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파적 정책, 너무 힘든 이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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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파적 정책, 너무 힘든 이주민들
  • 이병기
  • 승인 2009.12.30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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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이 우선이다"

지난 18일 열린 인천지역 이주민 인권선언 발언대에 나온 캄보디아 결혼이민자 넥첸다씨.

지난 18일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아 인천이주운동연대는 중구 답동성당에서 '한국사회에 알린다' 주제로 인권선언문 낭독을 하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와 사랑마을 이주민센터,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등 인천의 이주민 관련 단체들과 진보정당들이 함께 힘을 모아 이주노동자를 위해 준비한 첫 행사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를 얻고 있다.

'세계 이주민의 날'은 1990년 12월18일 유엔총회에서 국제적 차원의 이주노동자 보호를 위해 법적 근거를 마련한 '이주노동자 권리협약'을 채택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이어오고 있다. 2009년 현재 42개국이 협약에 가입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가입하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가속화하면서 1980년대 중반부터 오늘까지 이주노동자들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2007년 그동안 시행되던 산업연수제를 폐지하고 외국인인력 수급정책을 고용허가제로 일원화해 시행하고 있으나,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수는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인천은 영세 중소기업들이 많아 전국에서도 상위권에 꼽을 만큼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생활하고 있다.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 통계에 따르면 올 10월 현재 인천의 등록 외국인 수는 경기도(30.5%, 265,841명)와 서울(29.8%, 259,709명), 경남(6.0%, 52,193)에 이어 5.5% 47,704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관련 전문가들은 등록 외국인 수 대비 인천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수를 1만명~1만5,000명 정도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인천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인천 부근에 위치한 출입국관리사무소들의 단속으로 타 지역보다 불안에 떨며 생활하는 일이 많다.

김기돈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팀장은 "인천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 김포출장소,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 등 3곳에서 단속을 나와 타 지역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들어 출입국관리소의 무리한 단속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단속 직원들이 여성의 머리채를 잡거나, 도주한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고 있다. 또한 단속 과정에서 피신하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심지어 사망까지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10년 일하고 115만원, 그래도 한국서 일하고 싶어

14년 전 한국에 온 리폰씨는 한 회사에서 10년째 일하고 있지만 월 115만원을 받는다. 그는 작업 중 손이 다쳐도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 리폰(Ripon, 35)씨는 14년 전 방글라데시를 떠나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 일곱 식구 중 장남이었던 그는 대학을 다니던 중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21살이란 어린 나이로 한국에 왔다. 그러나 3년 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됐고, 한 번 고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올 수 없다는 불안감에 14년째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장님이 망치 가져오라고 하면 의자를 가져가서 혼났어요. 말도 통하지 않고, 날씨가 추워 코피도 났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좋아요. 회사 직원들도 잘 대해줘요. 우리나라에 가면 일 없어서 한국에서 계속 일하고 싶어요."

리폰씨는 부평의 한 공장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다.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들 대부분은 사장의 친인척이라 근무 연수도 오래 됐고, 사이도 좋은 편이다. 오랜 시간 회사에서 마련한 기숙사에서 혼자 살고 있어 웬만한 살림살이는 주부 못지 않다.

그러나 근무한 지 10년이 지났건만 월급은 내국인 초봉 수준인 115만원을 받는다. 10년 동안 20만원이 늘었다. 물론 4대 보험은 가입되지 않았다. 리폰씨는 월급 중 60만원을 집에 보내고 남은 돈으로 한 달 생활비를 사용한다. 근무 경력에 비해 적은 액수의 월급이지만, 고향에 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리폰씨의 오른 손등은 물이 찬 것 처럼 둥글게 부풀어 있다. 현 직장에 다니기 전 사출 작업 과정에서 상처를 입었다. 오른 손바닥 피부는 화상으로 검게 죽어 있다. 다소 움직임이 불편해 보이지만, 일하기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한다. 다행히 전 사업주가 산재보험을 해줘 치료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아픈 흔적들은 리폰씨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작년까지는 3명의 외국인 동료들이 리폰씨와 함께 근무했다. 2명은 개인 사정으로 고국으로 돌아가고, 남은 1명은 출입국사무소 단속에 적발돼 강제 출국당했다. 다행히 리폰씨는 다친 손을 보여주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 왔어요. 손 아픈데 (모국으로)돌아가면 치료 못한다고 했어요. 지금 치료 하고 있다고 봐달라고 했어요. 내 친구만 잡아갔어요. 나쁜 사람 왔으면 말도 못하게 하고 데려가요. 새벽 2~3시, 5시 아무 때나 단속 나와요. 도망가다 잡히면 때리기도 해요."

리폰씨는 힘이 닿는 날까지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의 소원은 한국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비자를 발급해 가족들도 편하게 보고 올 수 있고, 당당한 대한민국의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주민도 계층이 있다?

