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되찾는 새해 계획을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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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되찾는 새해 계획을 세우다
  • 은옥주
  • 승인 2018.01.16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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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은옥주 / 공감미술치료센터 소장

<인천in>은 지난 2016년 6월부터 '공감미술치료센터' 은옥주 소장과 미술치료의 길을 함께 걷고있는 딸(장현정), 아들(장재영)과 [미술치료사 가족의 세상살이]를 격주 연재합니다. 은옥주 소장은 지난 2000년 남동구 구월동에 ‘미술심리연구소’를 개소하면서 불모지였던 미술치료에 투신, 새 길을 개척해왔습니다. 현재는 송도국제도시에 '공감미술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화벨이 울렸다. 
낯선 전화번호라 받을까말까 잠깐 망설였는데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옥주야 내다. 내 해순이다 내 모리겠나?”
갑자기 들려오는 고향친구라는 이의 목소리에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여 금방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친구는 오랜 옛날 우리가 같이했던 고향 이야기며 친구들 이야기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해주었고 조금씩 잊었던 기억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친구 중에 아주 절친했던 친구도 있는듯해서 문득 그립기도, 보고싶기도하여 무조건 만나기로 했다.
친구들이 오는 날 나는 어린 시절 그 아이들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또 내가 알아볼 수나 있을지 은근히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였다.

반가워하며 집으로 들어서는 그 아이들은 이미 아이들이 아니었다.
내가 아이가 아닌 것처럼 세월의 흔적을 숨길 수 없는 그 아이들은 처음에는 너무나도 낯선 할머니들을 만나는 기분이었으나 차츰 자세히보니 어렴풋이 옛날 모습을 간직한 그리운 고향 친구들이었다. 초등학교를 몇 년 다니다가 대구로 전학 온 뒤로는 거의 만나지 못한 우리는 60년을 훌쩍 뛰어넘어 마치 어제 금방 만난 사람들처럼 편하게 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그 중에 한 친구는 어린시절 집이 너무 옹색하고 가난해서 늘 죽만 먹고 살았는데 우리 집에 놀러와서 보니 내가 흰 쌀밥을 먹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야야 너거집에 가이끼네 흰 쌀밥 묵더라. 그거 얼매나 부러웠다꼬.” 하며 눈물이 글썽글썽하며 울먹이기까지 하여 나는 불쑥 내 어린시절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해순아 니 때문에 내가 오늘 흰쌀밥 안했나. 마이묵어라 내 딴에는 육해공으로 열심히 했대이. 내 참 장하재.” 하고 그 아이의 어린 시절 상처를 위로해주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살림살이가 서툰 나를 보고 “아이구 어릴 때 공주가 여즉(여태까지) 공주구나. 우리가 공주 손에 밥을 다 얻어 묵는다.” 하며 놀려서 나는 공주병은 지독한 지병이라 고치지도 못하고 중병을 앓으면서도 여태껏 살고 있노라고 엄살을 떨며 옛날 아이들 때처럼 깔깔거렸다. 긴긴 시간을 건너뛰어 만난 우리는 옛날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참 이야깃거리도 많아서 마음이 훈훈했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마을은 위아래 마을과 산 넘어 마을까지 다 아우르는 학교도 있고 교회도 있는 곳이었다. 딱 하나뿐인 초등학교는 내가 7살에 입학했을 때 긴 머리를 쫑쫑 땋은 말만한 처녀들이 들어와서 같이 한반에서 공부를 했고 졸업식에는 다들 처음이자 마지막 졸업식이라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어서 온 동네가 시끌시끌했던 기억이 난다. 일제시대에 지어졌다는 빨간 벽돌의 단층건물 교사 창문에 코흘리개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서서 깨끼발을 딛고 6학년 교실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기억도 난다.

교실 안에는 선생님이 수업을 하시다가 갑자기 손을 치켜들고 “하나 둘 셋” 하고 큰소리를 치시면 아이들이 모두 ‘우당탕 퉁탕’ 의자를 재끼고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머리를 쳐박고 엎드렸고 선생님도 후다닥 교탁 밑으로 기어들어가셨다.
그것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되풀이하는 광경을 우리들은 신기한 구경거리처럼 보면서 누가 더 빨리 기어들어 가는지 등수가지 매기며 보고 있었다.
나중에야 너무 낡고 오래된 교사가 붕괴위험에 처했지만 고칠 수 있는 여력이 없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궁여지책으로 비상대피 훈련을 하던 것이었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우리는 그렇게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에 함께 그 초등학교를 다녔던 동창생들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다들 퇴행성관절염으로 다리를 쭈욱 뻗고 앉아서 밥을 먹은 뒤에는 약 한 봉지씩을 부스럭거리며 꺼내 먹어야하는 지병이 한 가지씩 다 있는 할머니들이지만 60년 전 우리는 단발머리에 철없는 코흘리개 아이들이었으니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다.
먼 길 마다않고 찾아와주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준 친구들이 너무 고마워서 이제부터는 자주 만나서 밥도 먹고 고향이야기랑 살아온 이야기도 하면서 살자고 약속을 하며 참 마음이 훈훈했다.

그러고보니 오랜 세월동안 잊어버린 사람도 참 많고 잃어버린 추억들도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올 한해는 그런 것들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낡고 오래된 추억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먼지를 툴툴 털고 닦아내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것도 참 좋은 것 같다. 앞만 보고 달리던 걸음 멈추고 천천히 오솔길 걷듯이 하나하나 차근차근 돌아보고 살펴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새해는 새로운 계획들을 세우며 한해를 시작하는데 나의 올해는 고마운 고향 친구들 덕분에 훈훈한 계획으로 새출발을 하는 것 같아서 올 한해가 기대가 되고 즐거워진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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