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혀줬으니까 기분좋겠지?... 이 꽃들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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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혀줬으니까 기분좋겠지?... 이 꽃들말이다"
  • 김인자
  • 승인 2017.06.27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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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화분 흙 구하기


"나가서 흙 좀 퍼와라."
"흙? 무슨 흙?"
"흙이 흙이지. 무슨 흙이 모냐? 땅바닥에 있는거."
"흙은 머할라고?"
"애네들 숨통 좀 튀어줄라고. 날도 더운데 좁은데서 지들끼리 발도 못 뻗고 을메나 힘들겄냐 얘들이.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헐수가 있나, 답답허면 답답허다고 말을 할 수가 있나.
미안허구나. 내 진작에 큰 화분으로 갈아준다 갈아준다 하믄서도 내가 나가서 흙을 퍼올 수가 없어서 차일필 차일필 미루기만 했구나. 미안허다 애들아, 날도 더운데."
심계옥엄니 베란다에 있는 꽃들을 일일히 손으로 만지며 말을 거신다.
"니들도 참 힘들것다. 옴짝달싹을 할 수 없으니 말은 못해도 을마나 힘들거야 그래."
 
심계옥엄니 사랑터 가시지 않는 주말 오후.
심계옥엄니 베란다에 앉아 꽃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거신다.
"가위 좀 이리 건네주고 나가서 얼릉 흙 좀 퍼와라."
"아파트에 흙이 어딨어? 엄니"
"흙이 왜 없어? 나가믄 사방천지 오만군데 널려있는게 흙인데."
"엄니, 여기가 옛날에 우리가 살던 시골인가? 여기는 흙 없어요."
"흙이 없어? 그럼 어쩐댜? 얘네들 한시라도 빨리 큰 화분에다 옮겨줘야하는데. 얘네들 봐라 답답허다고 그르잖냐. 좁은 데서 숨도 지대로 못쉬고 있구만. 불쌍해서 어쩌냐. 근데 진짜 밖에 흙이 읍다고? 그럼 어디 가서 사오거라 흙 살데는 있겄지."
심계옥엄니 하두 흙퍼와라 흙퍼오라 성화를 대셔서 헐 수없이 빨강 봉다리랑 밥 숟가락 하나를 들고 집밖으로 나서긴 했는데 어디가서 흙을 구한다?
모종삽도 없어 흙이 보이면 땅을 파서 담을 요량으로 밥숟갈을 들고 나왔더니 이거 이거 원 깡통만 안들었지 깡통만 들면 동냥밥 얻어먹으러 나온 영락없는 각설이다.
 
"김선생님 비오는데 어디 가시는가?"
흙을 찾아 털레털레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부르신다. 뒤를 돌아보니 경비할아버지다.
"엄니가 흙 퍼오래서 흙 푸러 나왔어요. 그런데 흙을 어디서 푸지요?"
"흙이라... 하하 내가 가르쳐줄까요 우리 김선생님. 손쉽게 퍼담으라고 아주 봉곳하게 잘 쌓아 놨는데."
"와 정말요?"
경비할아버지 뒤를 따라 가보니 흙이 진짜 봉곳하게 야트마한 산을 이루고 있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
"에고 어서 공사가 끝나야지 주민들 차세우시느라 고생들하셔서 민원 들어올까봐 아주 조마조마해요. 날도 점점 더워지는데 그래도 주민들이 협조를 잘 해주셔서 주차선만 그으면 도로포장 공사가 마무리되네요."
몇날 며칠을 땅파는 소음에 주차난으로 힘들었던 아파트 도로공사가 드디어 마무리 되나보다, 아파트 단지내 도로포장 공사한다고 땅을 죄 갈아엎은 바람에 숟가락으로 땅을 파지않고 쉽게 흙을 구할 수 있어서 나는 좋고 우리아파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깨끗한 길을 안전하게 걸어다니실 수 있어서 또 좋다. 모두를 위한 수고로운 불편함.
 


 
"얘들이 활짝 핀거 같애. 넓게 해줘서."
"활짝 핀거 같아?"
"응, 뵈기에 그런거 같애. 좁아서 지들끼리 불편했을 텐데 확 넓혀주니 아주 의젓허다. 길은 공사가 다 끝났대냐?"
아파트 도로공사때문에 사랑터 차타는 정문을 곧장 가지못하고 상가로 빙 돌아서 가셨던 울 심계옥엄니. 정문까지 가는데 시간도 배로 걸리고 땅을 죄 갈아엎어놔서 지팽이 짚고 걸으시는 울심계옥엄니 넘어질까봐 노심초사했었는데 무사히 공사가 잘 끝나서 다행이다.
 
"넓혀줬으니까 기분좋겄지?"
"누가 기분 좋아?"
"이 꽃들말이다. 사람들도 기분 좋은 일이 많아야겄지.
센터에 봉사하러 오는 이들이 맨날 허는 말이 그거야.
박수치면서 좋다~ 하고 큰소리로 말을 허래잖아.
나는 기분 좋다, 건강좋다 그러믄서 팔을 높이 치겨들래잖아
항상 좋은 맘을 가지고 있으래. 그러믄 좋은 일만 생긴대.
 
"나는 제일 좋다"
"나는 제일 건강하다" 그러구
"나는 제일 기분이 좋다."
"내맘이 좋다."
"좋다."
그이네들 하는 말이 그거야, 조~.오타
좋은 생각하고 있으면 좋다고. 좋은 게 없는데 좋다고 하는거보다는 좋은 일이 많이 있어서 좋다고 하믄 더 좋겠지.
이 꽃들도 큰 화분으로 갈아줬으니 좋다 좋다 그럴거다.지네들 말로."
"엄니도 좋아?"
"좋지, 그럼."
"뭐가 좋아?"
"다 좋아. 건강 좋다. 새길 좋다. 기분 좋다."
심계옥엄니 신나서 손뼉을 치시며 꽃들을 바라보며 좋다 좋다 하신다.
"너도 해봐라. 좋다 좋다."
갑자기 내 두손을 끌어다 잡고 심계옥엄니가 좋다 좋다를 하신다.
엄니를 쳐다보며 두손을 엄니에게 잡힌 채로 좋다 좋다를 했다.
그랬더니 울 심계옥엄니 신나서 그러신다.
"손뼉을 치면서 해야지. 그래야 진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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