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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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일이!
  • 서진완
  • 승인 2017.01.18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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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그래도 웃을 수 밖에!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맥시코시티의 공원에서 ⓒ 서진완

숙소를 나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가는 길을 작은아이가 안내했다. 지하철에는 노선도가 번호별로 되어 있지만 역 이름과 해당 역을 상징하는 그림이 함께 표기되어 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을 위한 좋은 배려다. 멕시코시티의 지하철은 무척 복잡했다. 큰 스피커에 음악을 틀고 CD를 파는 사람들과 각종 물건을 파는 잡상인들이 외치는 소리에 지하철은 더 혼잡스럽다. 이들은 주위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어 보인다. 복잡한 지하철에서 이들이 틀어놓은 음악이나 물건 파는 외침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것은 큰 곤욕이다. 가끔 팬플룻이나 기타를 들고 타서 연주를 하는 사람들은 이들 잡상인에 비하면 듣기가 훨씬 좋다.

소깔로(Zocalo)역에서 나오자 헌법광장으로 불리며 스페인 지배 당시에 만들어졌다는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 주변에 서있는 성당과 고풍스런 건물들은 유럽의 어느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할 만큼 아름답다. 광장에는 엄청난 크기의 멕시코 국기가 바람에 펄럭거렸다. 이렇게 큰 국기를 본 적이 없다. 눈앞에 우뚝 서 있는 성당은 아메리카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식 성당으로 그 오래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만큼 장엄하고 고풍스럽다. 미사를 보고 있는 사람들 속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 여행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게 해주세요!“




소깔로 헌법 광장(위)과 그곳에 위치한 고풍스런 성당(아래)의 모습 ⓒ 서진완

성당 내부는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장식들이 금으로 꾸며져 있다. 시위대가 데모를 하고 대통령궁이 문을 닫았을 때에도 이곳 성당만큼은 항상 개방을 했다고 했다. 기도를 드리는 주민들의 모습은 언제나 경건해 보인다. 기도를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하게 성당 내부를 둘러보고 나왔다. 성당 근처 관광안내소에서 구한 지도와 주요 지점에 대한 안내에 따라 사원 터(Temple Mayor)와 예술궁전(Palacio de Bellas Artes), 그리고 예쁜 우체국 건물(Palacio de Correos)까지 둘러보았다. 아기자기한 분수와 우거진 나무가 질서정연하게 관리되어 있는 공원과 이곳에서 편히 쉬고 있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동안 지저분한 것으로 인식된 멕시코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밤새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렸다. 낮에는 괜찮다가 밤이 되면 비가 내리니 신기하기만 했다. 그리고 아침에는 다시 맑아졌다. 작은아이는 자신감이 많이 늘었을 뿐만 아니라 책임감도 강해졌다. 오늘도 작은 아이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메뚜기라는 뜻을 가진 차풀테펙(Chapultepec)역에 내려 공원으로 들어가자 선인장 위에 뱀을 물고 있는 독수리 상이 보였다. 멕시코 신화에 따르면, 선인장 위에 뱀을 물고 있는 곳에 국가를 지으라는 계시에 따라 건설한 곳이 바로 멕시코시티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뱀과 독수리 문양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차풀테펙 성의 모습 ⓒ 서진완

이곳 언덕위에 위치한 차플테펙성은 번성했던 아즈텍(Aztecs)문명과 이후 스페인과 독립에 이르는 멕시코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곳이다. 성에 올라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시내 전망은 멕시코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하게 한다.

멕시코인들의 기원에 해당하는 아즈텍문명, 스페인의 침략과 약탈, 그리고 토착화, 현대 미국문명의 영향 등은 멕시코의 역사를 관통하는 큰 흐름이다. 그 때문에, 이곳 멕시코시티에서 우리가 보았던 광장, 공원, 그리고 건축물들은 스페인의 영향을 받거나 현대식 건물들은 미국의 영향을 받았고, 멕시코의 것은 어쩌면 이렇게 흔적만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건물마다 멕시코 국기를 걸어서 외관은 스페인이나 미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것이 멕시코의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시내 곳곳에 엄청나게 많은 멕시코국기가 걸려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신들의 도시, 아이를 춤추게 했다.


