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빗자루’를 ‘비짜루’로 쓰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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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빗자루’를 ‘비짜루’로 쓰면 안 돼요?
  • 임원영
  • 승인 2017.10.12 0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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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한글은 너무 어려워 - 임원영 / 학교 밖 독서 논술교사





아이는 오늘도 한글과 전쟁 중이다.
눈을 부릅뜨고,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지도 모른 채 맞는 받침을 찾아서 열심이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나는데 아이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지 깊은 한숨도 쉰다. 그러다 지쳤는지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선생님, 비자루에 받침이 뭔지 모르겠어요. 그냥 비짜루라고 쓰면 안 돼요? 저 영어 학원에서 단어 시험 보면 맨날 100점인데요, 한글은 왜 이렇게 어려워요? 받침도 어렵고, 힘들어요. 한글 꼭 배워야 해요?”

울 것 같은 얼굴로 이야기하는데 난감하다. 한글을 꼭 배워야 하냐고 묻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할까? 당연히 그 나이에 알아야 하는 낱말인데 영어보다 어렵다니 말이다. 아이 입장에선 짜증이 날 만도 하겠지만 어쩜 항상 틀릴 수가 있을까? 물론 나도 가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실수할 때가 있다. 순간 뭐더라 하면서 머릿속이 하얘진다. 지금 아이도 그런 마음이겠지? 짜증으로 얼룩진 아이를 앞에 두고 고민한다.

나는 국어 선생님은 아니다. 아이들이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고, 교육을 통해 책과 친해질 수 있도록 지도하는 연상 정독 교사다. 아이들에게 큰소리로 책을 읽어보라고 시켜 보면 꼭 모르는 낱말이 나오고 아이들은 눈치를 보다가 낱말의 뜻을 이해 못해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낱말을 건너 띈다. 그러니 당연히 글의 흐름을 이해 못한다.

자음과 모음, 그 다음에 쌍자음, 받침, 그 모든 것을 순서대로 차근차근 배워야 했을 아이들이 낱말 전에 문장으로 국어를 배우니 당연히 어렵지 않을까?
이제 막 걸음을 떼는 아기에게 달리기를 하라는 것과 같다. 답답한 노릇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한 글자도 빠짐없이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모르는 낱말은 꼭 질문하게 하고 이해할 때까지 설명해 주고, 할 수만 있다면 예를 들어 이야기도 시켰다. 그러다보니 책의 절반을 대충 건너 띄던 아이가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지만 또박 또박 읽어내는 아이의 목소리가 이야기와 어울러져 참 보기 좋았다.

한글만 보면 화부터 내던 그 아이, 며칠 전에 학교 끝나고 헐레벌떡 뛰어와 공책 한 면을 펼치고 씩 웃는다.





아직은 삐뚤빼뚤 실수투성이 낱말들이지만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만점을 받아왔단다.

“누가 한글 어렵다고 왜 배우냐고 그랬는데 누구더라?”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대답한다.

“누가요? 그 친구 오면 저한테 오라고 하세요. 한글은 정말 쉽다고 이야기해줄게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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