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인천의 음악을 고민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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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인천의 음악을 고민하는 이유
  • 이권형
  • 승인 2017.03.06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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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권형 / 음악가

<인천in>이 [청년컬럼]을 매주 연재합니다. 지난 1월 공개모집한 20대 청년 7명이 참여합니다. ‘청년실업’으로 대표되는 요즈음, 20대들이 바라보고, 겪고있는 우리 사회의 실상에 대해 함께 이해하고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이 시대 우리나라의 청년들, 인천의 청년들이 갖고있는 비전, 그들이 부딪치고 있는 다양한 문제, 그들의 문화, 희망과 좌절·고민, 지역의 이슈는 무엇인지 공유하고 공론화합니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한 장면>


 용산 급행의 속도를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다. 공연이 있는 날 주안에서 홍대까지 1시간이 채 안 걸렸다. (이제는 개봉역을 거치게 됐지만) 역곡에서 구로까지 정차 없이 달리는 속도감이 시원했다. 1호선이 한강을 건널 때 자연스럽게 모임별의 ‘진정한 후렌치후라이의 시대는 갔는가’를 떠올린다. 정재은 감독의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2001)>의 사운드트랙으로 인천에서 서울 방향으로 이동하는 두개의 장면에 삽입된 곡이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인천 원도심을 배경으로 여상을 갓 졸업한 여성들의 성장 드라마다. 함축적인 오프닝 씬을 제외하면 혜주(이요원 분)가 집을 나와 동인천역에서 1호선을 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졸업 후 집을 나온 혜주는 서울로 취직해 탈가정한다. "인천에서 제일 좋은 여상을 나와도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인정받고 싶은 혜주의 욕망은 서울로 향한다.

 

 나도 지금은 서울에 거주한다. 작년 초부터 인연이 닿아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종종 인천 동네에 들르면 “이제 서울 사람 아니냐.”는 얘기를 듣는다. 이 장난 섞인 농담에 아쉬움이 묻어난다. “너도 이제 떠날 거지?” 영화의 대사처럼 남은 이들의 헛헛함은 씁쓸한 농담이 됐다. 학창시절을 인천에서 보냈다는 음악평론가 차우진은 이러한 특유의 기운이 흐르는 인천을 ‘일종의 박탈감과 낭패감이 흐르는 도시’로 표현했다.

 

 지난 1월에는 신포동 갤러리 ‘임시 공간’에서 열린 전시 '비욘드 레코드 Beyond Record’ 전시에 다녀왔다. 전설처럼 회자되는 과거 인천 원도심의 음악 문화에 대한 자료를 모아놓은 전시였다.

 그동안 8, 90년대 동인천과 관교동을 필두로 융성했던 헤비메탈 씬에 대해 어렴풋이 들어왔다. 동네에 유령처럼 떠돌던 그 옛날 인천 헤비메탈 문화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디스플레이 된 영상에는 90년대 당시 밴드 사하라의 수봉문화회관 라이브 실황이 재생되고 있었다. 160석 규모를 가득 메운 관객들의 환호성에 그 당시의 열기를 실감했다. 인터뷰 영상이 이어졌다. 라이브 기획의 산실이었던 대명라이브클럽 사장님의 증언에서부터 당시 각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팬클럽까지 있었다는 이야기. 매주 헤비메탈 공연 라인업이 채워질 만큼 스쿨밴드 문화가 활발했던 것은 물론이고 걸출한 여성 메탈 밴드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다채롭고 자생적인 씬의 흐름이 있었다는 것이 명백해보였다.

 '비욘드 레코드 Beyond Record’ 앞에 큰 제목이 붙어있다. “인천고고학 #1” 고고학이란 무엇인가. 흔적을 통해 과거의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과거 인천 록음악의 영광은 흔적으로 남았다. 거의 모든 씬의 흐름이 홍대에 머물러 있는 지금 인천의 록음악이 전시의 형태로 기록된 이유와 의미를 생각해봤다.

 

 전시 인터뷰 영상에서 밴드 다운헬의 보컬 마크는 서울에 원정 온 당시 인천 밴드의 공연을 회상한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본 당시 인천 밴드의 태도는 “엄청나게 진지하고 간절했다.” 그의 말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나 또한 간절했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음악을 하면 자연스레 간절함의 DNA가 새겨지는 것인가 싶기까지 했다. 서울과 근접하여 “일종의 박탈감과 낭패감이 흐르는 도시”에서 자생적인 씬이 융성했던 역사는 소중한 것이다. 그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여전히 인천의 음악을 고민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수많은 혜주들이 간절함을 품고 주류를 향해 떠난다. 하지만 밴드 쾅프로그램의 가사처럼 서울에는 “수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난다.” 주류의 흐름은 그만큼 빠르게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날 신포동의 전시장에서 그러한 흐름을 잠깐 벗어나 과거 인천 씬의 명징함을 확인했다. 그러니 떠난다고 아쉬워하지 말자. 인천의 마력은 생각보다 강하다. 다시 차우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한편 침울하면서도 안락한 기운과도 유사하다.” 영광의 흔적이 남아있는 한 간절함의 DNA를 품고 떠난 이들은 언젠가 돌아와 새로운 세계를 펼칠 것이다.

 

 그렇게 과거의 역사들이 끊임없이 현재의 관점으로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것. 그러한 온고지신의 태도가 로컬의 고유한 정체성에 대한 실마리가 되는 것 아닐까? 나아가 홍대 씬마저 어려운 실정인 요즘 새로운 씬을 꿈꾸게 하는 밑거름이 되는 것 아닐까?

 

 덧붙여, 고양이를 부탁해 포스터에는 세 주인공[혜주, 태희(배두나 분), 지영(옥지영 분)]이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서울로 이주하거나 비행기를 타고) 결국 인천을 떠난다. 막상 인천에 남는 두 주인공 쌍둥이 비류와 온조(이은주, 이은실 분)는 포스터에 없다. 흥미로운 건 공교롭게도 마지막에 남아 고양이를 지키는 이들은 비류와 온조라는 사실이다. 인천을 혹은 지역을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이 사실을 기억해야하지 않을까. 집나간 자식의 심정으로 적어본다.


 

 참고– 전시 ~ 신포동 ‘임시공간’ 전시 '비욘드 레코드 Beyond Record' _고경표(협력 _복숭아꽃)

- 글 ~ 웹진 [weiv] 특별기획 [special] 지역 음악 씬: 인천 음악 씬의 전성기 _차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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