을 참고해 보면 교통공사의 이같은 약속은 일종의 ‘허언’이 된 셈이다.   이 전 의원은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월미은하레일 문제는 지난 2010년 본인이 초선 시의원이 된 이후서부터 재선 후 사퇴 시점까지 계속 조사하고 의문을 제기했었던 부분”이었다면서 “기술력 부재 자본금 부재 등 종합적인 문제가 이미 있었음에도 사업자와 전 교통공사 사장 등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주장했었고 이에 본인과 지역사회에서는 지속적인 우려를 해왔는데 그게 현실이 된 것”이라 분석했다.   시민사회의 반응 역시 예상했다는 분위기다. 여기에 더 이상 애먼 시민 혈세가 투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완전 철거’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꽤 높은 상황.   인천교통공사의 사외이사를 겸하고 있는 박준복 참여예산센터 소장은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처음부터 이 사업이 결국 무산사태로 갈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면서 “월미은하레일 당시 853억 원이 이미 허공으로 뜨고, 또 이번 사업 무산과 관련해 행정손실과 재정적 손실이 있는 상황임에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비판했다.   현재 적지 않은 수의 지역 시민단체들은 ‘완전 철거론’에 의견을 모으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철거비용을 더 들여서라도 시민 혈세의 추가 투입은 이제 안 된다는 것과 친수공간 바로 위에 레일이 설치돼 있는 만큼 경관 및 새들의 분변 등으로 인한 흉물화 우려 등이 직접적인 이유다. 다만 월미도 상인 등으로 구성된 일부 단체들이 철거를 반대하고 있어 시민들 간 갈등 및 충돌의 우려도 적지 않다.  

‘무산 위기’ 청라 7호선 연장... 시는 '고뇌'

유 시장 ”총력전 펼쳐 하반기 안에 예타 통과하겠다“

    지하철 7호선의 청라 연장이 경제성 확보의 어려움으로 무산위기에 몰린 가운데, 유정복 시장은 하반기 안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할 수 있게 총력전을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22일 오전 서구청에서 열린 ‘시민행복 대화’에서 유 시장은 ”지하철 7호선 청라 연장은 정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사업“이라며, “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하반기 안에 예타를 받을 수 있게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테이블에서 청라총연합회 배석희 부회장은 ”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B/C(비용편익분석)값이 떨어지고 있다“며 ”예타가 계속 늦어지는 이유를 설명하라”고 시 관계자에게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에 시 관계자는 “예타 완료 시점을 1년 늦추는 대신 자체적으로 사업 계획을 보완하기로 했다”며 “1차 때 B/C값이 나오는 사례는 거의 없다. 정말 최선을 다하는 중이니 2차까지 기다려달라”고 호소했다.   서울지하철 7호선 청라 연장은 총 사업비 1조2380억원을 들여 서구의 석남역에서 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역까지 10.6㎞를 연결하는 사업이다. 부평구청역~석남역 구간은 2020년 개통 예정으로 지난해 착공해 공사가 진행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유 시장의 공통 공약인데다 서구의 최대 숙원사업 중 하나지만, 최근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쏟아지는 분위기다.   현재 청라국제도시는 인구가 8만 명을 넘어섰지만 외곽과 연결하는 대중교통 수단이 부족해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22일 서구청에서 열린 '시민행복 대화'에 참여한 서구 주민들 ©윤성문 기자 이 사업은 수도권매립지 사용연장에 대한 대가 성격도 일부 가지고 있는데, 환경부와 인천, 서울, 경기 4자는 매립지 사용기간 연장을 결정하면서 7호선 연장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립지 사용기한은 연장됐지만 인천의 현안에 대해 4자협의체가 외면하는 모양새를 띠며 7호선 연장을 비롯한 지역 사업들은 현재 표류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예타 조사에서는 편익비용분석 값이 사업성 판단의 기준인 1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열린 예타 조사 실무회의에서도 경제성이 낮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일단 기획재정부는 시의 의견이 타당하다면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KDI의 예타조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시가 추가·보완하는 사안에 대해 타당하다고 인정되면 예타조사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는 이미 비용을 최소화되도록 기존 노선을 변경하고 시티타워와 하나금융타운, 신세계복합쇼핑몰, 로봇랜드, 루원시티 등 각종 개발사업 13개를 포함시키며 총력을 다해 사업을 다시 기획했지만 예타의 문턱을 좀처럼 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청라국제도시의 개발수요도 최대치로 반영한 상태여서 이후의 뚜렷한 대책이나 다른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실제 이날 테이블에서도 시 관계자는 “최선을 다해 보완하겠다“는 대답 이외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한편 유 시장은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해결하기 쉬운 현안이었다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청라 주민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연결 가능성이 있다“며 ”시장님이 무조건 힘을 실어줘야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부평미군기지 반환 서둘러라"

평택 이전 빵공장 올해 말 완공예정... 조기반환, 장고개길 연내 개설 가능성

21일 오후 '시민행복 대화(부평구)'에 참여한 유정복 시장과 홍미영 구청장 ©윤성문 기자  부평미군기지 조기반환과 장고개길 도로 개설 사업이 다시금 수면위로 떠올랐다.   21일 오후 부평구청에서 열린 ‘시민행복 대화’에서 부평구의회 나상길 의원은 유정복 시장에게 “미군기지의 조속한 반환을 위해 시의 적극적인 협의를 요청한다”며 “국방부 장관을 만나서라도 확실한 답을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유 시장은 “당장 이 자리에서 확답을 드리는 것은 안 될 일이다. 하지만 굴포천이나 미군기지 이전 같은 협의가 필요한 사안은 정부나 관계자들과 적극적으로 협의해 설득해 나가도록 하겠다”라고 답했다.   부평미군기지는 부평구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군사시설로, 시는 지난 2013년 국방부와 '주한미군 반환공여지 관리·처분협약'을 체결했다. 시가 부평 미군기지(44만㎡)를 작년 말까지 돌려받고 2022년까지 토지 매입비 4,915억 원을 분납한다는 내용이다.   부평 미군기지가 이전할 평택 미군기지가 작년 말까지 조성된다는 구상 하에 정해진 반환 시기였다. 그러나 평택 미군기지 공사가 올해 말까지 미뤄졌고 부평미군기지 이전도 지연됐다.   하지만 홍미영 부평구청장은 지난 17일 ‘주민과의 대화’에서 “2월 초 부구청장 일행이 평택 미군기지 공사 현장을 방문한 결과, 마지막으로 옮길 빵공장 공정이 상당히 진행돼 올 하반기에 내부 공사가 마무리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건설 공정을 감안할 때 올해 하반기부터 부평미군기지 이전이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평택 미군기지 베이커리 공장 완공 목표일은 오는 12월말이다. 연말이면 내부 공사까지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시와 환경부, 구는 주한미군과 부평미군기지 반환을 놓고 환경오염 정화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   미군기지 옆 부영공원은 지난해 3월부터 시작한 토지정화 작업이 지난 10월 마무리되는 등 당초 계획보다 토지 정화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주민들에게 주간 개방을 하고 있다.   빠르면 올해 하반기 부평미군기지 부분 반환(22만8802㎡)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지며, 구는 숙원사업이던 장고개길 도로 개통에 대한 기대도 하고 있다.   부평미군기지에 막혀있는 장고개길은 부평구 부평동과 서구 가좌동을 잇는 길이 8㎞의 간선도로이다. 하지만 미군기지 구간이 개통되지 않아 오랫동안 주민들이 우회하는 불편을 겪어온 곳이다.   이날 나 의원은 조속한 장고개길 개통을 위해 1공구(620m)라도 부분 개통을 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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