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네들은 저녁밥 할 때 피는 꽃인데 다 쓰러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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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들은 저녁밥 할 때 피는 꽃인데 다 쓰러졌구나"
  • 김인자
  • 승인 2017.08.1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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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순한 자연, 무서운 자연
 
"병원 가자니까~"
"시려."
"아픈데 왜 시러? 지금 병원 가셔야 오늘 밤은 편히 주무실 수 있어여."
"안 가도 되야.파스 부쳐서 덜 시큰햐."
"그래도 가야 돼."
"앙가."
"왜 앙가?"
"목요일은 사람많디야~"
"누가 그래?"
"병원서?"
"가자, 엄니.밤새 아파서 괜히 고생하지말고. 오늘까지 의사소견서도 내야돼."
"뭘 내?"
"의사 소견서."
"그게 뭔데?"
"심계옥어르신 아파요. 많이 아파요. 하고 의사 선생님이 써주는 거야."
"누구한테 나 아픈걸 써주냐?"
"건강보험공단."
"안써주믄 으트게 되냐?"
"엄니 돈 많이 내고 병원 댕겨야지. 약 탈때도 돈 많이 내야하고."
하는 내말에 "그럼 가야지. 병원." 하시던 심계옥엄니.

무심히 아파트 화단에 핀 꽃을 보며 하시는 말씀.
"비가 메칠을 속절없이 오더니만 애네들이 다 쓰러졌네. 가엷어서 우짜냐?"
"그러네. 진짜 꽃들이 다 쓰러졌네."
"그게 시절이여. 자연이 순하다가도 한 번 화나믄 이케 망가뜨려 놓잖냐.그러니 자연헌테 까불믄 안된다.순하다가도 한번 화나믄 무섭잖냐."
"그치. 순한게 한번 화나믄 무섭지."
"너처럼."
"나? 내가 화나믄 무서?"
"무섭지.에릴때도 그랬다. 순한게 한번 불뚝스믄 아무도 못말렸니라."
"내가 뭐가 무서?"
하는 내말에 "얘네들은 저녁밥 할 때 피는 꽃인데 다 쓰러졌구나."하며
말을 돌리시는 심계옥엄니.
"저녁밥 할 때 피는 꽃?"
"그래.얘들이 피믄 저녁밥 지어 먹을 때가 되었구나하고 알지."
"꽃 이름이 뭔데 엄니?"
"거슨 나도 모르지. "
"어트게 그건 모른댜? 척척박사 엄니께서?"
"이름이 머시 중요하냐? 허는 일이 중요하믄 되는 것이지. 쟈는 시계다. 저녁밥 할때를 꼬박 꼬박 가르쳐주는 고마운 시계.시계꽃이여."
"아, 시계꽃?"
"그렇지. 시계꽃. 그른데 너 왜 아까부터 나한테 반말이냐? 버르장머리 읍시."
"아 ?예. 내가 잘못했네.엄니, 잘 하겠습니다."
 
그래서 버르장 머리 없는 딸 엄니께 잘하려고 예절바른 심계옥엄니 모시고 맛있는 밥먹으러 왔다.
병원가서 노인장기요양보험 갱신용 의사선생님 소견서 떼고 곧장 밥 먹으러 갔다. 엄니랑.잘 걷지 못하시는 울 심계옥엄니와 밖에서 식사를 하려면 여러가지로 애로사항이 많다. 엄니가 기운이 없으시고 힘들어하셔서 밖에 있는 시간이 길면 안된다. 그리고 가려고 하는 식당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음식점이 1층에 있거나 계단이 없는 곳에 있어야 하며 주차장서 입구까지는 가까워야한다. 그리고 식사자리는 좌식이 아닌 의자여야한다. 그러니 울 심계옥 엄니와 밖에서 뭐라도 먹으려면 음식선택에서부터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그렇다고 배달 음식을 즐기시지도 않으시니 시켜먹을 수도 없고 어렵지만 그래도 용케 찾았다. 식당을. 오늘 울 심계옥엄니와 맛난 밥 먹을 곳은 강원도 토속음식점이다.
일단 이 음식점엔 주차장도 있고 입구도 가까우며 음식도 심계옥엄니 입맛에 맞으니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이건 뭐냐?"
"죽"
"죽인걸 몰라서 묻는게 아니고 죽이 왜 노래?"
"호박죽이니까."
"아, 호박이 노랗냐?"
"그치.호박이 노랗지."
"나는 이걸 첨 먹어봐서 모른다."
(첨 먹어보다니.호박죽 좋아하셔서 내가 많이 사다드렸었는데 에혀.그래 까묵을 수도 있으시지.)
"이건 또 뭐냐?"
"황태."
"이것도 첨 먹어본다. 나는"
(이것도 자주 드셨던건데..)
"이건 또 뭐냐?"
"이건 녹두 이건 닭"
"이것도 나는 처음 먹어본다."
"그치, 엄니. 녹두는 엄니가 자주 드시진 않았지. 그래도 처음은 아닌데.저번에도 드셨는데."
"은제? 나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데."
"아, 그려요. 엄니 죄다 처음 먹어보는 거니 다음에 또 사드리께요. 처음 아니게."
"그래. 입맛 없을 때 또 와서 먹으믄 좋갔다."
이것저것 맛있게 드시는 울 심계옥엄니.다행이시다. 요즘 식사하실때 목에 걸려서 제대로 식사를 못하셨는데 밖에 나와서는 목에 걸리지 않고 잘 드셔서 정말 다행이다.
"잘 먹었다. 다 먹었냐?"
"엄니, 다 드셨어요?"
"그래 다 먹었다."
하시더니 심계옥엄니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식탁에 놓으신다. 6만원.
"엄니,내가 사는거야."
"내가 산다."
"제가 사드린다니까요."
"나 돈 있어. 내가 사."
"그래요.그럼.근데 돈이 너무 많은데."
"나머지는 너 가져. 근데 밥값이 얼만데 이만 원이 많냐?"
몇 번을 먹어도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인 울 심계옥엄니.
오만 원도 만 원도 다 똑같이 만 원인 울 심계옥엄니가 사주신 밥 먹었다.
"다음에 또 오자 여기. 괜찮네. 만 원 두 개만 내믄 아까 그거 또 먹을 수 있냐? "
"그럼요. 먹을 수 있지.엄니, 또 오자.."
시계꽃도 잘 알고 시절도 잘 아는 똑똑한 울 심계옥엄니. 그런데 머시든 처음 먹어본다는 울엄니. 만 원이 제일 큰 돈인줄 아는 울 심계옥엄니 모시고 또 오자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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