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하기 적합한 인천의 개항장과 사운드바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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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하기 적합한 인천의 개항장과 사운드바운드
  • 이권형
  • 승인 2017.11.20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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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권형 / 음악가
 

구간의 차이는 미약하나 구라의 차이는 창대하다

 

"구간의 차이는 미약하나 구라의 차이는 창대하다”, 중, 동구를 잇는 싸리재길의 한 골목에서 극장 ‘플레이캠퍼스’를 운영하는 장한섬 대표는 지역 대표 ‘왕구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언젠가 인천의 원도심은 걸어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며 중, 동구 일대를 도보로 마실 하는 ‘인천 발품’을 기획했다. 그의 ‘구라’에 혹해 마실에 참여할 생각이라면 각오해야 한다. 장 대표는 그야말로 ‘빡세게’ 걷기 때문이다. 그는 웬만한 거리면 걸어 다녔다. 스스로 얇고 넓다고 표현하는 그의 박식함에서 나오는 ‘구라’는 좋은 안줏거리였다. 그러므로 만나면 술 한잔 안 할 수 없었는데 귀가할 땐 늘 함께 개항장을 걸었다. 원도심 걷기는 동네를 몸에 새기는 과정이었고 차츰 지리에 익숙해졌다.

 

한동안 인천을 떠나 음악 활동을 했다. 그러다 올해 초 서울시 산하 이동노동자 쉼터에 간사로 취직했다. 교육 사업으로 1년에 2회 ‘인문학산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나들이와 인문학 교육을 접목하여 휴가 기회가 많지 않은 대리운전 기사들의 수요에 맞춘 기획이다. 입사와 동시에 인문학 산책을 기획하게 되면서 당연히 가장 먼저 떠오른 답사 장소는 인천 개항장 일대였다.


당일 프로그램 진행을 하면서 크게 힘든 점은 없었으나 길이 복잡해 버스 주차공간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걸어다닐 때는 몰랐는데 차가 다니기 어려운 지리였다. 대형차 주차가 용이한 한중문화관에 주차하기로 했는데 버스 기사에게 주소를 전달해도 네비게이션이 길을 제대로 못 잡아 같은 자리를 돌고 있었다. 결국 직접 버스가 있는 곳까지 달려가 길 설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버스가 위치상 가까운 곳에 있었음에도 대형차가 진입할 골목이 없어 한참을 돌아야 했다.

 

인천의 구도심과 송도 신도시의 지도를 비교해보면 그 지리적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사각형으로 구획된 신도시의 길과 달리 원도심의 길은 마치 사람의 심장같이 둥글고 그 내부는 미로 같다. 인문학 산책 당일 해설을 맡았던 도시자원연구소 장회숙 대표는 이를 원도심의 길들이 일제 강점기 때 닦아놓은 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구도심 지역에 유난히 오거리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인천의 개항장은 차로 이동하기보다 도보에 적합한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장한섬 대표는 플레이캠퍼스에서 가수 김정호의 음악을 소재로 음악극 무대를 올렸다. 지역 음악 페스티벌인 ‘사운드바운드’ 행사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공연이 진행되는 공간 일대를 걸어야한다. 초행길의 개항장을 차로 이동한다면 아마 곤혹을 치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캠퍼스 외에도 인천여관X루비살롱, 버텀라인, 흐르는 물, 극장앞, 다락 소극장, 인천아트플랫폼, 낙타사막, 빙고 등 중, 동구 일대 개항장 일대의 공간들에서도 같은 기간 동안 공연이 진행됐다. 이러한 기획이 가능한 것은 도보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한 개항장의 지역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운드바운드는 이러한 지역성에 적합한 문화 기획으로 회자될 수 있지 않을까.

 

-배다리 산업도로 이슈에 대한 단상

 

현재 장한섬 대표를 비롯한 동구 배다리 마을 주민들은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거리 농성을 진행 중이다. 배다리 마을을 관통하는 산업도로 건설 논의가 또 다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배다리 마을 주민들은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 전면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배다리를 관통하는 도로가 뚫린다면 그 구간은 6차선 도로가 된다. 바깥 큰 도로의 차들이 5차선 내부로 유입되고 교통은 혼잡해질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걸을수록 멋이 느껴지는 개항장의 모습일까. 아니면 배다리를 관통하여 구획된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모습일까. 도로를 건설해 미약한 구간의 차이를 새로 구획하기보다 도보에 적합한 개항장의 아름다움을 살려내는 창대한 ‘구라’ 몇 마디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인천 개항장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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