테오티우아칸에서의 우리 가족 ⓒ 서진완

작은아이는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으로 가는 방법을 설명했다. “오빠는 무조건 내말을 들으면 돼!” 큰아이는 웃으면서 알았다는 눈치다. ‘신들의 도시(City of Gods)’ 테오티우아칸은 기원전 250년경부터 시작되었고 인구 20만 명의 고대도시는 천년의 영화를 누린 채 AD 700년경에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내부 분열 혹은 외부의 침략 등 다양한 추측만 있을 뿐 누구도 그 진실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멕시코 원주민인 아즈텍인들이 이곳을 발견한 이후에 이곳의 규모에 놀라서 신들의 도시로 숭배했고 태양과 달의 신화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면서 언덕위에 빼곡하게 들어찬 집들이 보였다. 2,300만 명이 모여 산다는 이곳 멕시코시티의 외곽으로 들어서자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하는 지역이 확연해졌다.
 

테오티우아칸 ⓒ 서진완

 
넓은 들판에 큰 피라미드가 보였다. 죽은 자들의 거리(Street of the Dead)가 나오고 그곳에서 태양의 피라미드(Pyramid of the Sun)를 향해 걸었다. 이 죽은 자들의 거리는 달의 피라미드(Pyramid of the Moon)를 향해 곧게 연결되어 있다. 중간 중간 계단이 있는 구조물을 지나면  태양의 피라미드 앞에서부터는 곧게 뻗은 길이 펼쳐졌다. “누군가 계획한 것 같네요!” 엄청난 규모지만, 누군가 치밀하게 계획한 것이라는 사실에 동의하게 된다. 가장 규모가 큰 태양의 피라미드는 높이 66m와 한쪽 변의 길이 230m로 기원전 200년경부터 세워졌다고 하는데 정면에 약 250개의 계단이 있어서 직접 올라가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올라서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는 꼭 해봐야 한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광경은 신들의 도시가 어떤 모습으로 계획되었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왜 이런 도시를 건설했는지 그 답을 알 수는 없지만 이 넓은 분지에 특별한 목적으로 계획되었을 것이다. 잠시 앉아 그곳을 바라보았다.

죽은 자들의 길은 까만 색 작은 자갈이 덮여 있다. 달의 피라미드까지 폭 40~100m의 대로로 5.5km 가량 뻗어있는데 현재 복원된 길은 2.5km 정도라고 한다. 신에게 바칠 인간 제물이 오가던 성스러운 길을 요즘은 우리와 같은 산 자들이 걸어가는 길로 바뀌었다. 길 양옆에는 피라미드, 사원, 주택 등이 건설되어 있었다는데 지금은 고대도시의 모습을 추측하게 하는 정도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달의 피라미드는 규모면에서 태양의 피라미드 보다는 작지만 이곳에서 갖는 의미는 더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테오티우아칸에 있는 거대한 피라미드. 역사에 다 기록되지 않은 많은 부분이 흔적으로 남아있다. ⓒ 서진완

피라미드 정면 중앙에 큰 제단을 지나 피라미드 앞에 섰다. 태양의 피라미드 보다 경사가 더 급해서 올라가는 것과 내려오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다. 개인적으로는 테오티우아칸의 전체 모습을 보기에는 여기가 더 인상적이다. 테오티우아칸에서 돌아와 아이들과 신의 도시를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 얘기를 했다. 누가 그곳을 건설했으며, 어떻게 이 땅에서 사라졌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이후 아즈텍인들이 1519년 코르테스(Cortes)에게 정복당하기 전까지 이곳을 계속 성스러운 곳으로 숭배해 왔으며, 그 이후의 역사만이 우리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작은아이를 따라 걷는 동안 큰아이는 이 길이 맞느냐고 자주 확인하는데, 그럴 때마다 작은아이는 자신 있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뒤를 따라가던 아내가 한마디 한다. “믿을만한데!” 최근에 여행을 하면서 읽은 책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자신의 강점을 개발하기보다는 자신의 약점을 고치려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생각났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이 잘하는 부분이 뭔지를 많이 얘기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작은아이에게 책임감을 부여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칭찬은 아이들을 춤추게 했다.

