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공원'에서 대만의 민주화운동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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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공원'에서 대만의 민주화운동을 보다
  • 장정구
  • 승인 2017.01.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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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대만에서 읽는 인천(1) /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황해는 동북아시아의 지중해로 불린다. 중국대륙과 한반도, 요동반도와 산둥반도, 일본과 오키나와, 대만에 필리핀까지. 고대로부터 동북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은 황해로 소통하며 역사문화를 일구었다. 인천은 한반도가 황해로 또는 세계로 통하는 관문이다. 인천녹색연합 활동가들은 쉬고 재충전하며 동북아시아의 자연생태, 역사문화를 둘러보고 2017년 인천녹색연합 활동을 준비하기 위해 2016년 12월 14일부터 21일까지 7박8일 동안 대만연수를 다녀왔다. 답사내용을 르포형식으로 7차례 <인천in>에 연재한다. 


대만연수 1일차 _ 대한민국, 대만 그리고 황해와 민주주의

 

 <228 평화공원정자>


“검색대에서 화장품을 뺐겼어요”
“이번 여행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건데 기내반입금지래요”
 
일행 중에는 태어나 처음 해외 가는 사람도 있다. 해외를 제법 다닌 활동가도 가방에 송곳이 있는 줄 몰랐다가 꼼짝없이 검색대에 걸렸다. 그래도 ‘버려야 하는’ 물건이 그냥 ‘버려지지 않고’ 필요한 시설로 보내진다는 말에 그나마 다행이라 위안하며 탑승구로 걸음을 옮긴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대만 이야기꽃이 핀다. 어떤 야시장이 유명한 지, 야시장에서 무엇을 먹어볼 건지, 소금커피는 맛이 어떤지 천등 날리기가 환경오염은 아닌지 등등. 장개석의 국민당이 대만으로 쫓겨올 때 수많은 유물을 가져왔다더라, 그 유물들이 세계4대박물관이라는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데 일주일을 관람해도 다 못보고 최근에 분원도 생겼다더라. 활동가들은 각자 준비한 대만의 이야기들이 쏟아낸다.
 
“트럼프가 대만총통에게 전화하자 중국이 발끈 했대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일조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네요”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다오위다오(센카쿠열도)의 영토분쟁, 제주 강정해군기지건설, 한반도 사드배치논란, 오키나와 미군기지문제 등은 모두 중국과 미국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특히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며 대만을 하나의 자치구쯤으로 생각하는 중국, 중국의 눈치를 보니라 단교한 주변국들, 그런 나라들과 나름의 외교관계를 설정하며 단단한 자립경제를 구축한 대만. 상고시대, 고조선, 삼국시대, 발해와 신라 남북국시대, 고려와 조선시대, 그리고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동북아시아의 역사와 함께 현 정세를 함께 공부해보자고 누군가 이야기한다.



<228 평화공원>


2시간 30분가량 비행 후 한국보다 시차가 1시간 늦은 대만 타오위엔 국제공항에 도착한다. 타이뻬이기차역 근처 숙소에 짐을 푼 연수단이 제일 먼저 찾은 곳은 228평화공원이다. 인천에 한국 최초의 서양식공원인 자유공원(만국공원)이 있다면 대만의 최초 서양식공원은 228평화공원(228和平公園, 228 Peace Park)이다. 228평화공원에는 국립대만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중국대륙의 유물들을 전시한 국립고궁박물관과 달리 국립대만박물관에서는 대만의 자연사와 원주민들의 문화를 잘 알 수가 있다. 연못과 정자, 야외 공연장 등이 잘 정비된 228평화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고 높이 솟은 구조물이 228평화기념탑이다. 세 개의 거대한 정육면체 구조물, 그 위에 층층이 올라앉은 두 개의 정사면체 그리고 다시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하게 정사면체가 솟아 있다. 기념탑 앞 안내판에 228평화기념탑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일제패망 후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내전이 벌어졌고 패한 국민당은 대만으로 넘어왔다. 국민당과 토착민(원주민+기이주민) 간에 갈등이 심화되었고 그러던 중 1947년 2월 27일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담배는 정부의 전매사업이었는데 담배 노점상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노인을 구타했고 이를 말리던 학생이 총에 맞아 숨졌다. 다음날인 2월28일 관련자 처벌, 담배판매허용 등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언론의 자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국민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10일 동안 유혈진압으로 3만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될 때까지 대만은 약 40년간 일당독재체재였다. 1988년 타이완총통은 공식적으로 사과했고 토착민과 이주민 사이의 평화를 기리는 228평화기념탑을 세웠다. 228사건은 대만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셈이다.
 
“중정기념당은 굳이 가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일제강점, 일제패망, 혼란기와 전쟁, 분단과 독재 그리고 민주화운동까지. 황해를 사이에 둔 대한민국과 대만은 참 많이 닮아 있다. 장개석을 기념하는 중정기념당이 228평화공원과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가보자는 활동가가 없다. 총통부와 외교부 건물을 지나 유·불·선 그리고 토착신앙이 융합된 대만의 대표 사찰 용산사로 향했다.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228평화기념탑>

<총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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