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도 좌석을 돌려놓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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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도 좌석을 돌려놓을 때
  • 박주현
  • 승인 2017.03.20 0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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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박주현 / 대만 중국문화대학교 교환학생


<인천in>이 [청년컬럼]을 매주 연재합니다. 지난 1월 공개모집한 20대 청년 7명이 참여합니다. ‘청년실업’으로 대표되는 요즈음, 20대들이 바라보고, 겪고있는 우리 사회의 실상에 대해 함께 이해하고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이 시대 우리나라의 청년들, 인천의 청년들이 갖고있는 비전, 그들이 부딪치고 있는 다양한 문제, 그들의 문화, 희망과 좌절·고민, 지역의 이슈는 무엇인지 공유하고 공론화합니다.

 

꿈.

2013년 막 제대했을 시기. 제게 꿈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는 각별했습니다. 당시의 겨울을 기억합니다. 3포 세대에 이어 4포 세대라는 말이 생겨나던 시기. 우리 청년들은 포기해야 할 것이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었던 점은, 그런 절망적인 상황과 더불어 ‘꿈’ 이라는 키워드가 SNS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스펙보다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여행을 해라.’, ‘꿈을 찾고,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한다.’ ‘인생은 한 번 뿐이니까.’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글들이 페이스북을 달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극을 받은 것이 저 뿐만은 아니었는지, 그런 글들에는 수많은 좋아요와 댓글이 달려있었습니다.

 

‘그래서 네 꿈이 뭔데?“

말문이 막히는 질문이었습니다. 자극을 받은 것 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나를 뒤돌아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짜 내 꿈이 무엇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설렜던 단어가. 껍데기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허울 좋은 말이라는 말에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저와 같은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지요. 많은 친구들이 초, 중, 고등학교 시절을 책상 앞에 앉아서 보냈으니까요. 정답은 ‘좋은 대학’ 하나이고, 방법은 ‘경쟁’ 뿐인 고속열차. 우리는 항상 하나 뿐인 정답을 맞춰야 했고, 다름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정답을 맞추는 것 외에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도전이 없으니 성공도, 실패도 경험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자랐습니다. 꿈을 거세당하고, 대기업과 공무원이 되는 것이 유일한 해답인 것 처럼요.

 

저는 지금 대만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습니다. 대만의 ‘차(茶)’를 조금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함입니다. 대만차(茶)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지금의 제 꿈입니다. 이곳에서 대만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그들도 우리나라 청년들과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과도한 스펙 경쟁과 취업난, 오르는 물가와 오르지 않는 임금, 과도한 교육비와 저출산, 교육과 정치제도의 문제 등. 그들도 한국의 청년들과 거의 같은 문제로 고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큰 차이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정답’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는 것 입니다.

 

‘이번에 취업하지 못하면 워킹 홀리데이를 갈까 생각중이야. 몇 년 농장에서 일하고 돌아와서 자영업을 하고 싶어.’

‘아는 형이랑 같이 야시장에 가게를 내기로 했어. 아이템은 비밀인데, 재미있을 것 같아.’

‘졸업 후에는 시골에 내려가 카페를 낼 생각이야. 자릿세가 비싸지 않으니까 저축을 열심히 하면 몇 년 안에 내 가게를 꾸릴 수 있겠지.’
 


<대만의 지하철 좌석>


대만의 지하철, MRT는 좌석 구조가 우리나라의 그것과 다릅니다. 정면을 향한 좌석, 옆을 보고 있는 좌석, 뒤로 돌아선 좌석. 네 방향에 모두 좌석이 있습니다. 네 방향 모두 정답입니다. 청년들의 생각도 그와 같았습니다. 전공을 살려 취직하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전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와 대만의 열차는 모두 앞을 향해 달리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방향을 보고 있는가는 달랐습니다.

 

우리, 청년들은 가슴 뛰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젊은 시기의 도전. 여행과 사랑. 젊기에, 청년이기에 한번쯤 해볼 수 있는 것들. 하지만 막상 자신이 그 기로에 서면 불안함에 쉽게 발을 딛지 못합니다. 고민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의 스펙은 올라가고, 다른 길을 걸었다가는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도전’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이력서의 빈 칸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역시 발목을 잡습니다. 하지만 조금 멀리 떨어져서 생각해보면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그 길은 돌고 도는 2호선의 한 중간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는 열차를 타는 것에 급급해서 내려야 할 환승역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전부터 있어왔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결국 어느 열차에 타는가는 개인의 선택으로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 도에서 새로운 좌석을 만들어주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핸드메이드 제품이나 독특한 재능을 살릴 수 있는 부평의 ‘플리마켓’이나, 차이나타운에서 여름에 열리게 될 차(茶) 장터, 인천시의 문화누리카드 확대 등. 청년들에게는 새로운 경험 하나하나가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요. 자, 이제 우리도 좌석을 돌려놓을 때가 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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