마침 파키스탄 친구가 페이스북에 현재의 교육시스템이라면서 올린 만화가 떠올랐다. 숲속의 동물학교에서 새, 원숭이, 코끼리, 물고기, 펭귄, 사자 등에게 선생님이 공정성을 위해 모두 똑같은 문제를 출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출제한 문제는 바로 "나무에 빨리 오르기"이다. 아마도 어떤 동물도 원숭이처럼 나무를 잘 탈 수는 없을 것이다. 나무에 잘 오르지 못하는 다른 동물들은 자신이 왜 오르지 못하는지 반성하고 고치려고 할 테고, 나무에 오를 수 없는 물고기나 펭귄은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한탄만 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교육시스템에서는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소홀한 것은 아닌지! 모두가 똑같이 나무에만 오르려고 하는 그 모습이 싫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이렇게 여행을 시작했는데, 결국 이런 지적은 나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힘이 된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도 나의 생각을 많이 이해하고 있다. 아이 둘은 서로 너무나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최대한 서로 다른 색깔과 향기가 있고, 그 색깔과 향기가 모두 아름답고 향기롭다는 점. 그래서 각각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아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라도 자신의 색깔과 향기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다.


이런 일이... 그래도...


푸에블라 시내. ⓒ 서진완
 
푸에블라(Puebla)는 멕시코시티에서 동남쪽에 있는 '천사의 도시'로 멕시코를 점령한 스페인사람들이 1531년에 멕시코에 세운 최초의 도시이며 당시 스페인 식민지시대 무역과 종교의 중심지로 멕시코시티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로 번영을 누려왔던 곳이기도 하다.

터미널에 내려서 숙소를 찾고, 방 열쇠를 받고 방값을 결제하려는 순간 지갑에 둔 신용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아내 카드로 우선 방값을 지불하고 방에 들어와서 예상되는 모든 곳을 찾았다. 이탈리아 아시시의 기억이 순간적으로 나서 지금까지 신용카드를 사용했던 것을 되짚어 보았다. 결국 소깔로 광장에서 현금을 찾았을 때 이후에는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급히 인터넷을 통해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조회해 보았다.

아뿔싸!

한국으로 전화를 해서 신용카드 분실신고부터 했다. 누군가 나의 카드로 21건의 사용했다는 내역을 확인했다. 확실하게 신용카드를 분실했다는 것이 확인된 순간이다.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한국에는 일요일 새벽인데 고맙게도 전화 연결이 되었고, 분실신고가 가능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고 비자(VISA) 긴급대체카드를 신청할 수 있는 방법을 듣고, 미국 비자카드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긴급카드를 신청했다. 지금 머무르고 있는 숙소 주소와 전화번호도 알려주었다.

아내는 허탈해했고, 아이들은 우리들 눈치를 보며 조용히 있었다. 긴급대체카드를 받을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려야 한다. 아내와 아이들을 번갈아가며 포옹을 했다. “액땜을 했다고 치자! 아자~ 아자~ 아자~” 어차피 벌어진 일을 가슴에 담아두는 것은 남은 여행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나를 보던 아내는 웃었다. 차라리 이렇게 웃는 것이 좋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작은아이가 조사한 대로 촐룰라(Cholula)고 가는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촐룰라는 푸에블라 근처에 있는 도시로 고대 톨텍문명의 중심지였으며, 스페인의 코르테스가 파괴한 피라미드가 있는 곳이다.

