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버스는!
상태바
더 이상 버스는!
  • 서진완
  • 승인 2017.03.22 06: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7) 남미의 열정과 활기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리오! 


리우데자네이루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 서진완

이과수에서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까지는 25시간이 걸렸다. 휴게소에 정차해도 안내방송은 물론 누구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나도 큰아들도 밤새 춥다고 버스기사에게 얘기를 했지만 결코 히터를 틀어주지 않고, 밤새 달렸다. 야간버스를 탈 때는 무조건 침낭을 꺼내야했다. 화가 났지만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데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불만이 없는지 말도 하지 않았다. 

상파울로(Sao Paulo)에서 승객들 대부분 내리고 빈 좌석이 많아졌다. 우리는 여유있게 좌석을 차지하고 편안한 자세로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아내와 작은아이는 잠을 청했고, 큰아이는 엄마 컴퓨터에 스마트폰을 충전하면서 소설을 읽었다. 나는 오랜만에 음악을 들으면서 버스 창밖을 내다보았다. 

산들은 낮고 멀리 보이는 집들은 고급스럽다. 열대우림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만 아니라면 우리네 산천과 비슷하게 보였다. 초지가 형성된 낮은 언덕이 이어지면서 소들과 양들이 자연스럽게 풀을 뜯고 있다. 하늘에 뭉게구름과 초원이 조화롭게 펼쳐져 평화롭게 보였다. 리우데자네이루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코파카바나 해변 ⓒ 서진완

코파카바나해변 근처에서 배낭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곳에 머물렀다. 새로 개조한 숙소는 깨끗해서 마음이 들었다. 침대마다 전등과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편리했다. 버스에서 시달렸던 피곤이 한꺼번에 쏟아져 모두들 침대 안으로 쓰러지듯 들어가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큰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차 소리에 눈을 떴다. 

1층에 있는 식당은 작지만 효율적으로 공간을 배치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아이들도 깨웠다. 진한 커피와 초코 브라우니는 신선했다. 같은 방에 있던 터키에서 온 친구는 오늘 이과수 폭포를 보러 떠난다고 했다. 큰아이는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말에 잘한 결정이라고 얘기했다. 

열정적인 나라답게 거리는 나무들이 우거지고, 가게들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활기에 넘쳤다. 버스를 타고 코파카바나해변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슈가로프(Sugarloaf Mountain)를 찾았다. 이곳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암석으로 원뿔꼴의 설탕덩어리의 모습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슈가로프 ⓒ 서진완

두 개의 큰 암석이 산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있는데, 정상에 올라서면 모든 방향에서 리우데자네이루의 다양한 모습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리우데자네이루는 지금까지 다녀본 도시 중에서 단연 최고이며, 그 모습은 이곳에서 보아야 한다. 바닷가로 이어지는 풍경도 좋았지만, 코파카바나해변과 잔잔한 바다 위에 펼쳐진 요트들, 주변 공항과 그 앞에 펼쳐진 대서양은 눈이 시리게 시원했다. 아름다운 해안선과 병풍처럼 둘러싼 예수상 언덕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어느 쪽을 둘러봐도 아름답다. 언덕을 내려가기 싫어진 우리는 예수상 언덕을 다음에 방문하기로 한 채 한참을 언덕위에 머물렀다. 



예수상 앞에서 (위), 예수상에서 내려다 본 리오의 전경 (아래) ⓒ 서진완


다음날 아침 코파카바나해변을 찾았다. 꽤 넓은 백사장과 긴 해변에는 벌써부터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도 가득했다. 파라솔과 비치의자가 보이고, 해변에 앉아서 햇살을 즐기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부럽다. 한낮 동안 이곳에서 앉아서 오수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정말 우리에게 필요하다. 한동안 해변에서 서서 해변과 주변 경치를 구경했다. 해변 앞의 작은 섬들과 긴 모래사장, 그리고 자유롭게 해변을 즐기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풍경이 멋지다. 

