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나 행복의 씨앗을 내어주며 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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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나 행복의 씨앗을 내어주며 살았는가
  • 최원영
  • 승인 2017.10.08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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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행복의 씨앗이란



풍경 #60. 행복의 씨앗이란?

 

법정스님은 “복은 누가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맞는 말씀 같아요. 살아가면서 보면, 주위에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지요. 그런데 사실은 사랑받고 존경받는 사람들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 있는 것은 아닐까요?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평소에 ‘내’가 얼마나 행복의 씨앗을 내어주며 살았는가가 그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무슨 대가를 바라고 하는 행위는 행복의 씨앗이 될 수 없을 겁니다. 그저 안타까워서 내민 손길 하나가 훗날 큰 선물로 되돌아오곤 합니다.

 

꽤 오래 전에 TV에서 본 역사물 중에서 본 홍순언이란 조선시대 역관의 이야기가 기억나는군요. 역관으로 중국에 갔을 때, 아리따운 여인과 하룻밤 인연을 갖게 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녀가 의아하게도 소복차림으로 방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 이유를 물었다고 해요. 여인은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 자원했다는 겁니다. 홍순언은 그 여인이 너무도 안쓰러워서 주머니에 있던 공금 300금을 주고서는 “어서 가서 부모님 장례를 치르시라.”며 방에서 내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귀국한 다음에 이 일이 발각되어 공금횡령으로 구속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조선은 ‘종계변무’(이성계의 족보에 대해서 명나라의 기록을 고치는 일)로 골치를 앓고 있어서,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설득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임금은 다시 사신을 보낸다면서 “이번에도 실패하면 역관의 목을 치리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누가 명나라에 갈지를 두고 역관들이 의논을 했지만 아무도 자원하지 않았습니다. 명나라 조정을 설득하지 못할 것이 뻔했고, 그래서 돌아오면 죽음을 당할 테니까 누가 가겠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역관들은 어차피 죽을 목숨인 홍순언을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홍순언이 명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국경 근처에서 명나라의 예부인 석시랑이 마중을 나와 있는 게 아닌가요? 게다가 석시랑은 홍순언을 극진히 대접하기까지 했습니다. 영문을 몰라 당황하던 홍순언에게 석시랑은 자신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자신이 바로 그때 소복을 입은 여인의 남편이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종계변무도 무사히 해결했고, 게다가 당시 명나라 국내사정이 무척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임진왜란에 군대까지 파견했다고 합니다.

 

한 여인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아무런 목적 없이 도와준 그것이 씨앗이 되어, 자신을 살리고 더욱이 위기의 조선을 구한 아름다운 열매가 되었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의 씨앗은 결국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들을 돕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늘 친절하고 늘 배려하는 생활이 법정스님이 말씀하신대로 ‘복은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 삶이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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