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아웃백을 달리며
상태바
광활한 아웃백을 달리며
  • 서진완
  • 승인 2017.05.17 07: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4)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그곳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아웃백은 좋아! 아니 싫어!


아웃백. 평원은 끝 없이 이어지고 집 한 채 보이질 않는다.  ⓒ 서진완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완전히 빠져나가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South Australia)주로 들어왔다. 이제 바다는 더 이상 볼 수 없고 도로 양옆으로 나무숲과 초지가 이어지고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을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차량통행이 드물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자유롭게 풀을 뜯는 소들과 양들만이 보일 뿐이었다. 

작은아이는 울루루(Uluru)가는 길을 찾아 거리를 계산하면서, 소요되는 날짜와 머무를 캠핑장을 조사했다면서 조용하게 나에게 들어보겠느냐고 했다. 조사한 내용은 나중에 의논하자고 하고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겼다. 이런 도로는 안심하고 맡겨도 될 만큼 한적해서, 운전하는 것도 즐거운 일인지라 운전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알버트 호수와 그 위에 떠 있는 펠리컨 ⓒ 서진완


캠핑장에 도착하자 바로 앞으로 호수(Lake Albert)가 바다처럼 넓게 보인다. 의자에 앉아 호수 너머로 해가 지는 장면을 바라보면 바다에서 일몰을 보는 착각이 든다. 덩치 큰 새가 호수 물 위에 의젓하게 앉아있는데, 바로 펠리칸이다. 이름 모를 다른 작은 물새들 사이에 유독 펠리칸 만이 두드러져 보인다. 아델레이드(Adelaide)에서 이곳 호수가 있는 캠핑장까지 자주 온다는 호주인 부부가 방금 낚았다며 월척을 보여준다. 해가 서녘으로 완전히 지면서 호수는 붉게 물들었다. 아내와 아이들과 잔디밭에서 호수에 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그 위를 낮게 나는 펠리컨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해가 완전히 지자 이번에는 지저귀는 새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작은아이는 진지하게 울루루가는 거리와 일정을 설명했다. 울루루로 가는 길은 아델레이드에서 북쪽으로 나 있는 한 길 밖에 없기 때문에 매우 단순했다. 아내는 말로만 듣던 아웃백(Outback)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했다. 

“갈 길이 멀기 때문에 1시간 정도 일찍 출발해요!” 그래도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큰아이의 의견에 아내도 지금처럼 천천히 여유롭게 여행했으면 했다. 

우리들은 앞으로 아웃백에서 머무를 며칠 동안 제대로 된 슈퍼마켓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먹을 물과 고기, 그리고 야채 등을 충분히 준비했다. 아델레이드를 떠난 후 점점 인적이 드물고 차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웃백이 시작되었다. 

평원이 끝없이 이어지고, 집 한 채 없다.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기름이 점점 줄어드는데 주유소는 보이지 않는다.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잠시 눈을 감았다. 어디를 둘러봐도 평원밖에 없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 지나가는 차를 한 두 대 볼 뿐이다. 흔들리는 차에서도 잠시 졸았는지 눈을 떴을 때는 꽤 먼 거리를 달려왔다. 


아웃백에서 마주 한 석양. ⓒ 서진완


아내에게 100Km정도만 운전하라고 했는데, 다시 운전대를 넘겨받았더니 기름이 거의 제로상태였다. 내가 자는 사이 주유소 한 곳을 지나쳤다고 했다. “어쩌죠!” 아내는 미처 기름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미안해했다. 거의 제로상태로 빠른 시간내 기름을 넣어야할 상황이다. 등에 식은 땀이 낳다. 아무리 달려도 주요소가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저기 주요소가 있어요!” 저 멀리 조그만 주유소가 보였다. 주유등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르는데 이렇게 주유소를 만난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기름 값은 이전에 보았던 주유소와 무려 리터당 30센트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비쌌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런 사막 한 가운데 주유소가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한다. 

아웃백에서 맞는 석양은 특별하게 보인다. 지평선너머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하늘에 달은 밝고 그 옆으로 별들이 보인다. 공기는 너무나 맑고 조금 전까지 뜨거웠던 대지는 점점 식어가며 기온이 낮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넓은 캠핑장에 캠프밴 4대만 있어 설렁하기 그지 없다.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먹고 살까? 뜨거운 아웃백의 열기도 저녁이 되자 물러가고, 불어오는 바람때문에 시원하다. 차 문을 열어놓고 한참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내와 앉아서 얘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벌써 잠이 들었는지 조용했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아내가 내 팔을 조용히 흔들었다. 

