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다섯 울엄니보다 한참 밑이시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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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다섯 울엄니보다 한참 밑이시구만"
  • 김인자
  • 승인 2017.12.05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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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따뜻한 부지런대장 할머니

심계옥엄니 사랑터 가시는 날 아침.
늘 그렇듯 심계옥엄니 지팡이 짚고 앞에서 휘청휘청 천천히 걸어가시고 서너발짝 떨어져
온 신경을 심계옥엄니 두 다리에 두고 바짝 긴장하며 뒤따라 내가 걷는다.
 
"어머나 세상에~ 얼마나 좋아~엄니가 신간이 좋아. 아유 감사해라. 신간이 좋아서 내가 다 좋아."
어디서 나타나셨지? 기쁜 목소리로 심계옥엄니 두 손을 맞잡고 위아래로 흔들며 환하게 웃는 할머니. 우리 아파트에서 청소도 하시고 관리실에서 밥도 해주시는 부지런대장 할머니시다.
부지런대장 할머니는 우리 심계옥엄니만 보면 어디선가 짠하고 나타나셔서 아주 반갑게 엄니를 대하신다.
심계옥엄니도 부지런대장할머니를 만나면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다.

심계옥엄니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고 꼼짝도 못하고 누워계실 때부터 아주 힘겹고 어렵게 재활치료하고 누워만 계시다 밖에서 첫발을 떼던 날도 어디선가 나타나셔서 "어머나 세상에~이렇게 기쁜일이~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하셨던 어머나 세상에 할머니. 심계옥엄니가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나오시면 또 어디선가 슝~하고 나타나셔서 "이리 주세요.제가 갖다버릴께요." 하며 아니라고 괜찮다고 심계옥엄니 말씀하셔도 기어코 당신이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빼앗아 버려주셨던 따뜻한 할머니.계단청소를 하실때도 허투루 하시지 않고 신주가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로 걸레질 하나에도 온정성을 다하시는 할머니.할머니 이마에서는 늘 땀이 줄줄 흘렀었다. 송글송글 맺힌게 아니라 줄줄줄. 그 연세에 작은 체구로 청소하시는게 힘드실텐데도 할머니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셨다.
 
가끔씩 허리를 피시고는 "아구구 션하다. 기분 조오타~."하시며 두손을 가슴에 모으고 누구에겐지도 모를 인사를 하셨다.깊숙히 고개를 숙이고 "감~사합니다. 고~오맙습니다."하고.
어쩌다 길에서 만나 인사를 드리면 "어머나 세상에~ 엄니는? 신간이 어떠신가 엄니는? 저번에 뵈니 신간은 좋아보이시던데. 선생님은 요즘 어떠신가? 어째 낯색이 엄니보다 더 안좋네." 하시며 두손을 들어 얼굴을 살살 쓰다듬어 주셨다.
계단 청소할 때도 활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열심히 걸레질을 하셔서 "할머니, 쉬어가면서 하셔요. 그렇게 온 힘을 다해서 걸레질 하시면 허리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세요." 하고 말씀드리면 "이렇게 힘을 줘서 닦아야 닦은거 같거든. 이렇게 닦지 않으면 잘 닦여지지도 않아요."
하셨던 할머니.
 
