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아 너무 어렵게 살지마라. 쉽게 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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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아 너무 어렵게 살지마라. 쉽게 살어"
  • 김인자
  • 승인 2018.03.20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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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혼자 사는 할머니들2
 
"아닌데..."
"아니긴 머가 아니야. 시커먼게 못본 새에 얼굴이 영 못쓰게 되었구만 그래.
요즘도 김선생 밤에 잠 못자나?"
"아닌데... 잘 자는데..."
"자긴. 개~뿔. 내가 김선생 니 만할 때는 말이다. 오만 군데 안 가는데 읍시 펄펄 날라댕겼느니라."
"하하, 진짜로다?"
"그럼, 진짜지. 내가 그 무건 쌀가마니도 심들이지 않고 척척 날라다 광에 쌓고 그랬니라."
"할아부지는 모하고 그 무건 쌀가마니를 할머니가 혼자서 죄 나르셨대?"
"할아부지는 돈 벌러 나갔지."
"그랬으니까 할무니가 맨날 허리가 아프지."
"허리 아파도 좋으니 배만 안 골믄 조캈다. 그 시절엔 내집 쌀광에 쌀가마니 쌓는게 제일 좋았니라."
"예 ?"
"또 우나? 자꾸 울지마라. 자꾸만 울믄 울일 생긴다 안카나?"
"예, 할무니 ?"
 
"김선생 니 힘들제. 니가 욕본다. 치매 어무니를 모시고 사는게 그게 어디 보통 일이가네? 거기다 새끼들 먹이고 입히고 가리킬라믄 또 을메나 용을 쓰겄노? 내 다 안다. 내도 친정어무니를 십오년이나 내집에서 모셨니라. 늙은 어메를 집에서 모신다는게 그것도 몸도 성치않은 노인네를 집에서 돌본다는게 을메나 힘든 일인지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모른다. 많이 힘들제? 내가 우리 김선생 맘 다 안다. 이그 착해 빠져가지고 힘들다 내색도 몬하고 형제자매가 있길 하나 그짐을 혼자 죄 짊어지고 있으니 그 쏙이 쏙이겠나? 모르긴 몰라도 숯껌뎅이 맹키로 시커멓게 탔을거이다.
"우리도 엄니들이 그리 키우셨잖아요. 힘들어도 힘들다 내색 안코 그 힘든 일 다 하시면서 자식까지 키우셨잖아요."
"이그 그때랑 지금이랑 같냐? 늙으이들이 어서 어서 갈 때 되믄 죄다들 저 갈 때로 가야는데 그래야 젊은 사람들이 고생을 안하는데 ?그게 또 내 맘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
"할무니 그런 말씀 마세요. 할무니들이 오래 오래 건강하게 저희 곁에 계셔주셔야 저 같은 사람이 또 이렇게 기운이 나지요."
 
