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은 오래오래 이야기하고 싶어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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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은 오래오래 이야기하고 싶어하신다
  • 김인자
  • 승인 2017.11.28 0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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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전화 끊지 않으시는 할머니

 
난 저자강연을 가면 청중들에게 전체 인사를 하기 전에 일대 일 눈인사를 먼저 드린다.
처음보는 낯선 사람들과의 일대 일 눈맞춤? 그렇게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낯선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눈인사를 한다.
환하게 웃으며 내가 눈인사를 하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는 분도 있고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는 분도 있고 내가 웃으면서 눈인사를 하면 고개를 돌리는 분도 있고 또 어떤 분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분도 있다. 그렇게 눈인사를 하다보면 나에게 호감인 사람, 아닌사람, 별 생각 없이 앉아있는 사람 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속에는 바라만 봐도 그저 좋고 반가운 분들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럴땐 난 눈인사로 만족하지 못하고 "안녕하세요~~할머니" 하고 큰소리로 좋아하는 티를 막 낸다. 좋은 데 아닌척 하기가 나는 어렵다. 그렇게 강연장에 오신 모든 분들과 일대 일 눈인사가 끝나고 나면 비로소 나는 전체 청중을 향해 "안녕하세요. 그림책 작가 김인자입니다"하고 큰 소리로 말을 하고 깊숙히 허리 숙여 인사를 한다.

지난 일요일 김해도서관에서 강연하는 날도 청중들과 일대 일 눈인사를 하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살그머니 들어오셨다.
어찌나 반갑던지.
83세 이순금 할머니.
도서관에 왔다가 강연안내판을 보고 들어오셨단다.
얼굴이 곱고 옷차림이 단정하신 할머니. 친정어머니가 이화여대를 나오셨다고 했다. 그런데도 배운티를 안내고 겸손하신 분이었다고 그런 어머니를 존경한다는 이순금 할머니.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봉사를 하시는 할머니. 강연중에 갑자기 나를 보고 빙그레 웃으시기에 "왜요? 할머니." 하고 입모양으로만 여쭈니 할머니 역시 입모양으로만 "내가 재미난 이야기 해줄까요?"하시는거다.
예 하는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옛이야기를 시작하신 할머니.
할머니가 무슨 이야기를 해주셨는지 전부를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못하는 일도 열심히 하다보면 능히 잘하게 된다. 그러니 열심히 노력해서 안될 것이 없다.'라는 할머니의 당부 말씀은 지금도 또렷히 기억이 난다.

학교에 저자강연을 가서 "할머니 좋아요?" 하고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아이들은 대부분 "예~~~우리 할머니, 좋아요."~하고 대답한다.
부모교육을 가서 엄마 아빠들에게 "할머니, 좋아요?" 하고 물어보면 역시나
"네~~할머니, 좋아요." 하고 대답한다.
"그럼 아이들의 할머니는요? 여러분들 아이들의 할머니는 좋아요?"하고 물어보면 금방 "예~ 좋아요." 하는 분들이 적다.

"할머니가 왜 좋아요?"하고 아이들에게 또 물어보면 " 할머니가 용돈을 많이 줘요." "우리 할머니는 내가 이세상에서 제일 좋대요.""할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이 맛있어요."
"그럼 할머니가 하는 이야기는 어때요? 좋아요?"
하고 물어보면 "할머니가 이야기하는건 싫어요. 재미없어요. 지루해요."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그래요."'목소리가 너무 커요." "할머니한테 전화하면 안끊고 계속 할머니말만 해요."
"할머니에게 전화하면 끊지 않고 계속 말하려고 해요." 이것은 아이들도 엄마들도 하는 공통된 말이다.

지난 가을 태안군립 중앙도서관 강연에서 만난 83세 이산옥 할머니. "할머니는 몇살에 시집오셨어요?" 하고 여쭈니 첨에는 부끄러워하시더니 묻지도 않은 말까지 술술 하셨다.
"시누이가 중신을 했어. 우리 할아부지는 나랑 동갑네야. 스무 살에 내가 시집을 왔는데 맘에가 하나투 안들대.나도 못생겼지만 인물이 읍어도 그르케 읍쓰까? 그래도 우리 할아부지가 손재주 하나는 타고 났어. 천안 전시회도 갔다 왔어. 붓글씨 써가지구. 복지관 가서 2번, 노인학교가서 2번. 우리 할아버지가 거가서 배워.
좋으냐고? 좋고 말고가 어딨어.그럭저럭 사는겨. 무심사하게 사는겨.
좋도 않고 글도 않고. 그렇게 살다 가는 것이제. "

그러자 산옥 할머니 옆에 계시던 멋쟁이 희예 할머니가 산옥 할머니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씀을 이어가셨다.
"내이름은 친정 할아버지가 지었어. 나를 얼마나 이뻐했는지. 무릎에서 내려 놓지를 않으셨지. 시집도 안보낸다고 그랬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작년에 가셨어. 내 이름을 풀어쓰면 복희희 예돈예야. 우리집 할아버지는 나보다 5살이 우야.평안 조씨야. 한수씨. 나도 첨에 우리 할아버지가 맘에 안들었어.내 나이 열 여섯에 시집이라고 왔지. 첨에는 무서워서 우리 할아버지 옆에도 못갔어. 뭐안다? 8년만에 애가 생겼어.월경을 안해서 애가 들어섰나보다 그랬지.우리 할아버지랑은 군인가서 6년을 떨어져 살았어.휴가 받아서 더러 더러 왔지만 참 애끼구 잘해줬어. 아까와서 쳐다보기도 어렵다고 했으니까. 이쁨 많이 받고 살았는데 작년에 갔어.우리 할아버지.."

이렇게 할머니들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신다. 자식들에게 손주들에게 매일 매일 전화를 걸고 한번 전화를 하면 끊지를 않으신다. 말하고 싶어서. 그리워서...
별일 없는데도 오래오래 이야기하고 싶어하신다. 자식들이 "엄마 나 지금 바뻐. 쫌 이따 내가 다시 할께." 하고 전화를 금방 끊으면 전화기 옆에 꼭 붙어 앉아 전화를 기다리신다. 자식이 말한 '쫌 이따 전화할께.' 그말을 믿고 한밤중이 될때까지도 전화기옆에서 떨어지지 않고 자식의 전화를 기다리신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신다. 말이 하고 싶어서... 자식이 보고 싶고 그리워서...

"선생님 책은 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나와요?"
아이들이 내게 묻는다.
"응, 선생님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는 말씀도 한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말씀하시는 거 듣는게 좋아."
"선생님은 할머니 할아버지 얘기가 재밌어요?"
"응, 재밌어."
"뭐가 재밌어요?"
"응, 귀기울여서 자세히 들어보면 재밌어."
"자세히 들어보면요?"
"응, 자세히 들어보면 ..."
"우리 친구들은 내가 말하는게 좋아요? 친구들이 말하는거 들어주는게 좋아요?"
"내가 말하는거요."
"그쵸.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말하고 싶은데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슬프시대요. 우리 친구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말씀하실때 잘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들어드려요?"
"할머니 할아버지께 전화도 자주 드리고 집에 오시면 이야기도 많이 해드리고.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옛날이야기해주세요.하고 부탁도 하고."
"그리고 또요."

그리고 또?
아무 것도 안해도 돼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길에서 만나게 되면
"안녕하세요.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할머니"
하고 반갑게 웃으며 인사만 해도 돼요.
할아버지 할머니랑 눈 맞추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만 해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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