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귀 빠지신 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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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귀 빠지신 날인데..."
  • 김인자
  • 승인 2018.03.13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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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혼자 사는 할머니들(1)


사랑터에서 돌아오신 심계옥엄니. 옷을 갈아입으시면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가신다. 늘 그렇듯 당신이 사랑터에 입고 가셨던 런닝구를 벗어 조물조물 손으로 빨아 베란다에 널고 쌀 한 바가지를 씻어 냉장고에 넣으신다. 그리고 나면 비로소 화장을 지우시고 세수를 하신다.

"나온, 웃음이 나서."
로션을 바르시던 심계옥엄니가 벙싯벙싯 웃으신다.
"왜 엄니, 사랑터에서 뭐 좋은 일 있으셨어요?
"좋은 일은 뭐. 자꾸 그 할머니가 한 말이 상각나서 그러지."
"그 할머니? 누구?"
"왜 내가 저번에 얘기했잖아. 혼자 살믄서 맨날 맨날 맛있는거 고루고루 해먹는다는 할무니."
"아, 보름날 가지가지 나물 반찬해서 사랑터 선생님들 갖다드렸다는 그 할머니?"
"응, 그 할머니 맞다.
그 할머니가 아들이 데려가서 며칠 안 왔거든."
"근데 오셨어?"
"응, 아들집에 살러갔는데 간지 하루만에 지집으로 돌아왔댄다."
"아니, 왜?"
"며느리가 자라고 방을 내줬는데 옷방이더래."
"옷방?"
"응, 옷방. 승질이 을마나 나던지 그 담달 새벽에 날 밝자마자 지 살던 집으로 돌아왔단다.
피곤해서는 한 숨 늘어지게 자고. 실컷자고 났더니 배가 고프더란다. 그래서 일어나서는 자기가 먹고 싶은 거 다 해먹었단다. 밤이 되면 테레비보다 잠들고 세상 편터란다."
"그래도 아들 며느리가 해주는 밥이 편치 뭐하러 할머니는 빈집에 쓸쓸허게 다시 들어가셨대?
"그게 또 그르타. 몸만 성하믄 저하고 싶은 대로 저 먹고 싶은 대로 지 멋대로 할 수 있는 지 집이 사는 데는 제일 편한 법이지;"


"아이고, 요짝으로 내리 앉아봐라 아구야 손이 아주 깽깽 얼었네. 우짜믄 좋노? 이 가스나야. 내가 니 때문에 미치것다. 니 은제부텀 여기 서 있던기고?"
"얼마 안되요?"
"얼마 안되기는?
얼마 안되는데 볼따구가 이리 시뻘겋게 땡땡 얼었다고? 이 추운데 왔으믄 냉큼 들어오든가 허지. 뭐 한다꼬 밖에 이러고 서있었냐 그래?"
"할무니 아직 주무시는거 같애서 그랬지."
"지랄허고. 지금이 몇 신데? 나 일어난지가 은젠데."
"아이, 참 할무니 지랄이 뭐야아~~~"
"왜 지랄이란 소린 듣기 실나?"
"좋진 않지."
"글나? 글먼 쫌 잘해라. 천둥벌거숭이 맹키로 꼭두새벽에 차 갖고 다니지 말고. 내가 김선생 니 때문에 살이 녹는다."
"살이 녹는다고?"
"그래, 내가 살이 녹는다. 니땜에"
"와 울 할무니 신새벽에 이케 야하믄 되까여? 안되까여?"
"안되긴 뭐가 안돼? 야해? 먼 귀신시나락 까묵는 소릴 하고 있노?"
"살이 녹는담서? 살이 녹는건 남자랑 여자캉 좋을 때 살이 녹는다카는데~"
"지럴허고 ~"
"아, 알았어요. 지랄 두번 나왔다 울 함무니~안하께. 할무니 웃으시라고 내 신 소리 한 번 해봤다."
"진짜 니 먼일 있는거 아이제?
꼭두새벽부터 안하던 소릴허고 니 오늘 이상타."
"엄써여. 암일도? 할무니 멱국은 잡쉈어?"
"머 좋은거라구 먹노? 내 먹은 나이가 즉어서? 멱국 먹으믄 나이만 자꾸 먹는건데 뭐 좋은 거라고 꼬박 꼬박 챙겨 먹겠노."
"그래두 할머니 귀 빠지신 날인데. 내 그럴줄 알고 울 할무니 드시라고 멱국이랑 울할무니 좋아하시는 소주 사왔다?."


"할무니, 김치도 쫌 드셔요 그래야 입앗이 돌지."
"김치는 나 안 묵을란다."
"와? 김치를 마이 잡숴야 똥도 잘 눈다."
"김치는 내가 매워서 못먹는다. 복지관서 선생님이 갖다준 것도 냉장고에 그대로 있다.
김선생 니 잘 왔다. 글치않아도 내 김선생 너 오믄 줄라고 끌러도 안보고 고대로 냉장고에 넣어 뒀다. 갖다 묵어라."
"아우, 할무니 됐어여. 사시사철 배추가 나온다고 해도 맛이 김장김치 같은가? 찬도 몸 놀리는거 귀찮다고 잘 해드시지 않으시면서. 김치가 있어야 든든하지. 할무니 끼내 때마다 뭐해서 드실라구?"
"먹을거 있다."
"저 줄 생각 하지 마시고 지져두 드시구 들기름 넣고 달달 볶아도 잡숫구 콩나물 집어 넣구 션하게 국끓여 드세요. 감기도 안 걸리고 좋아요 할무니. 햇배추 나올라믄 한참 멀었어요. 그러니까 할머니 저 주실 생각마시고 두고 드셔요."
"에구, 우리 김선생은 머리가 영리해서 아는 것도 많다. 그르니까 김선생 네가 갖다 먹어라. 들기름 넣구 달달 볶아서 두부랑 싸서 먹으믄 뼈에도 그렇게 좋다더라."
"뼈에도 좋대? 누가 그랬어요 할무니?"
"누가 그러긴. 복지관선생님이 그러드만."
"거봐여 뼈에 좋다니까 할무니가 더 많이 드셔야돼요."
"난 다 살았어. 그러니 김선생이나 좋은 거 있음 많이 먹고 제발 아프지마라. 나는 그게 소원이다."
"나는 좋은 거 많이 먹어요. 걱정마세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좋은 거 많이 드셔야돼요."
"퍽두 좋은 거 입에 넣겠다. 좋은 거 많이 먹었다믄서 얼굴이 왜 저번 만 못하냐?
어디가 또 안 좋구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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