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그게 모에요? 고양이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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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그게 모에요? 고양이 밥?"
  • 김인자
  • 승인 2017.10.17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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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할아버지가 휙 던진 것


"안녕하세요 ~"
"예, 잘 주무셨어요 어르신? 걸어오시느라 고생하셨지요?"
"네, 간신히 걸어왔네여.
천리길이 오늘은 만리길이여요..."
"어제 독감예방접종을 하셔서 더 피곤하실거예요."
"그르게요, 주사바늘은 들어가는거 같지도 않고 따끔하기만 하더만 아프지도 않고요. 그런데 주사맞고 나오는데 그 잘나게 걷는 걸음도 다리가 휘청거리더만여. 기운도 읍고요."

어제와 그제 사랑터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독감 예방접종을 하셨다. 하루 나오시고 하루 쉬시는 96세 할아버지 빼고는 모두 독감 예방접종을 마치셨다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는 어려운 계절인 겨울이 가차이 다가오고있다.

'늘봄 사랑터'
치매센터인 사랑터차에 쓰여진 검정글씨.
"선생님, 센터 이름이 '늘봄 사랑터' 말고 '늘 여름 사랑터'는 어떨까요?" 하고 말씀드리니
요양사 선생님 하시는 말씀
"늘 여름은 늘어져서 안뎌요."

"그럼 '늘 가을 사랑터'는요?"
"그건 쓸쓸해서 안되고요."
"그럼 늘..."
"'늘 겨울 사랑터' 할라구 하쥬?~~
아 하지마, 하지마유~
'늘 겨울 사랑터' 믄 울 어르신들 추워서 꼼짝도 못혀요.
'늘봄 사랑터'가 딱이유."
"그렇죠? 선생님? 울 할머니 할아버지들 겨울이 와도 사랑터차에 써있는 이 글귀처럼 늘 봄처럼 생동생동하셨으면 좋겠어요.

심계옥할머니 사랑터가는 아침.
갑자기 추워진 날씨.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덥다덥다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춥다 춥다하는 계절이 돌아 왔다. 심계옥엄니 치매센터인 사랑터차에 태워보내드리고 집으로 걸어 들어오는 길.
평상시처럼 아파트화단을 살피고 오늘은 어떤 꽃이 어제 보다 더 많이 시들었나를 살핀다. 예쁜 꽃들이 한창 피고지던 봄여름을 지나 지금은 왠만한 꽃들은 이미 다 지고 있는 형편. 그나마 관리소에서 국화 화분 큰 것 두 개를 현관 앞에 사다두어 지는 꽃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긴 하다.
어제봐도 오늘 봐도 참 예쁘다, 국화는.
제철 과일이 맛있는 것처럼 꽃도 제철에 피는 꽃이 예쁜거 같다.

요리조리 화분 속의 국화꽃을 살펴보며 "이뿌다 이뻐" 하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는데 "진짜 예뿌네여." 하며 지나가시는 아저씨 아니 할아부지 한 분.
첨보는 할아버지시다. 우리 아파트에 사시는 분이 아니신데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시더니 화단쪽을 향해 휙하고 던지신다. 그러고는 저짝으로 쌩하니 걸어가신다.
할아버지가 무엇을 던지시는거지?
고양이밥을 주시는건가?
아니면 새모이를 주시나?





"할아버지, 그게 모에요? 고양이 밥주시는거예요?"
하고 여쭤보니 할아버지 뒤돌아서 손 한번 쓰윽 들어보이시고 가던 길 그냥 가신다.
할아버지 서너 걸음에 어느새 저 멀리 지나가시고 할아버지가 화단쪽으로 던진 것이 궁금한 나는 재빨리 화단으로 '휙'의 정체를 살폈다. 방향감각 위치감각이 제로인 나는 할아버지가 던지신 휙을 한참 동안 찾았다. '등잔밑이 어둡다.'는 나를 두고 만든 고사성어가 틀림없지 싶다.
요리조리 한참을 찾아봐도 없던 할아버지의 휙의 정체는 초록풀에 떨어진 노란 작은 빵 한 개였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빵이 아니라 노란 꽃같다.

이 아파트에 살면서 첨본다. 노란빵 휙할아버지
헨델과 그레텔처럼 길표시를 하시는걸까
집을 찾아가시려고?
아침부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
할아버지 가방속에 빵이 한가득이던데...
빵할아버지 휙할아버지 어디로 가셨으려나? 그래도 할아버지는 건강해보이셔서 다행이시다. 독감예방 접종은 하셨으려나? 새모이든 길냥이 먹이든 챙겨주시려면 할아버지가 건강하셔야할터인데...
빵할아버지 지금쯤 어디서 노란빵을 휙하고 던지고 계시려나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감기 걸리시면 어쩌지 하는 생각으로 걱정인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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