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고 남편이고 벗이 되어 주었던 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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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고 남편이고 벗이 되어 주었던 은비
  • 김인자
  • 승인 2017.05.16 0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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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감자'와 '은비'
 
까똑
까똑
까똑
핸드펀 카카오 톡에 연달아 들어오는 사진들. 감자다.
저녁 설겆이를 끝내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밤바람이 좋길래 아파트 화단을 끼고 설렁설렁 걷고 있는데 작은딸한테서 카톡으로 사진이 왔다. 우리집 강아지 감자다.
태어나 일주일도 안돼 우리집에 와서 우리랑 산지 4년 째 되는 말티즈.




"엄마, 감자가 현관앞에서 엄마 기다려."
'에고, 잠깐 동안도 비켜설 틈이 없구나. 걷기는 틀렸고나' 생각하며 한바퀴 휘돌아 걸어보려던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들어왔다. 현관문을 따는데 겅중겅중 뛰는 감자소리가 들린다.
"에구 에구 그케 좋으냐?
에미 나가고 내가 아무리 불러도 들은 척도 안하고 죽은 듯이 현관앞에 턱괴고 엎드려 있더니만 너를 기다리는 거지 그게...
우리 은비도 그랬는데..." 심계옥엄니가 감자를 보며 무심히 툭 던지시는 말씀.
 
은비는 나 대학 1학년때 입학 선물이라며 친구가 준 말티즈다. 그때는 말티즈인지 뭔지 몰랐는데 지금 우리집 감자를 보니 말티즈였던거 같다. 당시 순정만화에 빠져있던 나는 은비라고 이름을 지었다. 은비도 태어난지 일주일도 안되 눈도 못 뜬 째로 우리집에 왔던 걸로 기억한다.
 
"내 다시는 개 안 키울라고 했는데..."
심계옥엄니가 감자를 쳐다보며 두번째로 하시는 말씀.
네 살때 아빠 돌아가시고 심계옥엄니와 나는 서울서 시골 외할머니집 근처로 이사를 왔다. 남녀공학이었던 고등학교 앞에서 빵집을 했던 심계옥엄니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빵반죽을 하고 팥을 삶고 만두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면 찐빵을 만들고 만두피를 소주병으로 얇게 밀어 만두를 빚었다. 심계옥엄니는 익숙하지 않은 그 일을 하느라 늘 바쁘고 고단해 했다. 그리고 내가 중학교 들어가면서 빵집을 접고(망한거 같다) 이모네집 옆으로 이사를 해서는 과자 몇 개 소주 몇 병을 놓고 구멍가게를 했다. 고개를 깊숙히 수구려야만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좁디 좁은 방. 환한 대낮에도 전등불을 켜야만 뿌옇게 밝아지는 좁은 가게안에 딸린 어둡고 굴속같은 그 좁은 방에서 심계옥엄니와 나는 운동화 상자에 운동화를 넣는 것 처럼 머리와 발을 서로 엇갈려 두고 잠을 잤다. 지금도 내가 벽에 붙어 자는 건 그때 생긴 아주 오래된 습관. 새우처럼 잔뜩 구부리고 벽에 붙어서 자야하는 그 좁은 방에서 나는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냈다. 한밤중이건 새벽이건 소주 한 병 달라고 유리문을 쾅쾅 두드리고 마른 오징어 달라고 쾅쾅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깊은 잠을 자 본 적이 없는 나. 깨진 유리문 밖으로 낯선이들에 자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이불을 머리끝 까지 뒤집어 쓰고 쪽잠을 잤던 나의 사춘기 시절.
개다리소반 하나 놓을 수 없는 작은방에서 나는 엎드려 공부만 죽어라 했다. 어두침침한 백열등을 켜놓고 전과가 있는 친구를 부러워하며 손톱마디만한 소시지가 들어있는 백설탕 듬뿍 바른 핫도그를 먹고 싶어하며 장마철에 비새는 천장 때문에 밥그릇 국그릇을 놓아두고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굴속같은 어두컴컴한 방에서 나는 공부만 했다. 죽어라고. 그리고 그 방에서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찌져지게 가난한 집에 어울리지않는 고급강아지 은비는 내 둘도 없는 벗이었고 언니였고 동생이었다. 그런데 지금 기억해 보면 은비는 나보다 심계옥엄니를 더 따르고 좋아했던거 같다. 설명절 추석명절이 되어 심계옥엄니가 제사음식을 팔려고 옆동네로 시외버스를 타고 물건을 하러 가면 은비는 심계옥엄니가 차를 타러 건너간 사거리 보도블럭에 턱을 괴고 심계옥엄니가 물건을 해서 돌아올 때까지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심계옥엄니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도 바쁜 나보다는 은비가 심계옥엄니의 자식이고 남편이고 벗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내가 결혼을 하고 바로 그 다음날 심계옥엄니는 자유롭게 절에도 가고 할머니보러 친정에도 마음대로 가고 싶다고 은비를 미장원집으로 보냈다.
은비는 가기 싫어했는데... 심계옥엄니는 매몰차게 보내버렸다, 은비를...
 
"어느날 꿈에 은비가 나타났어. 내가 미장원엘 갔는데 내 손을 물고 안놔주는거야. 그래서 거참 이상타 싶어서 오징어 한 마리를 구워서 미장원으로 은비를 보러갔지.
근데 안 보여주더라고.
인천집으로 보냈다면서.
지금 생각하니 꿈에 본 그날 잡아먹은거 같애. 그집 남자가 보신탕을 엄청 좋아했거든..."
 
"감자야, 너도 내가 좋으냐?
너는 니 엄마가 좋지?"
지팽이를 휘젓는 심계옥엄니를 피해 감자가 내 뒤로 숨는다.
 
"은비야...
너도 내가 보고 싶으냐..."
베란다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며 심계옥엄니가 세 번째로 툭 던지듯 무심히 말씀하신다.
 
"은비야, 미안허다... 내 너를 그르케 보내는게 아닌데 ...미안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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