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아이들을 바라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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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아이들을 바라본다는 것
  • 서진완
  • 승인 2017.03.15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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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이과수 폭포의 장엄함을 온 몸으로 느끼기!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편안했던 아순시온


아순시온 거리 ⓒ 서진완

아순시온의 숙소는 구도심에 위치해 있었으며, 깨끗하기까지 했다. 부엌도 괜찮고 정원에서 쉴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예리한 아내의 눈에도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다. 이곳에서 며칠 동안 푹 쉬고 이과수(Iguazu) 폭포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아순시온에서의 밤은 모기 때문에 매일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밤만 되면 귀가에 웽웽거리는 모기 소리 때문에 담요를 머리 위까지 덮었다. 숨이 답답해서 다시 머리를 내 놓으면 다시 들리는 모기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 결국 귓가에 웽웽 소리가 들릴 때 마다 손뼉을 쳐 보지만, 허공에 손바닥 부딪히는 소리만 날 뿐, 모기가 잡혔는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몇 차례 반복하면 주위가 조용해지기도 한다. 잡혔나? 그리고는 잠이 들기를 반복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침에 일어나 보면 모기에 물린 흔적이 없다. 소 뒷걸음에 쥐를 잡은 격인가! 물파스도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제법 큰 슈퍼마켓이 있어서 아이들은 먹고 싶은 간식을, 아내는 부식거리를 사곤한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마침내 빗방물이 떨어졌다. 아내는 부침개를 만들기 위해 밀가루와 야채를 구입했다. 파라과이에서 부침개를 할 생각을 하다니! 이곳 숙소에서는 직접 요리하는 사람들이 많아 부엌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우리는 넓은 뜰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요리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속에서 아내가 해준 부침개가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아내는 부지런히 부침개를 부쳤지만 우리들이 먹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입맛이 다시 살아났다. 한국식 피자를 바라보는 외국인들도 맛을 보더니, 맛있다고 했다. 행복은 절대 멀리 있지 않다. 

밤새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숙소 현관에 걸려있는 간판이 크게 흔들리는 소리 때문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간판이 걸려있는 고리와 이를 지지하는 쇠파이프가 부딪히며 만드는 쇳소리는 낡은 바이올린을 켜는 소리처럼 거슬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는 바람 때문에 스산한 느낌마저 들고, 주변의 낡은 전선들도 간판과 함께 춤을 춘다. 아침이 되자 학교 가는 아이들은 종종걸음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두터운 옷차림을 하고 있다. 어제와 달리 갑자기 가을로 돌아간 듯한 스산한 날씨다. 창밖으로 머리를 내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햇빛 구경하기 힘들 것 같다.

침대로 올라가 침낭으로 몸을 둘렀다. 어제 함께 있었던 배낭여행자는 아침에 모두 떠나고 빈 방에는 새로운 배낭여행자들이 채워졌다.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들이 로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도 이들 속에 함께 있다. 어제까지 모두 짧은 티셔츠차림이었는데, 오늘은 모두 점퍼와 목도리까지 했다. 엄마가 감기가 걸린 것 같다며, 작은아이가 로비에 앉아있는 나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하고 옆에 앉았다. 침낭으로 몸을 따뜻하게 해드렸다고 한다. 오늘 같은 날은 무리하게 바깥으로 나가는 것보다 숙소에 머무르길 잘 한 것 같다. 작은아이는 탁자 옆에 있는 긴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착하기만 한 작은 아이가 이런 여행경험을 통해 앞으로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거리가 너무 조용한데?
 

햇빛이 좋은 날의 아순시온 거리 ⓒ 서진완

 
쌀쌀하던 날씨도 하루가 지나자 한결 풀렸다. 햇살이 드디어 아순시온 하늘을 가득 채웠다. 햇살에 비친 거리와 흰색 식민지풍의 건물들도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듯 환히 밝아졌다. 구시가지로 들어서면 거리는 잘 정리되어 있지 않고, 전반적으로 어둡고 침울한 느낌 마저 든다. 사람들의 왕래는 별로 없고 도로도 붐비지 않는데다 건물의 벽들은 낡고 오래된 이끼가 끼어있어서 오랫동안 방치한 것처럼 보인다. 곳곳에 파헤쳐진 도로는 도시의 속살을 드러낸 듯 미관을 해치고, 거리에는 미적인 감각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큰 쓰레기통이 곳곳에 있다. 그렇지만 거리에는 널려진 휴지와 비닐조각들이 바람에 나뒹군다.

