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여행, 그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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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여행, 그 끝에서
  • 서진완
  • 승인 2017.02.15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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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국립공원 투어를 마치고, 이제 남미로!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사막의 인도자, 조슈아 트리


조슈아트리 국립공원 ⓒ 서진완

인디오(Indio)에 도착했다. 이곳은 요세미티와 달리 데스밸리에서 느꼈던 날씨처럼 더웠다. 이런 날씨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에어컨이 없으면 잠시라도 견디기 어렵다. 작은아이는 수영장을 찾았다. 잠시 후 우리 부부가 수영복을 입고 나타나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평소에는 아이들만 물놀이를 하게 했지만, 이런 날씨라면 우리도 수영장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작은 아이는 우리와 함께 물놀이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했다. 밤이 깊어도 더위는 가시지 않는다. 이곳 전체가 건식사우나 같다.

인디오를 찾은 이유는 조슈아츄리(Joshua Tree) 국립공원을 보기 위해서였다. 모하비사막과 연결된 지역에 대규모로 서식하고 있는 독특하고 희귀한 선인장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사람이 손을 벌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이름을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데, 들판에 서 있는 조슈아츄리는 정말 특이한 모습이다. 나무의 모습 그 자체도 신기했지만 이렇게 넓은 분지에 펼쳐져 있는 것 그 자체가 장관이다. 나무들 사이로 특이한 바위들이 함께 섞여 있어서 이곳은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다. 조슈아는 성경에서 인도자라는 의미로, 옛날 이곳을 지나던 사람들이 사막에서 길을 잃었을 때 이 나무의 가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계속 길을 걸으면 마을이 나왔다고 한다. 정말 멀리서보면 마치 사람이 서 있는 듯하다.
 


조슈아트리 국립공원 ⓒ 서진완

국립공원을 완전히 벗어나도 여전히 사막이 이어진다. 우리에게 낯선 이곳 사막은 모래사막이 아니기 때문에 곳곳에 이름 모를 풀과 나무만 보인다. 이렇게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가끔 마주오는 차를 만날 뿐, 운전하는 내내 이 먼 길을 오직 우리 차만 있다. 아내는 잠시 눈을 감았다. 곧게 뻗은 도로는 캘리포니아를 벗어나 아리조나주로 이어졌다. 옆 좌석에서 아내와 뒷좌석의 아이들 모두 잠이 들었다. 나만 믿고 여행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아프면 절대 안된다!”


돌 산위에 늘어선 선인장


사와로 국립공원 ⓒ 서진완

아리조나주의 주도 피닉스(Phoenix)에서 아침을 맞았다. 대도시라고는 하지만 숙소가 주택가 주변에 위치한 탓에 조용하고 한적해서 어느 시골마을에 머무르는 것 같다. 차를 타고 숙소를 나와서 큰 길에 접어들자 넓은 도로와 고층빌딩이 보이기 시작했다. 투손(Tucson)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랐다. 아리조나주의 자동차 번호판에는 'Grand Canyon State'라는 글귀와 함께 있는 선인장 그림이 눈에 띈다. 사람이 팔을 벌리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선인장이 바로 사와로(Saguaro)이다.

사와로(Saguaro) 국립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황폐한 돌산에 사와로 선인장이 보였다. 멀리서 보면 삼지창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정말 사람이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사와로 선인장 사이로 다양한 모습의 각종 선인장들도 보였다. 꽃을 피운 선인장의 모습도 여기저기 보였다. 이곳에는 선인장을 제외한 다른 식물들은 거의 찾을 수 없다.
 


사와로 국립공원에 들어서자 꽃을 피운 선인장도 보인다. ⓒ 서진완

건조한 지역에서 15m 높이까지 자란다는 사와로 선인장은 최고 무게가 무려 9톤에 육박한 것도 있다고 하니 그 크기와 무게를 짐작케 할 수 있다. 이 선인장의 수명은 약 200년 정도로 매우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15년 정도 되는 사구아로가 겨우 30cm정도의 크기 밖에 되지 않고, 30년이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고 하니 우리가 바라보는 이 많은 사와로 선인장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을 지키고 있는지 가늠이 되었다.

