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텅 빈 교실에서 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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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텅 빈 교실에서 꾸는 꿈
  • 서영원
  • 승인 2017.02.23 0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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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학교의 2월달 - 서영원 / 작전초교 교사


 

학교에서 2월은 뒤늦게 만나는 연말과 같은 시간이다.

전년도 3월에 시작해서 한 해가 지난 2월까지가 한 학년도로 여겨지기 때문에 2월에 종업식 또는 졸업식을 해서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한 해가 끝난 기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분위기까지 연말처럼 들썩거리지는 않는다. 새해를 기다리는 기대나 설렘보다는 새해에는 어떤 학년과 업무를 맡을지, 또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지 긴장하는 것이 더 커서 비교적 조용하게 기다리는 시간이 먼저다.
 

잠깐의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는 것은 인사위원회를 거쳐 담당 학년, 반, 업무가 발표되고 나서다.

그 때서야 학교는 비로소 조금 시끌벅적하게 된다.


교실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현재 쓰고 있던 교실의 짐을 정리하고 이사하며 생기는 북적거림이다. 원래 가지고 있던 짐들에 더해 한 해 동안 살면서 쌓인 이런저런 자료들까지 더한 것을 모두 꺼내 놓으면 그 양이 생각보다 많음에 스스로 놀라게 된다. 그것들을 이고지고 층을 오르내려서 이동하거나, 어떨 때는 건물 자체를 옮겨서 이동하느라 꽤 힘을 빼게 된다. 물론, 4년을 한 학교에 있다가 다른 학교로 전근가기 위해 짐을 정리하는 일은 교실을 옮기는 것의 4배로 큰 일이 된다. 그럴 때면, 남편이나 부인, 아들, 딸에 심지어 조카들까지 동원되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된다. 모처럼 학교가 시끌벅적 해질만하지 않는가?
 

짐을 꺼내서 챙기고 새 교실로 옮기기만 해서 끝난다면 일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살았던 옛 교실에 짐을 빼서 텅 비게 되면 그 자리에 새로운 주인인 선생님과 아이들이 들어와 살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1년의 묵은 때를 빼고 깨끗이 넘겨 주는게 도리인지라 구석구석 대청소까지 해주어야 비로소 짐정리가 끝나게 된다.


한바탕 힘을 써서 짐을 옮기고 청소를 하느라 학교가 시끌벅적 한 때를 지나고 나면 이제는 머리를 쓰느라 조용한 정적의 시간이 찾아온다.

한 해 동안의 학급운영, 교육과정 운영 등을 고민하는 시간이다. 그 때가 되면 비로소 새롭게 옮겨 온 교실의 빈 의자와 책상, 그리고 허허벌판처럼 넓게 비어 있는 뒤쪽 학생작품 게시판이 눈에 들어온다.


저 빈 책상과 의자에 앉을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일지 걱정과 기대가 한꺼번에 밀려온다. 내가 운영해가고자 하는 학급의 목표가 과연 아이들과 맞을지에 대한 걱정이면서 한편으로는 한 해를 잘 살아나간 후 처음보다 성장해 있을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뿌듯해 할 것이라는 기대가 묘하게 함께 솟아오르는 것이다. 아직 만나지도 않은 아이들의 1년 뒤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니 이보다 더한 김칫국이 어디 있게냐 싶기도 하지만, 그런 기대감이 있기에 학급운영에 대한 고민을 하고, 교육과정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색하는 것 같다.


이런 고민으로만 정적의 시간이 가득 차 있다면 2월은 아마 아이디어 내느라 힘들고,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행복한 기대가 섞인 즐거운 고민들로 꽉 찬 달 일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학급운영과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고민을 심도 있게 할 틈도 없이 담당업무에 대한 인수인계로 인해 머리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교사 본연의 임무는 학생교육 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업무에 치여서 남는 시간에 애들 가르친다는 자조 섞인 푸념도 있을 정도로 교사에게 돌아가는 업무의 양이 지나치게 많다. 물론, 모든 업무가 다 필요 없는 건 아니다. 아이들의 교육에 필요한 업무들도 있다. 이는 기꺼이 교육전문가인 교사들이 함께 해야 할 일이다. 문제는 업무가 주어져서 하고는 있지만 이걸 왜 학교에서 교사가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드는 일들이 일선 학교에 정말 많다는 것이다. 보여주기 식의 행사나 행정적인 일 또는 지역자치단체에서 해야 할 일, 혹은 관행적으로 쭉 해오던 불필요한 것 같은 일 등이 그런 일들에 속한다. 그런 일을 하고 있을 때면 ‘내가 이러려고 교사를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게 된다.


그런 일들을 점점 줄여나가서 학교에서 교사들이 담당하게 되는 업무들이 모두 교육과정 운영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일들로만 남게 하기 위해 현재도 교육청이나 일선 학교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갈 길이 아직은 멀다.


몇 번의 2월이 지나지 않았을 뿐인데, 어느 순간부터 2월에는 업무의 인수인계 대신 함께 할 같은 학년 선생님들과 한 해 동안 우리 학년을 어떻게 운영해 갈지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모으는 걸로 시간을 보내고 있기를 기대한다.

또, 함께 살 우리 반 아이들과 어떤 식으로 살아갈지 고민하는 것으로만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기를 희망한다.


수많은 2월을 계속 보내고 나서야 그렇게 된다면, 그 시간동안 만나게 될 아이들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으로 첫 인사를 해야 할 것이 염치없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이 빨리 오기를 2월의 텅 빈 교실에서 작게나마 바래본다.


그 바람이 슬픈 건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와서가 아니라, 2017학년도 담당 업무의 연간계획서를 쓰면서 그런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에 그렇다.


비 때문이 아니라 꿈과 현실 때문에 괜시리 더 쓸쓸한 2월의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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