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식당 아저씨의 피아노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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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 식당 아저씨의 피아노 연주
  • 은옥주
  • 승인 2017.04.25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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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아저씨의 꿈, 그리고 삶

아저씨는 조용히 피아노 앞에 앉았다.
심호흡을 하는 듯 조용히 두 손을 건반위에 얹은 그는 가끔 멈추는 듯, 더듬거리는 듯 했지만 마음을 울리는 연주였고 식당 안에 있던 손님들과 나는 큰 박수를 쳐드렸다.
아저씨는 수줍은 듯, 민망한 듯 웃으시며 “오랫만에 하니 잘 안되네.” 하고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다음 곡을 연주했다. 손님들의 박수가 이어졌고 아저씨는 두곡 연주에 어깨가 결리는 듯 피아노 앞에서 일어섰다.

구순의 노인이 60여년을 일해온 조그만 동네 식당에서 하얀 조리사 가운을 입고, 음식을 만드느라 데이고, 베이고 상처난 손으로 최선을 다해 하는 연주는 세상의 어떤 연주보다 가슴이 뭉클한 감동을 주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연습하셨는지 묻자 그는 아주 젊은 시절부터 피아노가 배우고 싶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아이 셋 달린 홀아비가 조그만 동네 식당을 하며 살아가기에 삶이 너무 버거워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엔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5년쯤 전에 그는 식당 일을 큰아들에게 물려주고 딸이 시집가기 전 쓰던 피아노를 가지고 조금씩 연습하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눈이 너무 어두워져서 악보 보기가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연습하는 시간이 참 즐거웠다고 하며 나중에는 베토벤을 연주하는 것이 꿈이라고 하였다.





생각해보니 40여년 전에 동경에 와서 공부할 때 집에서 부쳐오는 돈으로 ‘기노구니야’ 라는 책방에 가서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진기한 책들을 대책 없이 한 아름 사들고 오면 생활비가 다 나가버렸고 그래서 할 수없이 학교 앞 조그마한 일본식당(미노루 상) 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부탁했었다.
아저씨는 선선히 승낙해주었고 그때부터 귀국할 때까지 그 식당에서 일하게 되었었다. 말이 서툴고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나는 음식 이름이 너무 길어서 음식 주문도 제대로 받기 어려웠다. 제일 어려운 건 손님들 먹은 음식을 계산해서 돈을 받는 일이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손님들에게 “뭘 먹었어요? 내가 거스름 얼마 내주면 돼나요?” 라고 물어 손님이 스스로 계산해서 받을 돈을 챙기게 했는데 나는 그들이 달라는대로 거스름을 다 내어주었다.
손님들은 그 동네에 학생들이나 회사원들, 마을 주민들이었는데 참 정직해서 거의 거스름을 정확하게 이야기하였고 가끔 더 주면 그 이튿날 정확히 돌려주려 왔기 때문에 일을 오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계산이 잘 안 맞는 날이 참 많았어도 아저씨는 싫은 표정 하나도 짓지 않으시고 우리집 손님들은 정직하니 걱정 말라고 늘 위로해 주셨던 것 같다. 나는 미안해서 심부름도 해드리고 세 아이(중1, 초등1,3학년)의 숙제도 봐 주면서 아이들과 가족처럼 재미있게 지냈었다.
이제는 그 아이들이 다 아이 둘 씩 달린 엄마 아빠가 되고 나도 할머니가 되는 동안 동경에 갈때면 그 가족은 나를 참 반가이 맞아 주었고 내 가족까지도 서로 친한 사이가 되었다.

아저씨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은 작년 9월 경에 들었다.
가슴이 철렁하고 참 마음이 복잡했으나 큰 수술 후 그래도 많이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에 짬을 내어 동경을 방문한 길이었다.
아저씨는 다리를 조금 절었고 살이 많이 빠지고 조그마한 모습이었는데 “배를 손으로 가리키며 인공항문이라고 알아? 여기 항문이 생겼어.” 라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그래도 매일 식당에 나와서 아들을 도와 컵도 씻어주고 계산도 해주고 어쨌든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참 존경스러웠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마지막 날 저녁, 작별인사를 하는 나에게 아저씨는 “내 피아노 연주 좀 듣고 조금 있다가 가라.” 하시고는 피아노 앞에 앉아 최선을 다한 연주로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하셨다.





어쩌면 몸이 많이 약해지신 아저씨를 영영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꼬옥 안아드리면서 아저씨를 존경한다고.. 아저씨는 인생에서 성공하신 것 같다고 마음을 다해 말씀드렸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자기의 삶을 자기의 일을 평생 묵묵히 최선을 다해 살아온 아저씨의 삶의 자세에 대해 고개가 숙여지기도 하고 숙연해지기도 한다. 나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새삼 어리고 철없던 나를 말 없이 아버지처럼 보살펴주신 아저씨가 참 소중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그리고 살아온 세월 동안 수많은 분들의 사랑과 보살핌이 있었으므로 오늘의 내가 있었음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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