“저기 좀 봐요!” 나는 아내가 보라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낯선 동물 한 마리가 캠핑장 한가운데를 지나다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진짜 여우지?” 순간적으로 놀랍기도 했지만 신기해서 다시 쳐다보았다. 사막여우다. 한참동안 우리를 바라보던 녀석이 잠시 후 사라졌다. 우리는 녀석이 사라진 방향으로 한참을 쳐다보며 기다렸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를 달렸다. 아웃백이다. 울루루로 가는 길은 호주 북부에 있는 다윈(Darwin)까지 이어지는 유일한 도로이기 때문에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다. 왕복 2차선이지만 포장은 잘 되어 있다. 그러나 아웃백에서는 주유소가 보이면 무조건 기름을 가득 채워야 한다. 캠프밴의 연비가 좋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다음 주유소까지는 최소 150km 정도이거나 때로는 더 먼 거리를 달려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름 값은 아웃백으로 들어갈수록 더 비싸졌다. 


캥거루를 조심하란 표지판에 주변에 캥거루가 있는지 둘러보지만, 도로에는 죽은 캥거루들이 대부분이었다. ⓒ 서진완

아웃백의 풍경은 아리조나나 유타에서 보았던 그런 풍경과는 또 달랐다. 이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이 아니라 오지라는 표현이 맞다. 나무도 있고 풀도 있어서 버려진 땅과는 달라보였다. 높지 않은 나무와 잡목들이 이어지는 이런 들판을 지나면서 소와 양들을 방목하는 곳도 곳곳에 보인다. 이런 곳에서도 충분히 사람들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아내는 캥거루를 조심하라는 표지판을 볼 때마다 지나가는 캥거루가 있나 싶어 쳐다보지만 한 마리도 발견할 수 없다. 대신 도로에는 죽은 캥거루들이 많고, 그럴 때마다 독수리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캥거루들이 이런 사고를 당하는 것을 보면 엄청나게 많은 캥거루가 이 도로를 건너다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부지역(Northen Territory)으로 들어가자 도로의 제한속도가 130km로 늘어났다. 속력을 높였지만 지나가는 차들도 없고 주변 환경이 똑같기 때문에 속도감을 느낄 수가 없다. 캠핑장이 있다는 말라(Marla)에서 아내는 열악한 캠핑장 시설을 보더니 울루루로 쉬지 않고 바로 가자고 했다. 시설도 열악하지만 이곳 캠핑장에는 차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울루루로 가는 갈림길(Erldunda)에 도착했다. 다시 기름을 가득 넣었다. 이곳의 기름 값은 아델레이드 보다 리터당 무려 60센트가 더 비싸다. 그러나 울루루까지 250km의 거리를 더 달려야하기 때문에 이 주유소에서 반드시 기름을 넣어야 한다. 

멀리 평원 위에 돌로 된 산이 보였다. 산 위는 평탄해 보였지만 분명히 돌산이다. 순간 울루루인가 생각했다가 지도를 보고 코너산(Mt. Connor)이다. 점점 목적지에 다가가자 눈 앞 저 멀리 큰 산이 하나 더 보였다.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기엔 그 규모가 엄청났다. 눈앞에 울루루로 점점 보이자 리조트가 나타났다. 이곳 리조트에 일하는 사람만 800여명이 넘는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리조트 안에 있는 캠핑장은 넓게 자리 잡고 있지만 이곳도 역시 사람들이 많지 않다.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서


호주의 중앙, 울루루에서 마주한 석양 ⓒ 서진완


이곳 울루루도 해가 지고 바람이 불자 한결 시원해진다. 하늘에는 세상의 별이 이곳에 다 모여있는 듯하다. 지금 우리는 호주의 중앙이며, 아웃백의 중심에 앉아 있다. 여행을 오기 전에 이곳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는데, 달빛이 밝아 별빛을 가렸지만 그래도 나에게 이 밤하늘은 너무나 예쁘다. 의자를 모두 꺼내서 아내와 아이들도 둘러앉아 밤하늘의 별을 보았다. “예쁘네요!” 

“아빠는 제가 무슨 전공을 했으면 좋겠어요?” 큰아이가 말을 건냈다. 작은아이도 궁금한 듯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다.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고민하면서 과연 아빠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너는 무엇을 하고 싶어?” 큰아이는 고민에 고민을 했다면서, “최근 들어 법과 제도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그래도 아직 확신을 못하겠어요!” 솔직한 대답이다. “법과 제도를 공부하면 앞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니?” “그럴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다른 것 보다는 그쪽에 더 관심이 가요.” 

