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는 책 읽는 소리가 너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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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는 책 읽는 소리가 너무 좋아서
  • 김인자
  • 승인 2017.08.11 0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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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머리를 빗겨주던 때

"엄마, 할무니 어디 편찮으셔?"
"아니 왜?"
"아직까지 안 일어나셔서..."
"응, 할머니 오늘부터 사랑터 방학이라서 안가셔."
"사랑터도 방학을 해?"
"그럼, 사랑터도 방학하지. 할무니들도 더운 여름날 쉬셔야지. 쉬시면서 맛있는 것도 드시고 좋은데도 구경가시고 아무 것도 안하고 쉬시기도 하시고. 너희들이랑 똑같지."
"할머니는 좋으시겠다. 맨날 맨날 늦잠 잘 수 있어서."
"할머니가 방학했다고 늦잠을 주무시나?"
"하긴.똑딱시계 우리 할머니 오늘도 새벽에 목욕하셨어?"
"그럼 오늘도 새벽 4시30분에 정확하게 목욕하셨지."
"우리 할머니는 진짜 드시는 시간, 주무시는 시간이 정확하시지."
"너도 할머니처럼 시간 좀 정확하게 써봐."
"나도 그러거든. 엄마처럼 늘 깨어있는 것도 아니고. 나도 정확한 시간에 먹고 자고 일어나거든."
"아, 그냐?"
"엄마 지금 엄청 영혼없이 그냐? 그러거든."
"아 내가 그랬냐? 미안."
"그 미안도 진짜 미안이 아닌거 같네."
"아 까칠하긴. 딸. 진짜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이 엄마 얼굴 좀 봐라."
"농담이야. 근데 우리 학교는 왜 이렇게 개학을 일찍 하는거야?"
 
개학을 해서 학교에 가는 둘째딸이 할머니방에 들어갔다 나오며 하는 말이다.
"부러우면 너도 빨리 빨리 커서 할무니 되어라."
"그러게 나도 빨리 나이 먹었음 좋겠네."
"왜에?"
"왜긴. 빨리 나이를 먹어야 우리 잔소리 대마왕 엄마 한테서 독립을 하지."
"내가 뭘 또 그렇게 너한테 잔소리를 했다고 그러냐?"
"하긴 엄마는 내 친구들 엄마들에 비하믄 잔소리랄 것도 없지."
한참을 조잘거리던 작은 딸아이는 할머니방에 들어가서 선풍기를 할머니 발쪽으로 돌려 놓고 서둘러 학교에 갔다.
"엄마, 선풍기 할무니 얼굴에 직접 오래 쐬시면 안좋대. 잘 살펴드려. 너무 많이 주무시나 그것도 잘 살피고. 왠종일 노트북에만 코박고 있지말고. 맨날 머리 아프다면서. 그리고 밥도 좀 먹어."
"알았다아~~너 학교 안 늦냐?"
잔소리 대마왕은 내가 아니고 딸 바로 너구만.
그렇게 작은 아이가 한바탕 잔소리를 쏟아놓고 학교에 가고 점심때가 되어 큰 아이가 점심을 먹으러 집에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큰아이는 할머니 방부터 들어간다.
"딸, 뭐 좋은거 사왔으면 이 엄마한테도 좀 풀어놓고 가라."
"엄마꺼 없어. 할머니꺼야."
"뭘 또 샀길래 나는 안 보여주고 잔뜩 들고 들어가냐?"
아이는 뭘하는지 한참을 할머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뭐 하냐?
점심먹고 한 숨 주무시던 심계옥엄니가 방에서 나오셨다.
"자꾸 그런거 머리에 그딴거 바르면 눈에도 안좋고 다 안좋다던데."
"많이 안 발러. 새치가 생겨서 조금 발라보는거야."
"뭐 벌써 새치가 생겨?"
"엄마는 내 나이가 몇 갠데?"
"몇 개냐? 열 개도 안되는데."
"아이고 울 엄니땜에 내가 산다아.내 나이가 엄니 말처럼 열 개만 되믄 진짜 좋겠다."
"내꺼 주랴?
"엄니꺼? 뭘 줘?"
"내 나이."
"아고 엄니야. 엄니 나이를 나한테 주믄 나는 곧바로 할무니가 되는 거인디."
"그라믄 으트게 되냐?"
"그라믄 어떻게 되긴 엄니가 나한테 형님 형님 해야하는데. 그래도 좋아?"
"아 그런 거이냐? 그럼 안 줄란다. 나이."
"하하 그려요.잘 생각했어여 엄니. 나이를 주고 받는거라면 얼마나 좋겠어."
진짜 그럴 수 있는 거라면 당장 울 엄니 나이에서 열 개를 내가 가져올텐데. 그러믄 우리엄니 지금보다 훨씬 기운 많으실텐데.
 
