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를 떠나 호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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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를 떠나 호주로!
  • 서진완
  • 승인 2017.04.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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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여유롭고 한가한 여행의 기쁨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다시 북섬으로


크라이스처치에서 픽톤항으로 가는 길 ⓒ 서진완

이렇게 많은 청둥오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캠핑장 주변에 떠날 줄 모르고 아침부터 꽥꽥 거린다. 새소리와 함께 오리소리까지 합쳐져 화음을 이루는데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옆 캠프에서 누군가 던져준 식빵을 쫒아 다투면서 받아먹는 모습을 보니 이곳에 먹을 것이 많아서 떠나지 못하는구나 싶다. 이름 모를 각종 새들도 함께 잔디밭을 걸어 다닌다. 새가 날아다니는 것을 잊고, 이곳에서는 버젓이 걸어 다닌다. 도심 속에 있는 캠핑장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곳이다. 

크라이스트처치를 떠나면서 작은아이가 보고 싶어 하는 국제남극센터를 보고, 픽톤항으로 향했다. 남섬 여행을 계획하는 분은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픽톤항으로 가는 이 길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가는 길 자체도 아름답지만 물개가 집단적으로 서식하고 있는 곳도 있고, 우리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카이코우라(Kaikoura)에서는 고래를 볼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잠시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면 차를 세우고 경치를 보고, 해변이 나타나면 바지를 걷고 발을 담굴 수도 있다. 


픽톤항으로 가는 길에 마주한 해변 ⓒ 서진완
 
픽톤항에 제 시간에 도착했지만 페리는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출발했다. 페리가 쿡해협을 나서자 배 멀미를 느낄 정도로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해가 완전히 지면서 주변에 보였던 섬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새벽 시간에 맞춘 알람소리에 잠을 깼다. 어제 밤늦게 페리에서 내려 이곳 웰링턴 캠프장에 도착했기 때문에 잠깐 자고 일어났다. 오늘 오클랜드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일찍 이곳을 출발해야 한다. 아침에 꼭 샤워를 해야 하는 큰아이만 깨우고, 작은아이는 그냥 자도록 내버려두었다. 캠핑장을 떠나 한참을 지나 주유소에 정차했을 때, 작은아이는 일어났다. 

웰링턴에서 오클랜드까지 약 600km정도 되는 거리지만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서 9시간 정도 소요된다. 아침에 서둘러 출발한 탓에 오전 중에 상당한 거리를 달렸다. 중간 중간 주유소를 찾을 때나 안내센터에 들러서 화장실을 찾을 때에 잠시 휴식을 취했다. 바람이 많이 불면 캠프밴 차체가 크게 흔들려 긴장을 늦출 수 없었기 때문에 졸음이 오는 일은 없었다. 힘들면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기겠다고 했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 운전대를 맡기는 것이 불안했다.


타우포 호수.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파도가 제법 일었다. ⓒ 서진완

타우포호수(Lake Taupo)를 바라보는 곳에 차를 세웠다. 불을 켜서 아내는 점심을 준비했다. 가지고 있는 식재료 또한 계획대로 다 소진할 수 있도록 아내는 식단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마치 해변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호수에 파도가 쳤다. 바람이 점점 더 세졌다. 점심을 마치고 다시 출발했다.  

오클랜드 공항 근처 캠핑장에는 오후 4시경에 도착했다. 힘들기는 했지만 아침 일찍 출발한 덕분에 여유 있게 도착한 셈이다. 햇살이 비치는 자리에 차를 세우고 전원을 연결했다. 그리고 배낭을 모두 꺼내고 차 안에 둔 짐을 정리했다. 그동안 사용했던 물건 들 중에서 이곳에 두면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것들과 가지고 갈 것을 구분했다. 아이들도 함께 정리를 도왔다. 아내는 그동안 캠프밴 2층 침대에 올라가 보지 못했다며 올라가 누웠다. “괜찮은데요.” 그리고 캠프밴의 이곳저곳을 카메라에 다시 담았다. 

해가 다시 저물었다. 오늘이 여행을 시작한지 333일째 되는 날이라면서 그냥 넘길 수 없다고 했던 아이들이 어쩐 일인지 일찍 잠이 들었다. 아내와 나는 이문세의 “옛사랑”을 틀었다. 오늘따라 차분하게 흐르는 이런 음악이 좋다. 뉴질랜드에서 빌린 캠프밴에서 마지막 밤을 이렇게 마감한다.  


여유로운 아침, 그리고 아차!