아순시온의 시내 중심가에 정부의 주요 관공서들과 독립기념관, 그리고 대통령궁이 밀집해 있어서, 이들을 모두 둘러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옛 건물을 허물지 않고, 외벽을 새로운 현대식 건물에 연결해서 지은 의회 건물이 눈에 띄었다. 옛 것과 새 것이 아담하고 소박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분명 대도시인데, 아순시온의 시내 중심 거리는 한산하고, 건물은 낡고 지저분한 모습이다. 이것이 침체된 경제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이렇게 차분한 건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분명 지금까지 보았던 북적거렸던 대도시의 모습과는 달랐다.

숙소로 돌아오자 로비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축구를 보고 있다. 소파에 앉지 못하고 서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함성소리와 아쉬운 탄식이 크게 울렸다. 어느새 큰아이도 사람들 틈 속에 함께 함성을 지르고 아쉬워했다.

“아빠도 빨리 오세요!”
축구 중계방송 때문에 거리가 한산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역시 이곳은 남미다!


성장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

여행이 길어지면서 그래도 이렇게 잘 먹고 잘 자고 편안한 곳에서 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아내가 아이들이 원하는 요리를 준비하는 동안, 작은아이가 자신은 과학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얘기를 시작했다. 큰아이는 여행을 하면서 경제문제와 법과 제도로 관심이 좁혀졌다고 했다. 큰아이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점점 법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서로 다른 관심사를 가진 아이들이 어떻게 관심영역에 접근하는지를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진로에 대한 얘기를 오랫동안 나눴다. 저녁을 먹으면서 낮에 했었던 얘기에 이어서 이번 여행을 통해 각자에게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했다. 큰아이는 자신이 중학교 생활에서 무엇이 부족했는지, 고등학교에서 와서 어떻게 생활했는지에 대한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내용도 많다. ‘그동안 남 모르게 꽤 많은 노력을 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친구들 사이에 원만한 관계를 갖지 못한 작은아이에 대한 걱정과 바람을 오빠의 입장에서 얘기하기도 했다. 작은아이도 힘들었던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 얘기를 털어놓았다. 큰아이는 제 동생에게 나름대로 상황을 논리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충고를 해주기도 했다. 아이들의 대화를 바라보면서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아이는 오빠의 말을 꽤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식당에는 우리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다. 어느새 밤 10시가 지났다.


어렵게 아순시온에서 한국 식당을 찾았지만, 더 이상 영업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 서지완

점심을 뭘 먹을 것인지 논의하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한국식당에서 한다는 뷔페를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작은아이는 인터넷에서 찾은 한국식당의 주소를 지도에서 찾았다. 버스를 타고 가다 내려야할 곳을 놓쳐가며 어렵게 식당을 찾았는데, 벌써 오래전에 문을 닫고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숙소에 돌아오자 이번에는 큰아이가 사용하던 노트북에 문제가 생겼다. 더 이상 사용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급하게 처리해야할 메일도 받았다. 인터넷뱅킹사고에 대한 자필 문답서를 작성해야하고 개인정보이용에 관한 서류에 서명을 하고 경찰조서에 대한 정보공개요청도 해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있는 직원에게 도움을 청해서 급하게 일을 처리했다. 뷔페도 못 먹고, 컴퓨터도 고장 난 바람에 우울한 큰아이를 위해 탁구를 치면서 기분을 전환했다. 큰아이가 이겼다. 이제는 나보다 키도 크고, 힘도 세고, 탁구도 잘 친다.


이과수 폭포를 보러가자!


