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조각되어 흩어진 우리 아이들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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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조각되어 흩어진 우리 아이들의 자화상
  • 고보선
  • 승인 2017.09.08 0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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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논단] 고보선/ 인천석남중학교 교장

선생님께
지난 며칠 동안 참 마음 무겁고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단지 저만의 일이 아닐 거라 여겨져
선생님과 상황을 공유하고 함께 어려움을 해결해가는 계기로 삼으려 합니다.

며칠 전 일입니다.
수업 시간 중 수업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방해하는 학생이 있어 불렀습니다.
"수업하지 않고 쉬고 싶다"
"공부하기 싫은데 이 딴 걸 왜 배워야 하나"
"그냥 내버려 두라. 절 포기하라" 며
막무가내로 학생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합니다.

학교에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고 했더니.
저의 수업은 들어오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한 문제는 교육과정위원회의 논의와 교장선생님의 최종 결정 필요하다고 하자.
"자신도 인권이 있는데 선생님이나 학교에서 하자하면 무조건 따라해야 하느냐" 합니다.
이 아이는 일전에도 타 학생의 수업을 자주 방해하는 행동이 있어, 지도를 하였으나, 저에게 비속어를 사용하여 선도위원회에 회부된 적이 있습니다.

25년 교직에서 처음 학생을 선도위원회에 회부하면서
제 가슴팍에 묵직한 돌멩이 하나 들어앉은 거처럼 편치 않았습니다.
이 아이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깊게 스며든 곪은 상처가 있고,
그것 또한 어른들의 문제로 생긴 상처이고, 교사로서 품어야 하는 책임이 아닐까
처벌이 아닌 대화를 요청했지만, 그때뿐이거나 대화 자체를 거절했습니다.

2학기 들어서면서 같은 일이 반복되고, 교사의 지도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맘대로 하려고 하는 아이를 보며 교사로서 속수무책입니다.

교직을 천직으로 사랑했지만 지금은 남편 탓도 해보고
학교 나가면 뭘 하고 살까 별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갑니다.
좋은 수업의 아이디어를 찾아 노력한 제 모습이 안쓰럽고 가엾고 슬퍼집니다.

학교는 사회는 문제의 원인을 교사의 부족함에서 찾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아이의 말도 아프지만 “그런 걸 가지고” 라는 동료교사와 일반인들의 시선은 더 아픕니다.
우리는 공동체를 수없이 말하지만, 이럴 땐 교실에 고립되고 철저히 혼자가 됩니다.

교사 중에도 의지가 강한 분도 있고 부드러운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 앞에서 소신껏 수업할 수 있는 권리인 교권이 보호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인권의 문제를 가장 약하고 소수인 사람에게 찾아야 하듯이
교사의 교권 문제도 가장 여리고 약하고 부드러운 교사에게서 논해져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교권은 교사의 인권이며,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평등의 권리입니다.
예의를 지켜 배울 수 있는 학생으로 기르는 것이 인권 교육이며, 교권 보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학교는 교권이 심각하게 무너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무분별한 감정 표현과 공격적인 행동을 무차별하게 받아 안으며,
교사는 아이들 감정의 쓰레기통 같다는 가슴 아픈 고백을 합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수업을 거부하고 지시를 불응하며 비속어를 써도
별다른 제지 없이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을 봅니다.
머지않아 머리채를 잡히고 발길질을 당하는 참변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당연시하며 이대로 방치한다면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에 교권보호위원회의의 심의를 요청하고 강력한 조치를 요구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교사들이 소신을 갖고 즐겁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학교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선생님과 힘을 모아보고 싶습니다.


[선생님께 보낸 메시지]

마음이 아픕니다.
교사는 누구나 몇 번은 경험하고 느끼고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얘기를 하겠습니다.
1990년 제물포고등학교에 재직할 때의 일입니다.
화장실 곁을 지나다 담배를 피우며 나오는 학생과 정면으로 마주쳤습니다.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지도 차원의 야단을 쳤지요.
헌데 제가 용납할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학생
그리고 저에 손이 올라가는 순간 제 손목을 잡고 흔들던 아이
교직생활 4년차인 저 역시 교직에 대한 회의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 5월 사복으로 등교하는 학생에게 ‘교복만은 입고 등교하라.’ 는 저희 선생님의 지도에 듣기도 민망한 욕을 하고, 교장실에 와서도 막말과 막무가내 행동을 보였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보호관찰과 휴학, 복학 다시 소년원 그리고 복학했던 아이
이겨낼 수 있을까. 견뎌내야 하는데.
담임의 관심과 상담선생님과의 긴 대화. 저와 2번의 대면 상담 그러나 8일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나오지 않던 아이
알 수 없는 서운함과 미안함이 교차할 때 쯤 구치소에 있는 아이를 위해 학교장 의견서를 썼습니다.

