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간탐사] '동산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과 사라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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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간탐사] '동산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과 사라진 마을
  • 김현석(시민과대안연구소 연구위원
  • 승인 2014.10.01 0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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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시각] 협약 '동구 발품' 연재 3

바람이 멈추지 않는 재능길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쉬지 않고 바람이 분다. 내가 앉아 있는 보도 옆, 한 열 걸음 떨어진 맨바닥에도 아주머니 두 분이 앉아 열심히 대화를 나눈다. 보도블록이 깔린 말끔한 길이건만 길가에 퍼질러 앉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땀이 식을 때쯤 슬그머니 다가가 슬쩍 질문을 던졌다. “여기 아파트 생기기 전에 마을이 있었나요?” “그냥 집들이 쭉 있었지” 대답이 퉁명스럽다. 다시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와 땅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 후로도 한참을 일어서지 못했던 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서다. 여긴 큰 아파트들만 있다. 아무것도 없다. 여긴 마을일까. 주거지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면 거주구역? 아파트단지? 울타리 넘어 안으로 들어가기도 쉽지 않은데(낭떠러지다) 굳이 멀리 돌아서 아파트 안을 들여다봐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맴돌았지만 딱히 뭘 찾기 위해 걸어보자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만큼 한 덩어리의 큰 바위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여기는 재능로. 낮지 않은 언덕의 끝부분이다. 사람들의 통행도 그리 많지 않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더니 길 건너편으로 우거진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송림녹지다. 이 길을 따라 두 개의 녹지가 조성돼 있다. 송림주공아파트 양쪽으로 조성된 녹지의 이름은 각각 ‘송림1녹지’, ‘송림2녹지’. 규모는 작지만 꽤 괜찮아 보인다. 송림2녹지 한가운데로 나무 계단이 놓인 길도 찾았다. 계단 끝은 담장으로 막혀 있다. 천천히 그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송림2녹지의 돌계단〉

학교로 둘러싸인 언덕

계단 옆으로 놓여 있는 몇 개의 벤치가 운치를 더해주지만 사람이 앉을 곳은 못된다. 언제부터 쌓였을지 모를 쓰레기들로 어지럽다. 마침 살짝 경계를 하며 내려오는 아주머니 한분을 붙잡고 담장의 정체에 대해 물어봤다. 선화여중이란다. 바로 옆은 선인중, 멀리 보이는 학교는 재능중. 실제로 계단의 끝은 학교 후문으로 통해 있다. 학생들이 다니기에는 조금 위험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문을 나서는 학생 한명을 만났다. 이 시간에 이어폰을 귀에 꽂고 여유롭게 걸어나오던 학생은 이 길로 등하교를 하기도 한다고 전해줬다. 이 위에 올라서 보니 학교들이 언덕 주변을 길게 감싸고 있다.


〈학교 후문과 통하는 송림2녹지의 계단〉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한 이곳 주변 학교들의 설립 시기는 이렇다. 재능중학교는 대헌중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1965년 인천무선고등학교 병설교로 개교했다. 그 옆에 붙어 있는 인천하이텍고등학교는 1971년 설립인가를 받은 운봉고등학교가 이름을 바꾼 곳이고, 도화기계공업고등학교는 1977년 설립된 운산기계공업고등학교가 전신이다. 선인중학교는 1952년 세워진 성광기술학교가 백인엽의 인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선화여자중학교는 1969년 처음 문을 열었다. 이외에도 재능고등학교, 인천전자마이스터고등학교 등이 재능로와 나란히 주변에 들어서 있다. 언덕 위에 쭉 늘어선 학교들을 바라보며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동네에 건설된 아파트가 지금의 송림동 동산 휴먼시아아파트다.
 

지도 속의 마을

동산 휴먼시아아파트는 동산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통해 조성됐다. 2003년 5월 6일 인천광역시장에 의해 처음 제안된 ‘동산학교뒤 주거환경개선지구 지정안’은 5월 26일 인천광역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에 상정됐고 5월 28일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제안이유는 아래와 같았다.

