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예술의 탈장르적 흐름과 문화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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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예술의 탈장르적 흐름과 문화행정
  • 이권형
  • 승인 2017.04.2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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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권형 / 음악가

- 로컬, 탈장르적 연대의 매개
 
 홍대 ‘인디 씬'의 시작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1995년 라이브 클럽 ‘드럭’에서 기획된 록밴드 너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Kurt Cobain) 추모 1주년 공연을 상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말하자면 홍대의 인디 씬의 시작은 세분화 된 하위문화의 성격이 강했던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홍대 라이브 기획들만 해도 저마다의 장르와 취향이 색깔을 드러내며 수요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지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무 기반 없이 특정 장르나 취향에 따른 수요 모델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지역 씬에 대한 애정을 두는 것은 왜일까.
 
 인천에 가면 묘한 향수를 느낀다. 누구나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주 가던 공간, 사람들, 역사를 품은 건축물 같은 것들을 볼 때 말이다. 이렇게 어떤 도시와 공간은 특유의 감수성을 불러일으킨다. 한 지역과 공간에 대한 개개인의 ‘공간 감수성’은 장르와 분야를 초월하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비슷한 공간 감수성을 공유하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서로의 생활권 안에서 거주한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이라는 물리적인 울타리에 다양한 욕망과 상상력을 투영시키며 참여한다. 각 장르가 자생적으로 세분화 된 취향 공동체를 이루기는 어렵지만 그렇기에 다른 장르나 분야와 연대할 필요성이 생겨난다. 로컬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의 주체와 교류하고 연대하며 예술적 실천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 지역이 탈장르적 연대의 강력한 매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역 예술가들의 연대와 실천들이 지속되면서 인천에서도 조금씩 새로운 지역의 콘텐츠와 문화적 수요를 만들어갔다. 2015년 ‘추억극장 미림’에서 진행된 ‘제1회 인천국제비엔나소시지영화제’는 작가들이 제작한 실험영화 및 단편영화 스크리닝과 레이브 파티, 전시 등의 형태가 결합된 자생적인 기획으로 인천의 탈장르적 예술의 움직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이러한 탈장르적 연대의 형태로 각각의 예술가들은 ‘지역 예술’이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교류하며 시각을 넓히고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아 작업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이는 수년간 자리를 지키며 지역의 문화적 맥락을 이어온 이들의 노력이 바탕이 되었음은 자명한 일이고 이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제1회 인천국제비엔나소시지영화제’ 포스터>


- 인천의 문화 행정... 주체적인 움직임의 필요성

 그런데 최근 이러한 문화예술 주체들과 인천문화재단 간에 갈등이 빚어졌다.
지난 5년간 지역의 라이브 클럽들과 예술가들이 협업하여 진행해 온 루비레코드의 기획 ‘사운드 바운드’는 지역 공연 문화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지역의 문화적 수요와 갈증을 해소해왔다. 이에 그 공적 가치와 성과를 인정받아 올해는 시의회와 인천문화재단 이사회까지 거쳐 예산이 배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인천문화재단이 기획의 취지를 무시한 채 ‘인천 개항장 음악축제’라는 이름의 행사를 추진하고 예산을 가로채려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또한 작년부터 청년예술가들을 주축으로 진행된 ‘청년문화대제전’에 대해 청년예술가 중심의 기획을 하겠다는 인천시의 약속과 달리 기획 단계에서 작년 주축이 되어 행사를 만들어 낸 청년예술가들을 배제시킨 정황이 발견되었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예술가들은 재단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시와 문화재단에 공개 사과를 촉구했다.
 
 인천시 문화행정의 독단적인 태도에 대한 논란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작년 SNS에서는 이른바 ‘노예 예술가 모집공고’ 논란이 화제였다. ‘월 1회 의무공연’, ‘재능봉사’, ‘공연료 등 실비 지원 없음’과 같이 예술가를 대상화하고 존중하지 않는 인천시 문화행정의 언어가 만연히 폭로되며 그 민낯을 드러냈다. 하지만 올해 역시 크게 개선되는 부분 없어 보인다. 여전히 지역의 청년 예술가/활동가들을 도구적으로 대상화하고 그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여 일군 공적인 가치들을 이용하려는 행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지역의 행정에 대한 감시체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고무적인 것은 지역의 청년과 예술인들이 직접 나서 지역의 독단적인 행정 실태를 견제하고 바꿔가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가 그동안의 문제의식이 쌓여 나타난 목소리인 만큼 지역의 청년들과 예술가들이 진정한 지역의 주체로서 자리매김하는 계기로 만들었으면 한다. 주체적이고 꾸준한 움직임이 있을 때 권리도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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