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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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또 사람
  • 서진완
  • 승인 2017.04.1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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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캠핑장에서 만나는 새로운 이웃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여행을 하며 만나게 되는 고맙고 반가운 사람들


웰링턴항을 떠나는 페리 위에서 ⓒ 서진완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침구를 정리하고 아이들을 깨웠다. 아침을 먹고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없어서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정리를 한 다음 캠핑장을 떠났다. 8시에 출항하는 페리지만, 7시까지 부두에 도착해서 승선신고를 해야 한다. 이미 부두에는 승선을 기다리는 캠프밴이 보였다. 안내직원의 유도에 따라 차례대로 페리 안으로 들어갔다. 

지정된 자리에 주차하고 우리는 선실로 올라갔다. 아내는 페리가 떠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선실내로 들어왔다. 페리는 웰링턴항구를 떠나 만을 빠져나와 쿡(Cook)해협으로 들어서자 약간씩 좌우로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선실 밖으로 나오자 바람이 거세게 불어 모자가 날려가지 않게 꽉 붙잡았다. 해협을 건너서 좁은 수로에 들어서자 페리는 호수 위를 달리는 듯 흔들림이 없다. 


그레이마우스 해변에서 ⓒ 서진완

픽톤(Picton)항에 도착해서 우리는 그레이마우스(Greymouth)의 캠핑장을 찾았다. 큰아이는 짐을 정리하는 사이, 나와 작은아이는 바베큐 그릴을 찾았다. 미국에서 온 Becky와 Ken Mitchell부부도 우리처럼 그릴을 찾고 있었다. 자식들을 다 키우고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살면서 시애틀에서 크루즈로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고맙게도 우리에게 먼저 그릴을 사용하라고 양보했다. 

나는 야채와 소시지를 다듬고, 고기를 굽는 일는 이번에는 큰아이가 직접 하도록 했는데 Ken Mitchell이 큰아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보면서 계속 얘기를 건넸다. 큰아이는 지난번 내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그릴에 고기를 썩 잘 구웠다. Ken Mitchell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가 얘기를 하는 동안 한국에서 여행을 온 이민하·조남정씨 가족을 만나서 잠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Becky는 자신도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이렇게 가족이 함께 다니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면서 아이들에게 정말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Becky는 페이스북으로 나에게 친구신청을 했다며 보여주었다. 이렇게 또 인연을 만든다. 아내와 해변을 다녀오자 저녁을 먹은 이민하씨 부부가 찾아왔다. 아들 둘과 조카까지 데리고 온 이들 부부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상암동에 산다고 했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던 와인과 치즈로 함께 얘기를 나누었다.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자정을 넘겨 우리는 차로 돌아왔다. 나도 이렇게 시간이 많이 지난 줄 몰랐다. 뉴질랜드의 물가가 비싸다고 한국에서 라면과 김치를 잔뜩 사왔다면서 우리에게도 나눠주었다.
 
 


이민하, 조남정씨 부부와 우리 가족(위), 그레이마우스에서 만난 말레이시아 가족(아래) ⓒ 서진완
 
아침에 일어나 부엌에 갔더니 아내가 말레이시아에서 이곳으로 와서 정착한 가족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들 둘이 이곳에서 아이들 공부 때문에 영주권을 획득했다고 했는데 직업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아이들이 공부를 마치면 말레이시아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했다. 중국계인 이들 부부가 자식에 쏟는 정성은 바로 우리의 부모들을 보는 듯했다. Becky와 Ken Mitchell이 떠나면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고, 어제 저녁에 본 이민하씨 가족도 우리 보다 먼저 캠핑장을 떠났다. 여행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 모두 우리들에게 특별한 인연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바로 여행을 통해 얻는 큰 기쁨이기도 하다.  

우리도 캠프밴에 올랐다. 출발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안개가 짙어져 시야도 흐려졌고, 점점 빗줄기가 거세어져서 속도를 낮추고 천천히 달렸다. 앞에 가던 캠프밴 뒤를 따라가는데 먼저 가라고 신호를 주었다. 그 차를 추월하면서 운전석을 보니 바로 먼저 떠났던 이민하씨 가족들이 탄 차였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비상등을 켜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차 앞으로 가서 잠시 후 갓길에 차를 세웠다. 

“큰일인데!” 풀이 있는 갓길이 비로 인해 진흙으로 변하면서 바퀴가 빠져버렸다. 천천히 진흙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바퀴는 더 깊이 빠졌다. 비는 계속 내리고 이민하씨와 아이들까지 모두 내려서 차를 밀어보았지만 차는 갓길 쪽으로 더 기울어져 자칫 잘못하면 쓰러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모두 비에 흠뻑 젖었다. 

