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시장엔 없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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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시장엔 없는 게 없다
  • 양진채
  • 승인 2017.10.20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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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김경은 소설가의 중편 <개항장 사람들>
 

얼마 전 제물포구락부에서부터 자유공원, 웃터골, 인천극장 쪽을 지나 동인천역 양키시장과 중앙시장을 돌아보았다. 모두 역사의 중심이자 삶의 중심이었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원도심으로 그때만큼 영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인천극장은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였고, 토요일인데도 양키시장 안은 조용했다. 나도 이 중앙시장 안쪽에서 중앙여중 교복을 맞췄고, 결혼예물도 시장 끝 배다리가 시작되는 길목의 보석상에서 샀다.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 쇼윈도의 한복을 보았다. 화려한 색감은 조용한 골목에서 홀로 빛났다.


신포시장은 언제나 활기찼다. 내 기억엔 그랬다. 다른 시장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이 시장에는 있다는 생각이었다. 시장엘 들어서면 매번 살 게 없나 두리번거리곤 했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숨은 맛집도 있었다. 가끔 그 시장의 어느 곳이 아직도 존재하는지 안부가 궁금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신포시장을 갈 때는 언제나 마음 한쪽이 들떴다. 이 ‘들뜸’이 시장을 활기차게 보인다고 착각했다.


김경은 소설가의 <개항장 사람들>은 중편소설이다. 주 무대는 신포시장 주변, 시장통과 한길이 맞닿은 곳에 있는 아버지 식당이다.


 

줄기에 해당하는 통로가 나란히 두 개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먹거리와 채소 잡화류를 파는 점포가 이어진다. 점포 사이사이로는 가짓길이 뻗어 자기네끼리 만나기도 하면서 통로와 연결되었다. 미로 같은 사잇길은 시장을 깊고 복잡하게 만들었고 돌아보는 재미도 주었다. 그렇게 도로에서 시작된 시장통은 한길이 나오면서 끝난다. 시장통을 수직으로 마름하는 한길 양쪽으로는 주로 옷가게와 식당이 이어졌다. 아버지의 식당은 시장통과 한길이 맞닿은 곳에 있었다. 카운터에 앉아 있으면 한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정면으로 보였다. 식당이 살짝 각도를 틀고 있는지라 곁눈으로는 등뒤에서 벌어지는 시장통의 일까지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동인천역 방향으로 신포 문화의 거리가 나오고 반대편으로는 하인천과 괭이부리말, 월미도로 통했다.
 




 

신포시장을 웬만큼 다녀본 사람이라면 작가가 묘사해놓은 시장이 그림처럼 그려질 것이다. 이 시장이 인천의 개항기에 터진개시장으로 불렸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터진개’는 말 그대로 강이나 바다에 트여 있는 개천이다. 개항기 바다와 육지가 맞물렸던 자리에 개항 이후 외국인들이 몰려들면서 당시 중국인과 일본인을 비롯해 여러 외국인들이 찾는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 시장이 지금의 신포시장이다. 그러니 작가는 신포시장과 그 일대를 소설의 주 무대로 삶아 그들의 삶을 그려냈고, 소설 제목을 <개항장 사람들>이라고 붙였으리라.


주인공의 아버지는 이 시장에서 고집 세게 좋은 원료를 고집하며 ‘개성만두’를 운영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트렌드가 변하면서 가게는 날로 기울어져간다.


 

시청이 이전하면서 이 곳 사람들의 자존심도 함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차츰 시청에 부수한 시설들과 사무실, 관련 업체, 하다못해 문구 사무용품점까지 이전해 갔다. 인천의 중심에 있다는 자부심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변방으로 밀려나는 쓴맛을 보았던 것이다. 목을 찾아 자리를 넘기며 한차례 떠난 후 남은 사람들의 면면은 노령화된 토박이와 그를 잇는 장남들이었다.


 

한때 융성했던 신포시장은 시청이 이전하게 되면서 쇠락하게 된다. “신포국제시장‘이라는 이름을 달기도 하고, 빗물이 떨어지던 시장통 위를 아치형 아크릴 지붕으로 덮고, 새롭게 정비를 해도 어쩐 일인지 사람의 발길이 예전 같지 않다. 가장 크게는 이제 곳곳에 볼거리가 생겼고, 교통이 발달해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되었으며, 더 좋은 상품을 돈만 내면 살 수 있는 마트가 근처에 있다. 신포시장 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시장이 겪는 부침이다. 이곳에서 계속 장사를 할지말지 하는 고민은 비단 주인공의 아버지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할아버지가 하던 일을 어렵게 물려받았지만 ‘고단한 육신과 쇠락하는 지역을 겪으며 이런 애물단지 물릴 아들 없는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한숨짓는 어머니의 허탈감은 이 시대를 어렵게 헤쳐 나온 이들에게는 남 일 같지 않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거기에 내 삶이 얹힌다. 80년대를 고스란히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세대. 지극히 개인적인 삶조차도 대의명분에 눌려야 했던 삶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시위 도중 잡힌 내가 구치소에 묶여 있다가 나왔을 때였을 것이다.

