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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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오늘
  • 이건우
  • 승인 2017.11.06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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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건우/서울시립대 1학년


#1.

수능을 준비할 적에 올해가 몇 년도인지 종종 헷갈리곤 했다. 왜냐하면 2016년에 살면서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2017 수능영어 논리독해’, ‘2017 수능 대비 필수유형’ 같은 문제집을 몇 회독씩 하고, 2017학년도 수능 모의평가를 보면서 17학번이 되길 바라였다. 나의 2016년은 지금을 위한 것들이 아닌 2017년을 위한 것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나만 특별한 경험을 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생이라면 대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입학을 하였을 것이다. 10kg이 넘는 가방을 매고 매일 아침 도서관에 가고, 커피 가루를 생으로 먹고 잠을 달아내면서 ‘내년’을 위해 ‘올해’를 지냈던 경험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많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정말 열심히 했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2.

2012년, 인천의 어느 교사가 김정일이 한 말을 급훈을 걸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그런데 당시 뉴스를 접했던 나는 이 급훈이 왜 잘못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김정일이 한 말이라던 그 급훈은 바로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라.’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더 나은 내일을 향해 오늘 더 열심히 노력하라는 뜻 아닌가. 도덕 교과서에 나와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그런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이 말은 굉장히 무시무시하다. 왜냐하면 내일은 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일을 위한 오늘’을 열심히 살고 잤다가 일어나면 오는 것은 ‘내일’이 아니다. ‘내일’은 또 다시 내일로 밀리고 오는 것은 또 다른 ‘내일을 위한 오늘’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더 나은 내일, 행복한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실제로 김정일은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라’라는 말이 담긴 연설을 고난의 행군 시기에 하였다. 결국 이 말은 북한 주민들에게 ‘밥을 못 먹는 오늘을 불평하지 말고 언젠가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도록 고생해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3.


수험생의 ‘올해’ 역시 ‘내일을 위한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둘은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행복을 유예한다는 점에서 같다. 수험생이 ‘올해’를 바친 ‘내년’ 역시 ‘내일’과 같이 오지 않는다. 물론 바라던 대학생활은 온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해서 또 다시 다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행복을 유예한다.


좋은 대학에 한 번에 합격했다고 사회가 요구하는 사항을 모두 충족한 것은 아니다.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고 하더라도 대다수는 또 다시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대학 생활의 상당수를 희생할 것이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또 그것대로, 더 높은 직위에 오르면 또 그것대로 다른 목표를 세우고 오늘의 행복을 유예할 것이다. 이렇게 자꾸 목표를 이룬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고 행복을 미루다보면 정작 행복할 수 있을 때는 죽고 나서나 올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를 계속 희생하며 살 수만은 없다.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하려 행복을 유예하기보다는 지금을 즐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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