작은아이는 “저는 과학이 여전히 재미있어요!” 한다. 나는 작은아이는 과학에 대한 관심이 확고해서 무엇을 할지 정해졌지만 큰아이는 이제 방향은 정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이 다르게 살아가는 그 배경에 법과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동안 진지하게 많이 고민했던 것으로도 충분하다. 

“아빠는 제가 어떤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아빠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물어볼 작정인 것 같다. 이제는 아빠로서 두 아이에게 내 생각을 얘기해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초를 처음 화분에 심을 때, 앞으로 어떤 꽃을 피울까 희망하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몇 년 후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어떤 생각으로 살아갈지를 기대하면서 지켜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꿈(?)을 주입하지 말자고 얘기해왔다. 전부터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하면 우리가 너희들에게 그것을 사줘야하는 이유를 말해보라고 했다. 어릴 때는 “저희들을 사랑하시잖아요.” 라는 단순한 답변이 주를 이루었지만,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여기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면 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잖아요.” 혹은 “사춘기 생리를 시작한 여학생에게 당분은 심리적으로 안정을 줘서 기분전환에 도움이 된데요.”라는 등 꽤 설득력있는 대답을 제시하곤 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특히 여행을 하면서 어린 묘목을 심어놓고 작은 싹이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아이들 모두 꽤 자라서 저마다의 모양과 향기를 만들 준비를 하는 것 같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어떤 꿈을 꾸게 될지 너무나 궁금하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어떤 직업을 가졌으면 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어떤 자식이었으면 하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아내에게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손주를 데리고 우리를 찾아와서 막걸리 한 잔 따라주면 족하다. 

“아빠는 네가 선택할 직업이 무엇이든 다른 사람을 배려해주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고 살면서 행복해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 마디 덧 붙였다. “아빠는 너희들이 하늘을 호령하는 독수리가 되기 위해 힘찬 날개짓을 연습하고, 땅을 지배하는 사자가 되기 위해 벌판을 쉼 없이 달리려는 노력을 계속했으면 좋겠다. 좁은 새장 속에 갇혀 스스로를 가두지 말았으면 한다.”
아내도 아이들의 얘기에 대답했다. 큰아이가 고민했던 대학진학과 미래 직업에 대해서 아내도 나의 생각에 힘을 보탰다. 그리고 작은아이는 과학에 대한 관심을 구체적으로 실천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아이들의 얘기도 많이 듣고 아이들의 진로와 미래에 대해 우리 부부의 의견도 충분히 털어놓았다. 큰아이는 답답했던 부분이 다소 해결되었다고 했다. 물론 본인은 아직 생각을 더 다듬고 있다고 했지만 그 정도로 정리한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에서 내가 기대했던 바를 달성한 듯싶었다. 작은아이는 여전히 과학을 좋아하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다이어트도 계속 하고 있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관계에 대해서도 꽤 진전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도 많이 컸다 싶다. 주변 캠프밴의 불은 모두 꺼졌다. 


이곳이 우리에게 특별한 이유


지구의 배꼽이라는 울루루. 가족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어서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 서진완

지구의 배꼽이라고 하는 울루루를 보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운전을 해 왔다. 원주민들에게 성스러운 이곳은 아웃백의 그 넓은 평원에 홀로 우뚝 솟은 특이한 모습만으로도 우리에게 크게 다가왔다. 힘들게 이곳까지 왔지만 어제 아이들과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각자 부여했던 여행의 의미를 허심탄회하게 함께 나누었던 곳이 이곳이라는 점에서 우리 부부에게는 더 큰 의미를 갖게 했다. 

그동안 세계일주여행을 하면서 어쩌면 이곳 울루루는 용의 그림에 있어서 마지막 남은 눈을 그릴 수 있는 곳이었으면 했는데, 여행을 처음 계획하면서 기대했던 대로 이곳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한 것 같다. 다른 사람은 그 돌산 하나를 보기 위해 그렇게까지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할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오히려 더 큰 기운을 얻은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섬처럼 느껴지는 이곳(Island Mountain) 울루루를 한 바퀴 돌아보는 내내 성스러운 곳에서 여행을 시작하고 여기서 잘 마무리하는 것 같아서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침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다. 더 더워지고, 그늘 밑을 찾아야만 할 정도로 햇볕이 뜨겁다. 무엇보다도 날파리가 얼굴에 달라붙어서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내내 괴롭다.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춰 다시 울루루를 찾아 나섰다. 해가 질 무렵에 도착해서 의자를 펼쳤다. 여전히 날파리가 성가시게 한다. 

