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들 밥주고 오냐?"
상태바
"괭이들 밥주고 오냐?"
  • 김인자
  • 승인 2018.01.09 09: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6) 길냥이 엄마 여행간 날


길냥이 엄마가 남해 엄니집에 갔다.
냥이들 걱정을 태산처럼 하면서...
두 군데 밥을 챙겨달라고 부탁을 해서
서툴게 밥을 주고 왔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길냥이들 물통이 꽁꽁 얼어 있었다. 여분으로 가져간 물통에 새물을 부어 주었다. 그러는 잠깐 동안에도 손이 시렵고 꼽다. 이렇게 수고롭고 쉽지 않은 일을 매일 했구나... 길냥이엄마는.
한 달도 안된 길고양이를 안고 있던 냥이 엄마의 거친 손이 떠오른다. 건강하고 씩씩한 길냥이가 아닌  늙고 아픈 냥이들에게 밥을 주는 길냥이 엄마.
야생의 고양이를 먹이고 씻기고 치우는 동안 여기저기 긁히고 거칠어진 손등. 그리고 제멋대로 뚝뚝 끊어진 손톱.
누구는 그 손을 보고 짠해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나도 그랬는데...

나는 고양이가 무섭다. 깜깜한 밤에 빛을 내며 노려보는 듯한 눈도 무섭고 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지긋이 쳐다보는 눈매도 무섭다.
사람들이 길고양이들에게 먹을 걸 주면 안된다고 하는 말에 일정 부분 공감한다.
그리고 열심히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스치로폼 상자로 집을 만들어주는 길냥이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나이들어 힘빠지고 병이 들어 거의 죽게된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챙겨 주고 병원에 데려가 치료도 해주고 그러다 죽으면 정성껏 묻어주고...
늙고 병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고양이들이 먹을 사료를 채워주고 물에 손가락을 넣어본다. 금새 차가워진 물. 금방 살얼음이 앉겠다. 안심이 안된다.
냥이들이 언제 와서 먹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한기면 물이 금새 얼어 버리겠구나. 집으로 돌아와 주전자에 물을 팔팔 끓였다. 그리고 끓인 물을 들고 공원으로 다시 나왔다. 길냥이들 물통에 뜨거운 물을 조금씩 부어주었다. 금방 식지 않기를 바라며...

한참동안 고양이 물통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목마른 길냥이들이 뜨거운 물인줄 모르고 허겁지겁 먹다가 혹시나 혀가 데일까 걱정이 되서 뜨거운 화기가 빠지길 기다렸다.
한참을 앉았었나보다.
동상이 백인 발꼬락이 저릿저릿 가렵고 아프다.
이렇게 추운데. 이렇게 쉽지 않은 일을
길냥이 엄마는 매일 아침 매일 저녁 하는구나. 이 힘들고 고된 일을.

"추운데 이 컴컴헌 밤에 어딜 갔다오냐?"
화장실 다녀오시던 심계옥엄니가 물으신다.
"아, 저기..."
"저기 어디? 괭이들 밥주고 오냐?"
"어찌 아셨대.., 울 엄니.."
"너 나가는 소리 들었다. 들락날락 허는 소리도 들었고.."
"그러셨어?..."
"에그, 사서 고생한다..."
"이게 무슨 고생이야?"
"너말고 그 색시말이야. 괭이 밥주는 엄마.
누가 시켜서 하라고 하믄 하가네? 저 좋으니 하는 거지. 그래도 그게 쉬운일이 아닌데.
사람들도 좋아라 허지않는 일을.. 에그 사람이 너무 착하게만 살아도 안되는데
지가 힘들지 .. 그래도 복 받을거다."
방으로 들어가시며 심계옥엄니가 쯧쯧쯧 안타까운 혀를 차신다.
그러게...아무나 못하는 일을 아무나가 아닌 사람이 하고 있네. 엄니...

까똑~
냥이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집에 무슨 일 없어요?

왜?

꿈에 언니가 보여서?

병원갔었어.

괜찮아?



오래살거야

응. 고마와

"언니 내가 고양이들 한테 밥주고 거두는게 너무 힘들고 지쳐서 어디가서 한번 물어봤잖아~
그랬더니 두 군데서 나한테 똑같은 말을 하네.
내가 단명수인데 고양이들을 거둬서 액을 피해 가는거래..."

찬바람 쌩쌩부는 긴겨울밤.
길냥이 엄마생각을 하니 콧날이 시큰하다.
여행을 가고 싶어도 길냥이들 때문에 집을 비울 수 없다던 길냥이 엄마.
오늘 만큼은 고양이들 걱정일랑 모두 내려놓고 엄니 곁에서 편안히 쉬다오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