어느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그날은 할머니가 걸레든 손 그대로 계단턱에 맥없이 앉아계셨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어머나 세상에 차칸 따님이시네." 하며 웃으시던 할머니. 이내 웃음을 거두시고 다시 기운없는 표정을 지 으신다.
"할머니 왜요?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그게... 내가 청소하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다른 사람을 쓰겠다고 허네."
"아니 누가요?"
"회사서... 허긴 틀린 말도 아니지. 내가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하지."
"할머니는 건성건성하지 않으시잖아여. 정성을 다해 힘껏 해주시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는게 당연하죠."
"내가 늙어서 그래. 젊은 사람이 허믄 빨리빨리 허지."
그날 이후로 부지런대장 할머니를 계단에서 볼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없으니 반짝반짝 윤이 나던 신주도 차츰차츰 그 빛을 잃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아파트 단지안에서 부지런대장 할머니를 다시 만났다. 새로 이사오는 집에 냉장고 세탁기등 가전제품을 싣고온 차 앞에서 였다.가전제품을 싣고 온 차 앞에서 할머니는 큰 박스를 차곡차곡 접어서 정리하고 계셨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사랑터에서 오시던 심계옥엄니를 먼저 보시고는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하셨다.
늘 그랬듯이 심계옥엄니 두손을 꼭 잡고 "어머나 세상에 ~신간이 좋아.아유 감~사합니다. 고오~맙습니다." 하시며 두손을 가슴에 모아 앞을 향해 굽신굽신 인사를 하셨다.
할머니 여기 어떻게? 하는 내 표정을 부지런대장할머니가 읽으셨나보다.
"아 어떻게 아직까지 여기 있냐고? 나 안짤렸어. 청소는 안해. 대신에 아파트관리소에서 밥을 해요."
"와 정말요? 참 잘 되셨어요. 할무니 그동안 못 뵈어서 많이 서운했는데."
"나두 서운할 뻔 했는데.에고 그나저나 이렇게 기쁠 수가 있나.어무니가 신간이 좋아."하시며 심계옥엄니 두손을 꼭 잡고 위아래로 흔드신다.
 
"올해 어무니 연세가 으트케 되시나?"
"예, 올해 여든 여덟되셨어요."
"우리엄니가 아흔 다섯인데 울엄니보다 한참 밑이시구만."
"와 할머니 어무님이 그렇게 연세가 많으세요?"
"응, 아흔 다섯이야. 아직도 짱짱햐.
우리 엄니밑으로 아들 둘에 딸이 다섯인데 그중에 내가 맨 우야."
"와~~할무니 자손들이 많으셔서 좋으시겠어여."
 
"똑똑해. 내가 신경 하나도 안쓴다."
"아 할머니 엄니께서 똑똑하시구나."
"응, 아주 똑똑해.지금도 혼자서 죽끓여 먹고 빤스도 빨아입고 당신이 다해.
내가 돌보지 않는다구 하믄 말 다한거지."
"와 정말 대단하시다. 그럼 할머니는 올해 연세 가 어떻게 되세요?"
"나? 일흔 너희. 일흔 넷이 아흔 다섯 엄니밥을 아직까지도 읃어 먹는다."하며 부지런대장 할머니 심계옥엄니 손을 살살 쓰다듬으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근강하셔요~ 어르신. 아흔 다섯이 되서도 죽이라도 혼자 끓여 잡수실라믄요. 모쪼록 근~강하셔야 됩니다."
그러자 심계옥엄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신다."에구, 그때까지 살믄 흉이지요. 지금도 이게 사는건지 마는건지."
"어이구 어르신 그런 말씀 마셔요.아프나 고우나 늙은 엄니가 내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을마나 위안이 되는데요.
안그래요 슨상님? 내말이 맞지요?"
"그럼요,할머니 말씀처럼 엄니는 옆에만 계셔도 힘이 나지요."
"거봐요. 어르신 힘난다니까요. 이르케 고운 따님 천애고아 맹글고 싶으세요? 그러니 어서 죽어야된다 허는 그런 맘에도 읍는 말씀은 허지도 마셔요.
제가 딱 보니까 우리 어르신 백수 허시고도 남을 거 같네요."
하시니 심계옥엄니 펄쩍 뛰시며 가던길 가신다. 그러자 부지런대장할머니 쫒아가 심계옥엄니 팔짱을 꼭 끼며 "차칸 선생님 우리 엄니하구 사진 한 장 곱게 찍어줘요. 기념으로다가 내가 간직하고 있게." 하신다.
김치~ 하며 정답게 사진을 찍으신 심계옥엄니와 부지런대장 할머니.
부디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어머나 세상에~ 엄니가 신간이 참 좋아."하시는 말 오래오래 듣고 싶으니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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