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부두의 메마른 바다를 바라보며 ‘짜이지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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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부두의 메마른 바다를 바라보며 ‘짜이지엔’
  • 양진채
  • 승인 2017.03.17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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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중국어 수업 / 김미월

<연안부두>


헤어질 때 하는 중국말 짜이지엔은 ‘안녕’이라는 작별의 인사거나, ‘다시 만나자’는 기약의 인사. 소설은 짜이지엔이라는 인사처럼 하나의 단어지만 서로 대칭점에 있는, 그 사이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작가는 인천 연안부두와 인천행 열차를 주 무대로, 복잡하기 그지없는 전철 안의 인간군상, 낭만이 있는 바다가 아닌 기름 냄새가 역한 바다, 학생 신분으로 들어와 돈벌이가 우선인 중국인 아이들, 그 모든 걸 참아가며 삼 개월마다 재계약해야 하는 중국어 강사의 삶을 이야기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소설에 나오는 모든 구성요소들이 구차하게 느껴진다. 인물도, 장소도, 이야기도.

이 소설의 주 무대는 인천행 지하철과 연안부두 주변이다.

 

물론 신도림역에서 승객들이 대거 하차하고 나면 열차는 방학식이 막 끝난 학교 운동장처럼 갑자기 한산해진다. 문제는 그때쯤이면 그녀가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가 돼 있다는 것. 승객들과 밀고 밀리는 통에 머리는 헝클어지고 화장은 번지고 치마는 구겨진 꼬락서니도 그러하거니와, 무엇보다 정신이 꼭 얼었다 녹은 삼겹살처럼 너덜너덜해진 것이다.

 

인천의 바다는 늘 거대한 선박이며, 컨테이너박스 따위를 나르는 크레인 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곳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갯내보다 기름 냄새가 더 진하게 코를 찌르는 곳이기도 했다. 언제 어느 쪽에서 바라보아도 희미하기만 한 수평선. 씨멘트 부두에 부딪혀 출렁이는 바다는 푸른빛이 아니라 잿빛이었다.

 

서울에 사는 주인공 수에게 인천행 지하철은 고단하게만 느껴진다. 게다가 인천 바다는 메마르고, 아무 위안도 주지 못한다.

읽다보면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영상이 비추던 남루한 구석과 많이 닮아 있다. 어떻게든 서울에서 번듯한 직장을 잡으려고 애쓰던 혜주가 아니라 포구를, 부두를 비좁은 골목과 선로를 비추던 영상 말이다.

 

그동안 연재하며 소개했던 소설들이 인천에 살고 있는 주인공을 다뤘다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서울에서 인천으로 출퇴근하는 인물이다. 아무래도 인천을 한 발짝 물러난 시선으로 관망하게 된다. 관망하고 보니, 낭만이라고는 없는 바다며, 버젓이 대로변에 있는 얠로우 하우스가 속절없이 드러난다. 내 민낯을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아 창피해진다. 이럴 때 인천에 산다는 게 좀 그렇다. 가난하고 구차한 세간살이가 햇빛 속에 환히 드러난 느낌이랄까.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인천에서 재상영하고 살리려고 할 때, 한쪽에서 인천광역시의 번듯한 곳을 두고 하필 저렇게 후미진 곳에서 촬영한 영화를 인천영화라고 홍보하느냐고 거세게 항의를 했다는데 어째 나도 그러고 싶은 심정이다. 나도 그런 곳을 찾아 소설의 무대에 올리면서도 말이다. 내가 나를 보여주는 건 괜찮은데 누가 말도 없이 덜컥 우리 집 방문을 열면 기분 나쁘던, 떠돌던 사춘기 시절의 어느 때 같다.

그런데 이렇게 별 볼일 없는 곳에서 별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짠하고 따뜻한 얘기가 있다. 김미월 소설가의 소설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복잡했던 아침, 인천행 지하철은 종점으로 다가갈수록 사람이 줄어들고, 늘 비슷한 시간에 타는 사람들은 말은 안 해도 서로의 얼굴을 대충 알고 있다.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늘 타던 사람이 안 타면 궁금해지는 지경이 된다.

여기 중국어를 공부하는 화교남매가 있다. 인천역 자유공원 올라가는 길에 있는 화교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다.

 

녀석들은 열차에 오르자마자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빈자리가 두 개 이상 널찍하게 이어지는 좌석을 찾는다. 그러고는 달려가 앉는 대신 그 자리에 책을 올려놓는다. 그런 다음 둘이 나란히 열차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다.