이과수 강 ⓒ 서진완

숙소 직원들과 인사를 했다. 여유있게 숙소를 나왔는데, 한참동안 택시를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급한 마음에 버스를 탔다. 버스는 천천히 달리는데다 도중에 공사하는 곳은 우회하는 바람에 버스안에 있는 동안 내내 시계를 쳐다보았다. 버스에서 내리자 길 건너에 버스터미널을 향해 뛰었다. 횡단보도와 신호동도 없는 큰 도로를 요령껏 건넜다. 나는 작은아이의 손을 잡고, 큰아이는 엄마와 함께 서둘러 길을 건넜다. 버스터미널 안으로 급하게 들어오자 브라질로 가는 이층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출발 5분전이다.

파라과이 국경에 이르자 차량 정체가 심해졌다. 주변 큰 시장이 보였고, 이곳에 자유롭게 주차한 차들과 국경을 지나려는 차량이 함께 섞여 국경을 넘는 길이 매우 혼잡했다. 파라과이 국경에서 출국심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이과수강을 건넜다. 이 강을 사이에 두고 파라과이, 브라질, 그리고 아르헨티나 3개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다.

원래 3국 전쟁 이전에 이과수 폭포는 파라과이 영토였지만, 지금은 이과수 폭포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만 볼 수 있다. 파라과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할까 싶다. 걸어서 다리를 건너 브라질로 가는 사람들도 많다. 브라질로 들어가는 입국심사는 간단했다. 파라과이와 달리 브라질로 넘어오자 터미널도, 택시도, 거리도 모두 깨끗하다. 도미토리 숙소도 분위기가 밝다. 배당받은 침대에 배낭을 두자, 친구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니 상파울로에서 이과수 폭포를 보러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역시 독일인 대학생이다.



브라질에서 바라본 이과수 폭포의 모습. 장엄하단 말 외엔 할 말이 없었다. ⓒ 서진완

햇살이 따갑게 느껴졌다. 샌들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숙소를 나서자 발걸음도 역시 가볍다. 숙소 앞에서 버스를 타고 이과수 폭포 국립공원에 내렸다. 공원 안으로 순환버스를 타고 폭포가 있는 곳까지 이동할 수 있다. 브라질에서는 이과수 폭포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다.

물이 늘어나는 우기에는 270여개의 폭포를 그리고 건기에는 150여개의 폭포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 눈으로 보기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폭포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전체 이과수 폭포는 2,7 평방 Km에 걸쳐서 펼쳐져 있다고 하니 그 규모는 장엄하다는 말 이외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브라질 쪽에서 바라보는 가장 황홀한 장면은 90m 높이에서 떨어지는 이과수 폭포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비를 입고 폭포 끝부분까지 걸어 갈 수 있는데, 엄청난 소리와 물보라 때문에 폭포 전체를 제대로 쳐다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곳에 서면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좋지 않았던 기억과 잊고 싶었던 일들은 모두 붉게 보이는 폭포 아래로 내려 보낼 수 있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굉음은 우리가 소리치는 고함을 쉽게 삼켜버렸다.


아르헨티나에서 바라보는 이과수 폭포!


아르헨티나에서 이과수 폭포를 바라보는 우리 ⓒ 서진완

다음날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어 이과수 폭포를 보러 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평소보다 서둘렀다. 하늘색 아르헨티나 행 버스는 이른 아침인지라 여유가 있어서 앉아갈 수 있었다. 버스는 우리를 브라질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내려놓고 떠났다. 출국심사를 마치고 다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만 했다.

이곳을 통과하는 다른 버스는 탈 수 없고 오직 우리가 타고 왔던 그 회사버스만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버스가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언제 버스가 올지 기약 없는 상황에서 나는 지나가는 차를 세워서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이곳에서 다시 버스를 탄다고 해도 다리를 넘어 아르헨티나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다시 내려야만 했고, 그러면 다시 한 시간 후에야 올 버스를 이용하자니 이렇게 하다가는 언제 시내에 도착해서 다시 국립공원까지 갈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지나가는 봉고차를 잡았다.