아차! 비자가 만료됐을 줄이야! (긴급 비자 발급을 위해 대기중인 아이들) ⓒ 서진완

아침에 눈을 뜨니 아내는 벌써 일어나 있다. 샤워를 하고 캠프밴 내부를 정리했다. 아이들도 깨웠다. 그동안 가지고 다녔던 여행 책과 남은 식재료는 모두 꺼내 이곳 캠핑장에 남겨두었다.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또 사용하게 될 것이다.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시원하다. 차 문을 활짝 열었다. 새소리가 크게 들린다. 주변에 새들이 정말 많다. 뉴질랜드의 종이화폐를 보면 전면에는 사람이 새겨져 있지만 뒷면에는 공통적으로 각종 새가 인쇄되어 있는데,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잔디밭을 밟았다. ‘들어가지 마시오’가 아니라 항상 밟을 수 있는 곳이라서 좋다.

맑은 공기 또한 부럽다. 큰아이는 이곳에 온 이래 고질적이던 비염이 사라졌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뉴질랜드의 북섬과 남섬을 돌아보면서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좋은 공기를 마음껏 마셨다. 캠프밴에 기름을 가득 채워 반납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큰일 났네!” 호주에 입국하는 전자비자를 보여주었더니 비자기한이 지난달에 만료되었다고 했다. 세계일주권을 발권할 때, 여행사에서 호주 전자비자를 대신 발급받아주었는데, 그때 여행사 직원이 착각한 모양이다. 나도 만료기간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행사 책임으로만 볼 수도 없다. 

비자기간이 만료되었기 때문이 탑승권 발권을 중단하고 공항 내에 있는 호주비자센터를 급히 찾았다. 전자비자는 무료로 발급받을 수 있지만 이렇게 긴급으로 비자를 발급받을 경우는 상당한 비용이 필요했다. 비용보다도 이렇게 긴급으로나마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다행이다. 수속시간이 있기 때문에 자칫 서두르지 않으면,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인지라 비자발급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내내 급한 마음을 다스리고 또 다스렸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무사히 탑승했다! ⓒ 서진완

뛰었다. 필요한 서류를 가지러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탑승권 발권창구와 이곳까지 한차례 왕복하고, 기다린 덕분에 마침내 비자를 받았다. 다시 뛰었다. 탑승권 발권창구로 돌아왔을 때는 그렇게 많았던 사람들이 다 사라졌다. 우리가 마지막이었다.  


호주에 첫발을...


무사히 호주 도착!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 서진완

비행기는 난기류 때문인지 많이 흔들렸다. 눈을 감고 하늘에 운명을 맡겼다. 3시간 정도의 비행 후 시드니(Sydney)에 무사히 도착했다. 캠프밴을 빌리기 전까지 이틀 동안 시드니 시내에서 우리는 다시 배낭여행자로 지내야 했다. 작은아이가 지도를 챙기는 동안, 큰아이와 나는 시내로 들어가는 최선의 방법을 의논했다. 

교통비가 생각보다 많이 비싸 열차보다는 셔틀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숙소로 가는 동안 베트남 출신의 운전기사는 이곳의 물가가 정말 비싸졌다고 했다. 그러나 인건비도 이에 비례해서 인상되었기 때문에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했다. 

언덕 위에 위치한 숙소는 유럽여행 시 자주 사용했었던 호텔체인이어서 내부 구조가 익숙하다. 창문 커튼을 열자 언덕 아래로 시드니 하버브리지(Harbor Bridge)와 오페라하우스가 보인다. 숙소에서 인터넷 이용료가 30분에 $5이라고 해서 놀랐는데 슈퍼마켓에서도 또 한 번 이곳 물가에 놀랐다. 

"와! 정말 비싸네요!" 아내와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배낭을 정리하고 엄마는 몬테비디오 이후 한 달 만에 다시 길어진 큰아이의 머리를 손질했다. 창밖으로 어둠이 깔리고 저 멀리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의 불빛이 선명하게 보였다. 

12월 3일. 오늘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다. 역시 딸이다. 아들은 몰랐고, 딸아이는 오늘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침에 작은아이는 엄마에게 축하한다며 뽀뽀를 했다. 오랫동안 여행을 하는 우리들에게 시드니에서 맞는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서로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내려다보는 항구는 햇살에 오페라하우스가 반사되어 더 눈부시게 보이고, 주변에 푸르른 숲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작은아이는 9시 반부터 시내의 주요 관광지를 다니는 555번 무료버스를 타자고 제안했다. 창문을 닫고 우리 모두 편안한 차림으로 숙소를 나섰다. 햇살은 적당하게 따뜻하고, 시드니 거리는 깨끗하다. 시청 근처에서 555번 버스를 탔다. 버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모두 오페라하우스 근처 부두에서 내렸다. 

