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가 지구 환경 지킴이다
상태바
모든 이가 지구 환경 지킴이다
  • 김연식
  • 승인 2018.01.10 07: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1 - 마지막) 연재를 맺으며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에스페란자호 항해사 김연식씨와 함께 하는 <에스페란자의 위대한 항해>는 지난 2016년 3월부터 연재해왔습니다. 에스페란자호에서 부딪치며 겪는 현장의 이야기를 한국인 최초 그린피스 항해사의 눈으로 보여드렸습니다. 22개월에 걸친 연재를 이번 31편으로 마칩니다. 그동안 특별한 사랑을 아끼지 않으신 독자 여러분에 감사드립니다.


적이 없는 것은 친구도 없는 것이며, 한계가 없는 것은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얼핏 갸우뚱하지만 곱씹으면 옳다. 적 없이 모든 이와 잘 지내는 사람은 호불호가 없는, 달리 말하면 고유의 색이 없는 셈이다. 그러니 허허실실 두루두루 잘 지내지만, 그 안에 진정한 친구도 없다. 제 색이 분명해야 적과 친구가 뚜렷해진다. 한계가 없는 것도 마찬가지. 뭐든 제 특성이 있기 마련이다. 한계가 없는 총은 한 번도 탄환을 쏴보지 않은 시제품뿐이다. 한계와 특장점, 심지어 단점이 명확해야 쓸모가 드러난다.
 
지난 2년간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에서 일했다. 배를 타고 북극과 아마존 강, 남미 파타고니아, 아르헨티나 우림, 서아프리카 불법조업현장 등을 다녔다. 자주 고단하고, 종종 보람찬 시간이었다. 북극의 떠다니는 유빙에서 지구온난화의 지표를 날 것으로 보았고, 아마존 연안에서 최초로 심해 산호지대를 탐사했다. 남미의 빙하지대와 우림지대를 항해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경탄했다. 서아프리카의 고기잡이 어선을 통해 고단하고 치열한 삶의 현장을 경험했다.


김연식 항해사가 아프리카 콩고 공화국에서 에스페란자호에 방문한 아이들에게 그린피스와 선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연식 항해사가 아프리카 콩고 공화국에서 에스페란자호에 방문한 아이들에게 그린피스와 선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반대로 한계도 느꼈다. 처음 그린피스와 일하게 된 당시에는 마치 지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커다란 영웅의 여정에 동참하는 줄만 알았다. 만화 영화 속 절대 패배하지 않는 주인공처럼 말이다. 들어와서 보니 정반대다. 그린피스는 온 세상을 돌아다닐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작은 환경문제 하나 제가 풀지 못한다. 그린피스의 적도 곳곳에 있다. 바보 같은 캠페인으로 스스로 국제적 망신을 산 경험도 있다.

먼저, 모든 변화는 그린피스가 아닌 시민들이 일궜다. 핵실험을 막고 고래를 보호하는 것도 시민들의 힘이었다. 그린피스는 이슈 현장을 목격하고 기록해 알리는 게 전부다.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언론을 동원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게 고작이다. 대중의 의견을 모아 정부와 정치인에게 전달하는 매개일 뿐이다. 모든 변화는 세계 시민 개개인이 이룬 것이다.
그런 그린피스를 향한 비난도 많다. 가장 흔한 건 ‘그린피스는 겁쟁이’라는 과격단체의 손가락질이다. 용감하게 뛰어나가 부딪히지 않고 카메라만 들고 다니는 방관자라는 말이다. 일리가 있지만, 사실 이들이 손가락질하는 그린피스가 바로 그린피스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너무 앞서지 말고 반 발짝 앞에서 시민들과 함께 가는 것 말이다.
또 그린피스는 선박을 보유해 해양 문제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강점이 있고, 국가와 기업의 후원을 거부하고 시민 개인의 후원금으로 유지하다보니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다. 권력에 자유로운 반면 여론에 민감하다. 이해관계가 엮인 복잡한 국제 정치 문제에 접근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 모든 장단점은 양날의 검이다.
 
영웅의 시대다. 슈퍼맨과 베트맨, 아이언맨, 엑스맨, 울트라맨, 바이오맨 등 눈길 끄는 영웅을 우리는 선망한다. 나 역시 그린피스 활동가는 그런 존재인 줄 알았다. 하지만 환경문제는 액션영화처럼 능력 있고 특별한 소수가 해결사로 나서는 극적인 시나리오가 아니다. 오히려 오늘 하루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조금이나마 쓰레기를 줄이고 분리수거하고 물을 절약하는 작은 영웅들이 필요하다. 그린피스가 바라고 지향하는 점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감춰진 곳으로 인도하고 공감을 부르는 게 우리의 사명이다. 이를 통해 이슈를 이끌어내고 환경을 지킬 방안을 함께 모색한다. 시민이 곧 그린피스고, 그린피스가 곧 시민이다. 함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나는 가끔 내가 지금 무어든 하나라도 잘 하고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지구온난화를 막자며 북극에 다녀와 놓고, 우리나라에 귀국해서 집에 가는 길에 보이는 동네 문제에는 티끌만큼 모르니 말이다. 나는 그저 멀거나 신기하고 새로운 것에 기웃거리며 폼 재기만 좋아하는 치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국제 문제와 지역 문제, 거시와 미시에는 격차가 없다. 무어가 크고 무어가 작은 일이라 말할 수 없다. 각자 고유의 것이니 근본적으로 비교 불가한 영역이다.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라는 옛 올림픽 구호가 떠오른다.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인천의 문제가 곧 세계의 문제이며, 세계의 문제가 곧 인천의 문제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 우리는 당장 무엇하나 바꿀 수 없는 소시민이지만, 다같이 굳은 의지로 꾸준히 바라고 움직인다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우리 역사는 이미 그런 일을 수도 없이 겪지 않았는가. 지구 환경을 걱정한다면 우리는 한 배에 있는 셈이다. 시민의 지지와 후원이 없으면 환경감시선 에스페란자 호는 닻을 내릴 수밖에 없다.

한국인 최초로 그린피스 선박의 활동가가 되어 <인천i>을 통해 세계 곳곳의 이야기를 전한 건 큰 보람이었다. 앞으로도 그린피스 선박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알려지지 않은 소식을 전할 기회가 있을 거라 믿는다. 또한 우리 함께 집에서건 동네에서건 그린피스에서건 각자 작은 실천으로 지구를 보호하는 ‘지구 환경 지킴이’가 되기를 바라본다.

-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종민 2018-03-17 09:52:43
노고를 치하드립니다.
뼈대 손질하고 살 붙이고...책으로 내십시오.
그 동안 깊이 위로받았읍니다. 고맙읍니다.....

이선혜 2018-01-11 11:04:41
지구별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잘 보았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