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횡단보도가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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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횡단보도가 무서워"
  • 김인자
  • 승인 2017.04.28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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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길건너시는 할머니
 
작은 아이 학교에서 오면 먹이려고 찐만두 사가지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파란 신호가 켜지길 기다리고 서 있는데 겨울바람같은 칼바람이 쌩쌩 분다. 살랑살랑 부드럽게 부는 따뜻한 봄바람이 아니라 거칠게 쌩쌩 부는 제법 쎈 바람이다. 아침나절엔 해가 쨍쨍 봄날이더니 점심 지나서부터는 빗방울도 한 방울씩 떨어지고 사방이 잔뜩 흐렸다.

"바람이 갑자기 왜 이렇게 불어?
날라가겄네.
허리가 깊숙이 반이나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횡단보도에 서 계시다가 바람을 피해 건물쪽으로 자리를 옮겨 가신다. 다리에 힘이 없으셔서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가시는 걸음이 휘청휘청 왠지 불안하다.
진짜 많이 여위셨다. 키도 작으시고 바람에 날아가겠다는 당신 말이 빈말이 아니게 바싹 마르신 할머니.
 
신호가 바뀌고 할머니가 횡단보도 쪽으로 급하게 내려오시는데 저짝에서 정신없이 달려오던 버스가 할머니 바로 앞에서 급정거를 했다.
끼~이익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우산으로 버스를 막고 반사적으로 할머니를 감싸안았다.
"아구 놀래라. 저 망할 놈의 버스가 미쳤나 그래 .파란불인데 왜 안서고 지랄이고?"
"아고, 할머니 많이 놀라셨지요?
할머니 제게 업히실래요?"
"아이고 무슨~ 업히긴. 괜찮아요. 쪼금 놀랐을 뿐이요."

말씀은 괜찮다 하시는데 할머니 팔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 가는데 할머니 팔이 부들부들 떨리신다.
"에구 늙으믄 길바닥에 나와 돌아댕기는 것도 겁이나. 혼자 나다니다가 외진 곳에서 지금처럼 저런 차가 덮치고 도망가믄 아야 소리도 못하고 그냥 고자리에서 억울하게 죽는거지.
고마워요 색시. 에고 참 귀하게도 생겼네."
할머니 내 얼굴보고 예쁘다 하시는거 보니 이제 좀 놀란 마음이 진정이 되셨나보다.
 
"할머니, 봄이라고 해도 아직은 날씨가 많이 변덕스러워서 옷 이렇게 얇게 입고 다니시면 안되세요."
"그러게. 내둥 따뜻하더니 요메칠 찬바람이 부네."
"예 할머니, 할머니들은 감기 걸리면 큰일나세요. 5월까지는 날씨가 변덕을 부릴 듯 하니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셔야 해요, 꼭이에요 할머니?"
"그르게. 날이 갑자기 왜 이렇게 추워 그래? 바람은 또 왜 이렇게 미친년 치마 입은거 맹키로 씽씽 불어?"
"하하 할머니 미친년 치마여?"
"응 바람난 미친년들이 입고 다니는 옷 같잖아. 똥구녘이 보이게 짧게 입어서 바람만 한번 쓱 불어도 허연 허벅다리 죄보이게 올라가잖아. 숭하게스리."
"하하 네에~~"
"아침엔 더워서 나올 때 내복도 벗어버리고 겹우와기도 벗어버렸더니 꽤나 춥네.
고마와요 눈똥그란 색시. 덕분에 저 무션길을 내 잘 건너왔네."
"예 할머니..."
"나는 횡단보도가 무서워. 점점 다리에 힘이 빠지고 휘청거려서 빨리 걸을 수도 없는데 차들은 쌩쌩 내달리고 저느무 빨간불은 또 왜 그렇게 빨리 켜지는지 몰라. 늙은이들 생각해서 파란불을 좀 길게 켜지게 하믄 좀 좋아."
"그러게요, 할머니 ..."
 
"아이고 늙으믄 그저 집구석에 가만히 앉아있어야 되는데 다리가 아파서 병원은 가야하니 안 나올 수도 없고 돌아다니자니 세상이 다 무서워."
"예, 할머니 병원에 다니셔야하니 조심조심 다니셔요."
톡톡톡 지팽이 짚고 걸어가시는 할머니
뒷모습이 왠지 짠하다.
우리 할머니들 밖에 나와 걸어다니실 때 무섭지 않게 빨리 빨리 급하게 운전하지마세요~
횡단보도 건널 때 우리 할머니들 잘 건너가시나 한 번만 살펴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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