"일루 와봐라. 내가 좀 해주께."
"아고 아녀 엄니. 귀밑에만 조금 발라보고 말거야. 새치가 나오니 괜히 마음이 심란해서."
"뭐가 심란하냐? 나올때 되서 나오나보다 그리 생각하믄 되지."
"그러게. 그렇게 생각하믄 되는데 나는 엄니처럼 그렇게 좋게 생각이 안드네."
내 뒷머리를 뒤적뒤적하시던 심계옥엄니 "읍다, 읍어. 헐 것도 읍네."하신다.
"없어? 옆은 이케 많은데 뒤는 없다고?"
"없다. 그리고 옆에 뭐 그렇게 많냐? 내보기엔 읍구만."
흰머리 없다면서 심계옥엄니는 그러고도 한참을 내 뒤머리를 뒤적뒤적하셨다.
엄니가 머리를 만지자 옛날에 나 어릴때 엄니가 머리를 빗겨주던 때가 생각이 났다. 내가 학교에서 받아온 책을 읽고 있으면 울 심계옥엄니는 내머리를 참빗으로 곱게 빗겨주면서 머리를 총총 땋아 주셨더랬다. 그리고는 맘에 안든다며 땋은 머리를 풀었다 다시 땋고 또 맘에 안든다고 풀었다가 또 다시 땋고...
그때는 울 심계옥엄니가 글자를 읽을 줄 모른다는 걸 몰랐었다.
내가 읽는 책 읽는 소리가 너무 좋아서 머리를 땋았다 풀렀다하는 것도 그 때는 몰랐었다.

"엄니 .."
"왜?"
"책 읽어주까요?"
"무슨 책을 또 읽냐?"
"무슨 책이든. 읽어주까요?"
"아냐. 고만 쉬거라. 너는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어릴 때나 지금이나 책만 너무 들여다봐서 어느새 눈이 안좋은거다. 눈 좀 애껴라."
"예,엄니"
"근데 말야. 나 어지께 사랑터에서 흰머리 뽑았다.왜 말많은 할무니 있잖아?"
"네. 11월이면 아들집에 살러가신다는 그 할머니?"
"응 , 그 할무니가 나보고 흰 머리가 삐죽 나왔다고 숭허다고 뽑으래서 뽑았다."
"흰머리? 어디에?"
"눈썹에. 눈썹이 시어서 호랭이 눈썹 같다고 해서 그래서 내가 뽑았다."
"그러셨어? 나한테 말하지. 그럼 내가 염색해드릴텐데."
"눈썹에 하나 삐죽나온걸 뭘 염색을 해? 한달에 한번 머리 자르러 오는사람들 있잖아. 그 선생님들 오믄 내놓는 큰 거울이 있다. 내 그 거울 앞에 가서 쑥 뽑아 버렸지."
"그르셨구나, 잘하셨네 울엄니."
 
"근데 말이다."
"응, 엄니."
"그 약 남았냐?"
"무슨 약?"
"아 머리에 물들이는 약 말이야."
"아 염색약? 남았지 왜 엄니도 해드리까여?"
"많이는 말고 염색약 남았으믄 요기 귀밑에 허옇게 나온거 고 것만 좀 해주든지."
"아우 그랬쪄여. 울엄니 흰머리 나오셨구나. 해드려야지. 으트게, 이번엔 빨강머리로 해보까?"
"늙으이가 주책스럽게 뭔 빨강이냐? 수수허게 색깔 야하지 않은거로 해줘. 염색약 남았으믄."
"엄니는 이뻐서 좀 야한 색깔로 해도 돼."
울엄니 다음엔 갈색 말고 진짜 붉은색으로 염색을 해드려볼까?
빨간머리 앤처럼 이뿌게... 기운나시게. 열정의 빨간색으로 염색을 해드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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