"글나? 말만 들어도 고맙꾸로. 김선생아, 오늘은 아무리 바빠도 밥먹구 가라. 내 얼른 밥해주께."
"아녜요, 할머니. 빨리 가서 저도 밥해야지요."
"금새 된다. 먹구가아."
"담에요. 담에 와서 먹으께요. 할머니 얼굴 뵈었으니 가야지요. 근데 할머니 식사는 하셨어요?"
"나? 나는 진작 먹었지. 지금이 멫신데."
"잘하셨어요. 저도 진작 먹고 왔어여."
"진짜로?"
"그럼요. 진짜지요."
"먹긴 뭘 먹었깐. 나야 일찍 일어나서 헐 일 없으니 아침 일찍 해먹고 들어앉았지만 김선생이야 내한테 오니라 일찍 나섰을 거믄서 무슨 아침을 먹어?"
"진짜 먹었어요 할머니. 엄니가 일찍 드시니까여."
"아 글쿠만. 노인네들은 일찍 인나시니 밥을 일찍 해야지?김선생."
"예, 할무니."
"은제든지 돌아댕기다가 배가 고프믄 밥먹으러 와라. 배 곯구 다니지말구 아라쩨?"
"예, 할무니."
"대답만 예 예 하지 말구 꼭 와라. 내가 이나마 수족이라도 놀릴 수 있을 때 따신 밥해서 우리 김선생 꼭 한번 대접하고 싶어 그러는 것이니?시간 내서 꼭 한번 와라."
"힝, 할머니 대접이라니요. 그냥 ?밥먹으러 와라 그러심 될 것을.
할무니 한번 해보세요. 밥먹으러 와라."
"에구 으트게 그래. 아무리 그래도 하늘같은 우리 선생님헌테."
"하늘같은 선생님한테 지랄허고도오~는 잘 하시믄서. 빨리 해보세요. 안 그럼 저 안올테예요."
"그래? 우리 김선생 밥먹으러 와라~ 그러믄 진짜 올끼가?"
"그럼요, 할머니. 진짜 오지요."
"우리 이쁜 김선생 은제 이 늙으이 집에 밥 한 번 먹으러 오시오."
할머니가 웃지도 않고 심각하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중에 기본인 밥.
그 밥을 정성껏 대접하고 싶어하셨던 할머니.
비록 한글을 읽고 쓸 줄은 모르셨지만 제대로 된 말을 하려고 노력하셨던 할머니.
그날도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보고 싶어져서 기별도 없이 할머니집에 갔다. 비가 오길래...
"할머니, 나 배고파요. 밥주세요."
"이런 올거믄 온다고 미리 말을 하고 오지.
우짜노? 입에 뭐 넣어보라고 줘볼게 읍네. 온다구 미리 연락 줬으믄 생선이라도 한 마리 사다 구워 줄턴데. 에구 뭘 해서 줄꼬?"
(이럴실까봐 우리 할무니 마음쓰실까봐 내가 갑자기 왔지. 할머니...)
"에구 우야믄 좋노. 진짜 뭐를 해서 입에 너줘볼꼬. 당최 집어 먹어 볼게 읍네. 헐 수 업따. 찬은 없지만 밥이라두 많~이 먹어라. 햅쌀이라고 복지관 슨상님이 갖다준 거 첨으로 클러봤다.으트케 배가 고플때 까지 굶고 다니냐 그래. 츤츤히 먹어라 체할라. 김칫국 떠 먹어가믄서 천천히 꼭꼭 씹어먹어.
자,이거 한 번 먹어봐라. 간이 슴슴하니 짜지도 않고 지금 먹기 딱 좋다."
할머니가 배추잎 하나를 들어 손으로 쭉쭉 찢어 내 밥그릇 위에 올려 놓습니다.
"배고플 땐 말이다. 김치 한 쪼가리도 뜨신 밥 위에 올려 묵으믄 그게 또 꿀맛이다.
나도 밥먹기 싫으믄 물에다 밥 한 숟갈 말아서 김치 얹어 먹는다. 그라믄 그게 또 목구멍에 넘어가드라. 그렇게 또 한 끼 때우는 것이지. 사는게 고달퍼서 은제 죽나? 이러믄서도 한 끼 굶어봐라. 눈이 찜찜해지고 다리가 곰방 푹하고 꺾인다. 사는게 다 그런거 아니것냐? 어렵게 생각하믄 어려운 것이고 또 쉽게 생각하믄 또 아주 쉬운 것이고.
죽을 때가 되니까 알게 되드만. 잘 사는게 뭔지 말이야.
나도 이 나이까정 으트게 살았는지 생각하믄 기가 멕히고 코가 멕힌다. 그래두 나는 이때까정 살믄서 생전 그짓뿌렁은 안하구 살았다.넘들한테 못할 짓도 안해봤고. 김선생아 너무 어렵게 살지마라. 쉽게 살어. 그래야 신상이 편타. 지신상도 편코 넘의 신상도 편코.
세상 복잡하게 살거 읍다.
이래두 한 세상 저래두 한 세상.
무하러 지지고 볶고 사냐. 재미나게 살아도 짧은 세상인걸."
 
뜨건물 부어 말아놓은 밥이 퉁퉁 불어 고봉밥이 되었군요.
 
"으트게 배가 고플때 까정 배를 골리고 다니냐.
어서 먹어라. 츤츤히 꼭꼭 씹어 많이 먹어."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그 소리에 퉁퉁 불은 밥 한 숟가락을 푹 퍼서 입에 넣습니다. 그리고 그 옛날 우리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배추한 잎을 손으로 쭉 쭉 찢어 입속에 구겨 넣습니다.
 
꼭꼭 씹어 먹어. 체할라
네, 할무니.
 
앙앙앙
아 맛없다?
 
이 밥이 그 밥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밥 한그릇이어도 따뜻하게, 정성껏 지어 그 밥 다 먹을 때까지 밥상머리에 앉아 어여 먹어라 하며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셨던 울 할머니가 그립습니다.
따뜻하게 지어 주셨던 할머니의 따순밥이 너무도 먹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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