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촛불을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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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촛불을 들자
  • 박인규
  • 승인 2017.03.30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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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박인규 / (사)시민과대안연구소 소장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우리들의 삶이 늘 정치를 떠나 영위될 수 없지만 역시 정치의 꽃은 선거라 할 수 있다. 정치와 정치인들을 욕하면서도 이제나 저제나 가슴설레며 기다려왔던 대통령선거가 아주 극적으로 예정보다 빨리 우리들 앞에 다가왔으니 정당이나 후보나 유권자 모두 선거에 대한 준비에 비해 다급한 마음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유의미한 지지를 받고 있는 대부분의 유력 정당들에서는 당내 경선에 복수의 후보들이 출마하여 각 후보들마다 나름대로의 정책공약을 내걸고 경선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 또한 이러한 후보들의 근거있고 논리정연한 주장에 공감하거나 열광하는 지지자들의 모습을 보면 여느 선거 때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민주주의의 현장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의 이러한 정치 상황이 그저 주기적으로 와서 펼쳐진 것은 아니다. 부패, 무능, 불통, 권력남용, 위선, 심지어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 농단 등 탄핵에 근거가 되는 온갖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정치적 수식어로 점철된 권력에 맞서 남녀노소와 출신지역을 막론하고 평균적으로 대한민국 국민 3명중 1명이 참여한 평화적인 촛불집회로 맞이한 선거다. 권력에 반대하는 정치집회를 이렇듯 누구나 쉽게 두려움없이 참여하여 축제처럼 즐겨왔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절제된 분노와 내면화된 긴장감을 갖고 참여한 시민들로부터 하나의 일탈된 주장이나 행동없이 이루어진 과정이기에 국민들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에 감격했고 그만큼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더욱 가슴 졸이기도 했으며, 이제는 이러한 승리가 바람직한 대통령 선거의 결과로 이어지기를 희망하면서도 여전히 마음을 놓치 못하고 있다.


탄핵되어 사실상 정치적 감금 상태에 놓인 전직 대통령에 대한 막연한 동정이나 절대적인 믿음과 충성 혹은 자기부정이 두려워서 현실을 바로보지 못하는 지지자들에 기대거나 그들을 부추기며 정치생명을 연장하려 하면서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외면한 채 낡은 이념대결과 맹목적인 애국심을 부르짖는 시대착오적인 정치인과 정당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 보수정치의 암울한 앞날을 걱정하게 된다.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으나 자신들이 함께한 대통령과 정당을 용기있게 뛰쳐나와 새로운 정치적 둥지 속에서 보수의 길을 새롭게 가고자 다짐했지만 여전히 자신들을 외면한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보수후보단일화를 탐색하며 원칙과 정도 그리고 정치적 이해타산 속에서 방황하는 정당과 후보들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태생적 한계가 무엇인지 다시금 목도하게 된다.


어떤 후보는 누구보다도 당선이 유력하지만 패권주의와 부적절한 말 그리고 마구잡이식 인사영입으로 연이어 구설에 오르고 있다. 어떤 후보는 설득력있는 선거전략을 구사하고 있지만 지나친 보수 끌어안기 행보로 전통적인 지지층에게 마음을 상처를 주고 있기도 하다. 시원시원한 주장과 언변으로 누구보다 속시원하게 유권자의 마음에 다가서고 있기는 하지만 확실한 대안으로 부각되기에는 국민들로부터 여전히 급진적이라 평가받는 후보도 있다. 같은 야당에서 탈당하여 새 정당을 창당했으나 과거의 단단했던 지지기반을 상실한 채 정치적 중간지대에 머물며 보수로의 확장을 꿈꾸는 후보들도 있다.


정치적 반격을 노리기는 하지만 여전히 지리멸렬한 구 여당 세력에 비해 구 야당세력은 정권교체의 기대감으로 한껏 고무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구 야당 세력으로의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들로서는 대망론에 기대어 느긋하게 선거를 즐기기에는 상황이 만만치 않다. 우리사회의 보수세력의 뿌리가 그만큼 깊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부정부패로 얼룩지고 정통성 없는 권력을 휘둘렀던 독재자들에게 시민항쟁으로 맞섰지만 4.19혁명이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뒤집혔고 6월항쟁에 의해 고무된 독재타도의 열망이 6.29선언으로 길을 잃은 채 야당의 분열로 군사독재가 연장되고 망국적인 지역분열정치로 인해 지금까지도 그 정치적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우리의 굴곡진 정치사를 보아도 그렇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적폐가 세월호 참사를 낳았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지 못했고 세계 12위의 경제력을 갖고도 안보논리에 저당잡혀 주변 강대국의 눈치나 보고 있는 것이 작금의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설사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추운 겨우 내내 광화문 광장과 전국 곳곳에서 촛불을 밝히며 대통령 퇴진과 탄핵을 목이 터져라 외친 것은 단지 대통령 하나 바꿔보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다시금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새롭게 태어나는 대한민국을 꿈꾸며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하는 국민적 의지의 발로였다. 광장에 모여 직접민주주의의 가치와 의미를 몸소 체험하며 정치적 승리를 쟁취한 이 지혜로운 국민들이 지금 봇물 터지듯 벌어지는 당내 경선과 본선이 가져다주는 짜릿한 자극에 심취되어 주권자가 아닌 구경꾼으로 전락하는 순간 다시 촛불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념이 다르다고 적이 아니다. 진보보다 깨끗한 보수가 있을 수 있다. 보수보다 애국적인 진보가 있을 수 있다. 실정으로 인해 보수정치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들로부터 혹독하게 매를 맞고 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권교체가 빈번히 이루어지는 것이 정상이듯이 통렬한 반성 속에 보수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역시 지혜로운 국민들의 몫이다. 정권교체가 대세라 하지만 지금은 합리적 보수가 등장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이제는 냉정을 되찾고 제 정당과 후보들이 제기하는 주장을 세심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적폐는 물론이고 사드배치, 북한핵개발, 위안부 합의, 국정교과서, 재벌개혁, 사회양극화, 실업과 노사관계, 저출산고령화 등 우리 사회에서 풀어야 할 산적한 문제와 그 해법들에 대해서 국민들이 삶의 현장 도처에서 일상적으로 치열하게 토론하고 또 그 결과가 정당과 후보들에게 강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의 개혁과 적폐청산이 어느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각인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의 합리적인 주장도 수용됨으로써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만큼 더 커지고 성숙해지는 것이다.
 

광장의 촛불이 거대한 권력을 무너뜨렸듯이 이제는 깨어있는 눈과 활짝 열린 귀를 가지고 시대착오적인 사고에 빠진 일부 정당과 후보들을 제외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으면서 그것을 자신의 정책으로 표현하고 있는 후보라면 누구라도 그의 정책을 애정있게 바라보며 시민의 시각과 관점으로 광화문 같은 오픈 광장에서든 SNS와 같은 사이버 광장에서든 전 국민 토론의 촛불을 다시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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