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사태와 소비자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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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 계란 사태와 소비자운동
  • 최문영
  • 승인 2017.08.22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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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최문영 / 인천YMCA 정책기획실장 · 인천소비자단체협의회 사무국장



 

살충제 계란이 화두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먹어왔던 서민의 대표적 먹을거리 계란을 이제는 출생지역번호를 신중히 따져가며 먹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살충제 계란 파동은 유럽에서 피프로닐에 오염된 계란과 난(卵)제품이 유통된 사건으로,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계란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돼 문제가 된 일이다. 피프로닐 성분은 바퀴벌레나 벼룩을 잡을 때 사용하는 맹독성 화학물질로, 닭의 이를 잡을 때 주로 사용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사태를 전혀 예견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이미 살충제가 넘쳐나는 양계 환경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살충제를 쓰지 않으면 닭을 키울 수 없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A4용지 한 장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좁디좁은 닭장에서 닭들은 스스로 진드기를 물리칠 수가 없다. 이런 환경은 더욱 독한 살충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을 낳았다. 최소한 닭들이 스스로 진드기와 싸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지 않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얼마 전 미국의 온라인 동영상서비스 넷플렉스를 통해 개봉됐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는 공장화된 식육 산업을 풍자했다. 거대한 도축 공장에서 돼지고기라는 상품이 되어가며 죽어가는 동물들의 모습을 그렸는데 살충제 계란 파동도 이와 똑같이 닮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를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는 생산성 위주의 축산 패러다임이 직면한 절벽이라고 해석한다. 무조건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는 계란 시장의 환경 속에서 축산 농가들이 쾌적한 사육 환경이나 동물 복지를 추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우리 축산계는 소, 돼지, 육계, 산란계를 막론하고 최대한 많이 생산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밀집사육을 해왔다. 방목 또는 방사를 하게 되면 그만큼 생산량이 줄고 이윤도 떨어진다. 반면 밀집사육을 하게 되면 동물들의 면역력은 떨어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뿐 아니라 병충해에도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겠지만 반대로 이윤은 높아졌기 때문이다.

 

축산계는 국민의 소비량과 소비자 가격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밀집사육에 의한 대량 생산 밖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호소한다. 정부도 무작정 규제만을 강화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우유는 수집을 한 후 살균 및 가공을 거쳐 시장에 나가고, 돼지나 쇠고기 역시 품질 판정을 받은 후 도축되어 나가지만 계란은 농가 단위에서 바로 출하할 수 있기 때문에 일일이 채집하여 검사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살충제 계란 사태는 결국 검역 절차의 의무화로 갈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게 되면 검역 절차에 따른 비용을 국가 재정으로 충당하거나 아니면 최종 소비자가격으로 전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소비자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검역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육환경의 개선이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동물복지 차원이나 밀집사육을 극복하는 의미에서 좋은 환경에서 닭을 기를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매번 이러한 사태가 있을 때마다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떠넘겨졌다. 사태가 언론을 통해서 알려지면서 경쟁이라도 하듯 뉴스를 쏟아내는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 거짓뉴스를 포함한 무분별한 정보들은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공포감을 주고 불필요한 불안감을 안겨줬다.

 

정부의 대응 또한 미숙했다. 식약처와 농식품부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점과 이를 총괄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의 부재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법률상 국무조정실이 총괄기구로 돼 있는 상황 속에서 식약처가 전면에 나서긴 했지만 농식품부와의 관계 때문에 정책 조정에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그동안 HACCP과 친환경 농가 인증 정책과 같이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제도들이 있음에도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소비자들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음식업계에 당분간 계란 사용은 자제해 달라는 식약처의 당부만으로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계란은 소비자의 식생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기초식품이다. 계란 단일품만 아니라 계란 파생 제품들은 우리 식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식품군이다. 이렇듯 중요한 식품에 대한 정부의 관리와 대처 미흡, 농가의 인식 부재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일이 재발돼서는 안 된다.

 

소비자는 소비자 스스로 좋은 환경에서 기른 좋은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권익을 찾기 위한 소비자운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쳐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인천소비자단체협의회는 더욱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소비자운동을 인천지역사회에서 펼쳐나가야 할 숙제를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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