석양에 비친 울루루를 꼭 보라고 했다. 그 말은 맞다. 그냥 예쁘고 멋있다. 마침 해가 지면서 윤상철씨 부부를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함께 석양을 보고 캠핑장으로 돌아와서 와인을 같이 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 부부의 관심사가 우리와 비슷해서인지 12시가 넘도록 여행 얘기로 시간을 보냈다. 캠핑에 대해서는 생각 이상으로 마니아인 이들 부부의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 또한 캠핑여행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많이 알게 되었다. 해가 지자 그렇게 사납게 덤벼들던 날파리도 사라지고, 더위도 누그러지면서 쾌적하다. 좋은 사람과의 대화에 잔잔하게 바람까지 분다.


‘날파리 떼의 습격’ 

아침에 일어나 캠핑장 주변을 산책하면서 얕은 언덕 위에 올랐다. 언덕위에서 울루루가 아침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났다. 어제 저녁 석양이 질 때 보았던 색상과는 또 다른 색깔을 띠고 있다. 울루루는 매 시간마다 조금씩 달라진다는 말의 의미를 이렇게 확인한다.


앨리스 스프링스 ⓒ 서진완

윤상철씨 부부는 우리보다 먼저 떠나고, 주변에 있던 캠프밴들도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우리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앨리스 스프링스(Alice Springs)를 지나 가능한 동쪽 해안이 보이는 곳까지 가는 일만 남았다. 아내는 해안 쪽에 머무르고 싶어해서 내륙지방은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통과하기로 했다. 앨리스 스프링스는 북부지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고는 하지만 조그만 소도시에 불과했다. 시내중심가에 있는 슈퍼마켓을 들렀는데, 유난히 원주민들이 많이 보였다. 언뜻 보면 흑인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피부색이 검을 뿐이다. 

낮에는 날파리 때문에 힘들고, 어두워지면서 날아드는 모기 때문에 정말 괴롭다. 성격을 버리기에 딱 좋을 정도로 성가시게 한다. 그래서 창문을 닫고 지낼 수 밖에 없다. 이곳 캠핑장 바닥에는 개미가 정신없이 다니고, 날파리는 계속 얼굴 주변을 맴돌고, 그리고 모기가 설쳐댄다. 앨리스 스피링스에 사는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시드니에서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밤에는 한기를 느낄 정도로 추워서 스팀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열대기후인지라 전혀 다른 상황이다. 게다가 각종 벌레들 때문에 생각이상으로 견디기가 힘들다. 이곳을 빠른 시간에 떠나는 방법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기름을 가득 채우고, 모기향과 물을 구입하고 서둘러 떠났다.


퀸즈랜드. 여기 오기까지 무척이나 힘들었다! ⓒ 서진완
 

다시 아웃백이 끝없이 이어졌다. 퀸스랜드(Queensland)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는 정말 지루하기 그지없다.  정말 멀고 또 멀게 느껴진다. 졸음이 와서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겼다, 다시 운전대를 넘겨받았지만 주변 환경은 크게 변화가 없다. 똑같은 풍경이 계속된다. 이번에도 주요소가 보이면 무조건 기름을 넣었다. 200km 정도의 거리를 달렸다 반갑게 주유할 곳을 만났다. 이곳에 캠핑장이 함께 있다. 

기름을 넣을 수 있는 3개의 주유기 가운데 이미 두 개의 주유기는 뜨거운 날씨 때문에 고장이 났다고 했다. 그나마 한 곳이라도 정상적으로 작동한 것에 감사해야 했다. 주유하는 동안 캠핑장을 둘러보고 나온 아내는 이곳도 날파리들이 너무 많다며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한다. 주유를 마치자 바로 그곳을 떠났다. 대신 다음 캠프장이 있는 곳까지 무려 450km를 더 가야 한다. 

다시 열심히 달렸다. 모든 광경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아웃백의 모습 그대로 이어진다. 지평선과 초지 뿐이다. 정말 광활하다는 표현 이외에 다른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세계의 여러 나라를 다녀보았지만 이렇게 광활한 곳을 보기는 처음이다. 행정구역상 퀸스랜드주로 들어왔지만 바깥 풍경은 여전히 광활한 대지만 보인다. 한동안 지나가는 차 조차 없다. 

잠시 차를 세워 광활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했다가 달려드는 날파리들 때문에 급히 사진만 찍고 차에 올랐다. 아이들은 웃으면서 ‘날파리 떼의 습격’이라고 명명했다.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날파리들이 많다. 창문을 절대 열면 안된다. 창밖에서 보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차안에서만 즐겨야만 한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현실은 달라진다. 이곳이 아웃백이다.  

<정리 = 이미루>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