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게 늙었어. 객적은 소리도 일절 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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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늙었어. 객적은 소리도 일절 안하고"
  • 김인자
  • 승인 2017.06.23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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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흥 많은 아흔 여섯 할아버지
 
"엄니, 사랑터에서 절친 있어?"
"절친이 뭐냐?"
"친한 친구."
"읍서."
"그럼 맘에 드는 사람은?"
"맘에 들고 말고가 어딨어. 다 거그서 거기지."
"아 그래도 특별히 맘이 가는 사람이 있을거 아닌가배."
"읍다, 나는 그렁거."
"아니 뭐 그래? 엄니 사랑터 다닌지 을만데 여태까지 친한 친구도 읍어? 엄니 왕따야?"
"왕따가 뭐냐?"
"다른 할무니들이 엄마랑 안 놀아주는거."
"놀아줘? 우리가 뭐 애덜이냐?
노는게 어딨어? 그냥 선생님들이 허라는거 허다가 오는 것이지.
너두 내 나이 돼봐라. 몸땡이 놀리는 것도 힘든데 머가 그리 맘에 드는게 있나? 체조할 때도 요즘은 갠신히 팔을 드는구만."
 
"그래도 할무니들이랑 얘기헐 때나 노래부를 때나 뭐 그럴때 자꾸만 엄니 눈이 가는 사람이 읍다고?"
"애기헐 때?"
사랑터에 친한 친구가 있냐는 내말에 뭐 그런걸 묻냐며 이래도 읍다 저래도 읍다시던 울 심계옥엄니 얘기할때 밥 먹을때 자꾸만 눈이 가는 사람이 없냐는 물음에 갑자기 눈이 반짝거리신다.
"아 저 사람은 참 본받을만 허다 할 만한 사람은 있지. 을마전에 새로 들어온 냥반이 있다. 아흔 여섯인가? 일곱인가? 암튼 나이가 많아. 남잔데 아주 점잖아. 깔끔하게 늙었어. 객적은 소리도 일절 안하고 얼굴도 아주 반듯해. 젊었을때 올바른 일을 했을거 같아.
모르는 노래도 읍고 흥도 많고 책도 많이 읽었어.
여자들이 와서 노래 부르고 할때는 좋다구 하구 못 부르는 사람이 와서 노래를 부르면 못한다구 고자리서 바른 소리를 해. 잘한다 잘한다 공갈배기 억지소리 안하고 자기헐 말을 지대로 똑바로 하지. 할 줄도 모르는 것들이 와서 시간 허비하게 한다고 찬소리도 해."
"그렇게 대놓고 말씀하신다고?"
"응, 일절 허튼소리를 안해.잘하면 잘한다고 하고 못하면 못한다고 하고 정직하게 말을 해. 생일잔치하는 사람들이 와서 노래 부르면 할 줄도 모르는 것들이 와서 한대."
"그럼 잘하는 사람들이 와서 하면 잘한다고 해?"
"그럼 잘한다고 하지. 혼자 와서 장구도 치고 노래도 부르는 여자가 가끔 오는데 아주 잘 해. 그 여자가 오면 아주 흥이 나서 으쓱으쓱 나가서 놀고 싶어 하지. 그런데 노래를 쬐끔 부르고 나면 목이 아프다고 해.
기운도 없으면서 흥이 나믄 나가서 춤을 추려고 해. 그러믄 선생님들이 쫒아가서 말려. 쓰러질까봐. 들어가서 자리에 앉아서 하시라고 하지. 그래도 말 안들어. 노상 나가. 마음은 다 할거 같으지. 이그, 그런 사람은 늙는게 아깝지."
 
"연세가 많으신데 대단하시네."
"그르치? 구십 일곱이 즉은 나이는 아니지.근데 구십 일곱이래?
구십 육이래는 줄 알았는데..."
"나야 모르지.구십 칠인지 구십 육인지."
"그렇지? 구십 육이든 칠이든 그게 뭐 중요하냐? 갈 날 기다리는건 칠이나 팔이나 매한가지지. 그러니까 그렇게 힘들어하지?
놀고도 싶고 노래도 모르는거 읍시 죄다 많이 아는데 힘들어서 못허고. 그래도 꼭 따라 불러. 그러고는 목이 아프대. 춘향가도 아주 잘 알아. 춘향이가 이도령 만나러 오씨같은 버선발로 나온대. 그런 노래를 해.나이든 냥반이. 노래도 아주 많이 알아. 그런데 부르진 못허지. 힘들어서."
"그 할아버지가 자꾸 눈에 보이셔 엄니?"
"보이는지 뭔지는 모르겠고 쓰러질까봐 걱정은 되지."
 
"엄니 내가 아까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뭘 들어?"
"무슨 일을 새로 시작한다면 나이가 몇 살이 적당할까요? 하고 묻던데."
"뭐 그딴 걸 묻냐? 그 라디오 참 헐일도 읍다."
"라디오가 헐일이 왜 없어? 을마나 바쁜데."
"바쁜데 그렇게 한가한 소리를 한다고? 라디오가 뭐라고 했다고?"
"새로 무슨 일을 시작하려면 몇 살이 좋냐고."
"그거야 나이가 한 살이라도 즉을수록 좋겠지.
그 구십 여섯 개 할아부지도 맨날 한 살만 어려도 춤을 지대로 배우고 싶다고 하더만.
한 살 어리믄 뭐든 다 할 수 있을거 같으지? 마음은?"
"그럼 할 수 있지.할아버지 보고 배우시라고해."
"내가 배우란다고 배우나?"
"영국의 할아버지는 99살에 마라톤을 시작하셨대."
"마라톤이 모냐?"
"뛰는거."
"백 살 먹은 노인네가 뛴다고? 걷기도 힘든데 으트게 뛰냐?"
"그니까 그 영국 할아버지에 비하믄 엄니는 한참 아래 동생이여. 거의 띠동갑되겠네."
"뭘 먹었길래 그 냥반은 그 나이에 뜀박질을 그케 잘한대냐?"
"밥 잘 먹고 잘자고 똥 잘싸고 그러신대."
"너랑 친하냐? 으트게 그르케 잘 아냐 그 냥반에 대해서?"
"하하 알기는 내가 어트게 알어? 엄니 라디오에서 그러드만."
"그 라디오 참 신기허기도 하다."
"그니까 엄니도 열심히 걷기운동하셔요.
누구는 백 살 먹어서 뜀박질을 한다잖여. "
"햐 그 사람이 본받을 만허다.
걷기도 힘든데 으트게 뛰냐? 고거 참
대단한 냥반일세."
"그니까 엄니는 아무것도 아니여.
지팡이 짚고 걷는다고 괜이 속상해마셔요.
걷기도열심히 하고 엄니도 영국할아버지처럼 기회가 되면 마라톤에 나가보셔야지."
"아구야 지팽이 떼고 지대로 걷기나 했으믄 좋겠다.
 
근데 말야
너 그 양반하고 친하냐? 친하믄 요거 하나만 물어봐라."
"뭘 물어봐?"
"그 나이 먹을때까정 지팽이 한번도 안 짚어 봤냐고 한번 물어봐라.
이노무 지팽이만 떼내버리면 나두 마라톤인지 뭔지 그거 한번 해보게 꼭 물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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