산타테레사(Santa Teresa)지역으로 숙소를 옮겼다. 가파른 언덕길 위 전차가 다니는 이곳은 고풍스러운 포르투갈 풍의 집들이 철로를 따라 이어지고 카페와 레스토랑이 섞여있는 운치 있는 곳이다. 가족이 운영하는 새 숙소는 포르투갈 식민지시대의 유럽풍을 그대로 닮은 희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 지역은 리우데자네이루 중심부에 위치한 곳으로 이전에는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이 이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살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 이후 예술가들이 모여 살면서 관광명소가 된 지역으로 언덕 위 전차 길을 따라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고급레스토랑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주변의 건물들과 좁은 전차길, 그리고 언덕의 모습은 리스본과 매우 비슷하다. 이곳을 식민지화하면서 그들 고향의 모습을 이곳에 그대로 옮겨온 탓이리라.  


산타테레사에서 ⓒ 서진완

밤새 음악소리가 그렇게 들리더니 아침에는 무척이나 조용해졌다. 가끔 들리는 차 소리가 반갑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큰아이는 아침에 방송되는 한국과 브라질의 축구 중계방송을 보기 위해 평소보다는 일찍 일어났다. 거실에 설치된 TV를 켜고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나와 큰아이를 제외하고 이곳에 머물고 있던 어떤 사람들도 이 경기에 관심이 없다. 경기는 2-0 브라질 승으로 끝났다. 경기결과에 대해서도 아무도 물어보는 사람이 없다. 아이와 나만 혹시라도 이길 수 있을까 마음을 조렸다. 진한 커피를 마셨다. 역시 축구와 커피는 브라질이다. 

코르코바도(Corcovado)언덕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그곳에서 예수상(Cristo Redentor)이 있는 곳까지는 기차를 타고 가거나 미니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기차표는 저녁 6시 이후 표만 구입이 가능해서 미니버스를 타고 목적지인 예수상 앞까지 올라갔다. 언덕 위는 사람들로 붐볐다. 예수상 역시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최고다. 천혜의 자원과 인공미가 잘 어울려진 이곳은 나폴리, 시드니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손꼽히는 곳인데다, 이 예수상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선정되어 더 유명해졌다. 거대한 예수상에서 내려다보는 리우데자네이루는 자연과 인공이 만든 걸작임에 분명하다. 


산타테레사 ⓒ 서진완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이 예수상은 1931년 브라질의 독립기념 100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조각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상 그 자체는 밋밋한 느낌이 들어서 과연 이것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슈가로프산과 달리 이곳은 제한된 공간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서 오랫동안 머물기에 너무 좁게 느껴져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그래도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은 마치 비행기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시원한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경이로운 도시(Marvelous City)’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예술적인 영감을 주는 도시라는 말은 정말 맞다.

산타테레사 지역에 어둠이 내리자 숙소 앞 레스토랑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미처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길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다. 거리 한편에는 타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 음악에 맞춰 자연스럽게 몸을 흔드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곳은 정말 자유롭다. 밤새 음악소리가 들렸다. 아침에 출발하는 상파울로 행 버스를 타야하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아침 일찍 주인아저씨가 사온 빵으로 커피와 함께 아침을 먹었다. 진한 커피를 마시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아주머니는 직접 구운 케이크를 아이들이 먹을 수 있게 준비해 주었다. 숙소 앞에서 지나가던 택시를 불렀다. 친절한 주인아저씨가 택시기사에게 우리가 가는 터미널을 얘기해주고 택시가 떠날 때까지 문 앞에 서서 배웅해주었다. 우리도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상파울로에서 아내 친구를


상파울루 시내 ⓒ 서진완

우리를 태운 버스가 출발하자 옆 좌석에 앉았던 흑인할머니가 흐느끼면서 눈물을 참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한 손에 묵주를 들고 창밖에 있는 중년남성을 보며 손을 흔든다. 바라보는 우리 마음도 짠해졌다. 사람 사는 것과 사람과의 관계는 인종과 국적에 관계없이 똑같다. 

남미에서 가장 크다는 상파울로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이곳에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아내의 친구가 마중을 나왔다. 나는 오늘 처음 만나는 사이지만 이곳에서 한국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에 누군지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아이들은 나와 함께 뒤에 따라가면서 엄마 친구 분을 보면서 한마디 했다. 

