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한번 안떼고 하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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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한번 안떼고 하루가..."
  • 김인자
  • 승인 2017.04.2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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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요양병원 가신 권사님
 
"할무니, 이거 보세요."
"아고 누구 사진이에요? 나이도 많이 잡쉈겄는데여?"
"예 89세 뱀띠세요."
"누구신가요, 이분은?"
"예,제가 어제 가평에 강연갔다가 꼬신 할머니세요."
"선생님이 할머니를 꼬셨다고요?"
"예,할머니.제가 할머니 꼬시기대장이거든요."
"하하 그라죠.누구든 우리 김선생님 한번만 봐도 다 좋아하지.
선하고 이뿌고 똑똑하고 거기다 다정다감하고.
나라도 우리 김선생님이 꼬시면 대번에 고자리에서 홀라당 넘어가지."
"하하 진짜로다요 할머니?"
"그럼 진짜지요."
 
"이 할머니는 오랜 세월 다른 사람들하고 말을 안하고 사셨대요."
"그렇쵸 시골에서 혼자 사셨으믄 말할 상대도 없고 그러시죠. 왠종일 가야 사람 구경하기도 힘들고 왕래도 없으면 더더욱 그러시죠. 내가 아는 우리 교회 권사님도 혼자 사시는데 누가 말붙이지 않으면 입 한번 안떼고 하루가 지나간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한번씩 그 권사님한테 전화를 하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전화를 끊지 않으셨어요. 이야기하시고 싶으셔서요."
"예 그 권사할머니는 할무니가 전화하시기만 기다리시겠어요."
"그라죠.그런데 나도 바쁜데 전화만 붙잡고 있을 수도 없고. 그래도 그 권사님 여기 사실땐 내가 자주 전화해드렸어요. 그 권사님도 전화 자주 하고요. 귀찮을 정도로 전화를 많이 하셨어요. 나한테. 그러다가 그 권사님한테서 늘 오던 전화가 없으면 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걱정이 되서 내가 권사님 집에 가보죠.맨날 전화허던 양반이 소식이 감감이믄 무슨 사단이 나도 단단히 난거거든요.
 
하루는 며칠째 권사님한테서 오던 전화도 없어서 내가 그 권사님집에 찾아갔지요.
그랬더니 그 권사님이 밥을 사시겠다는거예요.
아고 제가 사드려야죠 했는데도 구지비 당신이 밥을 사시겠다는 거예요. 괜찮다고 했더니 그 권사님이 내가 고마워서 그런다고 하시길래 뭐가 그렇게 고마우세요? 하고 물었지요.
맨날 혼자사는 늙은이 말 상대도 해주고 이렇게 죽었나 살았나 보러도 와주고 하두 고마워서 당신이 밥을 사셔야한다믄서 궂이 음식을 시키셨어요."
"뭐 드셨어요?그 권사할무니랑요?"
"짜장면인가를 시키시더라고.
내가 사드려야하는데.맘이 안편하더라고.
밥을 다 잡숫고 권사님이 그러시는거예요.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같이 밥 먹어줘서 고맙다고.
아고 내가 그 밥이 넘어갔겠어요?"
"예, 그러셨겠어요 할무니."
"그 권사님이 헌금도 많이 하고 남 보기에 자식 농사도 잘 지었다고 그런 소리 듣는 양반인데 ...."
"그 권사할무니는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 데요?"
"여든 셋인가 그럴걸요.
 
내가 우리 시어머니를 99세까지 모시다가 작년에 치매 앓다가 돌아가셨잖아요. 시어머니 계실때는 어디 딴데 정신 팔 경황이 없었는데 시어머니 돌아가시고나니 교회 권사일을 보다가 우리 교회에 다니시는 그 권사님이 계속 마음에 쓰이는거예요.
남들은 자식농사 잘 지었다고 부러워하는데 .. 결국 지금 요양병원에 가계세요 그 권사님요..."
"요양병원에요? 많이 편찮으세요?"
"아프긴요 .정신도 멀쩡하고 걸어서 교회에 다니실 정도인데..."
"근데 왜 요양병원에 계세요?"
"젊어서 고생고생해서 자식 대학까지 다 가르쳐 놨더니 아들은 미국에 딸은 인도에 나가 있어요. 출세하믄 뭐해요. 젊어서부터 죽어라 고생해서 키워놨드만 늙은 엄마 하나 모시지도 못하고 요양병원에 갖다둔걸.
정신이 이상한 것도 아니고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요양병원에 계시는데 권사님이 아주 미치겄나봐. 가까이나 있어야 나도 가보고 우리 교회에서도 가볼텐데. 부산까지 갖다가 모셨더라고. 뭐하는 짓인지...
그래도 내가 이번에 인도서 딸이 왔길래 부산 가믄 엄마랑 따뜻한 밥이라도 먹으라고 돈 삼만 원 줘서 보냈어요. 그러면서 물었지요 마음먹고.
여기 가까운 곳에도 요양병원이 많은데 왜 그 먼 부산까지 모셔다놨냐고."
"그랬더니 뭐라셔요?"
"아무말 안하더라고."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겠지요."
"사정은 무슨..
자기 자식들도 다 서울에 있드만. 요양병원에 모실거면 당신 사시던 곳에 모시면 좀 좋아? 나라도 자주 찾아 뵙게.
정신 멀쩡하고 신체 멀쩡한 노인네를 요양병원에 가둬놓으니 얼마나 답답할거냐고."
"자식들이 외국에 있어서 가 계실 곳이 없으셔서 요양병원에 계신건가요?"
"그러니까 뭐한다고 있던 집도 팔고 자식 죄다주고 자식새끼한테 보증 서서 잘못돼서 기사회생도 못하게 되고.
저런 험한꼴 보려고 그 권사님이 그렇게 죽어라 고생해서 자식 키운거 아닐텐 데.
그래도 늘 자식걱정만 한다지요. 거기서 있으면서도...
자기들도 자식을 키우면서 어쩌면 그리 모질까 그래...
에고 미안해요 김선생님 제가 말이 너무 많았네요."
"아니예요, 할머니."
"재미도 없는 내얘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남일이지만 내가 너무 속이 상해서?
그 권사님 성격이 아무하고나 나불나불 떠드는 성격도 아닌데. 하루종일 누구랑 말 한마디 안하고 하루를 보내실텐데.
하루가 얼마나 길거야 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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