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건축 자산들 헐리고도 ‘정신 못 차린’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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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 자산들 헐리고도 ‘정신 못 차린’ 공무원
  • 배영수 기자
  • 승인 2018.03.15 1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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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유산 중장기계획 추진한다며 엉성한 행정처리... 중간확인도 안 해


중구 근대건축물 등록문화재 후보군에 해당되는 ‘싸리재’ 카페 건물 내부. 이곳을 운영하는 박차영 대표(사진 가운데 서 있는 사람)는 “이틀 여 지방 출장을 갔다온 뒤 해당 공문을 기한 3~4일 전쯤에야 확인하면서 결국 신청을 포기했다”고 이의중 전문가를 통해 밝혀왔다. ⓒ배영수


지난해 5월 중구청의 기습철거로 인천지역의 근대건축자산으로 평가받았던 애경사 건물이 사라졌는데도 인천시 공무원들이 아직도 안일한 행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중장기 보존계획까지 세워놨다고 밝힌 시가 근대건축물의 등록문화재 신청 공문을 일선 군·구에 보내놓고 이후 과정에 대해 전혀 확인하지 않고 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15일 인천지역 시민단체 및 건축재생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인천시가 추진키로 한 ‘문화유산 중장기 5개년 종합발전계획’과 관련해 최근 해당 건축물의 관계인들(건물주 등)에게 등록문화재 신청을 알리는 공문이 발송됐다.
 
인천시는 지난 2016년 인천발전연구원 선임연구원 출신의 김용하 박사와 이의중 건축재생 전문가,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에게 중구와 동구 일대에 있는 건축물 중 등록문화재가 될 만한 것들을 조사해 달라고 요청해 의견서를 받았다.

이후 이 의견서는 시에 계속 보관돼 있다가 지난해 애경사 건물 철거를 계기로 포럼 등에서 재조명 됐고 시는 최근 ‘문화유산 중장기 5개년 종합발전계획’에 따라 일선 군·구를 통해 당시 의견서에 반영됐던 건물들을 대상으로 등록문화재 신청을 하라는 공문을 관계인들에게 보냈다.

시 문화재과가 한세원 과장 전결처리로 일선 군·구에 공문을 내려 보낸 날짜는 1월 12일이고 등록문화재 신청을 위한 구비서류 제출시한은 2월 20일까지로 명시됐다.
 
하지만 정상적인 절차라면 수 일 내로 중구가 해당 건축물 관계인들에게 발송했어야 할 공문이 약 1개월 동안 중구 담당자의 서랍 속에서 방치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구가 김용수 문화예술과장 전결처리로 이들 관계인에게 공문을 보낸 날짜는 2월 13일이다.

공문의 우편배송 등 날짜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이들 관계인들은 서류제출 마감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공문을 확인한 것이다.

대부분 등록문화재 신청에 호의적인 입장을 보였던 이해관계인들이 구비하기 어려운 서류 제출을 마감이 임박해서야 알게 되면서 등록문화재 신청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등록문화재 신청 서류는 건축물의 연혁과 사진 및 도면설계도(배치도 및 평-단면도 모두 포함)는 물론 문헌정보자료 등 역사기록까지 모두 제출해야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한이 여유롭게 진행됐어도 전문가가 아닌 건축물 관계인 입장에서 준비하기 어려운 서류인데 일주일도 안 되는 기한 내에 제출토록 하는 상황을 만든 시와 중구 관련부서 공직자들은 직무태만이거나 의지가 없었던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지난해 애경사 건물이 철거되고 최근 애관극장 존치 건까지 사회적 이슈가 되며 시의 안일한 행정이 계속 도마 위에 오른 상황에서 근대건축자산의 보존 행정과 관련해 인천시와 관할 중구 공직자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 관계자는 “중구 측에서 신청 자료들이 오지 않아서 관계자와 며칠 전 통화했고 자료를 받아 추가로 문화재청에 보낼 것”이라며 “신청 기한 연장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중구가 해당 건축물 관계인들에게 언제 공문을 발송했는지에 대한 확인 여부와 관련해서는 “전화독촉은 한 적이 있으나 중구 측이 관계인들에게 언제 공문을 보냈는지 등을 직접 묻고 얘기할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군·구에 공문을 보내놓고 해당 공문에 대한 진행상황을 직접 확인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황당한 주장을 한 것이다.

중구 담당자는 한 달 동안 공문을 묵혀둔 것에 대해 “다른 일 처리하느라 실수했다”고 말했다.
 
응당 발송해야 할 공문이 담당자의 업무 미숙 등으로 처리되지 않는다면 담당과장 등이 확인을 해 봐야 함에도 그렇지 못했던 것은 납득하기 어렵고 시와 중구 해당 부서의 행정처리 자체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인 됐다는 것이 시민사회와 시의원 등의 지적이다.

인천서 활동하는 이의중 건축재생 전문가는 “중구나 동구 등에서 등록문화재 신청 공문이 발송된 대상은 거의 모두 2016년 조사 때 대상이 됐던 것들”이라며 “등록문화재 신청은 시에서 문화재청에 자료를 제출하고 추천한 뒤로도 문화재청에서 전문가 실사조사 및 심사 등 과정이 엄격하고 복잡한데 역사고증까지 해야 하는 복잡한 서류들을 그나마 있던 시간여유도 다 잡아먹고 제출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인천발전연구원 출신의 김용하 박사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해도 건물주 등 관계인들이 제반 지식이 있을 리가 없으며 사실상 자료 제출이 쉽지 않다”면서 “안 그래도 문화재로 지정하겠다 하면 주변에서 야단법석인데, 신청 종료 이전에 지역 차원 설명회도 하고 전문가의 현장조사 및 자문도 해서 의지가 있는 관계인들이 자료 마련을 하는 데에 도움을 줬어야 했다”며 시의 안일한 행정을 질타했다.

인천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 소속 조계자은 “중장기 계획이라는 게 근대건축 등 문화유산을 지키자고 시에서 추진하는 사업인데 중구에서 의지가 없었다면 직접 추진하던지 구에 계속 확인하면서 추진하는 것이 맞지, 공문만 보내고 손을 놓고 있으면 어떻게 하자는 거냐”고 따졌다.

조 의원은 “자기들이 먼저 의자를 박차고 적극 찾아나서도 모자랄 판에 탁상공론이나 해서 벌어진 결과”라며 “조만간 의회에서 문화재과 담당자들에게 강력하게 따져묻겠다”라 강조했다.

인천서 활동 중인 오석근 사진작가는 “지금까지의 근대건축물 행정과 관련해 중구 고위 공직자가 보인 행태를 감안하면 고의로 공문 발송을 늦추고 이를 공직자의 단순 실수로 전가하는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 마저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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