 

또 한 사람 중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 검버섯이 피어난 얼굴이지만 허리가 꼿꼿한 노인은 어쩐 일인지 아이들 엄마에게 간단한 중국어를 물어보고 배운다.

 

“그러니까…… 며느리를 중국말로 뭐라고 합니까?”

“그럼 밥 먹었느냐는 말은 중국말로 뭡니까?”

 

이렇게 열차 안에서는 중국어공부를 하는 화교 아이들과 노인이 있다. 정작 중국어 강사인 수는 무심히 그들을 관찰할 뿐이다. 수는 연안부두 근처에 있는 조그만 전문대학의 부설 한국어학원에서 중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그러나 학생들은 중국어를 배우기보다 비자를 받으러와 돈을 버는데 더 치중한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중에 장기 결석하고 있는 쓰엉을 엘로우 하우스 근처에서 우연히 본다. 쓰엉은 누군가를 찾고 있다. 수는 버스에서 내려 쓰엉과 연안부두 가는 길에 있는 횟집에서 밴댕이회무침을 먹는다.

 

참기름을 듬뿍 넣고 맵게 버무린 밴댕이회무침을 쓰엉은 의외로 잘 먹었다. 제 앞의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밑반찬으로 나온 간장게장도 꼼꼼히 발라먹었다.
 


연안부두 가기 전, 밴댕이회무침을 잘 하는 횟집들이 줄줄이 있다. 정말로 거기에서는 아마도 불법으로 잡았을 어린 꽃게를 간장게장으로 내놓는다.

수가 쓰엉에게 늦었다고 얼른 집에 가자고 얘기하며 집이 여기서 얼마나 걸리느냐고 묻자, 쓰엉은 배타고 이십사 시간이라고 대답한다. 쓰엉에게 한국에서의 집은 집이 아닌 것인지도 모른다.

쓰엉이 얠로우 하우스까지 기웃거리며 찾던 사람은 쓰엉의 예쁜 애인이었고, 이 애인은 할아버지의 며느리가 되어 있다. 결국 할아버지 집에서 행패를 부린 쓰엉은 불법 취업이 밝혀져 강제 추방된다. 할아버지와 며느리가 선처를 부탁하지만 소용없다.

 

“……짜이지엔.”

쓰엉도 웅얼거리듯 대꾸한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목소리다. 수는 쓰엉과 여자를 번갈아 바라본다.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 짜이지엔. 어쩌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의미의 인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은 진짜 작별의 인사를, 다른 한 사람은 다시 만나자는 기약의 인사를 한 것인지도.

 

다시 수는 계약이 연장되어 몇 안 되는 중국인 학생들을 가르치러 여전히 인천행을 탄다. 아이들도, 수에게 쓰엉이 입을 점퍼를 전해달라던 노인도 여전하다. 수는 인천역에 다다라 열차 전광판이 다시 서울역으로 바뀌는 걸 본다. 그러나 수의 목적지는 이곳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은 고단하다. 인천행 지하철이 지옥철과 다름없고, 그녀가 가르치는 곳이 공부보다는 불법취업을 하기 위해 온 아이들이고, 그녀 역시 삼 개월마다 재계약해야 하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강사다. 삶은 기름 냄새나는 메마른 바다와 다를 바 없다. 낭만이나 여유가 끼어들 틈이 없다. 인물들은 긍정적이거나 낙관적이지도 않다. 그냥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산다. 그런데 열차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나, 며느리와 대화하기 위해 짧은 중국어를 배우려는 노인이나, 한때는 연인관계였을 쓰엉과 노인의 며느리나, 뒤늦게 나타난 노인의 아들이나 모두가 모나지 않았다. 지극히 선량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고 나서 오래도록 잔상이 남는다. 수시로 타고 다니는 인천행 열차, 종점, 연안부두 등이 김미월 소설가에 의해 가감없이 펼쳐지는데, 소설은 <고양이를 부탁해>의 시선과 닮아 있다. 담담하게 보여주는 것. 서로의 삶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 짜이지엔의 ‘안녕’과 ‘다시 만나자’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삶의 편린들처럼. 그리고 <고양이를 부탁해>의 고양이처럼, 삶을 환기하는 작가의 인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 이 소설이, 작가가 빛나는 이유이다. 다른 작가가 아닌 김미월이라는 작가가 그려낸 인천행 열차와 연안부두, 그 안에서 삶을 사는 인물들이어서 다행이고 고맙다.

슬슬 날이 풀리면 나도 소설 속 인물들이 거쳐 갔던 밴댕이 횟집에서 밴댕이 회무침을 밥에 쓱쓱 비벼 먹으러 가야겠다.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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