화물을 싣도록 개조한 봉고차는 의자가 없어도 괜찮다면 타라고 했다. 우리는 고맙다며 봉고차에 올랐다. 각자 짐칸 창을 꼭 붙잡고 앉았다. 잠시 후 다리를 건너 아르헨티나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아빠 재미있는데요!” 여행을 하면서 처음 시도한 히치하이크였다.

아르헨티나에서 입국수속을 받고 다시 버스를 기다렸다. 또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다, 결국 택시를 타고 가기로 하고 택시기사와 좋은 조건으로 흥정을 했다. 시내로 가서 다시 국립공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한다면 이곳 국경에서 바로 이과수국립공원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브라질 쪽 국립공원과 달리 이곳은 비교적 한산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이과수폭포로 들어가는 입장료는 페소(Argentina Peso)만 받는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라! 분명히 신용카드도 받는다고 들었건만, 역시 페소만 사용할 수 있. 택시기사에게 가진 돈을 환전해서 지불했다.



'악마의 목구멍'을 코앞에서 마주하다! ⓒ 서진완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 폭포를 보려면 국립공원입구에서 기차를 타고 들어가야만 한다. 가장 멀리 있는 ‘악마의 목구멍(Devil’s Throat)을 직접 볼 수 있는 마지막 역에 내리면 그곳까지 트레일 길이 연결되어 있다. 강위에 놓인 다리를 따라 걸어가기 때문에 급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전망대에 도착하면 바로 눈앞에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아무런 말이 필요없다.

“이거였구나!”

폭포 아래로 내려다보는 순간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누구든 이곳에 서면 이과수 폭포에 스스로 압도당한다. 물보라 때문에 준비했던 우비를 다시 꺼내 입었다. 아내와 나는 잠시라도 더 오래 이곳에 머물고 싶어서 한참을 서 있었다. 붉은 빛 강물이 솟구치다 아래로 내리 꽂히는 이 장관을 보기위해선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를 꼭 와야 한다. 지금까지 멋진 자연의 모습을 꽤 많이 보았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도 이 광경 앞에서는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곳을 내려다보다 충동적으로 직접 뛰어들었다고 하던데,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장엄하고 스펙타클한 이곳은 내가 경험한 최고의 순간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바라보는 이과수 폭포의 모습 ⓒ 서진완

지도에서 확인했듯이 아르헨티나 쪽은 트레일을 따라 펼쳐진 이과수 폭포를 가까이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150-270여개 있다는 이곳 폭포를 제대로 구경하려면 많이 걸어야 한다. 길을 걸으면서 눈 앞에 마주치는 폭포의 장엄한 파노라마는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우기에 이곳에 온다면 이 전체가 하나의 폭포 커튼이 되겠지! 엄청난 길이의 폭포들이 뿜어내는 굉음과 물보라는 귀와 시선을 황홀하게 한다. 이곳에서 촬영했다는 영화 ‘미션(Mission)’의 한 장면  장면이 떠오른다.

아마도 이곳 어디선가 영화를 촬영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바라보는 모든 폭포가 영화 속에 나온 곳 같다. 원시림과 어울려 쏟아지는 폭포 그리고 그 물줄기가 뿜어내는 물보라, 그 위에 펼쳐진 무지개 등은 이과수에 대한 나의 상상력 그 이상의 모습이다.

지름길을 통해 폭포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이곳에서는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올려다볼 수 있다. 아내와 아이들은 우비를 다시 꺼냈다. 폭포가 떨어지는 바로 앞에서 시원한 물보라를 기분 좋게 맞았다. 이렇게 물보라가 날리는 폭포아래서 아내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멀리서 전체 폭포를 보고, 악마의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폭포도 보고, 병풍처럼 펼쳐진 폭포들의 모습도 보고, 이제 그 아래에서 폭포의 물도 맞았다. 이곳이 바로 ‘이과수폭포’다. 기대했던 것 보다 더 멋있다. 장엄한 폭포를 보는 내내 그랬었지만 보고 나서도 그 소리와 장면은 꽤 오랫동안 여운이 계속 남는다.

<정리 = 이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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