이민하씨의 핸드폰을 빌려서 긴급서비스를 부탁하려고 전화를 시도했지만 통화권이 이탈된 지역인지라 전화까지 불통이었다. 몇차례 시도 끝에 지나가는 차를 세웠다. 그리고 가까운 도시에 가면 견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부탁했다. 다행스럽게도 친절하게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동안 아내와 작은아이는 이민하씨 가족이 타고 있던 캠프밴에 타서 기다렸다. 이민하씨 가족은 우리 때문에 비에 온몸이 다 젖었다. 

견인차는 간단하게 우리 차를 진흙에서 꺼내주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성의껏 달라는 말에 가진 돈을 주었더니 흔쾌히 그 중 일부만 받았다. 비가 오는데도 비를 맞으면서 기꺼이 도와준 이민하씨 가족도 그렇고 견인해준 분도 그렇고 비가 오는 상황에서 하마터면 더 난감할 수 있었을 텐데 모두들 덕분에 안전하게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와나카 호수. 비가 내려 날씨가 흐렸지만, 호수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 서진완

와나카 호수(Lake Wanaka)가 눈앞에 펼쳐졌다. 빙하 때문에 형성된 호수라는데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옥색 빛 호수물이 푸른 산과 더불어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호수를 따라 이어지는 도로는 한 눈을 팔게 할 정도로 멋있는 장면이 이어졌다. 호수에서 벗어나 근처 캠핑장으로 들어가서 쉬고 있는 사이에 반가운 차가 들어왔다. 이민하씨 가족의 캠프밴이었다. 

서로 반갑게 인사했다. 이렇게 해서 또 인연이 이어지는구나 싶다. 오는 길에 큰 슈퍼마켓을 찾지 못해서 제대로 된 고기나 먹을 것을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가지고 있는 재료로 아내는 부침개를, 이민하씨 가족도 갖고 있는 재료로 닭요리를 했다. 이민하씨 가족은 내일 퀸스타운(Queenstown)에서 캠프밴을 반납하고 다시 렌트카를 이용해서 나머지 여행을 한다고 했다. 저녁을 함께 하면서 이번에도 새벽까지 얘기를 나누었다. 아이들도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또래인지라 금방 친해졌다. 이래서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가 있다. 

다시 와야지!

와카티푸 호수 ⓒ 서진완

퀸스타운에서 이어지는 도로는 와카티푸 호수(Lake Wakatipu)의 옥색 빛 호수물이 높게 솟은 산들과 함께 절경을 이룬다. 도로는 호수를 따라 굽이굽이 펼쳐지고, 곳곳에 전망할 수 있는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서 지나칠 수가 없다. 호수 전체가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풀밭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순간 갑자기 발가락부근에 큰 대못이 꽂히는 통증이 느껴졌다. 

“앗!” 벌에 쏘였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직감했다. 통증은 생각보다 컸고 순간 꼼짝을 할 수 없다. 우선 발가락에 꽂힌 벌침을 뽑았다. 주변이 붓는 듯했고 전기가 찌릿하게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바로 퀸스타운으로 돌아가서 병원부터 가자고 했다.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조치원에 사는 큰형이 벌침에 쏘여서 의식을 잃는 바람에 큰 변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아내와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급히 차를 돌려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벌에 쏘인 지 30분 이상이 되었지만 호흡이 곤란하거나 의식을 잃지 않았다면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벌에 쏘이긴 했지만, 별 탈 없이 테아누아로 향했다. ⓒ 서진완

약국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고 다시 테아누아(Te Anau)를 향해 출발했다. “괜찮아요?” 통증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안심이다. 호수가 끝나자 이번에는 끊임없는 초지가 이어졌다. 멀리 산이 보이지만 이런 들판이 끝날 것 같지 않을 만큼 계속 이어졌다. 양들과 소떼들은 물론 사슴을 방목하는 곳도 많다. 길은 한적하고 곧게 뻗어있다. 차를 다시 세웠다.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겼다. 

테아누아의 공기는 차갑다. 여름이지만 늦가을처럼 싸늘하게 느껴질 정도라 겉옷을 입어야만 한다.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사이에 짐을 정리해놓고 작은아이와 부엌으로 가서 저녁을 도왔다. 뉴질랜드에 영어를 배우러온 외국학생들이 부엌에서 파스타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독일, 프랑스, 벨기에 등 국적도 다양하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왔다는 이들을 보고 큰아이를 불러 인사를 시켰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학생 정도로 보일 만큼 성숙된 모습이었지만, 큰아이보다 나이가 한살 정도 많을 정도다. 우리가 요리하는 것을 보고 궁금한지 이것저것 물었다. 아이도 잠시나마 그들과 어울렸다.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글로벌 마인드는 이렇게 함께 하면서 대화하고 생활하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아내는 아직도 외국인이 말을 건네 오면 당황하게 된다면서 우리 아이들은 달랐으면 했다. 