"생각보다 별론데요!" , "아니, 멋지잖아!" 돛을 상징한 오페라하우스를 보고 아이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그래도 아이들은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이를 배경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어젯밤에 숙소에서 본 야경이 더 괜찮았던 것 같은데!" 아내도 덧붙였다. 너무 많이 알려져서 큰 기대를 한 탓이다. 나 역시 큰 감동은 없다.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 보다는 오히려 시내 중심가에 펼쳐져 있는 깨끗한 숲과 공원이 더 좋다. 

 


시드니 중심가에 넓게 펼쳐진 공원(위)과 시드니 시청 앞 광장에 놓인 안락의자들(아래) ⓒ 서진완

아내와 나는 세인트앤드류 성당과 시청 사이에 있는 넓은 광장이 마음에 들었다. 광장에는 안락의자가 있어서 사람들이 이곳에 앉아 점심도 먹기도 하고 책도 보고, 일부는 눈을 감고 오수를 즐기기도 했다. 시에서 제공한 이 안락의자는 높이를 여러 단계로 조절할 수 있어서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있다. 우리도 안락의자에 앉았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햇살은 따뜻했다.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시드니의 고층빌딩 숲 사이에 성당의 첨탑과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는 안락의자에 앉아서 너무나 편안해 했다. 나도 옆에서 눈을 감았다. 이런 공간이 우리 주변에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울시청 앞 잔디밭에 이런 안락의자를 놓아둔다면 시내를 오가는 직장인들이나 사람들이 잠시나마 쉴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더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어나서 다시 걷기 시작하자 몸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성당 앞에는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트리가 눈에 띄었다. 여름에 맞는 크리스마스를 상상만 했는데, 이곳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지 궁금해졌다.

“동생 왜 저러니?" 큰아이가 동생에게 심한 말을 한 모양이다. 작은아이는 혼자 먼저 길을 걸었다. 큰아이도 씩씩거렸다. 작은아이도 속이 상해서 다시 오빠에게 심한 말을 건넨 모양이다. 서로가 기분이 상해서 숙소까지 말없이 따로따로 걸었다. 여행을 하면서 둘이 많이도 다투기도 하고 그래도 금방 화해하고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이럴 때 우리는 그냥 내버려둔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아이들과 다시 얘기를 하면 그때는 쉽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수긍하게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좋은 나무를 가꾸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해가 지면서 역시 아이들은 언제 다투었는지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이번에는 둘 다 배가 고프다고 엄마에게 떼를 썼다. 피자를 먹고 싶다고 둘이 합의를 본 모양이다. 큰아이를 데리고 숙소 근처에 있는 피자점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를 시켰다. 

우리의 결혼기념일을 피자로 조촐하게 대신하고, 와인과 주스로 건배를 했다. "앞으로 재미있게 남은 시간을 보내요!" 아이들이 먼저 외쳤다. "그래 그러자." 


캠프밴으로 출발... 그러나...


불리에 위치한 캠핑장 ⓒ 서진완

큰아이에게 배낭정리를 맡기고 작은아이를 데리고 캠프밴을 인수하러 갔다. 이곳에서 빌린 캠퍼밴도 카니발 같은 사이즈이기 때문에 운전하기에 힘들지 않고 흔들림도 적어서 편하다. 새로 지급받는 내비게이션은 사용하기 불편해서 다른 것으로 교환을 원했지만 마지막 남은 것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 숙소로 오는 길에 지리도 익숙하지 않고, 내비게이션은 자꾸 엉뚱한 곳으로 안내해서 몇 차례 길을 잃고 겨우 숙소로 돌아왔다. 아내와 큰아이는 이미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 로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낭을 모두 차에 싣고 시드니 시내를 빠져나왔다 

불리(Bulli) 근처에 있는 지역안내센터에서 잠시 차를 세웠다. 언덕 위에 위치한 이곳은 해변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 갖추고 있다. 친절한 직원의 안내로 이곳 해변에 위치한 캠핑장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하고, 뉴사우스웨일즈(New South Wales)에서 캠핑을 할 수 있는 곳에 대한 정보와 앞으로 호주에서 우리가 계획했던 동선에 대한 의견도 구했다. 


