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일기와 함께한 한 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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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일기와 함께한 한 학기
  • 이상문
  • 승인 2017.08.17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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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 수업일기 / 이상문 안산디자인문화고등학교 교사

교사 본연의 임무는 수업이다. 수업에 있어 교사의 역할은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배움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수업에서 배움이 일어난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수업의 형태와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어떠한 수업의 형태와 방법을 선택하느냐는 가르칠 내용과 시기, 상황 등에 따라 달라진다. 교사가 선택한 수업 형태와 방법에 따라 좋은 수업이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에게 배움이 일어났을까를 의심하게 된다.

매년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거나, 가르쳐야 할 교과목이 바뀌는 경우에는 항상 어떻게 수업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해 왔다. 매년 새로운 방법을 연구해서 적용해 보기도 하고, 다른 교사의 수업 방법을 들여다본다. 올해 나의 선택은 학생들이 수업일기를 쓰도록 하는 것이었다. 일기를 쓰며 하루를 정리하고 반성하는 일이 수업을 회상하며 쓰는 수업일기에서도 가능할 것이라는 작은 믿음과 소망에서 선택한 일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세대인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기기, 짤방, 짤톡에 익숙하여 긴 글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에 귀찮아하거나 힘들어 한다. 수업일기를 성실히 작성할 수 있을까? 수업일기로 인해 오히려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하여 고민이 되기도 하였다.

수업일기 작성을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서식을 만드는 일이었다. 인터넷 블로그를 검색하여 다른 선생님들의 수업일기를 참조하여 초안을 만들어 수업일기를 이미 활용하고 있는 동료교사의 조언을 받았다. 수업일기 서식은 작성자, 단원명, 수업내용,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 자신의 느낌과 감상, 선생님 의견으로 최종 구성하였다. 서식을 인쇄하여 제본을 한 뒤 학생 개인이 아닌 모둠별로 한 권씩 배부하였다.

개별 학생 모두가 수업일기를 작성하도록 하고 싶었지만, 수업일기를 작성해 본 경험이 거의 없을듯하여 모둠에서 한 명씩 매일 돌아가면서 작성하도록 하였다. 학생 개별적으로 매일 수업일기를 작성해야 하는 부담을 줄이면서, 수업이 있는 날 작성자가 교체됨으로 해서 작성자 본인에게 책임을 부가하기 위함이었다. 매 시간 작성된 수업일기는 다음 수업시간에 본 수업이 시작되기 전 5분 정도를 할여하여 전날 작성자가 자신이 작성한 내용을 모둠원들에게 발표하여 전시학습을 복습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일기를 회수하여 작성된 내용을 읽어보고 수업내용의 오류 부분을 점검하는 등 선생님 의견을 작성하여 되돌려 주었다.

수업일기를 작성하면서 첫 2주 정도는 학생들이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며 불평의 목소리와 원망의 눈빛이 가득했다. 학생들마다 수업일기를 작성하는 방법이 모두 달랐다. 단원 제목만 쓴 학생, 교과서를 베껴 쓴 학생, 그림으로 요약한 학생, 수업내용과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을 구분하지 못하여 바꿔 쓴 학생, 작성을 아예 못한 학생 등 58명의 학생이 쓴 수업일기는 참 다양했다. 수업일기를 작성한 지 한 달여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둠 내에서 서로가 작성한 내용을 비교하고 심지어 다른 모둠의 작성내용도 비교하면서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열심히 작성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업일기를 작성한 본인은 잘 못 느꼈겠지만, 분명 아이들은 수업일기를 처음 작성 할 때와는 달라졌다. 학생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수업 내용을 정리하고 있었다. 작성된 수업일기를 보면 그 학생의 수업태도나 학업수준이 연상되었고, 전날 수업에 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지도 알 수 있었다. 간혹 수업일지 작성 규칙(수업이 종료된 후에 5분 이내에 작성하기)을 어기고 수업 중이나 수업 후에 교과서를 베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적당한 선에서 타이르는 수준에서의 주의만 주었다. 어찌 보면 그 모습은 자신이 맡은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작성한 수업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어 내용의 일부를 발췌해 본다. 내 수업의 대부분을 그림을 그리는 학생이 작성한 내용이다.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 쌤이 명수(가명) 깨우라고 시켰다. 이 자식 고마움을 모르는 것 같다. 명수가 자꾸 그림 그리자고 한다. 암흑의 길로 빠지고 있다. 젠장(근데 같이 그리자고 해놓고 지는 잠) 소영(가명)도 풀빵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슈크림이 좋다. 선생님이 발표 영상 1분 찍어 놓은 걸 보여줬다. 태주(가명)는 발표를 잘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짝꿍인 나는 귓구멍이 더 아파왔고 몰래 대화하기가 어려워졌다. 태주는 작게 얘기하면 듣지 못 하고 말할 때 발표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따흑 그치만 발표에 가능한 목소리라 다행이야 ^-^
 
[자신의 느낌과 감상] 애들이 발표를 열심히 하는 거 같다. 최근에 만난 경상도에 사는 언니가 공업일반 쉽다고 했다. 상식이라고? 그짓말쟁이..


교과서를 공부해 시험 보는 게 이득일까? 프린터를 보고 공부해 시험 보는 게 이득일까? 답은 물론 2개 다 하라 하겠지만 으-아악 공업처럼 공부도 효율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수업 첫 시간 눈에 띈 학생이라 솔직히 수업태도나 수업일기 내용에 대해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학생이 작성한 내용들을 읽다보니 학생들을 바라보는 내 시각이 너무 경직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 모습이 기성세대의 시각에는 눈에 가시처럼 보일 것이다. 교사가 해야 할 일은 어떤 형태로든 학생들에게 배움이 일어나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일일 것이다.
 
학기가 종료되고 한 학기 동안 수업일기를 작성한 소감을 묻는 설문에서 다수의 학생들이 수업일기를 작성 날 만큼은 수업에 집중하려고 노력하였다고 응답하였다. 복습의 효과도 있었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고, 너무나도 힘들었다고 한 학생도 있었다. 습관을 형성해가는 과정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까? 다소 강압적이지만 아이들이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시작한 일이었다. 배운 것을 회상하여 다시 쓰는 일이지만 아이들은 정말로 글을 쓰는 것을 귀찮아하고 힘들어 했다. 아이들은 자신이 작성한 글에 선생님의 댓글이 달리는 것을 항상 기대하였다. 수업 내용을 잘못 이해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찾아서 교정해주기 위해 선생님 의견란을 포함하였는데, 어느 때부터인지 아이들은 선생님의 댓글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늘 선생님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소통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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