김기돈 팀장은 "정부의 이주민 지원정책이 다문화 가정에만 쏠려 있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정부의 입장에서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지원정책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며 "예전에는 이주노동자나 결혼이민자를 아우르는 큰 틀의 이주민 정책을 추진했지만 최근에는 점점 세분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는 "근래에는 한국 사람과 결혼해 오래 사는 이주여성 위주의 정책들만 내놓고 있다"며 "그런 가운데 이주노동자들은 소외되고, 특히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편파적인 정책들이 이주사회의 등급을 나눠지게 한다"며 "이주민 정책들은 바닥부터 만들어져야 하지만, 수면에 드러난 사람들만 계속 수혜를 받게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더불어 출입국사무소의 무리한 검거 대신,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문화 가정, 부부의 '이해'가 중요

결혼이주여성들이 인천다문화가정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한국어 교실에 참여해 수업을 듣고 있다.

2009년 현재 인천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정의 수는 1만 가구가 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몇 년 전까지는 부평구나 남동구, 서구 등에서 거주율이 높았으나 최근 들어선 남구에서 생활하는 인구가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 2006년 문을 연 인천다문화가정지원센터는 보건복지부와 인천시의 지원을 받아 관내 결혼이주자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거의 모든 외국인들이 마찬가지로 결혼이주자들이 처음 한국에 와서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은 소통 문제. 지원센터는 5개 반 25명이 참여하는 한국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결혼이주자들을 대상으로 취업, 창업 지원활동도 운영하고 있다.

인천다문화가정지원센터에 근무하는 김동희씨는 "다문화 가정의 경우 부부가 평균적으로 10살 이상 차이가 난다"며 "남편들이 나이가 많아 시간이 지나면 이주여성들이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지원센터에서는 다문화 강사 양성과정을 통해 아이들에게 모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다문화 강사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12월 현재 이미 17명의 다문화 강사들이 관내 초등학교나 유치원 등에서 모국의 문화를 설명해주는 강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센터는 또 출산 직후 가장 힘들어 하는 결혼이주여성들을 직접 찾아가 아동 양육 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5개월 간 한국어 교육을 방문 지도한다.

그러나 결혼이주여성들이 이주노동자들에 비해 정부의 지원을 받기가 용이하다고는 하지만, 타향살이에서 오는 어려움은 별반 다르지 않다.

김동희씨는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 중 가장 많이 호소하는 부분이 '양보'에 관한 문제"라며 "문제가 생기면 화해하고 나아지려는 생각 없이 자신의 주장만 고집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남편은 집안일을 잘 하면 시부모에게 송금하겠다'는 입장이고, 아내는 '부모님께 먼저 송금해야 집안일을 열심히 할 수 있다'는 주장"이라며 "대부분의 다문화 가정이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타향에 홀로 나와 있는 아내들을 위해 남편에게 양보하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면에서 어쩔 수 없이 아내가 직장을 찾아 낮시간을 비워야 하는 다문화 가정에서는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남편들은 아내가 집에서 아이만을 키우는 결혼생활을 기대했지만, 현실과의 차이점에서 오는 문제점들은 상담으로도 풀기가 쉽지 않다.

김동희씨는 "결혼이주여성들은 외국인 신분이기 때문에 국적 취득 전에는 법적으로 도와주는 데 한계가 있다"며 "가끔씩 한국 가정이 잘 못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인천의 다문화가정 자녀, 지역별 중심학교로 도움

지난 4월 기준 인천의 다문화 가정 자녀 중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1,100명 정도. 인천시교육청에서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위해 지역별 중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지역별 중심학교는 관내 252개 학교 중 32개를 중심으로 벨트를 묶고, 다문화 교육 중심학교로 지정했다. 중심학교는 인근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에게 방과후 한국어 교육, 연합 체험학습 등을 제공한다.

교사들의 모임인 다문화 교육 연구회를 중심으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방안들을 모색하기도 한다.

신경순 인천시교육청 장학사는 "인천시교육청의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위한 정책들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우수사례로 뽑혀 벤치마킹 하기도 했다"며 "올해는 다문화 가정과 자원봉사자들이 교류하는 무지개 가족 결연 프로그램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다문화 가정 중에는 이혼한 경우도 종종 있어, 이들을 위해 가정통신문을 번역해주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며 "해마다 다문화 가정의 수가 늘고 예산도 증가하고 있어 더 체계적인 다문화 지원 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장학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외국인 근로자가 불법이든 아니든 자녀가 학교에 다니는 것은 상관 없습니다. 이웃 주민들이 이주노동자가 그 집에 살고 있다는 거주확인서만 작성해 주면 아이들이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어요. 그들이 스스로 나오기 전까지는 우리도 방법이 없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꼭 자녀들을 학교에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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