○ 본 지역은 1941년부터 1972년까지 구획정리사업이 시행되었으나 개별 필지로 환지되지 못하고 공유 필지로 환지됨으로써 30여년 간 재산권 행사 및 건축행위가 사실상 불가하여 불량건축물이 밀집하여 있는 지역으로

○ 도시기반시설(도로, 주차장, 공원 등)이 미비하고 소방도로가 확보되지 않아 화재 등 각종 재해발생시 대규모 피해가 우려되며 대2-29로인 “송림4동~박문로터리간 도로확장공사” 편입지역에 대한 지장물 철거가 이루어진 상태로 주변 미관이 극히 불량한 지역임.

○ “도시저소득주민의주거환경개선을위한임시조치법” 제4조의 규정에 의거 동 지역을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지정하여 공공시설 확충 및 노후 불량주택을 개량함으로써 주민 복지증진 및 주거환경개선과 도시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코자 도시계획결정(주거환경개선지구 지정)에 관한 의견을 청취코자 하는 사항임

(?동산학교뒤 주거환경개선지구 지정안 심사 보고서?, 인천광역시 의회)

지구 면적은 66,177㎡(20,019평), 건물 494동에 908세대, 2,404명이 거주하던 마을이었다. 개량방식은 ‘전면철거개량’을 선택했다. 안건은 1999년 입주를 완료한 송림5지구 주거환경개선지구내 주민들의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된 후 통과됐다. 건설위원회에서 나온 의원들의 주요 질의사항은 이렇다.

○ 강창규 위원 :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할 경우 기 입주한 송림5지구 주민민원 발생이 우려되는데?

○ 이강효 위원 : 인구가 밀집될 수 있는 3종으로 지정하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나?

○ 신영은 위원장 : 주민설명회, 공청회 적극 추진하여 시행 바람

(?동산학교뒤 주거환경개선지구 지정안 심사 보고서?, 인천광역시 의회)

2,404명이 살던 집을 헐어버리는 사업치곤 과정이 너무 짧게 끝났다. 그리고 이 구역에는 곧 선이 그어졌다. 선 안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지금 당장은 지도와 사진으로만 확인 가능하다.


〈출처 : ?동산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 정비계획변경 고시?, 동구청, 2006. 6. 7〉


〈송림동 동산 휴먼시아아파트 건설 지역의 1988년도 항공사진(출처 : 인천광역시)〉

아파트 건설 이전의 항공사진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집들 사이를 오가는 길이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집들의 형태는 지붕만으로는 알기 어렵다. 무엇보다 하나하나의 건축물에서 어떤 형태의 삶이 있었는지는 이제 알 수가 없다. 간판은 어떤 모양이었는지, 어떤 상점들이 있었는지, 대문은 무슨 모양이었고 집 앞을 어떻게 꾸미고 살았는지 이런 것들은 사실상 다 묻힌 셈이다. 그래서 사라질 마을에 대한 구체적인 경관 조사는 어떤 공간에서도 기본적으로 진행돼야 할 작업 중의 하나다. 더구나 길 위를 지나다녔을 사람들의 표정, 골목에 나와 뛰놀던 아이들의 모습을 더 이상 상상으로도 기억해내기 쉽지 않을 거다. 저 ‘불량건축물’에 살던 사람들은 이웃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며 한시대를 살았을까.

언덕을 내려오는 길에 차도에 고추를 말리던 할머니 한분한테 조심스럽게 다가가 주변 마을에 대해 물어봤다. “여기 낡은 집들이나 새로 고쳐주지 그런 건 뭐하러 조사하러 다녀” 구청 직원쯤으로 보였나. 역시 퉁명스럽다. 옆 동네 사는 할머니다. 근처에서 문어 다리를 삶던 노점상 아저씨가 흘낏 쳐다본다. 문어 다리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언덕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그런 부조화의 경계를 만든다.

여기서 사람들은 살았고 직업을 가졌고 학교를 다녔고 골목을 걸었다. 구멍가게를 하고 만화방을 하고 목욕탕을 하면서, 명절이면 가족들이 찾아오고 저녁이면 밥을 지었다. 어김없이 새벽마다 신문은 배달되고 골목길에서 개들이 낮잠을 잤을 그런 동네였을 텐데. 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게 아쉽다. 다들 어디로 떠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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