"엄마는 남자 친구 밖에 없는 것 같아."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만큼 엄마 성격이 좋다는 얘기지." "정말 그런가요?" 큰아이는 농담을 이어갔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에 배낭을 맡기고 친구 집으로 갔다. 한국음식이라면 뭐든 좋았는데, 수육, 김치, 된장찌개, 오징어볶음 등 그동안 먹지 못했던 음식을 보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친구 분 부인이 무척 편하게 대해줘서 아이들도 나도 마음 편히 저녁을 함께 했다. 입맛이 없어 힘들어하던 큰아이와 식탐이 있는 작은아이에겐 더 없이 좋은 선물이 되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상파울로 숙소는 주택단지 내에 있는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곳인데, 깨끗한 지역인지라 주위 환경도 쾌적했다. 이층 발코니 쪽 방을 사용한 덕분에 햇살이 방안까지 들어오고, 창을 열고 있으면 시원한 바람이 방안을 휘감는다. 아내에게 진한 브라질 커피 한 잔을 부탁했다. 작은아이는 이곳에서 볼 것들을 찾아보고 동선을 파악하느라 바빴고, 나는 아내와 우루과이(Uruguay)로 갈 일정을 함께 의논했다. 

간밤에 천둥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 잠을 자다 천둥소리에 일어났다. 잠시 빨래를 널어둔 것이 생각났지만, 이미 비에 젖은 상태라 그냥 그대로 두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창턱 아래까지 들이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아내는 잠이 달아났는지 컴퓨터를 켜고 침대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아침에 비는 완전히 그쳤다. 발코니에 나가서 주위를 살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날씨는 맑게 개었다. 다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상파울루의 지하철. 지하철을 이용하면 시내 중심가로 쉽게 연결된다 ⓒ 서진완

숙소 근처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면 시내 중심가로 쉽게 연결된다. 상파울로에는 12개의 지하철 노선이 있는데 도시의 중요한 지점은 대부분 지하철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우루과이의 몬데비데오(Montevideo)로 가는 버스를 알아보았다. 몬테비디오 행 버스는 월요일과 금요일 두 차례만 운행하는데, 저녁 11시에 출발해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새벽 4시에 도착한다고 했다. 이번에는 버스 안에서만 30시간을 보내야한다. 

“아이고!” 큰아이의 반응을 바라보는 아내의 얼굴에서 걱정스런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이 버스는 좀 더 편한 좌석도 있다. 그러나 이 좌석을 선택하면 기존 버스비에 1.7배나 더 비싸 4명의 버스 비용만 백만 원 정도가 든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아내는 30시간을 타고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부담스러워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가는 방법을 한번 알아보고 결정하기로 하고, 버스표 예약을 취소했다. 


상파울루 대성당 ⓒ 서진완

지하철을 다시 타고 시내 중심가로 갔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경우가 가장 많다는 바로 그곳인지라 조심 또 조심했다. 상파울로 구시가지 중심가에 있는 상파울로 대성당 광장에는 다른 도시와 달리 유난히 걸인들이 이곳저곳에 누워있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시내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거리 바닥은 작은 돌로 만들어져 운치가 느껴졌고, 식민지시대에 건설된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아내는 자연스럽게 성당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항상 그랬듯이 자리에 앉아서 기도를 올렸다. 건강하게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했다. 성당에서 나와 비행기 표를 구할 수 있는 여행사를 찾았다. 그러나 영어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젊은 직장인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물었지만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고, 다행히 한두 명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지만 그들은 이 주변에서 여행사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숙소에서 나설 때 허리가 약간 불편했는데, 거리를 걷다보니 허리 근육에 통증이 계속 심하게 느껴져서 오랫동안 더 걷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갑자기 하늘이 짙어지면서 비까지 몇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몬테비데오로 가는 항공편을 알아보았다. 이곳에서 몬테비디오로 바로 가는 직항노선은 편수가 많지도 않고 비용도 비싸서, 결국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에서 우루과이로 들어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다행히 가장 좋은 조건으로 마지막으로 남은 좌석 4개를 예약하는데 성공했다. 비행기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리에 아내와 아이들이 반가워한다.  

아침부터 빗소리가 점점 더 커져 이젠 제법 큰 비가 내렸다, 창문을 모두 닫았다. 허리 통증이 심해져서 조금만 움직이는 것도 힘이 들었다. 큰아이가 마사지를 해 주고, 아내가 수지침을 놔 주기도 했지만, 불편함이 가시질 않았다. 난데없이 찾아온 허리통증 때문에 하루를 꼼짝없이 숙소에서 보냈다. 아내의 친구 부인이 페이스북을 통해 상파울로시내에서 꼭 봐야할 곳을 소개해준 곳 중에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곳이 있어서 메모를 해 두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먼저 나가자고하기에 겁이 났다. 밖에는 계속 비가 내렸다. 내일 다시 배낭을 짊어져야 하는데 걱정이 앞섰다. 

