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무니, 제가여, 길에만 나서믄 자꾸만 헤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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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무니, 제가여, 길에만 나서믄 자꾸만 헤매요."
  • 김인자
  • 승인 2017.06.20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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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길치 위로하시는 할머니

나는 길치다. 그것도 엄청난 왕길치다. 서울역에서 용산역도 못 찾아가고 갈 때마다 헤매는 지독한 길치다. 헤매는 게 싫어서 지방강연을 갈땐 무서운 졸음운전을 하면서도 차를 가지고 간다. 차에는 네비가 있으니 적어도 내발을 가지고 걸어다닐 때보다 헤매지않는다.

강남코엑스 국제도서전 강연가는길. 집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가서 인천지하철을 탄다. 빠른 환승 7-4. 부평구청역에 가서 7호선으로 환승을 하고 대림역에 가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삼성역까지 간다. 코엑스 국제도서전 전시장에 도착하면 담당선생님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으신 담당선생님이 강연장 입구에 마중나오신다. 이 정도의 시뮬레이션이면 남들은 눈감고도 찾아가겠다. 그런 이 길이 내게는 미로다. 사실 나도 집에서 버스타고 지하철역까지는 곧잘 찾아 갔으며 부평구청역까지도 무탈하게 잘 갔다. 그런데 대림역에서 꼬이기 시작한 길은 삼성역에 갈 때까지 엄청 헤맸으며 급기야 삼성역에서 코엑스 강연장 갈 때 까지 고 짧은 구간을 엄청 길게 오만군데를 다 돌아다녔다. 담당선생님이 삼성역 6번 출구에서 쭉 걸어 오면 된다고 하셨는데 말씀대로 쭉 걸어나온 나의 길은 이쁜 아이돌이 많다는 sm사옥이었으며, 여기가 아닌갑네 하며 다시 내려와 쭉 걸어온 새길은 별빛도서관이었다. 결국 강연장을 못 찾은 길치는 담당선생님이 마중나오시고 나서야 겨우 강연장에 갈 수 있었다.
 
우야둔둥 강연은 잘했으며 참석자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되짚어 집으로 돌아오는길.
전시장 밖에서 삼성역까지 찾아가는 길부터 역시나 헤매기 시작하더니 어찌어찌 물어 물어 삼성역을 찾아 2호선을 탔다. 대림역까지 와서는 7호선으로 갈아타고 부평구청역까지도 어찌구 저찌구해서 불안하지만 무사히 잘 왔다. 그런데 여기까지가 나의 임계점였다. 부평구청역에서 인천지하철로 갈아타고 앉아서 잘 가다가 문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와~내리는 것을 보고 책을 보고 있던 나도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문밖으로 나섰다. 그것도 그냥도 아니고 "잠깐만요, 저 내려요"하며 한 손을 번쩍 들고 허둥지둥 가방을 챙겨서 말이다.
아 참 이거 버스 아니지. 내리고 보니 참으로 무안한거다.
옛날 옛날 갓날적에 버스 안내양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졸다가 내릴 정거장을 지나쳐서 급히 버스에서 내리는 것도 아니면서 "잠깐만요, 저 내려요." 라니 아 미치긋다 진짜. 그나저나 여기가 어디냐? 부평이구나.
아 부평이니 환승을 해야지.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내린거였네. 하마트면 큰일날뻔했네하며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나도 올라갔다. 그러다 멈짓. 제자리에 섰다. 이상하다. 나는 계속 타고 가야되는 거 아니었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거였다.
이런 이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부평에서 내려 환승을 할게 아니라 계속 지하철을 타고 쭉 가야하는 것이었다. 계단을 다시 내려왔다. 텅빈 의자에 앉아 굳은 결심을 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이번엔 절대로 헤매지말자.
 
지하철이 들어온다. 이번엔 제대로 가보자.
전철문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탄다. 나는 못탈까봐 얼른 탔다.
시계를 보니 다섯 시 십 분이다.
햐 다행이다. 오늘 우리 시아부지 생신잔치하기로 했는데. 식당으로 오시라고 킹크랩레스토랑 예약해놨는데 늦지 않겠지.
간석오거리~ 안내방송이 나온다.
간석오거리? 우왕 어쩌면 좋아? 이번엔 거꾸로 가는걸 탔다. 고자리에서 바로 탔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냐?
뚜우~
"아부지"
"어디까지 왔냐? 내가 역으로 마중나가께." 시아부지한테 전화가 왔다.
"아부지, 저 여기가 어디냐믄여?제가여 아부지..암만해도요. 전철을 잘못탄거 같아여."
"아고 거기서 내려서 고자리에 꼼짝말고 있거라. 딴데 가지말고 고자리에 있어,알았지.아부지가 곰방 가께."
"아니예요, 아부지. 지하철 타고 가면 돼요."
"아냐, 아냐. 거기 가만히 있어라. 을마나 놀랬냐 그래. 이애비가 금방 가께."
오신다는 시아버지께 지하철타고 간다 말씀드리고 반대 방향쪽으로 넘어가 지하철을 기다리고 앉아 있는데 왜 이렇게 내 자신이 한심하던지.

전철을 기다리고 망연자실 앉아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나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으신다.
"이뿐 샥시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예 할무니,저 암만해도 바본가봐요."
"아니 왜? 참하게 생겨가지고,"
'할무니, 제가여. 길에만 나서믄 자꾸만 헤매요."
"밖에를 잘 안나오나보지."
신기하다. 길을 헤메고 다닐때 불안했던 마음이 '밖에를 잘 안 나오나보지...' 하시는 할머니 말을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런 을마나 놀랬으믄 혼이 나갔나 그래... 젊은 색시 일로와봐요..."
"왜요, 할머니?"
"을마나 정신이 없었으믄 이쁘게 땋은 머리가 죄다 풀렸어. 아침엔 분명히 이쁘게 땋고 나왔을거 아닌가배."
할머니가 머리를 풀러 하나로 총총 땋아주신다. 옛날에 우리 외할머니가 참빗으로 머리를 곱게 빗어 주셨었는데.그때 그 기분이 든다.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편안해지는거 같다.
"에고, 내가 빗이 없어서 거친 손꾸락으로 얽기섥기 대충 땋아도 이해하시구랴.
에구 머리숱도 참 많네. 참 탐스럽다. 나도 젊을적에는 머리숱도 많구 그랬는데 이제는 늙어가지고 다 빠져서 속이 훤하고 머리카락도 히마리가 없어여.
이런 저기 전철 들어온다. 에고 얼릉 묶어야되겄다. 젊은 색시 기운내여.
근데 샥시 이차는 똑띡이 알고 타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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