밀포드사운드로 향하는 길,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 장소를 만났다. ⓒ 서진완

남섬을 돌면서 아내와 나는 천혜의 절경이 너무나 좋은데, 아이들은 우리들 만큼 감동을 받지 않는다. 누군가 말했듯이 경치를 보고 좋아하면 그만큼 나이가 들은 것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테아누아에서 밀포드사운드(Milford Sound)로 가는 길은 피오르드(Fiordland) 국립공원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은 원시림과 호수가 이어진다. 길 가에 노란색 야생화가 피어있고, 넓게 펼쳐진 초원은 들판 끝에 보이는 설산까지 이어진다. 

이곳이 바로 영화 '반지의 제왕’을 촬영한 곳이라는데 곳곳에서 영화의 장면 장면이 연상된다. 도로를 달리면서 아내는 아이들에게 계속 바깥에 펼쳐진 멋있는 장면을 놓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하다. 

퀸스타운 시내와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이 있다. 이곳 전망대에 올라 아래로 내려다보는 모습은 뉴질랜드에서 본 최고의 전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좋다! 어때?" 엄마의 감탄에 대해 아이들은 "좋아요!"라고 쿨하게 얘기한다. 아이들은 이런 광경을 보면서도 받아들이는 감동은 우리와 같지 않다. 아내는 "많이 본 탓이 아닐까요?" 조용하게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아이들이 귀속말을 듣고 눈치를 챈 듯 말했다. “스위스에서 본 장면이 더 좋아서요!” 


밀포드사운드의 절경을 보고도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 서진완

아침은 내가 준비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감자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작은아이와 함께 부엌으로 갔다. 딸아이에게 감자를 깎아달라고 부탁하고, 쌀에 물을 넣어 불에 올리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붓고 감자를 볶았다. 감자와 계란을 같이 넣고 볶았던 실수를 경험삼아, 이번에는 제대로 감자부터 볶았다. 

노릇노릇하게 감자가 익을 때, 풀어둔 계란을 넣어 스크램블을 만들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햄을 꺼내 함께 구워서 아침을 준비했다. 햇볕이 내리쬐는 잔디밭에서 감자로 만든 에그 스크램블과 햄, 방금 구운 식빵, 그리고 과일로 아침식사를 완성했다. 작은아이는 체중조절을 위해 많이 먹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빠가 만든 건데!” 작심삼일이 아니라 이번에는 제대로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의지로 읽었다. “맛있어요!” 

쿡산(Mt. Cook)으로 가는 길은 외길이다. 시원하게 펼쳐진 호수에 이어 넓은 계곡 사이로 초지가 이어지고 다시 웅장한 산들과 그 사이에 흐르는 빙하가 나타났다. 뉴질랜드에서 꼭 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역시 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시간을 갖고 여유 있게 이곳을 찾아보시기를 권한다. 

좋은 경치를 눈으로만 보고 지나칠 수 없다. 쿡산의 봉우리들은 구름에 가려져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다는 봉우리(3,754m)를 볼 수는 없지만 눈 덮인 산의 모습을 통해 그 웅장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근처 빙하 호수 물에 발을 담구고 옥색 빛 호수 너머 쿡산을 쳐다보았다. “여기는 정말 멋있네요!” 이번에는 아이들이 먼저 말했다. 


쿡산으로 가는 중에 마주친 빙하호수 ⓒ 서진완

햇살이 뜨거워 자갈 위에 올라서자 젖었던 발이 금세 말라버린다. 도로 주변에는 푸른  색의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있고, 흰 눈이 덮인 산들과 푸른 하늘 그리고 이 모든 색깔이 옥색 빛 호수 물에 비친다. 뉴질랜드 남섬의 아름다움이 이곳에 다 담겨있는 것 같다. 물에 담갔던 탓에 발은 시원하고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맑은 공기가 차안으로 가득 들어왔다. 호수를 벗어나 아내에게 운전대를 다시 맡기고 뒷자리에 아이들과 나란히 누워서 눈을 감았다. 

Good Luck for You!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다시 만난 Mitchell 부부. ⓒ 서진완

캠프밴으로 여행을 하면서 아내는 식사를 다양하게 준비했다. 부엌에 가서 식사를 준비하면 작은아이가 심부름을, 큰아이와 나는 정리를 도맡았다. 캠핑장은 정이 오가는 곳이다. 한 번은 우리가 식사를 마칠 즈음에 호주에서 왔다는 Mike가 연어를 다듬고 있었다. 이곳 호수에서 잡았다는데 보기에는 무척 크게 보였지만 그는 작은 연어라고 했다. 