아침에 일어나자 어제보다는 허리가 훨씬 편해졌다. 큰아이에게 배낭을 정리하게 하고 작은아이는 옆에서 배낭 하나하나에 어떤 물건들이 들어갔는지를 메모했다. 체크아웃하기 전에 아내가 수지침을 한 차례 더 놓아주었다. 큰아이의 마사지도 한차례 더 받았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금방이라도 비가 더 내릴 태세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하루 더!

"안녕하세요!" 탑승수속을 도와주는 브라질 여직원이 인사를 했다. 한국에서 잠시 살았다던 그녀의 한국어 인사에 깜짝 놀랐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창밖으로 멀리 상파울로의 시가지가 뿌옇게 보였다. 잠시 후 눈을 뜨자, 이번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가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비행기가 빠르네요!" 아내의 표정이 밝아보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내 중심가 ⓒ 서진완

밤이 깊어지고 창밖으로 바라본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는 넓고 깨끗하다. 그러나 잠시 후 시내 중심가로 접어들자 광장과 이어진 길거리에 쓰레기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가 묵기로 한 숙소는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유스호스텔로 젊은 친구들이 많아서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밤새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허리가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작은아이는 이곳에 볼 것이 많다면서 볼 것들을 정리해둔 종이를 보여주었다. 길을 나서면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볼 만한 곳이 많았다. 큰 길을 따라 이어진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프랑스 파리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거리에 서서 이 모습을 보면 이전에 아르헨티나가 얼마나 부유했을지 쉽게 확인된다. '남아메리카의 파리'라고 불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중심부를 계획할 때, 파리의 도시계획을 참고로 했다고 하니 그런 느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통령 궁 앞 ⓒ 서진완

세계에서 가장 넓다는 ‘14차선 도로’를 지나 ‘5월 광장(Plaza de Mayo)으로 가는 길은 아르헨티나의 현대 정치사를 이해하고 걸으면 느낌이 다르다. 이곳 광장은 1810년 5월 25일에 일어난 독립혁명을 기리는 곳으로 아르헨티나의 정치사에 있어서 상징적인 곳이다. 현재 공원 중심에 분수가 자연스럽게 흐르고, 그 주변에 사람들이 앉아서 햇빛을 즐기고 있지만, 그 앞에 지금도 경찰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 지금도 이곳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곳이다. 

군사정권시절 이곳에서 있었던 민주화에 대한 시민들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이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공원 앞에 대통령궁(Casa Rosada)이 있어서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행사들이 많이 열린다. 대통령궁에 있는 테라스를 찾았다. 영화 '에비타'에서 에바 페론(Eva Peron)으로 분한 마돈나가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열창했었던 곳이다. 광장 주변에는 대성당과 식민지시대의 정부청사 등이 함께 있어서 아르헨티나의 화려했던 시절의 모습과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절의 아픔도 함께 연상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야경 ⓒ 서진완

어둠이 찾아오자 숙소 내는 각국에서 온 배낭여행자들로 가득 찼다. 숙소의 로비 전체가 클럽으로 변해버렸다. 아내와 나는 조용히 방으로 올라왔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아내는 웃었다. 아이들에게 구경을 하라고 했는데, 웃으면서 관심이 없다고 했다. 방에서도 음악소리가 크게 들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이들도 잠을 자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서 지금까지 여행을 했던 도시를 순서대로 돌아가며 맞추는 게임을 했다. 큰아이는 대부분 기억 하지 못했지만 작은아이는 정확하게 도시들을 말했다. 잠시 후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아이들 모두 잠이 들었다. 

아침 식사시간에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언제 파티가 끝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놀았으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친구들은 파티와 관계없이 잠을 잤던 친구들이지 싶었다. 아이들도 깨워서 식사를 하게 했다. 작은 아이는 하루 더 머물었으면 좋겠다며 오늘도 어디를 가야할지 설명했다. 작은 아이가 정한 동선을 따르기로 했으니, 기분 좋게 하루 더 머무르기로 하고, 이에 맞춰 우루과이로 넘어가는 페리를 예약하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시끄러운 곳은 아무 관계가 없는 모양이다. 난 시끄러운 곳이 싫은데! 

<정리 = 이미루>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