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페란자호, 콩고서 입항을 거부 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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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란자호, 콩고서 입항을 거부 당하다
  • 김연식
  • 승인 2017.12.01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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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빈손으로 돌아선 이탄(泥炭,) 보호 운동

<인천in>은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에스페란자호 항해사 김연식과 함께하는 <에스페란자의 위대한 항해>를 지난해 3월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환경감시 선박 에스페란자호에서 부딪치며 겪는 현장의 이야기를 한국인 최초의 그린피스 항해사의 눈으로 보여드립니다.


펭귄을 생각한다. 뒤뚱뒤뚱 땅 위를 위태롭게 걷는 펭귄을 보노라면 세상 바보스런 동물이 따로 없다. 이 꼴을 보면 펭귄의 진면모를 짐작하기 힘들다. 최대 시속 48km로 헤엄치는 바다의 재주꾼을 말이다. 몸집 큰 바다사자나 가장 큰 새 알바트로스도 뭍에서는 엉거주춤 걷는다. 사람이 날지 못하듯, 새와 물고기는 땅에서 힘을 못 쓴다. 각자 살 곳을 정한 공평한 신의 섭리인지 모르겠다.

선박도 마찬가지다. 높은 파도를 가르고 지구를 수십 바퀴씩 누볐다한들 항구에서는 얌전하다. 선박은 등록국가의 영토로 간주된다. 타국에 있더라도 아무나 배에 오를 수 없다. 반대로 배는 해안에서 12마일에 안쪽 타국 영해에 멋대로 진입할 수 없다.

선박의 입항은 늘 민감하다. 국가와 국가의 만남이니만큼 절차가 까다롭다. 배가 부두에 정박하면 세관원과 검역관, 출입국관리원이 가장 먼저 방문할 때까지 아무 것도 못한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보이면 당국은 배를 언제든 항구 밖으로 쫓아낼 수 있다. 그러니 선박은 항구에서 흠이라도 잡힐까 늘 노심초사 한다.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 에스페란자 호라고 예외는 없다. 오히려 심사가 훨씬 엄격하다. 바다에서는 포경선을 쫓고 석유시추선 앞에서 용감하게 시위했더라도 항구에 올 때면 얌전해진다. 공항 출입국 심사대에 선 것처럼 조마조마할 수 밖에 없다. 선박이 있다는 건 그린피스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에스페란자 호는 물에서 펭귄처럼 날렵하지만 뭍에서는 도끼 잃은 나무꾼 신세다.


에스페란자 호가 콩고 강을 항해하고 있다 

에스페란자 호가 입항을 거부당한 건 지난 6일. 배는 콩고 민주공화국에서 이탄지대(泥炭, peat)보호 운동을 마치고 옆 나라 콩고 공화국에 접근했다. 그린피스 아프리카 지부는 이 나라에서 닷새간의 이탄보호 운동을 계획했다. 콩고 민주공화국에서처럼 시민들을 초청해 이탄에 대해 알리는 평화로운 행사였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배만 들어가면 되는 찰나, 콩고 당국이 배의 입항을 중지시켰다.

항구 입구에서 멈춘 배는 해저에 닻을 던지고 허가가 나기를 기다렸다. 기다림은 오전, 오후를 지나 해가 저물도록 이어졌다. 모든 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밤이 깊고 다시 이튿날 아침이 밝았지만 배는 정적에 휩싸였다. 선박 일정이 어긋난 것도 문제이지만, 이미 배에는 음식이 떨어졌고 일부 선원은 집으로 갈 비행기를 놓칠 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유독 초조한 시간이었다.
 

꼬박 하루를 기다리는 사이 뭍에 있는 그린피스 직원들은 바삐 움직였다. 변호사와 관계 기관 공무원들이 수차례 회의했지만 허가는 떨어지지 않았다. 총리와 해양부 장관을 비롯해 이 나라 대통령까지 에스페란자 호의 입항에 관여했다. 콩고 당국은 그린피스를 반기지 않았다. 드넓은 이탄지대를 둘러싼 원목 벌채 기업과 종이생산, 콩 재배, 석탄 채굴 등 이익집단의 압력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콩고의 문은 단단했고 우리는 펭귄처럼 순한 존재였다.

배는 마냥 기다렸고 갈증과 배고픔은 더해갔다. 배에 있는 활동가와 선원 열다섯이 집으로 가지 못하고 발이 묶였다. 콩고 당국은 특유의 늑장 행정으로 우리의 힘을 뺐다. 이미 행사는 어그러진 터. 결국 우리는 빈손으로 허무하게 배를 돌렸다. 주린 배와 타는 목을 움켜잡고 사흘 항해거리에 있는 카메룬으로 향했다.

그린피스의 활동은 늘 옳지는 않고 자주 실패한다. 다만 우리는 안다. 누군가는 탁자 위에 놓인 유리컵에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고 나서야 컵의 존재를 기억할 테니 말이다. 지금 우리는 아프리카 콩고 일대 이탄지대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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