불리의 해변에서 신나게 뛰어놀기! ⓒ 서진완

캠핑장은 언덕 아래로 내려오자, 파도소리가 들리는 해변 근처에 있었다. 해가 서녘으로 지고 서늘해졌지만 뉴질랜드 보다는 따뜻하다. “안녕하세요!” 이웃에 주차한 윤상철씨 부부는 우리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한 것 같은데, 한 달 동안 호주를 여행하고 있는 중이다. 두 분 모두 춘천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이시라는데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세계일주여행을 계획했다가 가족들의 반대로 계획을 수정해서 이곳에 왔다고 했다. 아이들이 아직은 어려서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우리가 윤상철씨 부부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큰아이는 배낭과 짐을 차곡차곡 다시 정리했다. 그렇게 많아 보였던 짐들이 차내 공간속으로 다 들어갔다. 캠핑의자을 꺼내 앉았다. 햇살을 바라보며 와인을 한 잔 했다. 뉴질랜드에서 경험 때문에 캠핑장에서의 생활이 익숙하다. 

저녁을 먹고 모두들 해변으로 나갔다. 포말이 부서지고 파도가 발아래 모래를 삼키고 갈 때는 구름위에 떠 있는 듯하다. 파도가 발끝에 닿으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큰아이는 파도에 바지가 젖자, 아예 옷을 입은 채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래… 마음껏 고함치고 소리를 질러라! 그리고 스트레스를 마음껏 날려 버려라!” 해가 지는 노을이 해변 가에 밀려오고 서로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을 무렵까지 해변에서 머물렀다. 


주택가에 캥거루가?


캠핑장이 캥거루 서식지인 듯 싶다! ⓒ 서진완

두두둑~ 두두둑~ “빗소리인가?” 귀를 의심했다. 어제 저녁까지 날씨가 좋아서 큰아이는 수영까지 했는데, 비라니! 꽤 많은 비가 내렸다. 캠프밴 지붕 위에 설치된 텐트는 스위치를 눌러서 텐트가 되고 다시 지붕으로 접히는 방식인지라 위에서 자고 있는 아이들이 걱정이 되었지만 차를 인수할 때 큰 비에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니 마음을 놓았다. 

다시 눈을 떴다. 아내도 꽤 오랫동안 잠을 자고 일어났다. 커튼을 쳐보니 하늘이 맑다.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 햇살까지 비쳤다. 하늘 저편에는 아직도 검은 구름이 몰려 있어서 언제든지 다시 비가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제 만났던 윤상철씨 부부는 아침 일찍 캠프장을 떠나면서 인사를 했다. 시드니로 돌아가서 비행기로 울루루(Ulruru)로 간다고 했다. 아마도 그 즈음이면 우리도 그곳을 향해 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 기회가 되면 다시 보자고 했다. 아이들도 일어났다. 밤새 비가 내렸는데도 잘 잤다고 하니 다행이다. 

해안선을 따라 연결된 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잠시 중간에 전망이 좋은 곳에서는 멈추기도 했다. 점점 우측운전에 익숙해지고, 언제까지 어디를 가야하는 부담이 전혀 없고, 좋은 곳에서는 언제든지 쉬고 갈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다. 

가다가 슈퍼마켓을 만나면 아이들은 각자 먹고 싶은 것들을 찾았고 아내는 야채와 고기 등을 구입했다. 캠프밴에 있는 냉장고가 작아서 많이 살 수도 없지만, 그래도 먹을거리가 충분해서 마음은 항상 느긋하다. 


캥거루들은 넓은 잔디밭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사람을 보고도 놀라 도망치지 않았다. ⓒ 서진완

"저기, 캥거루가 있어요!" 캥거루를 직접 볼 수 있다는 해변을 찾다가 주택가 골목에서 아내가 갑자가 외쳤다. 이런 곳에 어떻게 캥거루가 서식할까 눈을 의심할 정도로 주택가 사이에 캥거루가 여럿 서 있다. 차를 잠시 멈추었다. 모두가 흥분하며 한참을 창밖으로 내려다보았다. 정말 캥거루다. 다시 천천히 달렸다. 이곳 주변 여기저기에 캥거루가 자유롭게 노닐고 있다. 두 손으로 자기 몸을 만지는 캥거루의 모습이 귀엽다. 

"저기도 캥거루가 있어요!" 길이 끝나는 지점에 보이는 캠핑장으로 들어갔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아내와 작은아이는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느라 바빴고, 캥거루는 우리를 보고도 놀라거나 당황한 기색이 전혀 없이 자연스럽게 서 있거나 자기들끼리 놀고 있다. 

캠핑장 중간에 있는 넓은 공터는 캥거루가 집단적으로 서식하고 있다. 수십 마리의 캥거루가 이 넓은 잔디밭을 뛰어 다닌다. 차를 주차하는 공간과 캥거루가 있는 곳이 구분되지 않고 함께 있다. 바로 앞은 해변이 펼쳐지고 해변 가에도 캥거루가 있다. 여기는 캥거루 판이다! 

<정리 = 이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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