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 가서 하룻밤 자고 약 타가지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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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질방 가서 하룻밤 자고 약 타가지고 와"
  • 김인자
  • 승인 2017.08.08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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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승봉도 할머니
 
인천in에 기획연재를 쓰는 필진들과 시민편집위원들이 이작도로 워크샵을 갔다.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안개때문에 배가 연착이 되었다. 맨바닥에 퍼질러 앉아 김밥도 까먹고 커피도 사먹고 그래도 떠난단 기약이 없는 배를 어찌구 저찌구해서 시간을 흘리고 흘려 드디어 배를 탔다.
이작도로 떠나는 배.나는 배를 타자마자 늘 그래왔듯이 습관적으로 배안을 한번 쓰윽 살폈다.
 
휴가철인데다 황금주말이 시작되는 금욜이어서 휴가 가는 사람들, 섬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가는 사람들로 배안은 와글와글 신바람이 났다.
지정된 좌석에 짐을 놓고 본격적으로 나는 채비를 했다.어디 한번 시작해볼까? 내 사랑 할미, 하비들이 어디에 계시나? 어디 한번 찾아볼까나?
배안에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내 눈은 정확하게 곧바로 내사랑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한 방에 찾아낸다. 맨 뒤에 앉아계신 할머니 한 분.
 
나는 배표에 지정된 내 자리에서 일어나 비어있는 할머니 옆자리에 엉덩이부터 디밀고 슬그머니 할머니 옆에 앉았다. 할머니가 흘깃 나를 쳐다보시더니 이내 내게서 눈을 떼어 너는 뭐냐? 나는 너한테 요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표정으로 곧바로 정면을 응시하신다.
그런 할머니를 나는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할머니가 쳐다보지 않으셔도 두눈에 쌍하트를 달고 살뜰한 눈빛으로 할머니를 계속 쳐다보았다.
할머니가 그런 내 시선을 느끼셨는지 나를 쳐다보신다.
 
앗~싸 됐고요~
할머니꼬시기 1단계 성공.
"뭘 그렇게 쳐다봐?
내 얼굴에 뭐 묻었어?"
할머니가 화난 얼굴로 퉁명스럽게 말씀하신다.
그런 할머니에게 나는 최대한 환하게 웃으며 할머니손을 찾아 꼭 잡아드린다.
할머니가 손을 안 빼시면 2단계 성공.
"아니여.암껏도 안 묻었어요 할무니."
"근데 뭘 그렇게 쳐다봐."
"아 할무니 제가 쳐다보는거 아셨어요?"
"그럼 알지. 그렇게 나만 계속 치다보는데 내가 모르까봐?"
"그건 순전히 할무니때문이에요~"
"뭐가 나 때문이야?"
"할무니가 너무 이뿌셔가지고 제가 자꾸만 쳐다보게 되잖아요.그러니까 할무니때문이죠."
"내가 이뻐?"
"네,할무니 이뻐도 그냥 이쁜게 아니라 겁나 이뿌세요."
"ㅎㅎ 그치? 내가 젊었을 적에는 참 이뻤더랬어."
"네,제가 생각해도 할무니 소시적에 음청 이뿌셨을거 같아요."
"그랬지 그땐 진짜 이뿌단 소리 많이 들었지. 지금은 이르케 볼품없이 늙어자빠졌지만."
"아녜요,할무니. 할무니 지금도 엄청 이뿌세요."
"고맙구만. 이뿌게 봐줘서. 근데 어디가?"
"예, 이작도에 가요.
할무니는 어디 가세요?"
"나는 우리집에 가지. 승봉도."
"아,예."
"놀러 가나? 놀러갈거믄 우리집으로 가지?"
"할머니집에요?"
"응, 내가 잘 해주께.우리는 수박도 많이 심었고 토마토도 많이 심었어. 그거 내가 다 주께."
"아, 할무니 민박하세요?"
"응, 나 승봉도에서 민박집 아주 크게 해."
"아 그르시구나 이번엔 미리 약속이 된 집이 있으니 다음엔 할머니집에 꼭 갈께여."
"그랴 꼭 와 내가 잘해주께."




"네, 할머니.근데 할머니 민박집 하시면 지금 한창 바쁘실텐데 어디 다녀오세요?"
"응, 병원."
"아 할머니 병원 다녀오시는구나.할머니 어디가 아프셔요?"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오만군데 다 아프지.어디 성한데가 있간? 병원서 약 타 가지고 가는거야."
"병원다녀가시려면 하룻밤 인천서 묵으셨겠네요?"
"그랬지. 찜질방에 가서 자고 병원가서 약타가지고 시방 서둘러서 집에 들어가는거야."
"아 찜질방에서여? 자손들이 멀리 사시는구나."
"아니,인천 살어."
"그런데 왜 ?"
"왜 자슥들 집에 가서 안 자고 찜질방서 자냐고?"
"네? 할머니"
"귀찮아서. 병원 근처 찜질방가서 자고 약 타갖고 빨리 들어오는게 편해. 뭐하러 자식들 성가스럽게 해."
두눈을 꼭 감고 계신 할머니를 나도 성가스럽게 하는건 아닌가 싶어 할머니가 사시는 승봉도에 갈 때까지 그저 가만히 할머니 옆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 좋아하시는 쥐고기도 갈라먹고 할머니가 얘기하시면 듣고 그렇게 할머니 옆에 앉아서 갔다.
"이거 묵으라."
할머니가 과자 한 개를 건네주신다.
"잘 가그라. 고마웠다.낯선 늙은이헌데 상냥하게 말붙여줘서.화장실까정 쫒아와서 나 어찌됐으까봐 걱정해줘서 참 고맙다."
배가 할머니 사시는 곳에 첫 번째로 서고 할머니가 유모차에 의지에 걸으신다. 허리가 반이 굽었다.내리려는 사람들이 입구로 몰리고 잘 걷지 못하는 할머니는 자연히 뒤로 밀리셨다. 할머니 팔을 잡고 할머니 유모차를 끌고 배에서 할머니랑 함께 내렸다.
그러고도 마음이 안 놓여 할머니 팔을 잡고 걸었다.
"어서 드가라. 배 곧 떠난다."
할머니가 유모차에 의지해 걸으신다. 허리가 반이나 더 꺾여서.
할머니가 봉고차에 타시는걸 보고서야 서둘러 뛰어 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창에 붙어 할머니가 타신 봉고를 찾았다. 내가 탄 배가 서서히 움직이고 할머니가 타신 봉고가 저 멀리 서있다.
 
"나? 찜질방 가서 하룻밤 자고 약타가지고 와 .. 뭐하러 자식들을 성가스럽게 해..."
 
할머니가 보고싶다. 승봉도에 가봐야겠다. 할머니 민박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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