제 마음속 깨진 유리조각들을 하나씩 조합해 봅니다.
누가 열여섯의 저 아이를 방황의 길로 가게 했을까.
자신일까. 가정일까. 학교일까. 사회일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의 원인이 아닐까요.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기존의 권위에 아이를 편입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체벌이 법적으로 금지되고, 아이들의 인권과 학습권이 존중되는 학교문화가 안착되었습니다.
그러나 수업을 극단적으로 방해하고, 교권과 교육권을 철저히 무시하는 학생도 있음이 현실입니다.
학생의 인권과 함께 교권도 함께 존중되는 교육문화 운동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단위학교별로 회복적 생활교육을 학교생활의 기본 제도로 정착시켜가고 있습니다. 교권 약화의 문제는 중학교 의무교육에 따른 법률적 문제의 개선이 절실히 요구되며, 더불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인 자존감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소중하며 타인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아니라, 나만 소중하면 된다는 생각이 너무 만연되어 있습니다.

최근 방송과 신문에 톱으로 나오는 또래 친구들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된 10대 부산 여중생의 폭행 사건. 찢겨진 머리, 퉁퉁 부은 얼굴, 담뱃불 자국 등 피해자 아이의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10대 여자아이들의 폭력이라고는 믿기 어려웠습니다.
연이어 드러난 강릉 10대 여고생들의 집단 폭행사건과 아산, 인천에서 발생한 사건들까지 어제 오늘만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것은 일반 폭력보다 좀 더 심각하고, 영상으로 노출되었을 뿐이지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일입니다.
인천초등학생 살해사건, 대전 여중생 자살, 인천 여고생 자살 등 일련의 사건사고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소년법 폐지와 강력 처벌을 요구하는 글이 13만 건이 넘었답니다.
교육부는 지난 8월 30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학교부적응학생(위기학생) 문제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미래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한 공교육 활성화 방안 및 학교교육 혁신방안’을 핵심정책으로 보고했다 네요. 하지만 자살과 위기학생 예방정책은 전혀 보고 내용에 없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시도 교육청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부산시교육청은 교육국장이 머리만 숙이고 침묵입니다.

학교부적응, 반항. 폭력. 자살. 탈선... 끊임없이 발생하는 청소년들의 부적응 행위와 사건사고의 근본 원인이 뭘까 생각해 봅니다.
전 이 모든 것의 근본 제공자요. 책임자는 기성세대 어른들이라 생각합니다.
방송에서 신문에서 어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반성은 없고, 아이들만의 책임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부모는 내 아이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공부 잘하고 명문대학 가면 최고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비리와 부정이 발생합니다.

학교는 더욱 답답합니다.
닫혀버린 비민주적 학교와 학생 개개인의 발견이 불가능한 교사들의 수업과 업무의 과중, 붕어빵 찍기 교육인 입시 위주 교육, 비인간화 교육, 아이들을 가두어놓은 교육,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는 교육, 아이들이 죽어가는 비민주적 학교 문화와 이런 교육문화만을 최고인양 지향하고 있는 교육 관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는 심각합니다.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대한민국 사회를 덮고 있습니다. 나에게 이익이 된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회가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입니다. 서울 강서구에 특수학교가 모자라 구로구에 있는 학교에 가려면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합니다. 제대로 자기표현도 어려운 아이들이, 학교를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새벽마다 일어나는 것을 너무 힘들어 합니다. 고3이 이런데 초등학교 장애아동들은 어떻겠습니까? 한번만 부모라고 생각해 주시고 마음을 열어주세요"

지난 5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앞. 특수학교 학부모의 눈물어린 호소는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 토론회'에서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고성 속에 묻히고 말았다는 기사입니다.

가정, 학교, 사회에서 사랑과 배려는 사라지고, 폭력(언)과 이기주의로 덮인 대한민국이란 감옥에 갇혀버린 아이들입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은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성세대 어른들의 생각과 가치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위기학생)학생, 부산. 강릉의 여학생 폭력사건, 청소년 자살은 지속되고 늘어날 것입니다.
범국민 개혁 운동을 통해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한다.’ 는 생각의 변화가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입니다. 물론 제도와 시스템의 신설과 개선도 함께 이루어 져야 하겠지요.

산산이 조각되어 가정에, 사회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흩어진 우리 아이들의 꿈과 끼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새롭게 펼쳐주길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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