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정치의 공통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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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정치의 공통 지평
  • 이소영
  • 승인 2017.02.05 20: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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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이소영 / 대구대학교 기초교육대학 창조융합학부 조교수

예술이 예술이도록 하는 출발점은 무관심이다. 미적 경험은 여타의 개념 규정이나 윤리적 규율, 경향성들이 개입하지 않는 거리두기를 토대로 발생한다. 거리두기는 단절의 경험이다. 거리두기의 단절은 예술의 자유로움을 전제로 한다. 구획된 선들을 따라 가는 삶은 익숙한 감성과 안도감을 주지만, 예기치 않은 풍요로운 감성과의 만남을 제한한다. 미리 주어져 있는 감성을 포획하는 것은 고정되고 경직되고 굳어있는 감성에 안주하는 것이다.

가령 고통의 이미지 속에는 사그라지는 고통의 입자와 아직 규명되지 않은 채 다가올 고통 입자들이 공존한다. 입자들의 격렬한 움직임과 충돌은 새로운 감응의 입자를 탄생시킨다. 그래서 극도의 고통을 표현한 예술작품이 고통을 넘어선 숭고와 성찰로 다가오기도 하고, 그림 속 해박한 미소에서 씁쓸함이나 애잔함을 발견하기도 한다.



<고야, <1808년 5월 3일>, 1814년, 캔버스에 유채, 266*345cm, 프라도 미술관>


헐거운 옷에 두 팔을 들어 올린 양민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을 그린 고야(Francisco Goya)는 침략당한 조국, 실패한 시민 봉기로 살육과 학살로 물든 스페인의 현실을 냉소적 인간 드라마로 그려낸 바 있다. 격렬한 붓질이 전하는 피 끓는 분노에서 가슴팍을 내놓은 양민들의 고요한 성스러움을 엿보게 되는 이유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이게 만들고, 우리의 감성을 파열시켜 잠재적 서사나 고밀도의 징후들을 발견하게 하는 예술작품의 매개 역능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 물음을 던지고 개입하며 매개하는 감각체가 예술이다. 이미지의 역능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 삶에 접속하고 행위에 개입한다.

예술의 몫은 표현할 수 없는 사건 혹은 존재를 더 민감하게 느끼고, 표현되지 못한 것의 증인이 되고, 인식에 포착된 것들을 끊임없이 창안하는 일에 있다. 규정되거나 명명되지 않았던 사태에 침투하여 그것을 예술로 바꾸는 일, 예술에게 배분되지 않았던 몫을 찾아 틈입하는 일, 그리고 일상에 보이지 않는 편견을 뜯어내는 사건을 포착하는 일이다.

앞서 언급한 고야의 작품은 고도로 정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정치에 복속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반면 정치와 무관함을 유달리 강조했던 예술의 경우 오히려 정치의 중심에 자리하기도 한다. 그러한 예들은 역사를 통해 자주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는 예술이 적극적으로 정치성을 추구하지 않아도 현상하는 정치적 속성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삶의 무대는 예술적 공간과 사회·정치적 공간을 감수성이라는 공통감각 위에 재분할, 재배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예술이 정치적 행위에 배타적 태도를 고수하려해도 정치성을 담보할 수 밖에 없고, 정치가 변혁을 일구기 위해 창조적인 방안을 제안하려고 한다는 지점에서 예술과 정치는 교차점을 갖는다. 실천의 측면 혹은 해석의 측면 모두에서 예술과 정치는 내밀한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과는 다른 감각을 불러오는 예술, 그 자체로 낯선 대상인 예술은, 세계의 이치를 꿰뚫는 성찰의 크기 만큼 정치적일 수 있다. 동시대 비평의 시각과 냉철함을 담보한 작가적 윤리는 양립 불가능했던 예술과 정치의 만남을 통해 전혀 얘기치 않은 발산을 낳는다.

세계와 존재의 의미를 질문하는 예술은 자칫 사회, 모순, 질곡, 자본, 권력, 정치, 폭력, 고통과 같은 주제들을 간과하거나 침묵하며 자기만족적이고 엘리트주의적 자세로 호도될 수 있다. 역으로 사회 참여적 예술은 사회·정치적 조건에 개입과 저항을 시도하여 왜곡과 일그러진 소비사회를 비판하면서 치열한 삶의 태도를 수행으로 옮기지만 자칫 예술 본연의 존재방식과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이 세계의 진실을 가리는 베일을 걷어내어 삶 자체와 대면하고자 하면 할수록 예술 바깥으로 구분지어 놓은 영역들과 뒤섞이고 가로지르기에 머뭇거리지 않았음은 수많은 도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 사회운동, 대중정치와 같은 사회·정치적 영역도 이념이나 이론, 혹은 정치적인 사안들이 요인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 내면의 감수성에 따르고 있었음을 수없이 보아왔다. 위태롭지만 풍요로운 사유의 움직임, 그에 따른 발견이 오늘의 예술가에게 요청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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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희 2017-03-23 15:21:04
예술이 세계의 진실을 가리는 베일을 걷어내어 삶 자체와 대면하고자 하면 할수록
예술 바깥으로 구분지어 놓은 영역들과 뒤섞이고 가로지르기에 머뭇거리지 않았음은
수많은 도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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