두려워. 남편은 생뚱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얼굴을 보자 내가 했던 말을 취소하고 싶었다. 누구를 위해 나를 버릴 자신이 없어. 남편은 그 누구란 말을 민중으로 받아들였다. 당연했다. 나를 버린다는 말은 민중 속으로 들어간다는, 그 시절 우리들의 여러 표현 중 하나였으니까. 비장한 각오를 상시적으로 확인하던 우리에게 민중이란 말은 항상 숙연한 무엇을 만들어 주는 비약이었다. 하지만 나는 남편과 은밀한 행위를 나누는 자리에서까지 숙연하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남편이 가벼운 어조로 나도 그래, 했으면 남편과 동지 의식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리라. 그랬으면 나는 그 누구를 민중이 아니라 나 아닌 남으로 뉘앙스를 바꾸었을 것이다. 가두 시위에서 머리채를 잡혀야 하는, 하늘에서 춤추는 최루탄을 피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수치심 없이 넋두리하고 다음날은 훌훌 털어 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남편은 그러지 않았다. 일 년 먼저 학교에 들어간 남편은 그 세계에서 항상 나의 선배였다. 그는 학교에서 보는 선배들처럼 언제나 숙연하고 결연했다. 나는 남편이 나의 선배이길 바라지 않았다. 선배들에겐 신뢰감 넘치는 후배로 인정받더라도 남편에게만은 나의 밑바닥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못한 유치함과 이기심을 드러내서 잠시나마 긴장감을 털고 싶었다. 남편이 나도 그래, 했으면. 그런 틈을 보이지 않는 남편에게 나는 늘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그 속을 확인하려 들었다. 그에게도 있을 유치함을,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이기심을. 한편으로는 그런 남편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말이다.


 

인용이 길긴 하지만 이 단락에서 80년대를 살아온 청춘이 고스란히 보인다. 그때 우리의 모든 삶은 ‘비장한 각오’로 통했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을 때조차, 동지가 아니라 이성으로 보이는 마음조차 스스로 비판하고 죄스러워했으니까. 그러나 인간이란 지극히 사소한 존재가 아닌가. 감정을 누른 채 이성만 가지고 살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런 격동의 삶이 지나고, 지금 나는 아버지의 가게를 돕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할아버지 식당을 물려받기까지 아버지가 그랬고, 다시 내가 그랬고, 소설 마지막에 친정으로 들어온 언니가 그랬다. 식당은 그 자리에서 내내 있었고, 반항과 격동과 부침의 삶을 살다 돌아온 이를 말없이 받아주었다.


 

“지구가 둥근 건 다행일지도 몰라. 그러니 지구가 공전하고 자전하는 건 또 얼마나 다행이야.”

나는 바다에 시선을 두고 둥근 지구에 주문을 걸기라도 하듯 말했다. 멀리 섬 자락 끝으로 오롱조롱한 불빛들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불빛 몇 개가 바다를 떠다녔다. 유람선이었다. 시커먼 바다는 유연히 떠가는 형체 때문에 바다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있는 게 부러웠던 적이 딱 한 번 있었어. 맞혀 볼래?”

그가 고개를 저었다.

“초등학교 때였어. 체육시간에 선생님이 기준, 하면서 한 아이를 가리키는 거야. 그러면 아이들이 그 아이를 중심으로 흩어지지. 다시 기준, 하면 아이들이 그 아이를 향해 모이는 거야.”

그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있어야겠지. 기준이 없으면 돌아가고도 그걸 모를 테니까.”

나는 말을 마치며 그를 보고 웃었다. 그도 웃었다.


 

마지막에 이르러 작가는 ‘기준’을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 그 기준이 없으면 돌아가고도 모른다는 것. 이 부분에 이르러 읽는 독자인 나는 부끄럽다. 그 삶에 끼어들고 싶지 않으면서 그곳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길 바라는 이기심을 보기 때문이다.


자유공원과 중앙시장, 배다리, 율목도서관까지 그날 내가 둘러보았던 곳에는 모두 내 삶의 한 부분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그 자리를 걷게 되었을 때, 가슴 한쪽이 간질거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서 고마웠다.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세월을 이고, 버티고 있는 그 장소, 그 가게, 불빛들이. 그러나 그 삶속으로 들어가 보면 얼마나 고단할지 잘 알고 있다. ‘기준’이란 게, 그냥 서 있는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마려운 오줌을 참고, 내리쬐는 햇볕을 참고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그 기준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모른다. 그저 팔을 벌려 줄을 맞추고 내 자리를 잡으면 되니까.


그 ‘기준’으로 우직하게 서 있는 떡집을 하는 제운당이 있고, 민어회를 파는 횟집이 있고, 닭강정집이 있고, 메밀이나 냉면을 파는 곳이 있다. 또 생선을 말려 파는 곳도, 전을 부쳐 파는 곳도 있다. 또 있고, 또 있다.


소설의 마지막으로 가면서 그와 다시 시작하려는 나, 친정으로 들어온 언니와 함께 식당을 다시 일으켜 세우며 건강한 삶을 살아가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나를 미워했던 아버지도, 아버지를 미워했던 할아버지도 실은 사랑의 서툰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된다.


작가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삶의 다층을 덤덤한 듯, 그러나 따뜻한 시선으로, 촘촘하고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신포시장도, 그들의 삶도 현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때로는 날 것 그대로, 때로는 곰삭은 젓갈 냄새를 풍기면서, 소설은 다름 아닌 삶의 적나라한 현장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우뚝 서서 신포시장의 긴 길목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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