작은아이가 먹으려고 샀던 레몬주스를 건네주었더니 연어를 한 조각 썰어서 우리에게 주었다. 회감으로 자신도 잘 먹는다면서 레몬주스를 쳐서 그 자리에서 먹었다. 고맙다고 건네받은 연어를 작은아이에게 잘라 주었다. "정말 맛있어요!" 나는 마시고 있던 레드와인을 Mike에게 고맙다며 한 잔 권했더니 이번에는 큰 조각을 더 잘라주었다. 

"아빠! 받으세요!" 작은아이는 사양하지 않았다. 연어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이번에 받은 조각으로 연어스테이크를 만들었다. 그사이에 일본인 부부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작은아이가 먼저 인사를 했다. “곰방와!” 일본인 부부는 놀라면서 인사를 받았다. 

작은아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는 사실은 큰 변화다. 평소에 낯을 가리는 아이가 이렇게 말을 먼저 건넨다는 사실만으로도 칭찬을 해 주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캠프밴으로 돌아왔다. 이웃에 주차한 캠프밴에 계신 외국인 노부부가 눈인사를 했다. 작은아이는 이번에도 "Hi!"하고 먼저 인사를 했다. 캠핑장에서 서로 주고받으며 느끼는 정이다. 피부색은 다르지만 이렇게 한 장소에 머물면서 가까운 이웃이 된다. 아이들에게도 함께 사는 이런 경험은 정말 필요하다.  

해가 지자 캠핑장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도 문을 잠그고 퇴근을 했다. 세탁기에 넣을 동전을 바꾸려고 사무실에 들렀는데, 아무도 없다. 마음만 먹으면 저녁에 몰래 캠핑장에 들어와서 지내고 아침에 나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이곳에서 그런 일은 없단다. 


크라이스트처치의 무너진 성당 ⓒ 서진완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시내 곳곳이 폐허 같은 분위기였고 공사 중인 관계로 길이 차단된 곳이 많았다. 처음 눈에 들어온 시계탑을 포함해서 오래된 건축물들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고, 받침대를 기대거나 받치고 있는 건물들도 보였다. 2011년 2월에 발생한 지진의 여파로 이곳의 상징적인 건물이었던 대성당도 무너져 내렸다. 현재에도 이 건물을 원래대로 복원하는 문제와 허물고 다시 짓는 문제를 놓고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정말 예쁜 건물이었을 것 같은데요..." 아이들도 안타까워했다. 점차 이곳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 했지만 마치 폭격을 받은 것 같은 이런 분위기를 완전히 벗어나기에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남섬에서 마지막 밤은 크라이스트처치 캠핑장에서 보냈다. 도시 한가운데 있는 캠핑장이지만 새소리는 숲 속에서 들리는 것과 같고 어디에서 왔는지 오리들이 캠프장 주변에 앉아 떠날 줄 모른다. 마침 우리 옆에 모바일홈을 끌고 와서 힘들게 설치하는 것을 보고 큰아아와 함께 힘을 보탰다. 캠핑장 내에서 이런 일은 흔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큰 모바일홈을 움직여서 원하는 위치에 설치하려면 손이 필요하다. 안전한 위치에 설치를 완료하자 고맙다며 맥주 한 병을 건넸다. 

부엌에서 작은아이가 우리를 찾았다. 오늘 저녁은 해산물을 먹고 싶다는 아이의 요청대로 아내는 홍합과 생선요리에 화이트소스까지 곁들인 멋진 저녁을 차렸다. 식탁에 둘러앉아 조금 전에 받았던 맥주와 와인으로 건배를 했다. 아내는 점점 줄어드는 여행일정을 아쉬워했고, 큰아이는 곧 학교로 돌아가면 현실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는 것 때문에 걱정이 된다고 했다. 아내는 큰아이가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조언을 했다. 작은아이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행을 더 즐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웃으면서 얘기하는데 아내가 화들짝 놀랐다. 우리는 모두 뒤를 돌아보았다. Becky와 Ken Mitchell이 부엌으로 들어왔다. 자리에 일어나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 포옹했다. 그레이마우스에서 헤어진 후,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다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런 것을 두고 인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Ken Mitchell은 호주머니에 있던 호주 동전을 하나 꺼내 나에게 주었다. "Good luck to you!” 그리고 캘리포니아로 오면 꼭 연락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다시 포옹을 했다.

<정리 = 이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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