촐룰라로 가는 버스는 굴러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오래되었다. 덜컹거리는 소리 때문에 불안했지만, 촐룰라의 피라미드 앞이라며 손짓하는 운전기사에게 인사를 하고 내렸다. 멀리서 볼 때 언덕이 있고 그 위에 노란색 성당이 보였는데, 놀랍게도 이렇게 높은 언덕은 자연적인 언덕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이라니! 게다가 이집트의 기자 피라미드 보다 2배나 큰 규모의 피라미드였다. 우리가 보는 이 성당은 바로 이 피라미드 위에 지어졌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성당으로 가는 길옆에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가는 터널이 눈에 보였다. 입장료를 내려고 돈을 준비하는데 작은아이가 말했다. “일요일과 목요일은 이곳 박물관이 무료예요!”
 


출룰라 피라미드 위에서 시내를 내려다 보았다. ⓒ 서진완

기자 피라미드의 내부와는 또 다른 느낌의 피라미드를 둘러보고 나왔다. 그리고 성당이 위치한 언덕으로 올라갔다. 스페인 지배 시절, 피라미드가 보이는 곳에는 무조건 그 위에 바로 성당을 짓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365개의 성당이 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유난히 성당이 많다. 이곳의 역사를 듣고 큰아이는 "역사 위의 역사"라고 표현했다. 맞는 말이다. 엄청난 규모의 피라미드 유적들이 언덕 주변에 펼쳐져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피라미드는 더 이상 기억하지 않고, 성당만 바라보게 된 것이다. 

오늘이 일요일인지라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미사를 보느라 성당을 가득 메웠다. 언덕아래로 기념품을 파는 난전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여러 가게를 둘러보다 연세가 지긋하게 드신 할머니가 직접 만든 것으로 보이는 수공예 팔찌를 작은아이에게 사주었다.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역역했다. 부르는 가격대로 지불했다. 우리도 이렇게 늙을텐데... 아내는 돌아오는 길에 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고맙다고 했다. 모든 것이 다 고맙단다. 내가 더 고마운 것을…

아침 일찍 비자본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틀 후에 긴급대체카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웠다. 밤새 천둥번개에 소나기 그리고 우박까지 쏟아져서 우리 모두 놀라게 했었는데, 아침에는 감쪽같이 날씨가 좋아졌다. 숙소 앞에서 버스를 타고 푸에블라 구시가지로 향했다. 이곳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당시로 되돌아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시내 곳곳에 스페인의 식민지 유적들로 보이는 성당과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푸에블라 대성당의 모습 ⓒ 서진완

소깔로 광장을 중심으로 펼쳐진 구 시가지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이곳은 역사적으로도 원주민들에 대한 잔인한 학살 위에 스페인 사람들이 새로 도시를 건설한 곳이기 때문에 스페인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었다. 거리마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많고, 채색타일의 벽으로 지어진 저택 등은 시선을 끌었다. 구시가지는 반듯반듯하게 도로가 뻗어있고, 일방향으로 차들이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지도를 보고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광장에는 음악연주회가 열렸고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앉아서 휴식도 취하고 분수대에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자유로운 광장의 모습에 우리도 편안하게 광장에 앉았다. 푸에블라성당 외부의 화려함과 높은 첨탑은 역시 아름답다.


푸에블라 시내 구석구석을 참 많이도 걸었다. ⓒ 서진완

푸에블라 구시가지는 하루만으로도 부족했다. 다음날에도 광장으로 가서 많은 사람들 틈 속에서 여유롭게 걸었다. 그동안 고장이 나서 사용하지 못했던 큰아이의 시계 줄도 고치고 궁금했던 먹거리도 사서 먹었다. 광장에서는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들고 의자에 앉아서 해바라기도 했다. 느긋하게 아이들을 따라 걷다보니, 어제와 달리 보이지 않았던 건축물의 장식과 상점내부의 장식 등도 눈에 들어왔다. 거리를 다니면서 이런 것들을 보는 것은 역시 여행의 재미다.

“아빠, 혹시 우리 우편물이 아닐까요?” 숙소로 돌아오자 페덱스(FedEx)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숙소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비자본사에서 보내온 소포다! 반갑기 그지없구나!

<정리 = 이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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