투손지역의 여름 한낮의 온도는 38도를 넘고 강수량은 한해 30cm 이하로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공원 내는 그야말로 찜통 그 자체다. 트레일 코스를 돌아 차로 돌아오자, 에이컨을 켜고 운전대를 잡았다. 순간 손가락에 통증을 느꼈다. 조그만 가시에 찔린 것 같은데 잘 보이지 않았다. 안경을 벗고 손가락을 살펴보았다.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작은 가시들이 손가락 주위에 꽂혔다. 아이들에게 선인장 사이를 지날 때 조심하라고 했는데, 오히려 나만 당했다.

타이어 펑크!

차에 시동을 걸고 천천히 움직이는 순간 운전대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차를 세웠다.

“무슨 일이지?”

차에서 내렸다. 앞 타이어의 바람이 완전히 빠졌다.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펑크가 났는지 알 길이 없다. 햇살은 뜨겁고 차 밖은 사우나 같다. 시동을 켜두고 아내와 아이들은 차 안에 있게 했다. 트렁크에 있는 짐을 모두 내리고, 예비 타이어와 장비를 꺼냈다. 밖에서 타이어를 교환하는 동안 이마에는 빗물처럼 땀이 흘렀고 옷도 다 젖었다. 마침 지나가던 공원관리인에게 전화를 빌려, 렌트카 회사와 통화를 했다. 투손공항에서 교체할 차량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다행이네요!” 차 안에서 기다리던 아내가 미안해 하면서 말을 건넸다.

공원관리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자, 그는 예비타이어로 달릴 때는 절대 서행해서 운전하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공항까지는 20마일 정도 거리가 남았고, 공원 내 도로는 제한속도가 35mph였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지만 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야하기 때문에 저속으로 달리는 것이 걱정이었다. 일부 차량은 경적을 울리기도 했지만 대부분 차들은 차선을 바꾸면서 비켜갔다.

긴장하였지만 그래도 무사히 공항에 도착해서 차량을 반납했다. 렌트카 직원은 차량을 회수한 후, 한참을 기다리게 했다. 오늘 처음 근무한 탓에 입력상 실수를 했고, 그 결과 시간이 오래걸렸다며, 사과를 하면서 차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줬다. “파사트잖아요!” 차에 관심이 많은 큰아이가 먼저 반겼다.


뉴멕시코를 지나 다시 텍사스로...

“좋으세요?”

묵직한 핸들과 밟으면 밟는 대로 나가는 추진력이 마음에 들었다. 큰아이는 운전을 배우고 싶다며 물었다. 이제 남은 기간 동안 이 차 덕분에 새로운 기분으로 여행을 하게 된다. 타이어가 펑크 나서 당황은 했지만 그 대신 더 좋은 차량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역시 세상에는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먼 길을 가야하는 입장에서 좋은 차는 역시 든든했다. 사람의 마음은 정말 간사하다. 이렇게 좋은 차를 타고 보니 조금 전까지 그 작은 차를 어떻게 타고 다녔나 싶다. 뉴멕시코로 들어서 휴게소를 들렀다. 역시나 뜨거운 공기가 얼굴을 후끈하게 하면서 숨이 턱 막히게 한다.
 


뉴멕시코의 화이트샌드 ⓒ 서진완

뉴멕시코에 있는 화이트샌드(White Sands National Monument)를 보고 텍사스로 가기로 했다. 뉴멕시코로 들어서자 아리조나보다 차량통행도 적고, 가는 길 내내 황폐한 산과 사막이 이어졌다. 미사일기지를 지나자 끝없이 이어지는 직선도로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기온은 무려 38도를 넘었다. 화이트샌드 공원에 들어섰다.

도로 양 옆으로 펼쳐지는 하얀색 모래 때문에 눈이 부셔서 선글라스 없이는 도저히 눈을 뜰 수 없다. 공원 내 도로도 하얀색 모래로 덮여있고 주변의 모래 언덕에도 하얀색 모래가 펼쳐져 있다. 하늘을 제외하고 대지가 온통 하얀색 모래로 언덕을 이루고 있다. 모래사막 사이로 길을 낸 이곳을 따라 이름 모를 모래 언덕 앞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마치 눈 덮인 빙판 한 가운데 서 있는 듯 하지만, 온도는 찜질방 보다 더했다. 언덕 위를 오를 때는 운동화 보다는 샌들을 신고 오르는 것이 낫다. 제법 딱딱한 모래가 쌓인 곳이 많아서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이 어렵지 않다. 푸른색의 하늘과 하얀색의 모래. 두 가지 색이 만드는 단순한 조화가 있는 이곳은 세상을 잊을 수 있을 만큼 조용하다. 오직 바람소리만 들린다.
 


