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에 대한 어른들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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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에 대한 어른들의 책임
  • 임병구
  • 승인 2017.03.23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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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 임병구 / 인천교육연구소
 

교육과 정치를 자꾸 떼놓는 이유는 정치쪽 책임이 먼저다. 선생님들에게 가정을 방문해 유신을 홍보하라던 시절에는 정치가 교육을 종처럼 부렸다. 1987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최고 정치권력을 직선으로 뽑자는 개헌 요구를 외면했다. 이름하여 ‘4?13호헌’조치를 단행하자 국민 여론이 들끓었다. 정치권력을 의식해 호헌지지를 표명한 교육계 인사들이 있었고 똑같은 논리로 반대 의견이 격렬했다. 정치적 중립은 어느 쪽에서 보든 불가능했다. 정치가 교육을 뒤흔들면 쏠림 현상은 필연이다.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흔들어 대면 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균형추가 이동한다.


교과서 국정화는 정치 이슈이자 교육 문제다. 교사는 물론 학생 의견이 분출했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교육문제로 보든 정치적 저항으로 보든 제일 큰 이해당사자는 학생이다. 소수의 학생들이 거리에 나와 의사를 밝혔다. 학생들은 4.19를 배웠고 배운 바를 따르자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혀를 차며 지나던 어른들도 있었고 격려를 보내는 이도 있었다.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학생들이나 행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럴 수도 있는 사건에 교육계는 민감하게 반웅했다. 학생들은 미성숙한 존재라서 특정 연령에 이르기까지 어른들이 보살펴야 한다는 게 이유다. 출입할 수 있는 장소, 봐도 될 공연이나 영상물,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선거권 제한 등이 ‘18~19세’를 기준으로 나뉜다.


다시 정치의 계절이 왔다. ‘19세’ 선거권 제한 문제는 정치가 풀어야 할 과제다. 교육은 처분만 바라고 있는 처지다. 교실에서 정치이슈를 거론하는 일은 여전히 금기라서 조심스럽다. 정치에서 교육에 주문하는 사안은 때론 상반되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독도와 위안부 관련 협상 과정이 정치 현안이다. 정치는 교육에 독도영유권 교육을 주문한다. 일본은 고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우리나라가 독도를 무단점유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우리 학교에서 독도 문제를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가르칠 수는 없다. 자칫하면 상대적으로 일본의 입장으로 기울 우려가 있어서다. 한.일 위안부 협상 문제는 결이 다르다. 최근의 ‘불가역적 합의’에 대해 거론하려면 정치적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위안부 관련 합의는 독도처럼 민족적 관점으로 일치되어 있지 않다. 외교에서 거둔 성과라고 두둔하면 정치적으로 한 쪽을 지지하는 입장이 된다. ‘성노예’로 끌려갔던 분들의 피맺힌 한을 기억하는 일조차 정치적으로는 편향으로 취급받는다. 독도와 위안부 합의는 교실에서 아이러니가 되어 나타난다. 두 현안을 가르치고 배우려면 정치 맥락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넘어야 한다.


매체가 발달해서 19금은 학교의 통제권역에서 벗어나고 있다. 독서와 논술, 토론 교육은 정치적 19금의 경계를 무너뜨려 왔다. 학생들은 사회 현안에 대해 고민하면서 의견을 형성한다. 이명박 정부의 ‘어륀지 영어 교육’ 정책에 대해서는 초등학생 의견층이 대두했었다. 자신들에게 닥칠 문제였기에 정치적 반대자가 되어 응집했다. 19세가 되지 않았어도 학생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집단 민원으로 표출한다. 두발 자율을 정치 갈등 이슈로 의제화했던 과정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과거 성역처럼 여겨졌던 18~19금은 은밀한 공간에서는 이미 해제되었다. 어른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체 18~19금을 붙들고 있다. 실상 어른들이 지키고 싶은 19금 성역은 정치에만 남아 있는 지도 모른다.
 

‘촛불시민’이 명예혁명을 이룬 주체로 역사에 등장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 촛불시위 무대에 오른 학생들이 투표권을 요구했다. 만18세부터 군대도 갈 수 있는데 왜 투표권을 주지 않느냐는 항의에 여러 야당이 움직였지만 여전히 정치는 18금이다.


영화 귀향은 15세 이상이면 볼 수 있다. 14살 어린 소녀가 일본 군인들에게 끌려갔고, 미성년자로 성폭행을, 심지어 죽임을 당했다. 19세는커녕 15세도 되지못한 이들의 분노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교실에서 가르치려면 한일협상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과 정치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 정치는 교육을 좌우하는 상수다. 19금 세대의 정치적 질문에 침묵하고 회피하면서 교육이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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