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헌테 라면 한 명도 빼놓지 말고 죄다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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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헌테 라면 한 명도 빼놓지 말고 죄다 써야지"
  • 김인자
  • 승인 2018.01.02 0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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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할머니가 만드신 사랑터 카드

"이거 봐라."
"우와~이게 뭐야 엄니?"
"카드다. 나 가는 핵교서 선생님들이 편지쓰라고 해서 썼다."
"우와, 울엄니가 편지를 썼다고? 엄니 글씨 쓰는거 무지 싫어하는데 어찌 쓰셨대?"
"잘 못쓰니까 싫지. 그래두 으트허냐? 내가 쓰기 싫어도 선생님들이 쓰라고 허는데 써야지."
"선생님들이?"
"응, 선생님들이 이쁜 종이 한 장씩 내눠주더니 여기다가 글자를 쓰라고 하더만. 그리고 또 꺼문색 뻣뻣한 종이도 한 장씩 내눠주고 카드를 맹글라고 하고. 이거봐라 내가 맨든 카드다. 괜찮냐?
"와~괜찮기만 해? 난 비싼 돈 주고 사 온 카드인줄 알았네.이걸 울 엄니가 만들었다고? 멋져요 엄니.진짜 잘 만드셨네."
"멋지냐? 그것 참 다행이다."

"근데 엄니 이 빨간 열매는 어떻게 그렸어? 이뿌네."
"그거? 그린 거 아니다. 찍은거야. 빨강 물감 발라서."
"찍어? 뭐로 찍었어?"
"거 왜 있잖냐? 귀구멍 가려울때 후비는거. "
"귀구멍 가려울 때 후비는거?"
"응, 귀가려울 때 후비는거. 요맨하게 나무 깎아논 거에 끄트머리다 솜 요만큼씩 붙여놓은거 있잖냐."
"아, 면봉?"
"아, 그래 그거. 빨강 물감 풀어가지고 솜끄트머리에 발라서 찍은거다 그거.
나무 열매라나 모라나 개느다란 성냥개비 같은 거 가지고 갖은 짓거리를 다했다."
"하하 갖은 짓거리?"
"그래. 선생님들이 갖은 짓거리를 다 시키드만."
"잘 하셨네.어디보까? 우리 엄니가 하신 갖은 짓거리~~"

울 심계옥엄니가 치매센터인 사랑터에서 만드신 카드.
카드 겉면을 보니 요기조기
면봉을 찍어 만든 빨강 열매가 꽤나 탐스럽다. 물감을 번지게해서 만든 까만 나무도 제법 운치가 있고.
반으로 접은 카드를 펼쳤다. 카드안에는 심계옥엄니가 연필로 꾹꾹 눌러쓴 귀여운 글자들이 줄맞춰 앉아 있었다.
맞춤법은 틀렸지만 우리 심계옥엄니가 정성을 다해 한 자 한 자 마음으로 쓰신 글자들.
"엄니, 이 카드 누구한테 쓰셨어?
"누구한테 썼냐고? 애끼는 자식헌테 쓰라고 하던데. 선생님이."
"애끼는 자식?"

우리탈
근깡
햄복 바란다

사위
갇이 살아줘서 고맙고
사랑한다

이쁜 손녀딸.
사랑한다

"애끼는 자식이 엄니는 뉘야?"
"나야 자식이래봤자 우리 김인자 하나니까. 김인자 한테 썼지."
"이건 김인자헌테만 쓴게 아닌데."
"왜 아냐? 김인자헌테 쓴거 맞는데."
"아닌데.엄니는 김인자헌테도 쓰고 김기성한테도 쓰고 민정이 민지헌테도 썼는데."
"그게 그거지.김인자헌테만 쓰믄 되가네? 사우한테도 쓰고 애덜한테도 쓰고 해야지. 그래야 공평한거지."
"공평하다고?"
"그럼 쓸라믄 다 써야지.왜 있잖냐? 같이 살던 할아부지가 돌아가구 딸이랑 손주가 와서 같이 살고 있는 할무니."
"아 정현자 할무니?"
"이름은 모리고 화장실 갈때도 선생님들이 따라가서 돌봐줘야하는... 그 할무니는 자식헌테 쓰라고 했더니 아들헌테 쓰드만."
"아들한테? 왜? 아들한테 쓰믄 안돼?"
"안될거야 읍지. 그래도 딸이 와서 돌봐주고 있으믄 딸한테도 써야지. 지 집살림도 있을텐데 전폐하구 와서 늙으이 돌봐주는데."
"아... 딸한테도 썼겠지. 울엄니처럼 아들한테도 쓰고 딸한테도 쓰고."
"아냐.안 썼어. 선생님들이 돌봐주는 딸이 서운해하믄 으트허냐고 딸한테도 쓰라고 하니까 구지비 싫대.아들헌테만 쓸거래."
"그러실 수 있지."
"그럴 수 있기는? 자식들헌테 쓰라구 했으믄 한 명도 빼놓지 말고 죄다 써야지. 누구헌테는 쓰고 누구한테는 안쓰고 그럼 되겄냐? 빼논 자식이 서운해허지. 내가 손심이 읍어서 한 장 밖에 못 맨들었지 네 장 만들어 주고 싶었다. 제각각 한 장씩."
"와~네 장씩이나?"
" 그래 네 장. 우리 기성이랑 민정이랑 민지 제각각 한 장씩. 그래야 공평하지. 한 명이라도 빼먹으믄 을마나 서운허겄냐?"

울 심계옥 엄니가 만드신 카드. 빼 먹은 자식없이 어느 자식 하나도 서운치 말라고 생각해서 만드신 지혜로운 카드.
네 장 같은 한 장의 카드.

새해에도 건강하고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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