화이트샌드에서 ⓒ 서진완

텍사스로 들어오면서 점점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스페인 지명이 많아졌다. 멕시코 번호판을 단 차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멕시코와의 국경이 가까워지면서 검문소도 많아졌다. 멕시코로부터 넘어오는 불법체류자들 때문이다. 우리 앞에 서있던 멕시코 번호판의 차량이 있을 때는 검문하는 시간이 더 오래걸렸다.

“멕시코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할 것 같은데요!” 나도 그럴 것 같다. 다시 사막이 이어졌다. 차량을 단속하는 사람도 없고, 제한속도를 지키는 차들도 보이지 않는다. 텍사스 주에서 가장 높은 곳(2,666m)이라는 구달루페산(Guadalupe Mountains)을 지나면서 마주치는 차량도 거의 보지 못했다. 멕시코 국경인 리오그란데강을 따라 빅벤드(Big Bend)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은 더욱 한적했다. 이 길은 협곡이 이어지고 강 너머 멕시코 땅이 있는 곳으로, 미국과 멕시코 국경이 강의 흐름 때문에 이곳에서 크게 구부러져 있다고 해서 빅벤드라고 불린다. 이곳은 겨울이 성수기로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는데, 공원으로 들어서니 정말 차량을 거의 볼 수 없었다.
 


빅밴드 국립공원 ⓒ 서진완

작은아이는 국립공원여권에 마지막 도장을 찍었다. 국립공원 내 가장 높은 정상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인상적인 이곳은 우리가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마지막으로 보려고 했던 국립공원이다. 산 아래로 내려오면서 주차된 한 대의 자동차를 보았다. 마침 사진을 찍고 있는 미국인 부부에게 우리 가족사진을 부탁했다. 너무나 조용한 도로를 따라 달렸다. 더 넓은 평야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국립공원은 이어졌다. 

달라스로 돌아오는 길, 다음을 준비하며


달라스로 돌아오는 길. 이제 다음 여정을 준비해야 한다. ⓒ 서진완

달라스로 돌아오는 길 위에 섰다. 서부여행을 준비하면서 계획했던 국립공원을 모두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서부여행을 마친다며 아쉬워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했던 동부와 서부를 포함한 미국여행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달라스를 시작으로 이번 서부여행은 오클라호마주, 캔사스주, 네브라스카주, 사우스다코타주로 올라가서 와이오밍주, 콜로라도주, 유타주, 아리조나주, 네바다주, 캘리포니아주로 갔다가 다시 아리조나주, 뉴멕시코주로 해서 텍사스주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먼 길을 돌았다. 

동부여행과는 달리 이번 서부여행은 미국의 자연경관에 초점을 맞추고,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다녔다. 이제 남미로 떠날 일만 남았다. 남미에서의 여행은 다시 배낭여행자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내가 잘 적응해 주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낯선 곳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들기도 한다. 달라스가 가까워질수록 아내의 아쉬움도 커져만 간다. 이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또 다음을 기약해 본다.

이제부터 배낭여행자 모습으로 되돌리는 작업을 해야 했다. 미국에서 구했던 물품들을 배낭에 넣고, 버릴 물건들을 재정리했다. 지금까지 입고 다녔던 아내의 낡은 겉옷은 미련 없이 버리고, 새 겉옷을 장만했다. 작은아이의 신발과 옷도 몇 벌 구입했고, 나도 따뜻한 옷을 더 구입했다. 영양제 등 약품들도 가기 전에 구입하기로 했기 때문에 배낭 공간을 마련해야만 했다. 덕분에 배낭이 약간 더 무거울 듯 보였다. Mrs. Raymond가 챙겨준 것들도 많아서 차곡차곡 빈틈없이 배낭에 넣었다. 이제 준비는 끝!

Mrs. Raymond는 우리 방에 들어와서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언니가 없는 아내는, 이곳에서 Raymond와 Grace 두 명의 언니가 생겼고, 아이들에게는 이모가 생겼다. 머무르는 동안 마음 편하게 해 준 무척이나 좋은 사람들이다. 한국에 가면 우리가 챙겨주면 된다고 하는 말에 꼭 그렇게 하게 해달라고 하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남미행 게이트 앞에 섰다. 페루를 향한 비행기 안은 남미 사람인 듯 보이는 승객들로 가득했고, 주변에는 스페인어만 들린다. 이제 드디어 남미로 가는구나!

<정리 = 이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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