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동 화재 참사는 청소년혐오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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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동 화재 참사는 청소년혐오 사건이다
  • 이건우
  • 승인 2018.01.02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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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건우/서울시립대 1학년



 

지난 11월 29일, 인현동 화재 참사 추모 포럼이 열렸다. 청소년에게 참사 이후 인천은 어떠했는지에 관해 발제를 맡게 되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끄럽게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 잘 몰랐다. 그런데 낯설었던 사건을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또 다른 낯선 단어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청소년혐오. 우리에게 이 단어는 굉장히 낯설다. 그러나 청소년,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가해지는 배제, 폭력, 차별, 낙인 등은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 있어왔다. 이처럼 청소년에게 불합리한 문화를 한꺼번에 명명할 수 있는 단어의 필요성을 느껴 만들어진 단어가 청소년혐오(Ephebiphobia)다. 청소년혐오(Ephebiphobia)는 꽤나 오래전부터 사용된 학술용어이다. 이 용어는 1994년 미국을 중심으로 조직된 국제 교육가 조직인 PDK(Phi Delta Kappa) 저널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청소년혐오는 청소년에 관한 부정확하고 과장된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청소년을 향하는 타자화, 분노, 공포를 뜻한다. ‘포비아’라는 접미사를 보고 알 수 있듯이 청소년혐오는 ‘동성애자혐오(Homophobia)’와 같은 용어처럼 미디어, 정치, 학교 현장에서 확대 재생산되는 전사회적 혐오, 분노, 공포를 이야기한다. 따라서 ‘청소년혐오’는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배제, 폭력, 차별, 낙인 등을 통칭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 위원을 맡았던 박인혜씨는 2000년에 ‘인현동 화재 참사는 청소년 인권 사건이다.’라고 정의한 바 있다. 청소년혐오라는 개념을 갖고 이 말을 다시 비틀어보자면 ‘인현동 화재 참사는 청소년혐오 사건이다.’ ‘청소년혐오’라는 말이 듣기 거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참사를 청소년혐오 사건이라고 강하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이 사고를 참사로 만든 핵심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인현동 화재 참사가 있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참사의 사회적 원인으로 청소년의 여가·문화 공간 부재를 꼽았다. 청소년이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이 해야 할 일은 공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청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청소년의 다양한 문화, 놀이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기보다는 이 욕구를 어떻게 억누를 것인가가 초점이었다. 만약 사회가 청소년을 통제 대상으로 보지 않고 성인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면 애초에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때 교육·행정 당국은 참사 이후에도 인천지역 청소년의 목소리를 배제하려 하였다. 사고 이후 인천 시내 15개 고교 대표들이 성명서 발표와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준비하였지만, 교육청의 만류로 성명서 발표와 토론회는 무산되었다. 참사의 근본적 원인이 청소년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교육·문화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을 통제 대상으로만 보는 청소년혐오적 관점은 바뀌지 않았다.

 

언론은 참사를 ‘인현동 호프집 화재 사고’로 불렀다. 언론은 이 이름을 쓰면서 참사의 본질적인 성격을 감추었고 잘못을 ‘몰래 술을 마신 비행 청소년’에게 돌렸다. 그러나 참사의 원인은 술을 마셨던 희생자들이 아니다. 불은 희생자들이 술을 마셨기 때문에 난 것이 아니다. 원인은 청소년 여가·문화 공간의 부족, 화재예방장치가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던 건물, 희생자들의 탈출을 막은 사장 등에 있었다. 그렇다면 희생자들이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도 발생 가능한 참사였던 것이다.

 

물론 ‘청소년 음주가 옳은가.’는 복잡하고 신중히 접근해야 하는 문제다. 그러나 참사의 본질은 희생자들이 술을 마셨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사의 책임을 희생당한 청소년에게 돌리는 것은 ‘미성숙한 청소년’, ‘판단력이 떨어지는 청소년’이라는 근거 없는 고정관념에 기초한 청소년혐오다.

 

인현동 화재 참사에서 보인 청소년혐오는 지금도 여전하다. 여전히 사회는 청소년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들으려 하지 않는다. 2016년, 인천광역시의회에서 청소년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청소년노동인권조례가 발의되었으나 재계단체와 보수교희의 반발로 무기한 보류되었다. 그러나 2017년에 인천에서 한 고등학생이 현장실습 중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인현동 화재 참사를 계기로 학생문화회관을 비롯해서 청소년 여가·문화공간이 많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공간은 제대로 이용되고 있지 못 하다. 왜냐하면 이 역시 청소년과의 제대로 된 소통을 거치지 못 했기 때문이다. 2014년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인천지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위와 같은 공간이 있어도 인천 중·고등학생의 50%는 학교에서 문화·여가활동에 관한 안내와 지원을 받지 못 하였다고 한다. 또한 방과후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을 강제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경우가 55%, 수면시간이 부족하다고 응답한 경우도 65%였다.

 

청소년을 통제 대상으로만 보는 관점 역시 크게 바뀌지 않았다. 지금도 청소년이 주체가 되고자 할 때, 목소리 내고자 할 때 학교와 교육당국이 그 목소리가 존중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2016년 ‘고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인천지역 고등학생 시국선언’을 발표하자 인천 교육청은 누가 시국선언에 참여했는지 파악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비록 추후 사과와 시정조치가 있었으나 이러한 일 자체가 여전히 청소년혐오적 관점을 갖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이제 우리는 인현동 화재 참사 20주기를 앞두고 있다. 20주기가 되기 전에 우리가 바뀔 수 있는 기회는 많아 보인다. 먼저 2018년에 교육감 선거가 있다. 그리고 지금도 ?청소년 참정권 보장 ?인권친화적 학교 환경 조성 ?학교운영위원회 학생 참여 보장 등을 골자로 한 촛불청소년인권법 제정 활동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제도가 바뀐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청소년혐오적 문화가 바로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20주기에는 희생자들 앞에서 이제는 바뀌어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 2018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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